155화 하 가문(12)
“…….”
목 끝을 타고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
진검이었다.
이에 현성이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눈빛 살벌한 거 봐라.’
정말이지 <이스페리아>에 나온 성격 그대로였다.
하여간 이 수연이나 저 수연이나 수연이라는 이름은 전부 왜 이리 가차 없는지.
현성이 (전)암살자, (현)메이드인 수연과 싸울 때를 떠올렸다.
‘그나저나 지금쯤 수연은 아직도 마족의 흔적을 찾고 다니려나.’
현성이 눈앞의 수연과는 다른 친절한 수연을 생각하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불친절한 수연.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연서와 시연을 비롯한 연회장의 손님들.
‘……아무튼 이거부터 어떻게 해야겠군.’
그러면서 현성이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는 찰나.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대답하기 전에 움직이면 벤다.”
그대로 수연이 시선을 고정한 채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너희 둘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의 말에 검을 빼려던 연서와 시연이 움찔거렸다.
수연은 이미 둘의 움직임까지 간파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녀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누누이 내가 말했지 않나. 검을 들 때는 그만한 각오를 하라고. 각오가 없는 검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큿.”
이에 연서가 분한 듯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렸다.
하지만 시연은 달랐다.
그녀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채앵.
그대로 시연이 수연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지켜보던 관중들은 웅성거리고.
연서는 미간을 좁히며 움찔거렸다.
그리고 당사자인 시연과 수연은.
놀랄 만큼 침착했다.
“……호오?”
오히려 수연은 의외라는 듯 작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목 바로 아래 있는 날카로운 검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을 겨눴다는 건 각오가 되었다고 봐도 되겠지?”
동시에 수연의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방금 전까지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그 아래 숨겨두고 있던 날카로움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스으으.
그에 따라 연회장을 타고 긴장이 흘렀다.
그 안은 소리하나 없이 조용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고요함은 폭풍전야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호흡을 재던 둘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질 때.
수연과 시연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순간.
-덜컥.
돌연 둘의 몸이 멈춘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현성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저지했다.
“자, 그럼 여기까지.”
현성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느새 그는 수연과 시연 둘 사이에 서있었다.
동시에 둘의 움직임을 방해하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뭐지?’
이에 그 상황을 지켜보던 연서가 미간을 좁혔다.
분명 수연과 시연은 진심을 담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시간에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현성은 그 틈에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현성의 움직임은 마치 물 흐르듯.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심지어는 지켜보던 그녀조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
“…….”
곧이어 현성의 머릿속을 타고 전음(傳音)이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
다름 아닌 알레시아였다.
[재미있어 보여 잠깐 나섰는데 실례한 건 아니겠지. 현성?]
‘아냐. 실례는 무슨.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어.’
이에 현성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런 그의 목소리 역시 밖으로 울려 퍼지지 않았다.
방금 전 둘의 움직임이 순간 멈춘 것도.
지금처럼 둘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도.
전부 알레시아의 마법이었다.
역시 마나의 지배자라고 불릴만했다.
그대로 현성이 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검. 계속 그렇게 들고 계실 겁니까?”
애초에 현성이 둘을 저지했을 때.
시연은 이미 검을 거둔지 오래였다.
그에 따라 검을 들고 있는 오직 수연 뿐.
“……호오, 그만한 자격정도는 있는 놈이었나.”
수연의 입 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그대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수연이 현성의 멱살을 쥐었다.
-터업.
동시에 그녀가 현성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마음에 드는군.”
방금 전과는 달리 꽤나 흥분한 듯.
거친 수연의 숨결이 귀를 간질였다.
이에 시연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지금 뭐하는……!”
그러자 수연이 잡고 있던 현성의 멱살을 스르르 놓으며 물러섰다.
그리고 그녀가 싱긋 웃으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자격이 있는 녀석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그러면서 수연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어느새 그런 그녀의 옆에는 하 가문의 수행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곧바로 수연이 널브러진 진우를 가리키며, 수행원에게 명령했다.
“진우를 챙기도록. 오늘은 이만 돌아간다.”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수연이 잠시 발을 멈추었다.
이어서 그녀가 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와의 대결은 기대하고 있도록 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수연이 연회장을 벗어났다.
그렇게 잠시 뒤.
하 가문의 수행원들이 진우 패거리를 부축하고 전부 퇴장한 뒤에야.
“후우…….”
연서가 참아왔던 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 그녀가 현성을 향해 말했다.
“야. 너 미쳤냐? 진우 걘 몰라도 수연언니한테 덤빈 건 진짜 위험했어.”
“……그래?”
“그래는 무슨. 다른 건 몰라도 그 인간은 진심이었어.”
연서가 방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니까 조심해. 인정하기는 싫지만 니가 다치면……”
연서가 시연에게 안 들릴 만큼 작게 속닥거렸다.
“시연언니가 싫어한단 말이야.”
“아, 예.”
아주 지극정성이시네요.
현성이 작게 혀를 차며 연서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시연이 현성의 소매를 잡았다.
-덥썩.
그대로 시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연서말대로야.”
이에 연서가 작게 움찔거렸다.
뭐지. 최대한 작게 말했는데 설마 그게 들리기라도 한 걸까.
동시에 그런 연서의 모습에 현성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수연. 그 사람을 조심하라는 거지?”
“맞아.”
현성의 말에 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연서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마, 맞는 말이지. 사실 나도 알고 있었어. 당연히 그 말이겠지.”
“…….”
그대로 현성이 연서를 빤히 쳐다보았다.
뻔뻔한 녀석 같으니.
그러면서 그가 수연이 사라진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저게 바로 하 가문의 첫째, 하수연.’
아직도 귀에 그녀가 남긴 거친 숨결이 맴도는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이런 캐릭터였지.
‘확실히 조심하긴 해야지.’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연서와 시연을 바라보았다.
하 가문의 자식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열망이 달랐다.
연서는 언니 시연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연은 소중한 사람들을 아무도 잃고 싶지 않다는 열망을,
진우는 시연을 짓밟고, 하 가문을 순혈로 유지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첫째 수연은?
‘……겉으로 보기에는 진우와 비슷한 순혈주의의 인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수연이 가진 열망은 간단했다.
오로지 강자를 향한 순수한 열망.
그게 전부였다.
강자를 탐하고, 강자를 좋아하며, 강자와 싸우는 걸 광적으로 즐긴다.
이에 관한 일화로는 그녀가 17살이 되던 해.
3일 밤낮으로 하 가문의 검사를 상대하며, 그들을 전부 쓰러트릴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다.
‘그야말로 강자와의 싸움에 미친 전투광.’
이게 바로 하수연이라는 인물의 실상이었다.
동시에 그녀가 순혈주의를 택한 것도, 상대적으로 순혈파에 강한 자들이 많다는 이유가 끝.
이런 탓에 <이스페리아>에서 그녀의 별명은 검을 든 무친련, 줄여서 검친련이라고 불렸다.
당장 방금 전도 그랬지 않는가.
자격이니 뭐니 운운하며 살기를 풀풀 풍기다가, 검을 막아내니 단번에 호의적으로 돌변하던 그 태도.
그녀는 강자에 한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 실상에는 알레시아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수연의 입장에서 현성은 구미가 당기는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성은 메이드 수연에 이어, 하 가문의 수연에게도 크나큰 관심을 받게 생겼다.
이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수연이라는 이름에 마가 붙었나.”
그대로 현성이 자리에 앉았다.
하여간 이걸로 하 가문의 자식들을 전부 본 셈.
거기다 진우의 열쇠도 획득했으니, 여기서 얻을 건 다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현성이 연서와 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이만 돌아가자.”
* * * * *
그렇게 연회장에서의 일이 마무리 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하 가문 최상층에 위치한 진우의 집무실.
그곳에서 진우가 분한 듯 자신의 탁자를 내리쳤다.
-콰앙!
“이런 제기랄……”
그가 연회장에서 있던 일을 곱씹으며 이를 갈았다.
감히 역으로 자신을 함정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런 망신을 주다니.
다시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술에 취해 뻗은 하 가문의 둘째.
치욕스럽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사실은 술에 취한 게 아니라 현성에게 당해 쓰러졌다고 말하기에는 더 쪽팔린 일이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겨우 몰락가문에 불과한 쓰레기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이에 그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하 가문의 위상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이 방법만큼은 안 쓰려했건만.”
그러면서 진우가 탁자 위에 있던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스마트폰의 주소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잠시 뒤.
-멈칫.
곧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그런 그가 멈춘 곳에는 블랙 하운드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블랙 하운드.
일명 사냥개라고 불리는 곳으로, 마약운반, 살인청부의뢰를 포함한 온갖 더러운 일을 행하는 집단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의뢰는 다름 아닌 헌터 청부 살인.
이 때문에 블랙 하운드의 의뢰를 받는 사람들은 주로 실력이 입증된 암살자나 같은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그들의 일처리는 집요하고, 확실했으며 이 사실은 그들을 이 분야에 있어 따라올 자가 없는 최고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
덕분에 진우 역시도 블랙 하운드를 애용하곤 했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자를 제거하기 위해,
때로는 하 가문의 대의를 위해.
그리고 이번에도 그 이유는 변함이 없었으며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유현성. 그 녀석을 제거한다.
그대로 진우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곧 고요한 그의 집무실을 타고.
전화대기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뒤.
[……이거 진우 도련님 아니십니까? 간만이군요.]
스마트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삐져나왔다.
그의 이름은 바로 케르반.
블랙 하운드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일평생 그 이름을 모를 수도 있는.
아니 알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진우는 조금 달랐다.
“그래, 간만이군.”
그가 하 가문에 있으면서 처리해온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우는 그럴 때마다 블랙 하운드를 찾았으며.
덕분에 그는 블랙 하운드에 있어 꽤나 익숙한 고객이 되었다.
거기다 의뢰를 처리할 때마다 두둑한 의뢰금까지.
무엇보다 필요하다면 하 가문의 힘을 이용해 블랙 하운드의 뒤를 봐주기도 했다.
즉, 그는 블랙 하운드에게 있어 단순한 고객이 아닌 무려 vvip급 손님.
괜히 블랙 하운드의 수장이 전화를 받은 게 아니었다.
그대로 케르반이 말했다.
[그나저나 의외군요. 평소에는 직접 전화하는 건 꺼리는 편 아니었습니까?]
“그랬지.”
그는 평소에는 혹시라도 블랙 하운드와의 유착관계가 들킬 걸 우려해 직접 의뢰를 넣는 건 피하는 편이었다.
허나 오늘은 달랐다.
무려 직접 전화를 걸었다.
동시에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만큼 중요한 의뢰라는 것.
이에 케르반이 낄낄거리며 입을 열었다.
[꽤나 중요한 일 같은데…그래서 어떤 의뢰입니까?]
“항상 하던 대로.”
진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항상 하던 의뢰라면 정해져있었다.
대상은 물론이며 그 주변인까지 전부 죽이는 의뢰.
[그렇군요. 그럼 대상은 어떻게 됩니까?]
“유현성. 유 가문의 가주다.”
[호오, 가주입니까?]
“그래, 하지만 가주래봤자 몰락 가문의 가주다. 그 아래 있는 거라곤 메이드 하나가 전부라더군.”
그러자 케르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진심이십니까? 이거 가주와 메이드하나라니. 이 정도면 굳이 저희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간단한……]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진우가 케르반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까칠하시기는……좋습니다. 저희가 나서죠. 도련님이 직접 전화 주셨으니, 저희도 성의를 보여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케르반이 말했다.
[자, 그럼 작업은 언제부터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이에 진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그 말에 정적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케르반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냥개는 사냥개답게, 언제나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뚝.
케르반과의 전화가 끊겼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