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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50화 (150/240)

150화 하 가문(7)

애초에 현성은 하 가문의 둘째, 그러니까 하진우가 손을 쓰리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건 원작에서도 그랬으니까.

그때도 하진우는 연회장의 입구부터 가문의 위세와 재산에 따라 등급을 매겨 유진에게 치욕을 안겨주려 했다.

이에 유진은 가진 건 없지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자신의 무기.

검성의 검로를 펼쳐 모든 사람을 감탄시킨다.

‘……그게 나름 또 명장면이란 말이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현성에게는 검성의 검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눈 뜨고 당하는 수밖에 없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주인공 유진에게는 유진만의 방법이 있던 것처럼.

현성에게는 현성만의 방법이 있었다.

이게 <이스페리아>의 표류자, 유현성의 생존법이었다.

“자, 여기.”

그대로 현성의 손을 따라 나온 것은 금색의 반지.

무엇보다 가운데 박혀있는 보라색 보석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 황홀한 보랏빛에 시종이 멍하니 반지를 바라보았다.

“이건…….”

그때였다.

이를 지켜보던 제임스 강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곧바로 그가 반지를 향해 다가가며 외쳤다.

“이, 이건 바실리스크의 눈 아닌가!”

바실리스크.

왕관모양의 볏이 달린 커다란 뱀과 같은 모습의 괴수로.

강력한 독을 품은 숨결과 석화의 능력을 가진 몬스터였다.

그중에서도 석화의 능력을 품은 눈은 사후에도 효과가 남아 특히 조심해야하며, 그 효과를 유지한 채 아티팩트로서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특수한 처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처리기술이 워낙 어려운 탓에 국내에서는 가공이 절대 불가능하며, 해외에서도 몇 없는 장인급의 기술자들만 가공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바실리스크의 눈은 시장에 유통되기 굉장히 어려우며, 유통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희귀하고 비싼 물품이었다.

그런데 특수처리까지 완벽하게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반지형태의 아티팩트로 완성되어있다니.

놀랄 노자였다.

“내 생전 이걸 다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온갖 헌터들의 무기를 유통하는 제임스 강조차 아주 오래 전.

미국의 유명한 콜렉터(Collector) 더웨이의 보관고에 있던 걸 제외하고는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아마 블랙마켓에서도 쉽게 구하지 못할 정도.

“자네 콜렉터 아니, 익스플로러(Explorer) 출신의 가문인가?”

익스플로러.

모험가라는 뜻으로, 이계를 누비던 전설 속 위대한 모험가 가야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집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직접 던전을 찾거나, 미개척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업적을 세운만큼.

지금에 이르러서는 막대한 부를 가진 가문으로도 유명했다.

거기다 이들 중 대부분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게 대부분이라, 그 모습을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한번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그 파급력은 상상이상이었다.

‘오죽하면 그들이 등장할 때는 국가 단위의 거금이 오갈 때뿐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

물론 그 소문이 워낙 부풀려진 것 일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란 것 정도는 확실했다.

이를 증명하듯 현성의 손에 들려있는 바실리스크의 눈.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걸 꺼린다는 뜻이 이런 의미였군…….’

그도 그럴게 평소에 이만한 물건을 가지고 다닐 정도면 본격적으로 그가 나서면 도대체 얼마만큼 귀한 아티팩트가 쏟아진다는 소리인가.

아마 헌터계는 물론이며 모든 경매장이 발칵 뒤집어 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 정도면 충분한가?”

그대로 현성이 반지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러자 시종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제임스 강과 현성을 번갈아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 추, 충분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임스 그룹의 오너이자, 헌터무기사업의 거장 제임스 강이 이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물건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눈앞의 소년은 적어도 제임스 강 급의 인물이 분명할 터.

‘역시 많은 귀빈들이 온다는 진우 도련님의 말이 맞았어……!’

시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세상에. 이번 연회는 정말 보통이 아니겠구나.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현성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그런 그의 반지에는 검은 다이아가 박혀있었다.

현성 역시 가장 높은 블랙등급.

이에 그가 자연스럽게 반지를 받아들며 손가락에 끼웠다.

“고맙군.”

그대로 현성이 술렁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며.

당당히 정문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는 제임스 강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려 블랙등급의 인사가 둘.

이에 연회장에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들이 재빨리 귀빈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제임스 강이 말했다.

“자네, 정말 대단하군! 내 살다 살다 익스플로러 출신의 가문을 보게 되다니. 뭐 콜렉터일수도 있겠지만 하하! 아니 그보다 바실리스크의 눈은 어떻게 구한건가?”

그 말에 현성이 언제나 항상 그랬듯.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와 함께 현성이 품속에 있는 바실리스크의 눈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웃었다.

역시 저번에 블랙마켓의 지하 물품소에서 닥치는 대로 쓸어오길 잘했다.

그대로 그가 알레시아와 함께 가졌던 쇼핑시간을 떠올렸다.

지금 품속에 있는 반지 역시 그 부산물 중 하나.

덕분에 그 결과, 현성은 몰락가문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블랙등급을 받고 입장하는데 성공했다.

‘그럼 이제 슬슬 시연이네를 찾아볼까.’

그리고 마침.

저 멀리 검은 드레스를 입은 시연과 연서가 보였다.

아무래도 둘은 하 가문인 만큼, 먼저 입장해 현성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에 현성이 제임스 강을 향해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절 기다리는 분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그랬나. 이거 원…나 혼자 너무 신나서 떠든 게 아닌가 싶군.”

제임스 강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만큼 바실리스크의 눈이 가지는 가치는 컸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 강은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네.”

그대로 제임스 강이 현성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익스플로러 출신 가문인가?”

“…….”

그러자 현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싱긋 웃으며 조용히 검지를 입에 가져다대었다.

“비밀입니다.”

익스플로러 출신이라는 게 비밀인지.

그게 아니면 답변자체가 비밀인건지.

속을 알 수 없는 중의적인 대답.

이를 마지막으로 현성이 자리를 떠났다.

머지않아 저 멀리, 두 명의 소녀와 같이 있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분명 하 가문의 두 딸.

하시연과 하연서였다.

그 모습에 제임스 강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직계파인줄 알았더니 설마 그가 방계파를 지지하는 가문이었던 것인가.

“……현성이라고 했나.”

도저히 꿰뚫어 볼 수 없는 검은 눈동자.

유려하게 호선을 그리던 입가의 웃음.

마치 여우에게 홀린 듯, 그런 현성의 모습은 아마 당분간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거 방계파도 얕볼 수 없겠구먼.”

그가 현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 * * *

그대로 시연네와 만난 현성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먼저 와있었네?”

그런 그의 인사에 연서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현성이 있던 자리와 그를 번갈아보았다.

그와 함께 연서가 입을 열었다.

“……너 어떻게 들어왔어? 아니 그보다 방금 너랑 같이 있던 사람. 제임스 강 아니야?”

“응, 맞아.”

현성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가 뒤를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덕분에 쉽게 들어왔지.”

현성이 검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보여주며 히죽 웃었다.

마침 앞에 제임스 강이 있던 탓에 구태여 바실리스크의 눈을 설명해야 한다던가.

추가적인 아티팩트를 보여줄 일도 없었다.

“어? 뭐야. 너 블랙등급 받았어?!”

동시에 현성이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발견한 연서가 눈을 번쩍 떴다.

연회장에 들어오면서 진우가 입구에 부려뒀던 수작에 대해서는 이미 다 들은 찰나였다.

가문의 위세와 재산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니.

보나마나 직계파를 지지하는 가문들은 전부 다 유명가문이니, 대놓고 방계파에게 수치를 안겨 주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몰락가문인 현성이라면 당연히 브론즈 등급을 받고 들어올 터.

그만큼 걱정되어 빨리 들어왔건만, 이게 무슨 일.

현성은 보란 듯이 가장 높은 등급인 블랙등급을 받고 당당하게 연회장에 입성했다.

그것도 제임스 강과 말이다.

“……너 입구에서 행패 부렸지? 블랙등급 안주면 다 죽여 버리겠다거나.”

그래. 안 그래도 방금 전 제임스 강 덕분에 쉽게 들어왔다 했었지?

그렇다면 분명 제임스 강을 인질로 삼고 협박을 한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이렇게 블랙등급을 받고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연아. 잠시만 실례.”

그 말에 현성이 손바닥을 뻗어 시연의 눈을 가리며.

연서를 향해 중지를 치켜세웠다.

그와 함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이에 연서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모르는 시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둘이 뭐해?”

순수하기 그지없는 물음.

그러자 현성이 시연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며 싱긋 웃었다.

“아냐. 아무것도 안 했어. 그렇지?”

그대로 현성이 연서를 향해 물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연서가 쯧. 하고 혀를 차며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이지.”

감히 자신에게 중지를 세운 건 당연히 마음에 안 들지만.

시연이 이를 못 보도록 눈을 가린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말이다.

‘연회 때 두고 보자.’

연서가 방금 전 현성이 그랬던 것처럼.

입모양을 뻥긋거리며 현성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이제 곧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될 터.

그러면 현성에게 춤이나 추자하면서 하이힐 굽으로 발을 밟아버리리.

연서가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 그때였다.

연회장을 타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에 주변의 사람들 역시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연서가 눈을 반짝였다.

‘지금이다.’

연서가 재빠르게 현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는 찰나였다.

현성이 자연스럽게 시연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같이 출래?”

“어? 나?”

갑작스런 현성의 제안에 시연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시연이 조심스레 현성의 손을 맞잡았다.

“…….”

그런 시연의 얼굴을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동시에 그 모습을 본 연서가 허공에 손을 뻗은 그대로 정지했다.

이어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연서가 미간을 구겼다.

‘저, 저…여우같은 것!’

자연스럽게 선수를 친 현성.

그리고 부끄러워하는 언니.

잠시 복수에 눈이 멀어 우선순위를 헷갈렸다.

-으드득.

연서가 이를 갈며 현성을 째려보았다.

감히 언니와 춤을 추다니.

내가 먼저 추자고 할 걸. 아니 이게 아니지.

연서가 고개를 붕붕 저으며 현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음에 두고 봐.”

마치 게임 속 삼류 악역을 연상케 하는 대사.

이에 현성이 보란 듯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얼마든지.”

그와 함께 현성이 시연의 손을 이끌며 연회장으로 나섰다.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연회장.

현성이 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비됐어?”

그런 현성의 물음에 시연이 아직도 조금 부끄러운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제길, 부럽다……”

그 둘을 지켜보고 있던 연서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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