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하 가문(3)
병원 맨 위층에 위치한 vvip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시연은 꿈을 꾸고 있었다.
그대로 꿈속의 그녀가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잿빛으로 물든지 오래였다.
어딜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오로지 박살난 도시의 잔해뿐이었다.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몬스터들의 흉성이 끊이지 않았다.
10년 전, 세상에 종말이 도래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날.
무너진 지하철 사이.
그곳에는 한 순간에 부모를 잃고, 구석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먼지에 뒤덮여 엉망이 된 흑발.
초점을 잃어가는 두 눈동자.
소녀의 이름은 하시연.
이 모든 건 10년 전 과거.
고작 7세인 그녀가 겪은 일이었다.
그와 함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듯, 그때의 악몽이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 * * * *
-그그극, 그그극…
무너진 지하철 깊은 곳.
조그마한 잔해의 틈 사이.
사람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은 공간을 타고 작은 소리가 삐져나왔다.
투박한 돌 따위로 벽을 긁는 소리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소리가 멈췄을 때.
어두운 벽면에는 새로운 흠집이 나있었다.
“…….”
그대로 시연이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녀 앞을 빼곡하게 매운 수많은 흠집이 보였다.
아니, 이제 보니 흠집이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5개 단위로 그어진 선들.
그것은 일종의 달력이자, 시계였다.
이어서 시연은 하얀 손을 들어 천천히, 하나하나 벽에 새겨진 선을 세기 시작했다.
“70…83…98…”
무너진 지하철을 타고, 안내음 대신 시연의 메마른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그 수가 100을 넘길 때쯤.
그녀가 손을 내려놓았다.
-투욱.
핏기 없는 허여멀건 한 손은 먼지와 상처들로 가득했다.
손톱은 너무 길게 자라, 일부는 흉하게 꺾여있었다.
아마 그녀의 엄마가 봤으면 꼴이 이게 뭐냐고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잔소리가 들리는 일은 없었다.
“쿨럭.”
시연이 작은 기침을 토해냈다.
벌써 지하철에서 지낸지 100일이 넘어갔다.
그러다보니 워낙 먼지와 돌가루를 많이 마신 탓일까.
최근 들어 기침을 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이에 시연은 꾸욱 입을 닫고 기침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기침이 심하게 나왔다.
“쿨럭. 크흡…쿨럭!”
그러자 결국 시연은 아예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그것도 모자라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몇 번씩이나 어깨를 들썩이고 나서야, 기침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는 시연이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너진 기둥, 바닥에 말라붙은 피, 쌓여있는 먼지.
다행히 모든 게 그대로였다.
곧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시연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멋모르고 기침을 했다가, 몬스터들이 그 소리를 듣고 근처까지 찾아왔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손발이 벌벌 떨렸다.
“…….”
허나 그것도 잠시.
잔뜩 숨을 죽이고 기침을 했더니 목이 따가웠다.
그러고 보니 오늘 물을 마셨던가.
시연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어린 아이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작은 틈이 나있었다.
그대로 시연이 틈을 향해 손을 뻗었다.
-툭.
그런 그녀의 손끝을 타고 플라스틱 감촉이 느껴졌다.
일전에 미리 물을 챙겨두길 잘했다.
시연이 그렇게 생각하며 생수병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소리가 새어나지 않게끔.
조심조심 뚜껑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하지만 꽤나 단단히 잠긴 모양인지 잘 열리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아빠에게 물병을 들이밀고 열어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럼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환하게 웃으며 ‘우리 딸. 아빠가 해줄게.’ 하고 손쉽게 뚜껑을 따줬겠지.
“…….”
그러나 주변은 언제나 그렇듯, 정적만이 흐를 뿐.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이에 시연이 이를 악물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까드득.
마침내 생수병이 열렸다.
그 다음 병뚜껑에 물을 따르고는.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주르륵.
바싹바싹 메마른 입술 틈으로 물이 흘러들어왔다.
시원하고 맛있었다.
덕분에 갈증이 조금은 가셨다.
그러나 갈증이 가시니, 이번에는 허기가 찾아왔다.
자연스레 시연의 시선이 구석에 있는 박스로 향했다.
무너진 편의점에서 가져온 박스였다.
시연이 조심스레 상자에 손을 넣었다.
보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을 텐데도 언제부턴가 항상 눈치를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곧 그녀의 손을 따라 냉동만두 한 조각이 딸려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조리는 당연히 불가능.
그대로 시연이 덥썩 만두를 입에 물었다.
우득, 우드득. 그녀의 입안에서 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만두를 씹어 넘기는 시연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어느새 만두하나를 먹어치웠다.
허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7살의 육체라고 한들.
만두하나로 배부를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음식은 최대한 아껴먹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시연의 눈은 상자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초코파이를 향하고 있었다.
먹고 싶다.
동시에 시연이 군침을 삼켰다.
-꿀꺽.
그러나 지켜보기만 할 뿐.
그녀가 초코파이에 손을 대는 일은 없었다.
만약 부모님이 이 모습을 봤다면 기특하다며 칭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 시연이, 초코파이도 안 먹고 다 컸네.”
귓가를 타고 들릴 리 없는 엄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 소리에 시연이 움찔거리며 눈을 꽉 감았다.
그와 함께 애써 참아왔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흑…흐윽……”
그대로 시연이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처박았다.
울지 마. 울면 안 돼.
혹시라도 울음소리를 듣고 몬스터가 찾아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시연아. 뚝. 우리 공주님 착하지.”
지하철이 무너지던 날, 그녀를 달래던 아빠의 말이었다.
시연이 그 말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울음을 삼켰다.
허나 한 번 터져 나온 울음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꾸구국.
시연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그녀의 손을 타고 피가 흘러나왔다.
그 상태로 시연이 눈을 감고 속으로 100초를 세었다.
“시연아. 여기서 눈 꼭 감고 100초만 세고 있어. 그때까지 아빠랑 엄마랑 꼭 돌아올게. 알겠지?”
지하철이 무너지던 날, 그녀의 부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1, 2, 3, 4.
시연이 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00. 모두 다 세었다.
이에 시연이 눈을 떴다.
“……”
하지만 눈앞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100초를 세었던 그때와 같았다.
이에 시연이 울먹거렸다.
“왜 안와…온다고 했잖아……”
거짓말쟁이.
어른들은 전부 거짓말쟁이였다.
그대로 툭.
시연이 줄곧 차고 있던 장식 고리가 떨어졌다.
검은 고양이 네로.
처음 부모님이 사준 선물이었다.
시연이 아무 말 없이 검은 고양이 네로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서서히 울음이 멈추었다.
그렇게 시연은 한참동안 네로를 움켜쥐고 있었다.
10년 전, 대변동.
폐허가 된 지하철 사이.
하 가문의 가주가 그곳에서 시연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7일이 지난 뒤였다.
* * * * *
병원 맨 위층에 위치한 vvip병실.
시연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처음 보인 건 하얀 천장.
그리고 현성의 얼굴이었다.
“……현성?”
아카데미에서 쓰러지기 직전.
현성을 봤던 건 아무래도 착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대로 깨어난 시연을 확인한 현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깼어?”
그와 함께 현성의 옆에 있던 연서가 벌떡 일어났다.
“깨, 깼다고?!”
이어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그녀가 재빨리 시연의 상태를 살폈다.
안 그래도 줄곧 잠들어 있는 동안.
무슨 악몽이라도 꾸는 건지 계속 안색이 좋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몸은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이에 시연이 빤히 얼굴을 들이미는 흑발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
하연서. 가문의 막내이자, 동생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병문안까지 오다니, 별일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시연의 시선을 알아차린 연서가 쭈뼛거렸다.
“그, 그게 그니까…가문에서 하도 가보라고 보채길래 와봤더니 뭐 멀쩡한 모양이네.”
연서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그런 그녀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냥 솔직하게 행동하면 그만인데 저렇게까지 감추고 싶을까.
“쯧.”
“뭐, 뭐! 왜!”
“됐고. 목소리나 낮춰. 이제 금방 깬 환자 앞에서 추태부리지 말고.”
“추태라니 누가…!”
연서가 발끈거리며 성질을 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연서가 시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 아무튼 괜찮은지 궁금해서…물어봤어…….”
그런 연서의 모습에 시연이 픽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고마워. 병문안 와줘서.”
“딱히. 착각하지 마. 가문에서 오라고 해서 온 거 뿐이야.”
연서가 새침하게 대답했다.
이에 옆에 있던 현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츤데레는 까다롭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시연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몸은 괜찮아? 계속 뒤척이던 거 같던데.”
그 말에 시연이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꾹 쥐었다.
어느새 그런 시연의 손에는 검은 고양이 장식 고리가 있었다.
저번에 현성이 그녀의 생일에 선물해준 것이었다.
-꾸욱.
그리고 잠시 뒤.
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응, 꿈자리가 좀 사나웠나봐. 몸은 괜찮아.”
그대로 시연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였다.
현성이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쉬고 있어.”
“아냐. 나 진짜 괜찮……”
허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
현성이 시연의 이마에 손을 가져대었다.
“봐. 아직 열이 남아 있잖아.”
동시에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현성의 얼굴.
덕분에 시연의 얼굴이 급속도로 빨개지기 시작하더니, 그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푹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현성이 손을 내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새 열이 더 올랐네. 그러니까 더 누워있어.”
“으, 응……”
그 모습에 연서가 현성을 위아래 훑어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거 완전 선수네. 선수야.”
이에 현성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뭐?”
“아냐. 아무것도.”
연서가 손을 휘휘 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현성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그래서 언니도 일어났겠다. 넌 아카데미로 안 가냐?”
방금 전에 추태라는 단어 때문인지.
그렇게 말하는 연서의 말투에는 묘한 견제가 섞여있었다.
허나 현성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연서의 물음을 받아쳤다.
“너야말로 안 가냐? 가문 승계문제 때문에 바쁘다며.”
“…….”
그런 현성의 말에 연서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괜히 덤볐다가 자충수를 둔 격이 되었다.
그때였다.
“가문 승계라니. 연서한테 들은 거야?”
승계라는 이야기에 시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이렇게 쓰러져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
곧바로 이를 눈치 챈 현성이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어.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우선은 쉬는 게 먼저야.”
“……그래도 될까?”
“안 될 건 뭐야.”
현성이 이불을 덮고 있는 시연을 토닥이며 작게 웃었다.
덕분에 둘 사이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리고 컨셉을 유지하느라 그 사이에 끼지 못하는 연서까지.
“…….”
대화에는 끼고 싶지만 마땅한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잠시 뒤.
안절부절 못하고 앉아있던 연서가 입을 열었다.
“가, 가문승계!”
틈을 파고들 게 가문밖에 없던 연서가 일단 말을 내뱉고 봤다.
이에 현성과 시연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가문승계?”
좋아.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뒤까지는 생각 못했다.
‘……뭐. 뭐라고 말하지?’
그런 연서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