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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45화 (145/240)

145화 하 가문(2)

병원 맨 위층에 위치한 vvip병실.

그런 병실 침대 위에는 하시연이 누워있었다.

동시에 문이 열리며 그녀의 비서가 들어왔다.

“시연님…!”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보인 것은 침대에 누워있는 시연과 그 옆에 있는 흑발의 소년이었다.

분명 예전에 본적 있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첫 번째는 선천강 사태 때였으며, 두 번째는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불의 둥지 사태 때.

두 번 모두 그가 모시는 시연이 자리에 있던 사건이었으며, 그 사건들에는 항상 이 소년 역시 엮여있었다.

이름이 분명 유현성이라고 했었나.

비서가 그의 이름을 떠올리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현성님. 전 하 가문에서 시연아가씨를 모시는 이준태라고 합니다.”

이에 현성이 예의바르게 그의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유현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도 잠시.

비서가 곧바로 누워있는 아가씨의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너무나도 놀랐다.

아카데미에서 아가씨가 갑자기 쓰러졌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자리에 있던 현성의 신고로 빠르게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었다.

그 후 병원에서 말하기로는 단순히 피로가 많이 쌓인 상태에서 감기기운이 겹쳐 몸살이 났다고 한다.

이른바 과로. 그리 큰 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쓰러질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

“말씀드린 게 전부입니다.”

이에 혹시나 다른 부상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현성에게 물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대로 비서가 현성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선 아가씨를 병원으로 옮겨드린 부분은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바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혹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현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뇨.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비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다면 더 지켜보고 있다가 가도 되겠습니까?”

“……”

그의 말에 비서가 잠든 시연과 현성을 번갈아보았다.

평소라면 단호하게 그를 돌려보냈을 터였다.

허나 그가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선천강 사태 이후, 기자회견을 끝마치고 돌아가던 차 안.

불의 둥지 이후, 병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때.

그때 모두 시연은 그의 이름이 나오면 조금 다른 반응을 보여주곤 했다.

웬만한 이야기에도 항상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하던 아가씨가 흥미를 보이는 건 드문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이야기를 할 때면 어딘가 행복해보였다.

이를 증명하듯 당시 아가씨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으나, 어릴 때부터 그녀를 옆에서 보좌해온 그라면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소년은 시연에게 있어 무언가 의미가 남다른 자였다.

‘물론 자세한 사정은 아가씨만 알고계시겠지만…….’

하지만 거기부터는 엄연히 하시연의 사생활.

그 이상 궁금증을 가지는 건 비서의 업무가 아니었다.

이에 그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전 잠시 밖에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혹 무슨 일이 생기면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비서가 나가고.

병실에는 현성과 시연 단 둘만 남았다.

그대로 현성이 조심스레 시연의 이마에 손등을 가져다대었다.

“……”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녀의 이마는 여전히 미열이 느껴졌다.

앞서 말했듯이 그녀의 증상은 단순한 과로에 감기기운이 겹친 것뿐.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평소에 시연의 업무량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학생회장의 업무와 하 가문의 일을 처리하고, 모든 업무가 끝나면 따로 개인훈련시간까지 가진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쥴.

그러나 평소 시연은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정도 업무량은 문제없이 진행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이렇게 쓰러질 정도라면 이는 무언가 추가적인 상황이 겹쳤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아마 하 가문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겠지.’

동시에 이게 바로 이번 에피소드의 서막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병실 밖을 타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삐져나왔다.

“뭐해? 당장 안 비키고?”

“죄송합니다. 지금 안에는 이미 다른 분께서……”

“아니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그래? 나보다 중요할 리가 없잖아.”

“그건 맞지만 아가씨의 안정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사람이 적은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누군가가 비서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대충 내용을 듣자하니 시연을 보러 온 손님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결국 상대방이 비서를 제치고 막무가내로 병실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됐고. 비켜. 내가 들어간다면 들어가는 거야.”

“하, 하지만…….”

“게다가 뭐? 이미 다른 녀석이 있어?”

그와 함께 병실의 문이 열렸다.

“어디 한 번 그 낯짝 좀 보……”

그때였다.

병실에 들어온 그녀가 안에 있는 현성을 바라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움찔.

그대로 그녀가 멍하니 현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현성?”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하연서.

하 가문의 일원이자, 시연의 동생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와 현성은 과거 화이트레이 레이드를 진행하며 만난 적이 있었다.

이에 현성이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 간만이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왜? 나오면 안돼?”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런 둘의 모습에 비서가 현성과 연서를 번갈아보았다.

“……두 분이서 아는 사이십니까?”

그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연서를 흘깃 바라보았다.

하연서. 그녀가 누구인가.

하 가문의 막내이자 자신의 성미에 맞지 않으면 그게 누구든 마음대로 치워버리는 유아독존.

‘거기다 아가씨를 싫어하는 건 덤.’

물론 그 이면에는 시연에 대한 동경이 숨겨져 있었지만, 아직 비서는 그것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무튼 비서는 처음에 그런 연서가 시연을 보러왔다 하길래 혹여나 아가씨의 안정에 방해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현성을 핑계로 이리저리 돌려 말했던 건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연서는 현성을 보고도 화를 내기는커녕.

반대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연서가 현성을 향해 물었다.

“그럼 설마 아카데미에서 언니를 병원으로 데려왔다는 게 너야?”

“맞아. 그러니까 우선……”

그대로 현성이 침대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용히 하고 앉아.”

“…….”

동시에 비서가 미간을 좁혔다.

그가 아는 연서의 성격이라면 저 말을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의자를 발로 차며 깽판만 안 부려도 다행.

“그, 그게…….”

이에 그가 재빨리 둘 사이를 중재하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그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그래.”

연서가 순순히 그의 말을 듣고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비서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렇게 얌전히 말을 듣는다고?’

그와 함께 비서가 다소곳이 앉아있는 연서와 그 옆에 있는 현성을 번갈아보았다.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싸워서 이기기라도 했나? 아니면 약점을 잡혔다던가.’

그러지 않고서는 저 자존심강한 연서가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연서정도면 시연만큼은 아니더라도 또래 중에서 꽤나 강한 축에 속했다.

그런데 설마 눈앞의 소년이 그런 연서를 이겼다는 걸까.

‘그리 강해보이지도 않는데 말이지.’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비서의 생각은 복잡해져만 갔다.

아가씨도 그렇고, 연서도 그렇고.

저 소년에게서는 하 가문을 홀리는 특이한 무언가라도 있는 걸까.

하지만 그도 잠시.

연서가 비서를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하여간 그럼 처음부터 현성이라고 말하지 그랬어.”

그런 연서에 비서가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 누그러진 목소리를 좀 보라.

이게 과연 방금 전만 해도 병실 앞에서 자신과 싸우던 사람과 동인인물인지 의심될 정도였다.

“됐다. 그럼 이제 나가봐.”

“예?”

“안 들려? 나가보라고.”

그대로 연서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이에 비서가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며 뒤로 물러났다.

“예, 알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현성까지 같이 있다면 문제없을 거 같았다.

그리고 비서가 나감과 동시에 연서가 현성을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그래서 너 진짜 언니랑 친한 거야? 아니 그전에 언니는 어쩌다 쓰러졌는데? 많이 아픈 거야?”

“……천천히 물어봐. 천천히.”

현성이 질문을 쏟아내는 연서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하여간 지금의 반만이라도 솔직하면 참 좋겠다.

만약 그랬다면 방금처럼 비서가 연서를 경계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사실은 언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그런 현성의 말에 연서가 화들짝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난 그저…언니가 걱정 되서…….”

연서가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렸다.

이 모습을 비서랑 시연이 직접 봤었어야 했는데.

현성이 문밖에 있는 비서와 연서를 번갈아보았다.

“그래도 병문안 온 게 어디야.”

그러면서 현성이 시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무튼 크게 아픈 건 아니야. 단순한 과로랑 감기기운이 겹쳐서 그랬대.”

“그럼 역시 그 일 때문에…….”

연서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끝을 흐렸다.

그대로 현성이 입을 열었다.

“가문 내 승계문제 때문이지?”

그러자 연서가 휙 고개를 들어 동그래진 눈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뭐야, 그걸 어떻게 알아? 언니가 말해줬어?”

“그런 건 대충 넘어가고.”

역시나 현성이 알고 있던 게 맞았다.

하 가문 내 승계.

이번 에피소드의 시작이자, 시연이 쓰러진 이유였다.

우선 하 가문의 가주는 몇 년 전부터 약화된 건강 때문에 줄곧 병상에 누워있는 신세였다.

그런 와중에 얼마 전.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가주의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

이에 하 가문은 예정보다 더 빨리 승계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현재 가문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그건 눈앞의 시연 역시도 마찬가지.

그 과정에서 무리하게 훈련시간을 늘리다보니 그녀가 이런 꼴이 된 것이었다.

곧 현성의 옆에 있던 연서가 말했다.

“……아무튼 지금 언니 쪽 상황이 좋지 않아.”

현재 하 가문의 파벌은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째와 둘째를 필두로 한 직계 혈통파.

그리고 시연과 다른 방계파.

여기서 그녀가 직계혈통파가 아닌 다른 쪽의 손을 든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또한 연서는 아직 나이가 어려 지켜보고만 있는 상태.

그러나 파가 두 개로 갈린 거 치고는 그 세력의 크기나 힘의 차이는 명확했다.

‘현재 상황은 직계파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

애초에 정면싸움이 성립되지 않을 정도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연은 포기하지 않고 직계파와 맞서고 있었다.

연서가 잠들어 있는 시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니면 차라리 이게 잘된 거 일수도 있어…….”

어차피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그럴 바에는 이대로 포기해버리는 것도 나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아니.”

현성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시연이는 그렇게 생각 안 할걸.”

그가 잠든 시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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