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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42화 (142/240)

142화 블랙마켓(11)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알레시아와 함께 고요한 지하물품소를 걸어가고 있었다.

노예들이 갇혀있던 양옆의 감옥은 이미 텅텅 비어 적막함이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다른 감옥 역시도 전부 똑같았다.

현성의 말대로 실비아가 제대로 노예들을 구출해내고 위로 향한 모양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를 증명하듯 저 위에서 드문드문 함성소리와 온갖 물건이 박살나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그 소리에 현성이 싱긋 웃으며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현성의 어깨에 있던 조그마한 드래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알레시아.

그녀는 이제 막 저주에서 풀린 것도 그렇고, 워낙 오랫동안 이곳에 갇혀있던 탓에 힘이 빠져 당분간은 회복을 위해 이런 모습을 자처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도 나름대로 귀여운 맛이 있었다.

[꽤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그러는 알레시아님도 즐거워 보이시네요.”

[그야 간만에 외출이지 않느냐. 그것도 내 계약자와 말이다.]

알레시아가 작게 그르릉 거리며 현성의 품에 몸을 비볐다.

마치 한 마리 고양이 같은 모습.

이에 현성이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턱을 매만졌다.

‘드래곤들은 원래 다 이렇게 애교가 많았나? 그게 아니면 알레시아가 특이한 거라던가…….’

허나 그도 잠시.

뭐가 어찌 되었든 아무렴 어떠한가.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 쌓여 있던 물건을 하나 집었다.

한 눈에 봐도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장식이 달린 검이었다.

아마 이대로 있었다면 블랙마켓 경매에 올라갈 물건이겠지.

현성은 그대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검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다.

-휘익!

그러자 어깨 위에 있던 알레시아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렇게 막 가져가도 되는 물건들인가?]

그런 알레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뭐 어때요. 어차피 블랙마켓 아닙니까.”

혹시 예상외로 드래곤의 도덕관념은 깐깐한 편인가.

현성이 자신의 어깨 위에 자리 잡은 알레시아를 흘깃 바라보았다.

이에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저기 옆에 있는 술잔도 하나 챙기자꾸나.]

“……좋은 생각이십니다.”

오히려 말리기는커녕 한술 더 뜨는 알레시아.

그렇다. 드래곤의 도덕관념도 현성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 말에 현성이 여유롭게 알레시아가 가리킨 술잔을 챙기며 다음 타겟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뭐가 좋을까나……”

[이 몸은 저 위쪽에 있는 목걸이를 추천하지. 보아하니 보호마법이 부여된 아티팩트같구나.]

“오, 안목이 뛰어나시군요.”

[과찬이군. 계약자여. 하하.]

그 후로도 현성과 알레시아는 한참동안 지하 물품소에 있는 온갖 진귀한 물건을 쓸어 담았다.

그 결과. 그 둘이 물품보관소에서 나올 때쯤.

그곳에 남아있는 물건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읏차. 꽤 무게가 나가네요.”

[경량화 마법이라도 걸어줄까?]

“그럼 저야 좋죠.”

현성이 어느새 양손 가득 금화가 들어간 궤짝을 챙기며 말했다.

이걸로 당분간 아카데미 등록금은 문제없을 거 같았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이날 현성이 챙긴 물건들은 등록금은 물론이며, 웬만한 재벌들의 창고를 턴 것만큼이나 비쌌다.

* * * * *

한편 귀빈 접대실이 위치한 블랙 홀.

방금 전만 해도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던 그곳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어딜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사방팔방 날뛰는 몬스터들과 각종 병장기를 휘두르며 자유를 외치는 노예들이 전부였다.

“키르륵! 키에에엑!”

“전부 쓸어버려라!”

이에 블랙 홀에 있던 지훈과 매드독들의 수하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대로 지훈이 날아오는 단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소리쳤다.

“얌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러자 옆에 있던 매드독이 황급히 그를 보호하며 대답했다.

“그, 그게 아무래도 지하 물품 보관소에 갇혀있는 몬스터와 노예들이 풀려난 모양입니다.”

“지금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그니까 어떻게 풀려났냐고!”

“그것까지는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대답에 지훈이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이런 제기랄……!”

귀빈 접대실에서 편하게 쉬고 있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가.

하여간 아카데미부터 블랙마켓까지.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이 와중에 칼스는 자신을 사칭한 놈과 같이 붙어있던 계집을 잡으러 자리를 비운 상태.

즉 이곳에는 날뛰는 몬스터들과 노예, 그리고 매드독들의 수하들이 전부였다.

물론 평소와 같았으면 이 정도의 소란은 간단히 제압되었을 터였다.

그도 그럴게 블랙마켓에는 종종 바가지 쓴 고객들이나, 손해를 본 상인연합이 난리를 피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지하에 갇혀있던 모든 몬스터와 노예가 풀려났다.

거기다 레이첼을 쫓느라 매드독의 병력이 반으로 갈라졌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결과.

매드독들의 영역, 블랙 홀에서 매드독이 도망쳐야할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지훈이 수하의 멱살을 잡고 외쳤다.

“출구, 출구는 어디 있어!”

“예? 지훈님, 왜 이러십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이 정도 노예쯤은 다시 제압하고……”

그러나 현재 지훈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잔존병력이 계속해서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가 볼 때는 암만보아도 머지않아 밀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제압하기는 개뿔, 제압당할 위기였다.

“닥치고 빨리 출구로 안내하라고!”

-뻐억!

지훈이 수하의 머리를 후려치며 소리 질렀다.

매드독이고 뭐고 일단은 자신의 안위를 챙기는 게 먼저였다.

* * * * *

지하를 벗어나 위쪽으로 올라오자 보인 건 난장판이 된 내부였다.

벽과 바닥에는 이리저리 금이 가있지 않나.

주변의 장식품은 박살난 지 오래였다.

아마 실비아가 현성의 생각보다 훨씬 화려하게 저지른 모양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왼쪽 길로 향했다.

일전에 블랙 홀에 들어왔던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이곳으로 나가면 곧바로 출구로 이어진다.

아니 이어져야했다.

-멈칫.

그러나 워낙 화려하게 난장판을 만들어둔 탓일까.

그 앞은 벽이 무너져 단단하게 막혀있었다.

이에 현성이 미간을 좁히며 작게 혀를 찼다.

“쯧.”

여기 말고 다른 길로 이어지는 길이 있던가.

현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앞에 막힌 길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헤매고 다니자니 귀찮은 일이 한 둘이 아닐 거 같은데.’

그러다 한창 치고 박고 싸우는 전쟁터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꽤나 골치 아팠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말소리.

“도대체 이 노예새끼들은 언제까지 기어 나오는 거야?”

“끝이 안 보이는구만. 망할…!”

아무래도 블랙 홀에 남아있던 매드독의 수하들로 추정되었다.

그 소리에 현성의 어깨에 있던 알레시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마주치는 순간 죽여 버리는 게 편하겠지?]

그러면서 알레시아의 주변으로 마나가 소용돌이쳤다.

아무리 오래 갇혀있어서 약해졌다고 한들.

매드독 수하 둘 정도 죽이는 건 정도는 문제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아뇨. 그대로 두죠.”

현성이 말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말에 알레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대로 둔단 말이냐?]

그러자 현성이 히죽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네, 더 좋은 생각이 났거든요.”

그리고 잠시 뒤.

매드독의 수하 둘과 현성이 마주쳤다.

동시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두 녀석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냅다 뺨을 후려쳤다.

-짜악!

그대로 현성이 버럭 화를 내며 외쳤다.

“이 새끼들아! 지금껏 어디 가있었어!”

이에 현성을 발견한 매드독들이 움찔거렸다.

그와 함께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오히려 뺨을 맞은 매드독들이 현성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사과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들의 앞에는 지훈이 서있었다.

“됐고. 당장 출구로 안내해.”

현성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그건 다름 아닌 도플갱어의 망토의 효과.

현성은 그 짧은 사이 다시 망토를 이용해 지훈의 모습으로 변했던 것이었다.

“예? 하지만 여긴 길이 막혀서……”

“그니까 비상탈출구는 다른 길이든 뭐든 안내하라는 거잖아. 멍청한 새끼들 같으니.”

그런 현성, 아니 지훈이 얼굴을 와락 구기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잔뜩 가시가 돋아있는 그의 말에 수하들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내가 볼 땐 지훈님은 분명 다른 얘들이랑 같이 출구로 나갔지 않아?”

“몬스터랑 노예들이 날뛰는 바람에 길을 잃었나보지. 병신아.”

수하 둘이 지훈의 눈치를 보며 속닥거렸다.

“그, 그래? 역시 그렇겠지?”

“그러니까 빨리 안내해드려! 괜히 얼타고 있다가는 또 우리한테 지랄한다니까.”

“아. 알았다니까, 보채지 좀 마!”

그러고는 둘 중 하나가 곧바로 현성을 향해 굽신굽신거리며 대답했다.

역시 권력의 힘은 대단했다.

“이,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지훈님!”

“진즉 그럴 것이지. 쯧.”

그 모습에 옷 안에 숨어있던 알레시아가 삐죽 고개를 들며 작게 감탄했다.

[호오, 과연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렇죠. 그럼 알레시아님은 혹시라도 들키지 않게 잠시 숨어계시죠.”

[그치만 안쪽은 숨 막힌단 말이다.]

현성이 그렇게 칭얼거리는 알레시아를 달래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알겠다. 그대의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지…….]

이에 알레시아가 시무룩하게 대답하며 현성의 품속에 파고들었다.

아무튼 그대로 수하들의 안내를 받아 따라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앞서가던 녀석들이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는 비상출구로 보이는 출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깁니다. 그럼 지훈님, 어서 나갑……”

동시에 그들이 뒤를 돌아본 순간이었다.

현성이 도플갱어의 망토를 해제하며 손을 뻗어 머리를 쥐었다.

-터업.

“…….?!”

이에 현성의 얼굴을 확인한 수하들이 눈매를 좁히며 허우적거렸다.

“너, 너는 설마 지훈님이 아니라 그때 그……?!”

“그래. 수고했어.”

그와 함께 현성의 손을 타고 붉은 화염이 타오르더니.

그가 곧바로 두 녀석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앙!

그대로 매드독의 수하들은 이렇다 손 쓸 틈도 없이 일격에 쓰러졌다.

그야말로 흠 잡을 곳 없는 깔끔한 솜씨였다.

그리고 현성이 남은 불씨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럼 이제 푹 쉬어.”

그런 그의 모습에 품 안에 있던 알레시아가 기절한 두 녀석과 현성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오, 이게 요즘 마법인가? 뭔가 내가 알던 마법하고는 많이 달라진 모양이군. 그래서 이건 무슨 마법이라고 하지?]

그러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대충 사람이 기절하는 마법이라고 치죠.”

[흥미롭군.]

그러면서 현성이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그렇게 신호대기음이 가고.

머지않아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아니 비명에 가까운 소리.

“야, 임마! 너, 너 어디야!!”

그건 다름 아닌 레이첼.

이에 현성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오. 아직까지 안 잡힌 모양이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우왁! 이제 그만 좀 쫓아와라. 이런 미친 놈들아아악!”

그 뒤로 들려오는 레이첼의 비명소리.

아무래도 그녀는 지금까지 무사히(?) 안 잡힌 모양이었다.

하여간 대단하구만.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그래서 너 언제 와!!”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마치 약속장소에 나가는 듯한 여유로운 말투.

이에 레이첼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너 약속했다? 5분 만에 안 오기만 하면 내가 진짜 아카데미에서 가만 안 둘…!”

“응, 나도 사랑해.”

그런 레이첼의 말에 현성이 싱긋 웃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자 현성의 품속에 있던 알레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방금 전은 그대의 반려인가?]

“뭐……비슷하다고 해두죠. 그나저나 알레시아님?”

[왜 그러느냐?]

“혹시 절 데리고 날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급한 일이 생긴 거 같아서요.”

그러면서 현성이 스마트폰을 흔들며 말했다.

이에 알레시아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품속에서 내려왔다.

[물론이다. 내 이미 말했지 않느냐.]

동시에 그녀의 몸을 타고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파앗.

그리고 머지않아 빛이 걷히고.

어느새 현성의 앞에는 금빛 비늘의 드래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대로 알레시아가 현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대가 원한다면 어디든 가겠다고.]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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