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블랙마켓(9)
빛 한줌도 들지 않는 철장 안.
그곳에는 드래곤이 잠들어있었다.
아니 숨만 붙어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런 드래곤의 몸 곳곳에는 사슬이 달린 수십 개의 창이 박혀있었다.
저마다 고위급 저주가 부여된 아티팩트였다.
들리는 건 오직 미약한 숨소리 뿐.
그 와중에도 목과 팔다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있는 족쇄가 그 숨통을 죄어오고 있었다.
그런 비참한 풍경 속.
드래곤은 꿈을 꾸고 있었다.
[…….]
은하수가 내리는 하늘 아래.
금빛의 드래곤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날개 끝을 맴돌았다.
-촤아악.
동시에 드래곤의 위에 타고 있던 젊은 기사가 미소 짓자, 그가 끼고 있는 은빛의 건틀렛이 반짝거렸다.
그의 이름은 티리카, 레드 후드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이었다.
그대로 티리카가 드래곤을 향해 외쳤다.
“알레시아, 어디까지 갈 생각이야?”
그러자 알레시아라고 불린 드래곤이 부드럽게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대가 원한다면 어디든.]
그와 함께 드래곤이 유려하게 날개를 펼쳤다.
아스라한 달빛이 비추고, 별과 은하수가 내리던 날.
기사와 드래곤은 황혼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줄곧 눈을 감고 있던 드래곤이 눈을 떴다.
초점을 잃은 뿌연 눈동자.
그 너머로는 그때 티리카와 함께했던 바다가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툭. 눈앞이 암전되듯 그때의 풍경이 사라지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이는 건 좁고 어두운 감옥 뿐이었다.
[그립구나. 친우여……]
차가운 철창 속.
드래곤의 목소리가 힘없이 허공에 흩어졌다.
동시에 그런 그녀의 눈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 * * * *
간부를 기절시킨 뒤.
감옥을 빠져나온 현성이 물품보관소 안쪽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양옆에 있는 감옥에서 몬스터가 날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크르륵!! 크와아아악!”
-철컹철컹.
몬스터의 괴성도 괴성이지만, 한 번 날뛸 때마다 바닥에 끌리는 금속음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정말이지 저절로 귀가 따가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철창 너머 갇혀있는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당장 몬스터들의 종류는 고블린 따위의 소형몬스터부터.
리자드맨 정도의 중형몬스터는 물론, 오우거와 같은 대형까지.
아주 크기별로 알뜰하게 긁어모아뒀다.
“쯧, 이걸 파는 놈들이나 사는 놈들이나……”
하지만 현성의 눈에는 전부 시끄러운 몬스터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가 몬스터 구역을 지나쳐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곧 방금 전 자신이 빠져나온 감옥과 비슷한 크기에 갇혀있는 노예들이 보였다.
그런 감옥 한 개에는 적게는 2명, 많게는 6명의 노예들이 갇혀있었다.
그 중 대부분은 인간 혹은 수인족으로 추정되었다.
동시에 현성이 지나갈 때마다 철창 안의 그들이 현성을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이쯤 있을 텐데…….”
그러나 현성의 신경은 다른 데 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드래곤을 꺼내기 전, 준비를 해둬야 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현성의 한 철창 앞을 지나려던 찰나.
불쑥 어둠 속에서 하얀 손이 튀어나와 그의 팔을 움켜잡았다.
-덥썩!
이에 현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철창 너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익숙한 금발의 여성이 자리했다.
양 옆으로 솟아있는 길쭉한 귀.
그리고 아름다운 미모.
특별경매장에서 봤던 엘프였다.
그와 함께 현성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찾았다.”
그가 찾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엘프.
그리고 엘프가 필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경매장에서 봤을 당시.
드래곤은 온몸에 최상위급 저주를 두르고 있었다.
덕분에 드래곤을 만난다고 한들.
그녀를 무사히 밖으로 꺼내는 건 불가능.
‘물론 드래곤의 상처정도는 전에 하린이 만든 성수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저주는 말이 달라.’
하지만 엘프가 있다면 문제없었다.
엘프. 일명 세계수의 축복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종족으로.
그들은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세계수에게 한 가지 전능을 하사받았다.
‘……그건 바로 해주(解呪).’
엘프,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엘프의 피에는 저주를 푸는 효과가 존재한다.
게다가 그 효과는 웬만한 마법이나 포션보다도 훨씬 뛰어난 수준.
괜히 엘프가 그렇게 귀하고 비싼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엘프가 지금 눈앞에 있다면?
‘드래곤의 저주를 푸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하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그대로 현성이 엘프를 향해 말을 꺼내려던 때였다.
엘프가 그보다 한발 빠르게 입을 열었다.
“부끄럽지도 않나.”
“……음?”
뜬금없는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엘프가 수인과 인간이 섞여있는 감옥을 바라보며 외쳤다.
“같은 동족이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웃고! 즐기는 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뭐시기?”
그런 엘프의 말에 현성이 흘깃 감옥을 바라보았다.
오해할까봐 말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웃고 즐긴 적은 없다.
아니 생각해보니 방금 전 웃기는 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방금 전은……”
“닥쳐라!”
“아니 잠깐만.”
그 역시도 방금 전까지 감옥에 갇혀있던 신세.
오히려 노예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에 현성이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거 번지수 잘못 찾았다니까. 그건 나 말고 저기 위에 있는 미친개들한테나 따져.”
아니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엘프전사는 기어코 손아귀에 더더욱 힘을 주며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이놈!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아. 글쎄. 나 아니라니까.”
알 만한 사람 아니 엘프가 왜 이러실까.
현성이 고개를 내저으며 연신 그녀를 뿌리치려 팔을 당겼다.
방금 전 그에게 당한 간부의 심정이 이랬을까.
“니놈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허나 엘프전사는 현성의 말을 들은 체도 안하며 일갈했다.
정말 미치겠네. 한 번 잘못 웃었다가 이게 무슨 꼴이람.
현성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당장 이 손 치워라! 이 더러운 인간 녀석 같으니! 어차피 네 녀석이 노리는 건 빼어난 내 외모와 아름다운 몸 아닌가!”
“…….”
설마 지금 스스로 빼어난 외모와 아름다운 몸이라고 말한 건가.
아무래도 엘프는 생각보다 훨씬 자기평가가 후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것도 잠시.
“하아……”
현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주시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곧바로 현성이 역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난 원래 풀어줄 생각이었어.”
“……뭐?”
이어서 현성이 방금 전 간부에게 그랬던 것처럼.
있는 힘껏 멱살을 잡아당겼다.
“자, 잠깐…흐겍!”
그러자 그녀의 머리와 철장이 부딪히며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깡!
그리고 잠시 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철창에 머리를 박은 채 쓰러졌다.
적당하게 힘 조절을 한 탓일까.
현성을 깔끔하게 그녀를 보낼 수(?) 있었다.
-철커덩.
그대로 현성이 열쇠를 넣어 문을 열고, 기절한 그녀를 들쳐 멨다.
과정이 좀 그랬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엘프를 얻을 수 있었다.
이에 현성이 다시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현성이 드래곤이 있는 철창까지 다다랐다.
동시에 그가 들쳐 메고 있던 엘프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허붉!”
그와 함께 이상한 소리가 삐져나왔지만, 현성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가 철창 너머,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는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
빛이 바랜 금색비늘.
온 몸에 박힌 수십 개의 창.
볼품없이 접혀진 날개.
이게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드래곤인가.
눈앞의 드래곤은 중간계의 패왕과 마나의 주인이라는 이명이 무색한 정도로 초라했다.
마치 패잔병과 같은 모습이었다.
-끼익.
그대로 현성이 철창의 문을 열고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그의 발을 따라 바닥에 메마른 피가 바스라졌다.
가까이에서 보자 그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늦은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그런 그의 말에 반응한 듯. 드래곤의 몸이 작게 움찔거렸다.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있었다.
이에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패대기친 엘프, 아니 해주용 포션을 질질 끌어당겼다.
우선은 피를 이용해 몸에 박혀있는 창을 제거하는 게 먼저였다.
-피잇.
현성이 간부를 기절시키고 얻은 단검으로 엘프의 손가락에 작게 피를 내었다.
그리고 그가 인벤토리에서 빈 플라스크 병을 꺼내 그녀의 피를 담기 시작했다.
그대로 머지않아 어느 정도 피가 채워지자.
“됐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피가 든 병을 들고 일어섰다.
어차피 모자라면 더 모으면 그만이었다.
‘원료(?)는 충분하니까.’
그 다음, 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드래곤을 향해 피를 흩뿌렸다.
그런 그의 손을 따라 엘프의 피가 드래곤의 몸을 적셨다.
-촤악!
그 순간이었다.
흩뿌린 피가 검은 창과 닿기 무섭게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창에 부여된 저주가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대로 현성이 몇 번 정도 피를 더 뽑아 충분히, 꼼꼼하게 피를 뿌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드래곤의 몸에 박혀있던 검은 창들이 전부 하얗게 물들었다.
저주가 사라졌다는 증거였다.
이에 현성이 드래곤의 목과 팔다리를 옥죄고 있던 족쇄들까지 전부 풀어냈다.
쿠웅! 얼마나 무거웠던지 한 번 족쇄를 풀어낼 때마다 바닥을 타고 육중한 울림이 전해졌다.
“……후우.”
모든 작업을 끝낸 현성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검은 창도, 족쇄도.
드래곤을 속박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곧 현성이 드래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드래곤이 서서히 눈을 떴다.
-스르륵.
그대로 그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다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현성에게 정지하였다.
뿌연 눈동자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티리카?]
따뜻하고, 부드럽고, 동시에 그리운 손길.
간만에 느껴보는 손길에도 불구하고 알레시아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손길은 분명, 티리카의 손길이었다.
-띠링!
동시에 현성의 눈앞을 타고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골드 드래곤 알레시아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와 함께 익숙한 금색의 퀘스트창이 펼쳐졌다.
히든 퀘스트였다.
[히든 퀘스트 : 기사왕의 길을 걷는 자]
<기사왕 티리카의 전설을 마주한 자여, 그대는 티리카의 의지를 이을 자격을 충족하였다.>
퀘스트 내용
-스킬 : 투신의 길 사용하기. (완료)
-티리카의 업적을 따라 그의 흔적을 찾으시오.(진행 중)
-첫 번째 업적 : 폭주한 불의 악마 크루페돈을 격퇴하시오.(완료)
-두 번째 업적 : 골드 드래곤 알레시아와 조우하기.(진행 중)
보상 : 티리카의 비전스킬.
*본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크루페돈 때와 똑같은 상황.
이는 특수 이벤트가 발생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대로 골드 드래곤 알레시아의 눈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겨우…이제야 겨우 만났구나. 나의 오랜 친우여.]
그렇게 말하는 알레시아의 목소리를 타고, 짙은 그리움이 묻어나왔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