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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39화 (139/240)

139화 블랙마켓(8)

블랙마켓의 지하 물품보관소.

그곳에는 온갖 진귀한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곤 했다.

그러나 그 소문만 무성할 뿐.

진상을 확인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매드독의 수장 칼스와 고위 간부. 그리고 경매에 올라갈 노예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철컹.

그러나 오늘 이곳에는 색다른 불청객이 방문했다.

그는 다름 아닌 현성.

그대로 매드독의 고위간부가 재차 수갑을 꽉 조이며 현성을 감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얌전히 들어가 있어.”

이에 현성은 별 다른 저항도 하지 않고 조용히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고위간부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듣자하니 자신해서 잡혔다고 했었나.’

그동안 여러 노예들을 관리하면서 많은 유형들을 지켜봐왔지만 본인이 직접 잡혀온 건 또 처음이었다.

그래서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나 싶어 줄곧 주시했지만, 앞서 말했듯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통 이런 경우는……’

자포자기한, 그러니까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녀석들이 전부였다.

허나 눈앞의 현성은 뭔가 달랐다.

모든 걸 포기한 특유의 허망한 눈빛도, 반항의지가 꺾인 시체 같은 느낌도 없었다.

“이제 됐지?”

감옥 끝까지 들어간 현성이 두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러자 그의 손목에 찬 수갑을 타고 쩔그렁거리는 마찰음을 삐져나왔다.

그런 현성의 말에 고위간부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분명 두 손은 결박되어 있었다.

거기다 감옥에까지 갇힌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나도 침착해보였다.

‘따로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오히려 여유롭게 느껴질 정도.

그리고 잠시 뒤.

현성이 계속해서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 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 별건 아니고. 혹시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싶어서 말이지.”

그 말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동시에 그를 주시하던 고위 간부가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알겠다.”

그러면서 고위간부가 천천히 철창에 다가갔다.

처음 보는 유형인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었다.

그래, 간혹 가다 이런 녀석들이 있지.

“너 설마 진짜 죽이겠나 싶어서 이러는 거지? 내가 너 같은 새끼들은 한 두 번 보는 줄 아냐?”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가장 많이 나오는 타입으로 설마 진짜 죽이겠어? 라며 이유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부류였다.

이해한다. 나이가 어린만큼 한창 허세를 부릴 때지.

“막 괜히 쎈 척도 해보고 싶고. 응?”

하지만 이런 녀석들은 끌려 나가는 다른 노예나 적출당한 장기를 보면 머지않아 그 현실을 자각하는 게 대부분.

이건 아마 눈앞의 녀석도 그럴 터였다.

“어이, 니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 모양인데 여긴 블랙마켓이야. 사람 하나 죽어나가도 모르는 곳이라고.”

그러면서 간부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무엇보다 말이지. 우리 보스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만약 보스가 널 죽여 버린다고 했으면……”

그가 철창을 캉캉 두드리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넌 진짜 뒤지는 거야. 이 애송이 새끼야.”

“…….”

그 말에 철창에 갇힌 소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간부가 결국 웃음을 참다못해 큭큭 소리 내 웃었다.

“하여간 뭔가 했더니 겨우 그딴 이유였다니.”

기가 찰 다름이었다.

하긴 기껏해야 10대 애송이의 머릿속에 나오는 생각이야 거기서 거기지.

고위간부가 그렇게 생각하며 철창의 문을 잠갔다.

-철컥.

그대로 그가 열쇠꾸러미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그럼 수고해라.”

단호한 고위간부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가 유유히 현성이 갇힌 감옥에서 멀어졌다.

* * * * *

한편 최상층에 위치한 귀빈접대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커다란 소파 위에는 기절한 지훈이 누워있었다.

아직까지도 현성에게 당한 충격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으윽…….”

줄곧 기절해있던 지훈의 입을 타고 작은 신음소리가 삐져나왔다.

아무래도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이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매드독의 수하들이 재빨리 그의 상태를 살폈다.

“괘, 괜찮으십니까?”

그 말에 지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그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 새끼는?”

“예?”

“날 사칭한 그 새끼……지금 어디 있어.”

방금 기절했다 깼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그와 함께 매드독의 수하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 녀석이라면 현재 저희 지하 물품보관소에 갇혀있습니다.”

듣자하니 도망치다가 결국 막다른 뒷골목에 잡혔다고 그랬었지.

그가 당당하게 대답하며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그러니 지훈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지훈이 한층 누그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뭔가 계속 불안했다.

계속 된 기절에 뇌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이에 지훈이 수하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물었다.

“포박은? 포박은 제대로 했어?”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아, 그러니까 못 도망치게 제대로 묶어뒀냐고 묻잖아. 혹시 그 새끼가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지훈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눈앞의 녀석은 물론이며, 뒤에 있는 다른 녀석들까지 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지훈이 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웃겨?”

그런 지훈의 말에 앞에 있던 수하가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도 그럴게 도망치다니요. 무려 지하 물품보관소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아래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엘프전사부터 온갖 노예. 무엇보다 그 드래곤까지 갇혀있는 감옥입니다. 그런데 겨우 그깟 애송이가 거기서 도망쳐 나온다고요? 불가능합니다.”

“그, 그래도 포박은 제대로……”

“아이참, 괜찮다니까요. 듣자하니 수갑까지 채워서 감옥에 가둬뒀답니다. 못 나와요. 못나와.”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넉살좋게 말했다.

실제로 기껏해야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 아니었는가.

게다가 그 옆에 있던 예쁘장한 소녀라면 모를까.

그는 추격 중에서도 기껏해야 주먹이나 발길질 몇 번한 게 전부인데다가 그 끝에는 본인이 도망치는 걸 포기하고 잡혔다고 들었다.

그런 애송이를 상대로는 수갑이면 차고도 넘쳤다.

“아무튼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쇼. 지훈님.”

“……그렇겠지?”

“예, 물론이죠. 그냥 이러지 말고 안정이나 더 취하시죠.”

그렇게 말하며 그가 지훈의 몸을 다시 부드러운 소파에 눕혔다.

“그래 하긴…….”

다시 생각해보니 기습을 당한 곳은 바로 아카데미.

그러니 그 얼굴은 모를지언정, 녀석이 아카데미 생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생 수준이라면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확실히 녀석들의 말대로 수갑이 채워진 채 감옥에 들어갔으면 제 힘으로는 절대 못 빠져나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작은 불안의 불씨가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는 건 왜일까.

“쯧.”

역시 계속해서 기절하다보니 뇌가 연신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나 보다.

과민반응이 확실했다.

‘그래. 별일이야 있겠어.’

그대로 지훈이 부드러운 소파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 * * * *

지하에 위치한 물품보관소.

보통 보관서 안쪽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는 비슷했다.

노예들이 숨죽여 우는 소리, 이곳에서 꺼내달라고 날뛰는 몬스터들의 소리.

“흑흑, 제발…제발 꺼내주세요……”

“크아아악! 끼르르륵….!!”

정말이지 계속 듣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더러워지는 소리였다.

이에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고위간부가 작게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간 이 노예새끼들이나 몬스터나 주기적으로 피를 봐야 말을 듣는다.

“귀찮게스리……”

곧바로 간부가 단검하나를 꺼내 쥐고, 천천히 보관소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동시에 그런 그가 걸어갈 때마다 허리춤에 걸린 열쇠 꾸러미가 짤랑거렸다.

그렇게 그가 현성이 갇혀있는 감옥 앞을 지나갈 때였다.

“잠깐만.”

줄곧 입을 닫고 있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이에 간부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그가 어두컴컴한 감옥에 갇힌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결국 끽해봐야 어린놈이었다.

보나마나 줄곧 다른 노예들의 흐느낌과 몬스터들이 난리치는 소리를 들으니 슬슬 현실을 자각한 거겠지.

그렇다면 이제 뭐라 말할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뭐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어느 쪽인데.”

그 말에 현성이 철창 앞으로 다가와 불쑥 손을 내밀었다.

“니가 날 감옥에 집어넣었을 때.”

“…….”“그때 수갑을 너무 강하게 조였어. 그래서 자국까지 생겼잖아.”

그와 함께 어둠속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던 그의 손목이 보였다.

실제로 붉게 물든 손목.

꽤나 오랫동안 수갑을 차고 있다 보니 생긴 자국 같았다.

“……진짜네?”

이에 현성이 뻔뻔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좀 풀어줘.”

“뭐?”

그 말에 고위간부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들어 현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가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현성과 그의 손목을 번갈아보았다.

“잠깐, 근데 너 왜 수갑이……”

그대로 간부가 눈을 껌벅거리며 물었다.

“……없냐?”

그런 현성의 손목에는 오직 붉은 자국 뿐.

수갑은 온데간데없었다.

방금 전까지는 어두워서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흠칫.

머지않아 그가 현성의 발밑에 박살난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수갑 ‘이었던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재빨리 철창너머로 손을 뻗으며 히죽 웃었다.

“너. 봐버렸네?”

-덥썩!

그대로 현성이 간부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채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 이 새끼가…!”

그래도 꼴에 간부라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가 현성의 손을 뿌리쳤다.

아니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현성의 손아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꾸구국.

오히려 점점 힘이 들어가는 손아귀.

이에 간부의 표정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어갔다.

겨우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을 뿌리치지 못한다니.

“무슨 힘이…?!”

간부가 그를 부릅 쳐다보았다.

그러자 현성이 말했다.

“눈.”

“……뭐?”

“눈에 힘 빼라고.”

동시에 그의 손목을 타고 솟아나는 굵은 힘줄.

곧바로 현성이 있는 힘껏 멱살을 잡아당겼다.

이에 간부의 머리가 철창에 박혔다.

-깡!

그 충격에 간부가 비틀거렸다.

머리를 타고 격통이 느껴지며 뜨거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건 다름 아닌 피였다.

“……아직 눈에 힘 안 뺐네?”

그 말에 간부가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냐! 눈에 힘 뺐다고…이, 이거 봐!”

그가 말까지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허나 돌아온 현성의 말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아냐. 넌 안 뺐어.”

그와 함께 현성이 다시 멱살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지하 물품보관소. 그곳을 타고 여태껏 들린 적 없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깡! 까강! 깡! 까앙!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깡! 하는 소리가 콰앙! 으로 바뀌어 나갈 때쯤.

현성이 서서히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끄으으윽…눈에 힘 뺐…잖아……”

-털썩.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고위간부가 눈을 뒤집은 채, 맥없이 고꾸라졌다.

그대로 현성이 쓰러진 그의 허리춤에서 열쇠꾸러미와 단검을 빼앗았다.

그리고 굳게 닫힌 자물쇠에 열쇠를 꽂고 돌린 순간.

-철커덩.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감옥의 문이 열렸다.

이에 현성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오며 주변을 살폈다.

어차피 드래곤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곳에 들어와야 했다.

이게 바로 현성이 막다른 골목길에서 스스로 잡혀온 이유였다.

그리고 들어올 때도 제 의지로 잡혀온 만큼.

나갈 때가 되면 제 의지로 나오면 그만이었다.

“자, 그래서 드래곤은 어디 있을까.”

현성이 손목을 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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