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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37화 (137/240)

137화 블랙마켓(6)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현성이 원하는 건 드래곤.

칼스가 원하는 건 돈.

원래대로라면 다른 vvip들과 거래조건을 따져봐야 하는 게 올바른 서순이었으나, 현성이 처음부터 백지수표를 부른 이상.

앞뒤 잴 필요가 없어졌다.

다른 vvip들이라 하더라도 현성처럼 이렇게 큰 조건을 내건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았는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순간부터 문제될 일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중간 중간에 현성이 지훈을 연기하면서 부득이하게(?) 칼스의 성격을 긁기는 했지만, 전보다 그 강도가 강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이미 금융치료를 당한 칼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하, 좋습니다. 그럼 이제 계약서를 확인해보시죠.”

그 증거로 칼스는 거래를 진행하는 내내.

입가에 웃음을 띠우고 있었다.

이에 집무실에 대기하던 수행원 역시 불의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쪽에 싸인하면 되는 건가?”

“예, 맞습니다.”

그런 칼스의 말에 현성이 펜을 들고 계약서에 싸인을 하려는 찰나였다.

그가 돌연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칼스가 움찔거리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설마 여기까지 와서 마음이 변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니겠지.

칼스가 초조한 눈빛으로 현성을 주시했다.

그리고 현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러했다.

“아. 그전에 물건을 가까이에서 확인해보고 싶은데 괜찮겠나?”

다행히 거래를 취소하려는 건 아니었다.

단순한 물건 확인.

동시에 칼스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물건확인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계약서를 먼저 받았으면 좋겠는데……’

물론 눈앞의 지훈이 돈을 떼먹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워낙 안하무인하고,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면 서슴지 않고 패악질을 부리는 인간이긴 하나, 다르게 말하자면 가진 게 돈밖에 없는 녀석이라 이런 거래는 확실했다.

즉, 지금처럼 원하는 걸 준다고 하면 흔쾌히 받아들일 줄 아는 놈.

그게 지훈이라는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스가 머리를 굴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만의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이건 단순한 칼스의 직감에 기인한 불안이었다.

허나 그것도 계약서에 싸인만 받는다면 사라질 일이었다.

그대로 칼스가 현성을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거야 물론 가능하죠. 그런데 물건은 지금 건물 지하에 보관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물건을 보고 다시 여기까지 올라와서 싸인하려니 그건 지훈님의 입장에서도 꽤나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 말에 현성이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매만졌다.

그 모습에 칼스도 덩달아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래.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현성이 다시 펜을 잡았다.

동시에 칼스의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려졌다.

그대로 현성이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타악.

그 다음 현성이 칼스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됐지? 확인해봐.”

그 말에 칼스가 자연스럽게 계약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드래곤을 넘겨주고 자신은 그 대가로 ‘부르는 대로’ 돈을 받는다.

거기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최소금액까지 적어두었다.

무엇보다 맨 아래에 적힌 지훈의 싸인.

그야말로 완벽한 계약서였다.

이에 칼스가 옆에 있던 수행원에게 계약서를 넘겼다.

“이거 보관해둬.”

그러면서 칼스가 귓속말로 작게 속닥였다.

“……그리고 복사본도 만들어두고. 알겠어?”

그러자 수행원이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계약서를 받아든 수행원이 뒤로 물러나고.

현성이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그럼 바로 안내해.”

“하하. 물론이죠.”

현성의 말에 칼스가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면 됐다. 역시 힘들여서 드래곤을 잡아온 보람이 있었다.

동시에 현성이 그런 칼스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됐다.’

실제로 현성의 계획은 거의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다음은 드래곤을 확인하고, 유유히 블랙마켓을 빠져나오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계약서까지 쓴 이상.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돈을 줄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칼스가 금액을 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며.

그 스스로도 PH그룹에서 자신이 요구한 돈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소요될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때가 되면 난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지.’

그 후에는 칼스가 도끼를 들고 PH그룹에 쳐들어가서 깽판을 치든.

진짜 지훈과 1대1 다이다이를 까든.

현성이 알 바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드래곤만 챙겨 가면 그만.

“자, 지훈님도 일어나시죠.”

“그러지.”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와장창!

집무실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뭐가 깨지는 소리였다가, 점점 그 소리가 커지더니 이제는 아예 고함소리에 이어 수행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뭐야?”

그 소리에 칼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마침 거래도 깔끔하게 마무리 되어 기분 좋은 찰나에 이게 무슨 소란일까.

“쯧.”

그 소리에 현성이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까닥였다.

“요새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모양이지?”

“아, 죄송합니다. 곧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런 현성의 말에 칼스가 고개를 숙이며 문고리에 손을 올린 순간이었다.

-콰앙!

“아. 씨발! 좀 놔보라니까!!”

돌연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문이 벌컥 열리며 문 바로 앞에 있던 칼스가 휘청거렸다.

동시에 그가 와락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들었다.

감히 어떤 새끼가 겁도 없이 매드독에서 이 난리를 피우는가.

“어떤 개새……!”

그리고 칼스가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하기 무섭게.

그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훈님?”

문밖에 있는 자는 다름 아닌 김지훈이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칼스가 휙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있던 또 다른 지훈을 바라보았다.

지훈이 둘인 말도 안 되는 상황.

이에 칼스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씨벌. 이게 뭔……”

* * * * *

눈앞에 있는 두 명의 지훈.

동시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던 칼스의 집무실은 단숨에 혼란으로 물들었다.

그와 함께 문밖에 있던 지훈.

“이…이…!”

그를 편의상 지훈2로 부르겠다.

아무튼 그가 방 안에 있던 지훈 1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이 망할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뻔뻔하게……!”

“뭐야. 이건?”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훈1이 냅다 지훈2의 뺨을 후려갈겼다.

-짜악!

그대로 지훈1이 항상 하던 대로.

쯧하고 혀를 차며 손을 털었다.

“넌 뭔데 시끄럽게 지랄이야?”

“……”

이에 갑작스럽게 선빵(?)을 허락한 지훈2가 멍하니 제자리에 서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상황파악이 안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미친 새끼가!”

-덥썩!

지훈2가 지훈1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그런 그의 얼굴은 붉게 물들다 못해 당장에라도 터질 기세였다.

아무래도 아래에서 올라올 때부터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모양이었다.

“너지? 너지! 이 개새끼야!!”

지훈2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지훈1의 멱살을 쥐었다.

그리고 멱살을 밀어 녀석을 패대기쳤다.

아니 패대기치려는 찰나였다.

-터업.

지훈1이 지훈2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대로 꾸구국! 손아귀에 힘을 주자, 지훈 2가 비명을 지르며 맥없이 쥐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감히 주제도 모르는 놈 주제에.”

“끄아아악!”

“내 멱살을 잡아?”

동시에 지훈1이 지훈2를 역으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쿠당탕!

그 충격에 지훈2가 원목테이블과 충돌하며, 테이블이 박살났다.

그와 함께 솟아오르는 먼지 속.

지훈1이 불쾌하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테이블 좀 비싼 거 사라니까……”

그런 지훈1의 모습은 시장에서 매드독 수하를 잡던 모습과 판박이였다.

이에 줄곧 이 상황을 지켜보던 수행원이 말했다.

“……지훈님?”

그러자 지훈1이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팍 구기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지훈이 아니면 누군데. 하여간 존나 빠져가지고는.”

그대로 지훈1이 칼스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야. 당장 저 새끼 내 눈앞에서 치워. 기분 더러우니까.”

“그, 그게……”

그런 지훈, 아니 지훈1의 말에 칼스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두 지훈을 번갈아보았다.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정황상.

둘 중 하나가 지훈의 흉내를 내고 있는 듯 했다.

그도 그럴게 지훈이 두 명일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둘 중 누가 진짜인지 판명할 수가 없었다.

생긴 건 똑같았다. 변장마법도 아니었다.

이래봬도 블랙마켓은 철저한 검사를 거쳐야만 입장할 수 있는 곳.

마법적인 처리가 있었다면 진즉에 입구에서 걸렸을 터였다.

그렇다고 섣불리 한쪽 편을 들었다가 진짜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그러자 지훈1이 버럭 소리쳤다.

“야! 내 말 안 들려? 저 새끼 지금 당장 치우라고!”

그 말에 칼스가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훈2가 비틀비틀 일어나며 외쳤다.

“닥쳐! 저 말 듣지 마!”

악에 받친 외침.

이에 칼스가 주먹을 꾹 쥔 채.

연달아 둘을 바라보았다.

‘이, 이런 썅!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 * * * *

박살난 원목 테이블 위.

지훈2가 길길이 날뛰며 바닥을 밟았다.

그대로 그가 온 몸을 비틀며 악을 토해냈다.

“으아아악!! 내가 김지훈 맞다고오오오오!!”

그의 이름은 김지훈.

PH그룹의 유력한 차기 후계자이자, 이번 블랙마켓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자였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웬 괴한의 습격에 당해 기절하지 않나.

그 후로 눈을 떴더니 초대장은 빼앗긴 뒤였으며, 남은 건 뒤통수에 느껴지는 고통뿐이었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블랙마켓 초대장을 노리고 한 짓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아챈 그는 당장 아버지를 포함해 자신이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연줄을 통해 겨우겨우 블랙마켓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씨발, 그랬더니 웬 처음 보는 새끼들이 유니콘의 피인지 페가수스의 피인지 뭔가 하는 물건 값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나……!’

머리를 맞고 기절하여 초대장을 뜯기더니.

이제는 블랙마켓에 들어와 돈까지 뜯겼다.

정말이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수소문해서 여기까지 왔건만 뭔 내 흉내를 내는 씹새가 내 뺨을 때리고……”

지훈이 울먹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저놈한테 맞은 뺨 한쪽이 욱씬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그가 품속에서 자신의 여권, 지갑, 학생증 온갖 물건과 급하게 구한 스마트폰까지 꺼내며 외쳤다.

“봐! 이 개새끼들아!!”

곧바로 그가 자신의 얼굴이 박힌 여권, 학생증 그 외 잡다한 것을 와르르 쏟아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연결된 영상통화.

“아빠!!”

깔끔하게 올백으로 넘긴 머리.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두 눈.

그는 다름 아닌 PH그룹의 오너, 지훈의 아버지였다.

“회, 회장님?!”

그 얼굴을 알아본 칼스가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액정 너머의 회장이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긴말하지 않겠네.”

그대로 회장이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치며 외쳤다.

“당장 내 아들놈 사칭하는 개새끼 잡아와!”

그와 함께 집무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지훈1.

그러니까 지훈의 행세를 하고 있던 현성에게 쏠렸다.

이에 현성이 여유롭게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히죽 웃었다.

“아. 쓰벌. 걸렸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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