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블랙마켓(4)
특별경매가 이루어지는 제 1홀.
그곳에는 이미 현성과 레이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착석하고 있었다.
비록 그 수는 바깥에 비하면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재력이나 권위는 바깥의 일반등급 고객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무려 전부 다 골드등급 이상의 고객.
이를 알려주듯 그들이 입고 있고 있는 옷이나 장신구만 하더라도, 적게는 수천, 많게는 억에 다다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이건 꼭 써야 되는 거야?”
레이첼이 자신의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 가면은 다름 아닌 맨 처음 제 1홀에 진입할 당시.
경매장의 직원들이 나눠준 것이었다.
“왜? 불편해?”
“아니 그건 아닌데 굳이…써야 되나 싶어서.”
그런 레이첼의 말에 현성이 자신의 가면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기왕이면 쓰고 있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서 현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 그래도 특별경매에 참여한 모든 손님들은 저마다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가면을 쓰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감추기 위해.’
알다시피 이곳은 일반적인 경매와는 다르게, 불법적인 영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블랙마켓의 경매.
괜히 맨얼굴을 드러내고 경매에 나섰다가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었다.
운이 나쁘면 블랙마켓에 참여했다는 걸 약점 잡혀 압박이 들어오는 것을 물론이며, 낙찰된 경매물품을 노린 다른 녀석들의 목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가면을 쓰는 데에는 일종의 신변보호의 목적도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뭐……”
레이첼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중얼거리며 가면을 고쳐 썼다.
그리고 잠시 뒤.
커튼이 처져있던 무대의 막이 열렸다.
그와 함께 사회자가 등장하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무려 2년 만에 다시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동시에 위에 설치되어 있던 밝은 조명이 무대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대로 사회자가 손을 펼치며 말했다.
“자, 그럼 오늘의 특별경매.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 * * *
그렇게 경매가 시작되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물품들이 하나 둘씩 무대 위로 올라왔다.
경매의 진행은 처음에는 비교적 입맛을 돋우는 느낌으로 가벼운 물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혀 흔한 아이템들은 아니었다.
레이드에 참가하지 않고서는 쉬이 얻을 수 없는 보스급 몬스터의 부산물부터 박제처리가 된 몬스터까지.
그 중에는 당연히 거래가 금지된 상품들도 섞여있었다.
“……저건 페가수스의 피?”
경매를 관람하던 레이첼이 와인병을 연상케 하는 투명한 용기에 담겨있는 붉은 액체를 주시했다.
페가수스의 피.
연금술에 있어 상당히 희귀한 재료인 동시에 지금은 거래가 금지된 물건이었다.
“너 저거 먹어봤어? 엄청 맛있어.”
레이첼이 상기된 표정으로 현성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특히 끝에 맴도는 감칠맛이 굉장히 고급지거든. 예전에 한 번 먹어봤는데 그게 얼마나 끝내주던지……아무튼 내가 이걸 여기서 볼 수 있을 줄이야. 이 녀석들 확실히 뭘 아는 놈들이야.”
그 말에 현성이 작게 웃었다.
다른 걸 몰라도 지금 이곳에서 페가수스의 피를 먹어본 건 레이첼 그녀밖에 없다고 자부한다.
아무튼 연금술에 있어 좋은 재료인 만큼 맛도 뛰어난 모양이었다.
‘물론 뱀파이어의 기준이겠지만…….’
그러면서 현성이 페가수스의 피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하나 사둘까?”
그 말에 레이첼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지며 덥썩 현성의 팔을 잡았다.
“진짜?”
“그래. 꽤 괜찮을 거 같아서.”
현성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레이첼도 주는 김에 얼마 전 여왕의 궁전에서 부려먹은 이클레아 교수님의 선물로 주면 적당하지 않을까.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페가수스의 피를 입찰했다.
“……그런데 저거 꽤 비쌀 텐데?”
레이첼이 현성과 페가수스의 피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확실히 현재 페가수스의 피의 입찰가는 1500.
다른 경쟁자가 붙을 거 까지 생각하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정도면 상점가에서 구매한 유니콘의 피보다도 훨씬 비싼 가격.
그러고 보니 유니콘의 피도 현성이 구매했었다.
이에 레이첼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으나, 현성은 별로 개의치 않으며 펜을 내려놓았다.
“상관없어.”
어차피 그의 돈도 아니었다.
대충 지훈의 이름으로 달아두면 될 문제였다.
그대로 현성이 경매가 한창인 무대로 눈을 돌렸다.
“자, 이번에는 슬슬 여러분들이 기다리던 상품을 보여드려야겠죠?”
그런 사회자의 말에 경매장에 참가한 고객들의 시선이 모두 집중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무대를 타고 사슬 끌리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그그극.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입과 팔이 결박된 금발의 여성이었다.
허나 그녀의 귀는 보통의 인간과는 너무도 달랐다.
길게 솟아있는 귀, 이는 곧 그녀가 엘프라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이번 상품은 무려 엘프. 게다가 그중에서도 마을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던 가드. 즉, 엘프전사입니다.”
“오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작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종족 엘프.
그들은 뱀파이어와 같이 평소에는 자신들의 영역에 숨어서 지내기 때문에 평생 살면서 볼까 말까한 종족이었다.
그런데 무려 그 엘프가 이번 경매에 나온 것이었다.
거기다 전사라니.
엘프 특유의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전투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껏 나온 상품 중 가장 최상등급이었다.
이에 사람들의 눈빛이 단번에 탐욕으로 물들어갔다.
그 모습에 사회자가 작게 웃으며 곧바로 경매를 시작했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입찰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바로 참여해주시죠. 경매 시작가는 9000입니다.”
그런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경매입찰을 알리는 알림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에 따라 쉴 새 없이 올라가는 가격.
9000에서 시작한 가격은 눈 깜짝할 사이, 1억, 2억 5000을 넘어 어느새 3억에 육박하고 있었다.
“……뭔가 했더니 엘프라니.”
레이첼이 경매장에 올라온 엘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괜히 이번 경매가 그리 소문났던 게 아니었다.
곧바로 그녀가 옆에 있던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넌 얼마에 입찰할거야?”
아마 현성이 노리는 것도 분명 저 엘프겠지.
그렇다면 그 역시 이 치열한 입찰에 참가해야 할 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아니. 입찰 안 할 거야.”
“……뭐?”
“내가 노리는 건 따로 있어.”
그 말에 레이첼이 눈을 좁혔다.
엘프를 노리는 게 아니었다니.
그럼 도대체 어떤 상품을 노린다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무슨 상품이 나올 걸 예상하고 있기라도 한 걸까.
“……그게 뭔데?”
이에 현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 다음 상품.”
동시에 그런 그의 눈빛은 경매장 무대 뒤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분명 엘프도 생전 한번 볼까 말까한 최상등품이었다.
그러나 현성의 목적은 엘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입찰은 여기까지. 하지만 이거 걱정되는군요. 아직 어마어마한 게 남아있는데 이렇게 많은 손님 분들께서 입찰하시다니. 물론 여러분들의 재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감히 말해봅니다. 이번 상품은 조금 무리하셔야할지도 모릅니다?”
사회자의 말에 경매장의 분위기가 변했다.
이곳에 있는 손님들만 해도 전부 골드이상부터 vvip등급.
그만큼 사회의 큰 축을 담당하는 고위인사부터 지훈과 같은 재벌까지.
보통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이렇게 밑밥을 깐다?
그렇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게 온다.
-따악.
“준비시켜.”
사회자가 손가락을 퉁기며 말했다.
그러자 일순간, 경매장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이어서 경매장 무대를 타고 커다란 울림이 전해졌다.
-쿠구궁!
그와 함께 무대가 앞뒤로 확장되며, 그 크기를 키워갔다.
그리고 그렇게 점점 커지는 무대 위로.
커다란 마법진이 새겨지더니 무언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철창?”
그 정체는 철장.
아직 일부만 소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크기임을 알 수 있는 철창이었다.
저 정도면 거의 무대를 꽉 채울 정도.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진동이 멎는가 싶더니 무대의 조명이 일제히 켜졌다.
그런 조명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무대 바로 위, 철창의 안쪽.
“자, 소개합니다! 오늘 특별경매의 하이라이트!”
그대로 사회자가 손을 펼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드래곤입니다!!”
드래곤.
신화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자, 그 별칭만 해도 중간계의 패왕 혹은 마나의 주인.
그에 관한 기록서만 하더라도 날갯짓 한 번에 커다란 태풍을 만들어내고.
손짓 한 번에 하늘에서 불꽃의 비를 내린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드래곤의 위용과 그 이야기는 전설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금. 그 드래곤이 눈앞에 있었다.
“2년 전, 특별경매에서 나온 게 골드 드래곤의 눈동자였죠? 하지만 오늘은 무려 살아있는 드래곤 그 자체입니다!”
이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특별경매장에 있는 그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와아아아아!!]
경매장을 타고 엄청난 열광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지금껏 그 어떤 물건이 나와도, 엘프가 나왔을 때도 작게 감탄만 하던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세상에, 이게 정말인가?!”
“당장, 당장! 입찰을 준비해라. 아니 당장 내 비서에게 가서 지금 운용 가능한 돈을 다 가져오라 전해!”
“아파트든 아티팩트든 다 상관없어! 우선 입찰하고 생각하도록!”
경매장은 마치 불이 붙은 듯 뜨거운 열기로 물들어갔다.
무려 살아있는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커다란 철장 안에 담긴 드래곤이 작게 움찔거렸다.
[새액…새액……]
철창 안의 드래곤이 힘겹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 몸에는 사슬과 연결된 수십 개의 창이 박혀있었다.
그 바닥에는 흘러내린 붉은 피가 흉하게 말라붙어있었다.
초점을 잃은 금빛의 눈동자.
과거 찬란하게 빛나던 비늘은 이미 빛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드높은 창공을 휘저었던 날개는 볼품없이 접혀있을 뿐이다.
꺼져가는 생의 의지.
눈앞의 드래곤에게서는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요하게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내 살아 생전 드래곤을 두 눈으로 보는 날이 찾아오다니……”
“아아, 아름답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온갖 감탄이 터져 나왔다.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이 역설적으로 생명의 불꽃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 고귀한 장면을 두 눈으로 담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과도 같았다.
“역시 다들 뜨거운 반응이 아닐 수 없군요. 저도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드래곤이라니, 그것도 살아있는! 정말이지 놀랍지 않습니까? 그만큼 제 모든 인생을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사회자가 능숙하게 분위기를 띄우며 말했다.
“그리고 드래곤이 날뛸까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온전한 상태의 드래곤이었으면 단 1초도 지나지 않아,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이 마지막이 될 테지만, 안타깝게도 눈앞의 드래곤은 보다시피 온갖 고위급 저주와 속박 아티팩트로 범벅이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사회자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드래곤에게는 이 모든 것에 저항할 의지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작 입찰가는 15억부터 시작합니다!”
광기를 연상케 하는 열기에 휩싸인 경매장.
그곳에는 목이 터져나가라 소리치며 입찰가를 올리는 사람들과.
그저 눈을 감은 채 미약한 숨소리를 내고 있는 금빛의 드래곤이 있었다.
“……”
줄곧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그가 나설 차례였다.
그대로 현성이 돌연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이에 옆에 있던 레이첼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현성?”
그리고 그 순간, 현성이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동시에 콰앙! 폭발음이 사방에 울려 퍼지며 현성을 중심으로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그 누구도 막을 겨를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뭐, 뭐야!”
“갑자기 불이…!”
그와 함께 경매장의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현성에게 집중되었다.
이어서 현성이 철창 안에 갇혀있는 드래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드래곤. 내가 산다.”
“……??”
그런 그의 말에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다른 이들이 현성의 말에 거세게 반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어, 뭔가 했더니 웬 미친 놈이……”
그건 당장 현성 바로 옆에 있는 vvip급 고객도 마찬가지였다.
희끗희끗한 흰 머리의 중년이 자리를 박차고, 가면을 벗어던지며 현성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요즘은 관리를 이딴 식으로 하나? 매니저, 이놈 당장 내보내!”
그의 이름은 리처드 박.
군사기업의 총수를 맡고 있는 자로, 그 위세로만 따지자면 지훈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때였다.
-퍼억…콰앙!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리처드 박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
그 충격에 그가 호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크허어어억!!”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구르는 리처드 박.
몸소 노인공경 대신 노인공격을 선사한 현성.
그 광경에 레이첼을 포함한 모두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쯧.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지랄이야.”
현성이 손을 털어내며 나머지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뭐해? 안 꺼지고.”
그대로 현성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아니면 혹시 돈 없는 것들이라 눈치도 없나?”
그가 바로 현성, 아니 지훈.
PH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있는 거라고는 돈이 전부인 자였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