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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34화 (134/240)

134화 블랙마켓(3)

특별경매가 열리는 건물로 향하는 동안.

현성은 레이첼에게 자신이 왜 지훈의 모습으로 여기에 왔는지, 여기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애초에 블랙마켓에 온 경위만 설명하면 되는 일이니 그리 복잡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얼굴로 여기 와 있는 거지.”

현성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로 그가 뒤에 있던 레이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째 오는 동안 계속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신경은 줄곧 다른데 가있었다.

“……듣고 있어?”

이에 현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레이첼에게 물었다.

그러자 연신 뭐가 그리 신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가 뒤늦게 현성을 바라보았다.

“어? 뭐라고?”

“……”

레이첼의 답변에 현성이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렇지. 내 이럴 줄 알았다.

물론 평소에도 이런 기질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더욱 집중을 안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상하네.’

그런 현성의 눈빛에 레이첼이 자기도 모르게 뜨끔거렸다.

확실히 지금 그녀의 정신은 다른 데 가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현성 때문.

블랙마켓에서 우연히 그를 만난 것도 모자라, 단 둘이서 거리를 걷고 있다.

거기다 잠깐이지만 손까지 잡았다.

그야말로 마치 데이트를 하는 것만 같은 상황.

이에 레이첼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느라 신경이 온통 그곳에 쏠려있던 것이었다.

“미안. 다시 한 번 설명해줄래?”

레이첼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옆에서 발을 맞춰 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설명을 마친 현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알겠지?”

“응, vvip인 녀석 흉내를 내서 여기 들어왔다면서. 그리고 노리는 건 특별경매에 올라오는 상품이라고?”

이번에는 한 눈 팔지 않고 제대로 설명을 들은 모양이었다.

“근데 특별경매에 올라오는 물건이 뭐길래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거야? 확실히 너까지 관심을 가진걸 보면 보통 물건은 아닌 거 같긴 한데……”

레이첼이 흘깃 현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특별경매. 이에 대해 그녀 역시 소문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최상등급의 물건이 올라왔느니, 이제껏 본 적 없는 첫 번째 물건이 될 거 라느니.

레이첼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피였으니 큰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했지만, 어딜 가나 특별경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니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던 찰나였다.

거기다 현성까지 이번 특별경매에 올라오는 물건을 노리고 있다니.

“이쯤 되면 나도 궁금해진단 말이지.”

동시에 레이첼의 눈을 타고 이채가 맴돌았다.

그러자 현성이 그런 그녀의 눈빛을 눈치 챈 건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 그래도 직접 경매장에 가면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아. 근데 나는 못 들어갈 텐데?”

그러면서 레이첼이 자신의 초대장을 흔들었다.

그녀의 초대장은 현성과는 달리 일반등급.

블랙마켓의 입장만 허락되는 등급이었다.

“경매장에 들어가려면 최소 골드등급 이상은 되어야 들어갈 수 있을걸.”

레이첼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말대로 경매장을 이용할 수 있는 등급은 골드부터였다.

그러나 현성이 여유롭게 말했다.

“상관없어.”

“……뭐?”

“나한테 방법이 있거든.”

그리고 마침 그렇게 말한 찰나.

블랙마켓 중앙에 도착했다.

마치 커다란 오페라 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고급스러운 디자인.

바로 이곳이 오늘 특별경매가 이루어질 장소.

일명 블랙 홀이었다.

곧바로 현성이 레이첼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그럼 들어갈까?”

그대로 현성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 한 순간.

입구 앞에 있던 가드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이, 여기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못해도 골드등급 이상은 되어야……”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가드의 바로 옆에 있던 다른 녀석이 재빨리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와 함께 작게 들려오는 속삭임.

“야이씨, 너 미쳤어? vvip님이시잖아!”

“뭐? 우리가 언제부터 vvip얼굴을 다 외우고 다녔다고 그래?”

확실히 그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블랙마켓의 사용자만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거기다 그 중 vvip만 하더라고 그 수가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누가 모든 vvip들의 얼굴을 외우고 다니겠는가.

애초에 vvip들의 얼굴을 알고 있는 건 매드독 내에서도 소수의 고위간부나 우두머리가 전부.

즉 말단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입구를 지킬 뿐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블랙마켓에서 사건이 하나 터졌다.

바로 상점 한 가운데에서 매드독의 수하가 vvip를 못 알아봐 된통 깨진 사건이었다.

덕분에 말단들 사이에서는 특히 조심하라는 경고가 돌았고, 그 중 옆에 있던 그는 사건의 중심지에 있던 녀석.

그만큼 사건의 장본인인 현성, 아니 지훈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에 그가 재빠르게 다른 녀석을 밀어 넘기며 현성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지훈님. 이, 이 녀석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결례를 범했습니다. 바로 안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요.”

그러면서 그가 현성의 눈치를 살폈다.

상점가에서의 패악질은 그야말로 보통이 아니었다.

혹여나 여기서 잘못했다가는 상점가에서의 녀석처럼 거하게 깨질 수 있었다.

“……그래?”

그 말에 현성이 눈앞의 녀석과 입구를 번갈아봤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매드독의 가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이제 이걸로 마무리인가 싶던 때.

다른 가드가 레이첼을 막아섰다.

“실례합니다. 초대장을 제시해 주십시오.”

동시에 방금 현성을 들여보낸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 저 눈치 없는 새끼가……’

분명 안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초대장을 확인하는 게 절차였다.

그런 만큼 현성은 그렇다 쳐도, 레이첼은 확인을 해야 함이 맞았다.

그러나 지금은 현성이 앞에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에 그가 커버를 치려했으나, 이미 한 발 늦었다.

“어이.”

현성이 레이첼을 막아선 녀석을 불렀다.

그와 함께 다른 가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좆됐다…!’

이제 또 상점가에서처럼 난리가 벌어질 터.

그나마 다행인건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녀석이라는 걸까.

하지만 그 다음 들려오는 소리는 뺨을 후려치는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였다.

“내 일행이다.”

“아. 이분도 vvip셨습니까?”

그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면?”

“……예?”

“아니면 어쩌려고.”

이에 그가 입구와 레이첼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그야 내부방침 상 출입이 금지됩……”

“아, 아닙니다! 바로 열어드리겠습니다!”

채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가드가 몸을 던져, 필사적으로 커버를 쳤다.

그러면서 그가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제발 이대로 그냥 넘어가라.

“……”

그렇게 가드의 입장에서 영겁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현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 조심하도록.”

약간의 언짢음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가 우려하던 사태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답에 그가 평생 믿지도 않은 신에게 감사를 표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만약 여기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면 입구에서 깨지고, 간부들에게 깨지고, 더 나아가 보스한테도 깨질 뻔 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가 우렁차게 외치며 옆에 있던 다른 가드녀석의 머리를 잡고 같이 인사를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에 현성이 작게 혀를 차고는 레이첼과 함께 블랙 홀로 발을 옮겼다.

-저벅저벅.

그대로 둘이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가 돼서야.

그가 참아왔던 숨을 한 번에 몰아쉬었다.

“후우”

그러자 다른 가드가 왜 이렇게 유난이냐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따라 왜 이래? 게다가 이대로 그냥 들여보내도 되는 거야?”

“닥쳐. 새끼야. 내가 오늘 니 살렸으니까.”

그 말에 그가 손을 휘휘 저으며 중얼거렸다.

* * * * *

한편 무사히 블랙 홀 안으로 들어온 레이첼이 입구 쪽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게 진짜 되네.”

못해도 어느 정도 마찰이 있을 걸 상정하고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

심지어 그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뭐랬어.”

그러면서 현성이 입구 쪽과 레이첼을 번갈아보았다.

“그래도 확실히 생각보다 더 잘 풀리긴 했네.”

물론 애초부터 vvip등급을 앞세우고, 안되면 상점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입구를 지키던 가드 중 하나가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풀렸다.

이에 레이첼이 신기하는 투로 말했다.

“하여간 다른 녀석 얼굴로 흉내 내는 건데도 뻔뻔하게 잘하네.”

현재 현성의 얼굴은 누가 봐도 지훈.

그러나 단순히 얼굴만 베낀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블랙마켓에서 자유롭게 다니기 위해서는 진짜 지훈처럼 연기해야 했다.

그에 따라 긴장할 법도 한데, 현성은 너무나도 완벽하게 대상을 연기하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울 정도.

그런 레이첼의 말에 현성이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게. 사실 이 녀석이 보통 쓰레기가 아니라, 내가 잘 흉내 낼 수 있을까 걱정했거든.”

“…….”

그 말에 레이첼이 아무 말 없이 현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설마 지금 저거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그대로 레이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넌 완벽해. 그야말로 완벽한 쓰레기 그 자체랄까.”

특히 상점가에서 다짜고짜 뺨따구를 후려갈긴 건 다시 생각해도 일품이었다.

만약 현성이 끝까지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개쓰레기라고 생각했을 정도.

레이첼이 현성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니까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그거 칭찬이야?”

현성이 미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레이첼이 싱긋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러다가 경매 시작하겠다. 늦기 전에 빨리 가자.”

“너 지금 은근슬쩍 말 돌리는 거……”

“이야, 너무 기대된다~!”

그렇게 말하는 레이첼은 어딘가 굉장히 신나보였다.

그대로 그녀가 현성을 끌고 경매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들의 눈앞에는 온갖 물건이 진열되어 있는 내부가 보였다.

목과 손, 팔에 족쇄를 찬 채, 이송되고 있는 리자드맨이나 노예들.

커다란 수조에 담긴 고래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

그리고 특수용기에 보관되어 길게 줄지어 서있는 정체불명의 장기들까지.

그 내부는 블랙마켓 바깥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그 초입부터 바깥에서는 볼 수 없는 등급의 물건들이 즐비했다.

그 모습에 레이첼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오……”

그동안 블랙마켓에는 종종 와봤지만, 특별경매장 안쪽으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게 전부 경매에 나갈 준비를 하는 물건일터.

무엇보다도 최상등급의 물건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만한 물건을 벌써부터 내놓을 리가 없으니 말이지.’

그때였다.

돌연 건물 전체를 타고 알림음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현성과 레이첼이 고개를 들었다.

[잠시 뒤. 경매가 시작됩니다.]

[경매에 입찰하실 고객님들은 모두 1관으로 이동해주기 바랍니다.]

그 정체는 본격적인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메시지였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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