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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31화 (131/240)

131화 여왕의 궁전(7)

현성의 단호한 한마디.

동시에 이클레아와 그를 집어삼키려던 도플갱어 퀸이 정지했다.

아니 정지했다기보다는 막혔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릴 것이다.

-끼기긱…카앙!

곧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강한 반발력이 터져 나오며 도플갱어 퀸을 밀어냈다.

그 모습에 현성이 반지를 꾹 움켜쥔 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불굴이 제대로 먹혔다!

앞서 말했듯이 그 효과는 발동 후 1회에 한하여 모든 스킬피해 무효화.

그리고 ‘모든 스킬피해’의 범주 안에는 당연히 정신지배 또한 포함되었다.

그대로 도플갱어 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마치 굳건하고, 틈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견고한 벽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거대한 골렘을 마주한 느낌.

이에 도플갱어 퀸이 입을 잔뜩 벌린 채 외쳤다.

[……무슨 술수를 부린 게냐!]

지금껏 던전에 찾아온 불청객 중, 정신지배가 통하지 않은 상대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방패를 든 기사도, 신속의 속도를 자랑하는 암살자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겨우 이깟 애송이가?!’

끽 해봐야 20년도 못 산 인간이었다.

‘말도 안 된다. 이건…말도 안 되는……’

머지않아 도플갱어 퀸은 자신의 깊은 마음 속.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부르르.

연신 떨려오는 육체.

당장에라도 저 멀리 도망치고 싶은 욕구.

그 감정의 정체는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다.

무릇 두려움이란 처음 겪어보는 미지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법.

이에 따라 지금 처음으로 정신지배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난 도플갱어 퀸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다음에 찾아올 건 죽음이란 걸 알기 때문일까.

두려움은 점점 더 육체를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도플갱어 퀸의 모습은 마치 그동안 정신지배를 당한 인간들과 비슷해보였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모든 걸 카피할 수 있던 도플갱어 퀸이 유일하게 카피하지 못했던 한 가지.

두려움을 지금에 와서야 카피할 수 있다니.

-촤르륵!

곧바로 도플갱어 퀸의 몸이 흩어지려 했다.

뒤로 물러나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그럼 그렇지.”

불굴로 도플갱어 퀸의 궁극기를 카운터치면 무조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성은 곧바로 다음 행동을 펼쳤다.

-쉬익!

현성이 뒤로 물러나려는 도플갱어 퀸에게 재빠르게 달라붙으며, 그녀의 쩍 벌린 입을 향해 주먹을 박아 넣었다.

철퍽! 그의 손끝을 따라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질감이 느껴졌다.

그대로 현성 가슴팍을 타고 하얀빛이 반짝였다.

그 빛의 근원지는 바로 그가 줄곧 차고 있던 목걸이.

그러니까 화이트레이를 토벌하고 얻은 전리품, 눈의 결정이었다.

그와 함께 현성의 주먹을 따라,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스으으.

급속도로 보스룸의 공기가 차가워진다.

현성이 얼음폭풍을 썼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가 주먹을 꾹 움켜쥐자, 목걸이에 내장된 스킬이 발동되었다.

“이걸로 끝이다.”

곧바로 한 줄기의 하얀 섬광이 보스룸을 가로지르며,

설산의 지배자라 불리던 화이트레이의 궁극기.

화이트 브레스가 현성의 손끝에서 재현되었다.

-콰아아아아!!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보스룸을 가로지른 하얀 섬광은 가차 없이 눈앞의 도플갱어 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 충격으로 주변에 보이는 건 오직 모든 게 얼어붙은 극한의 땅 뿐이었다.

낡은 연회장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도.

거미줄이 쌓인 조각상도.

그 끝에 있던 커다란 왕좌마저도.

전부 새하얀 얼음에 뒤덮였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현성과 삐죽삐죽 솟아있는 빙산이 전부였다.

무엇보다 빙산 속, 얼어있는 검은 덩어리.

그게 방금 전까지 이곳에 군림하던 보스.

도플갱어 퀸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대로 현성이 천천히 손가락을 뻗어 빙산 끝을 건드렸다.

-툭.

그와 함께 쨍그랑! 얼음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빙산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건 그 안에 얼어있던 도플갱어 퀸도 마찬가지.

이에 반짝거리는 얼음결정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도플갱어 퀸을 쓰러트렸습니다.]

[업적 획득 : 여왕의 궁전을 무너트린]

[보상으로 도플갱어 퀸의 로브를 획득합니다.]

[도플갱어 퀸의 로브]

[등급 : 유니크]

설명 : 도플갱어 퀸의 힘이 일부분 깃들어 있는 로브이다. 지정한 대상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으며, 특수스킬 : 완전복사를 사용할 경우, 5분간 대상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그 능력치까지도 완벽하게 복사할 수 있다.

도플갱어 퀸을 쓰러트렸다는 메시지에 이어, 보상으로 도플갱어 퀸의 로브를 획득했다.

역시 그 난이도만큼이나, 상당히 좋은 보상이었다.

특히 대상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다른 아이템들보다 그 범용성이 굉장히 높으며, 완전복사는 위급한 상황에 조커카드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템처럼 발동조건이나 발동 후 제약이 걸려있는 편도 아니고 말이지.’

수호자의 반지의 경우.

특수 스킬 : 불굴의 발동을 위해서는 5% 이하의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있었다.

거기다 발동 후 1회만 쓸 수 있는 스킬.

‘물론 시간이 지나면 스킬은 충전되겠지만, 연달아 사용은 못한다는 거지.’

그리고 그건 눈의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화이트 브레스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고평가 되지만, 이 역시도 시전자의 모든 마나를 대가로 치르기 때문에 연발은 불가능하며, 사용 직후 마나 탈진에 빠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지.’

그러기 무섭게 현성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야말로 온몸에 힘이 쭉 빠져 손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이에 이클레아가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현성! 괜찮아?”

그대로 이클레아가 쓰러지는 현성의 몸을 낚아챘다.

덕분에 현성은 맨바닥에 쓰러지는 참사만은 피할 수 있었다.

“교수님. 나이스 타이밍.”

이클레아의 손에 데롱데롱 매달려있는 현성이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말에 이클레아가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 했어. 아무튼 그래서 괜찮은 거 맞지?”

이클레아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그를 바닥에 눕혔다.

덕분에 현성은 자연스레 그녀의 무릎베개를 받는 꼴이 되었다.

“단순한 마나탈진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괜찮아요. 무엇보다……”

현성이 그녀의 무릎에 누운 채, 곁눈질로 옆을 까닥였다.

“도플갱어 퀸도 쓰러트렸잖습니까.”

“……”

이에 이클레아가 방금 전까지 도플갱어 퀸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보이는 것은 오직 박살난 얼음결정뿐.

누가 봐도 확실히 죽었다.

하지만 이클레아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지.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과거 영웅들과 함께 했을 때도 토벌하지 못했던 보스였다.

그런데 그걸 현성이 해내다니.

물론 중간 중간에 자신의 도움도 있었지만, 도플갱어 퀸 토벌에 있어 현성의 지분이 훨씬 높은 것은 명실상부한 사실이었다.

“정말로 정신지배를 막을 줄은 몰랐어.”

이클레아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운이 좋았죠.”

그 말에 이클레아가 실소를 지었다.

겨우 운이 좋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느 누가 운이 좋아서 도플갱어는 물론이며, 단번에 여왕의 분신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일부러 중독에 걸려 여왕을 함정에 빠트리는 건 어떻고.

거기다 마지막에는 보란 듯이 정신지배를 카운터치고, 최후의 일격까지 박아 넣었다.

이클레아가 얼어붙은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이게 단순히 운으로 가능할 리가 없잖아.’

현성의 행동은 전부 철저한 계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심지어 그 계산에는 자신의 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는 것과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건 차원이 달랐다.

실전에서는 한 번의 망설임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단 한 번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걸 단순히 망설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겨우 20세도 지나지 않은 일개 아카데미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단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현성이 수십 번도 넘게 이 던전을 도전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화한 고인물의 경험과 지식이란 게 있었지만, 이클레아가 이를 알 리가 없었다.

“…….”

하지만 이클레아는 구태여 그 사실을 따지려 들지는 않았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런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애초에 눈앞의 현성이 따지고 든다한들 순순히 말해줄 위인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그럼 움직일 수 있을 때 말해. 그때까지만 이렇게 있을 거니까.”

이클레아가 마나탈진으로 뻗어있는 현성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가 아무 대답도 없이 빤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현성의 눈빛에 이클레아가 움찔거렸다.

“뭐야. 왜 그래?”

이에 현성이 별거 아니라는 듯.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별건 아니고 역시 잘 어울린다 싶어서요.”

“……뭐?”

이클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그도 잠시.

머지않아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렸다.

“읏…!”

이클레아는 아직 마법소녀의 변신을 풀지 못한 상태.

그만큼 그녀는 붉은 트윈테일에 나이에 맞지 않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이를 자각한 이클레아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마……”

그대로 현성이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의 앞에 떠오르는 상태창.

[이름 : 이클레아]

성별 : 여성

나이 : 30

종족 : 인간클래스 : 교수, 마법소녀업적 : [연금술의 천재], [신수와 계약한], [매지컬 레드], [영웅]

이클레아의 상태창은 처음 그녀를 봤을 때와는 달리 여러 정보가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마법소녀.

그리고 현재 아카데미에서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현성이 유일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보고 있을 거야!”

결국 참다못한 이클레아가 소리쳤다.

이에 현성이 새롭게 바뀐 상태창과 그녀를 번갈아 보며 피식 웃었다.

아무튼 이걸로 여왕의 궁전도 클리어했겠다.

우선은 잠시 쉬도록 하자.

‘……이 다음에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니까 말이야.’

안 그래도 마나탈진 덕분에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대로 서서히 멀어지는 의식과 함께 여왕의 궁전이 막을 내렸다.

* * * * *

그 후로 일주일 정도가 지난 여왕의 궁전.

낡은 연회장은 고요했다.

주변이 전부 얼어붙었듯, 연회장의 시간은 그때 이후로 줄곧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파삭.

얼음이 깨지는 작은 소리와 함께 여왕의 궁전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이를 증명하듯 허공에 그려진 검은 공간.

그림자 같은 공간은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조용했다.

곧 검은 포탈을 타고 두 명의 인형이 이곳에 발을 내딛었다.

그 둘은 전부 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 자세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한발 늦었나.]

허나 그 목소리로 유추해보았을 때.

그 나이는 결코 젊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중후한 목소리.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대로 그 옆에 있던 자가 부드럽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을 따라 검은 마력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곧 안개가 궁전을 전부 뒤덮더니, 그 사이로 일주일 전 이곳에 있었던 일들이 재생되었다.

-스으으.

처음 현성이 도플갱어 퀸과 마주했을 때부터.

그리고 그가 정신지배를 카운터치고 얼음의 일격을 꽂아 넣은데까지.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그렇게 이 모든 것을 확인하고 난 뒤.

검은 안개가 사라지고, 그가 작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쯧. 도플갱어 퀸은 물 건너갔나.”

수많은 도플갱어를 소환할 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변신능력.

거기다 강력한 정신계 공격인 정신지배까지.

만약 도플갱어 퀸이 있었다면 그 자체로 좋은 전력이 되었을 터.

“아쉽게 됐어.”

그러면서 그가 쓰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마족임을 증명하는 선명한 역안과 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대로 그가 뿔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아무튼 인간 주제에 꽤나 화려하게 저질렀군요.”

그의 이름은 이키펠.

현성의 누나, 하선의 편지에서 언급되었던 마족의 이름이었다.

그가 옆에 있던 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쫓을까요?”

동시에 이키펠의 옆에 있던 그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됐다. 돌아가지.]

그러면서 그가 등을 돌렸다.

[……이 다음에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니까 말이지.]

그의 대사는 현성이 여왕의 궁전에서 떠나기 전.

내뱉은 말과 똑같았다.

그리고는 그가 천천히 로브를 벗었다.

-스르륵.

검게 물든 눈과 길게 자란 수염.

그의 이름은 엘카인.

위대한 대마법사의 제자이자, <이스페리아>의 최종보스였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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