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여왕의 궁전(6)
“내, 내가 또 다시 이 빌어먹을 힘을 쓰게 될 줄이야…….”
이클레아가 그녀의 (현)마법봉을 꾹 쥐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반대편에 서있던 도플갱어 퀸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매지컬 레드……?’
잠깐만. 매지컬 레드라.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이에 도플갱어 퀸이 천천히 기억을 되짚더니.
-움찔.
곧 그녀가 뭔가 떠오른 듯 주춤거렸다.
그래, 기억났다.
매지컬레드. 과거 자신을 봉인한 영웅 중 하나였다.
[네 녀석은 그때 그 마법소녀?!]
그와 동시에 이클레아가 방망이를 바닥에 내리꽂으며 소리쳤다.
“닥쳐! 그 이름으로 부르지맛!”
가뜩이나 열불 터져 죽겠는데, 감히 누가 누굴 보고 마법소녀라 부르는지.
그대로 이클레아가 분노에 찬 숨을 몰아쉬며 도플갱어 퀸을 째려보았다.
그와 함께 뿅! 하는 효과음과 함께 그녀의 머리 위로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났다.
[레드! 마법소녀는 항상 그에 걸맞는 태도를 지녀야한다고 했잖아!]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로미.
이클레아가 그렇게 증오하며 악몽의 시작이라 불리는 그 토끼였다.
그런 로미의 말에 이클레아가 와락 미간을 구겼다.
-덥썩!
동시에 그녀가 로미의 귀를 부여잡은 채.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중얼거렸다.
물론 살의가 느껴지는 눈빛은 덤.
“야. 넌 그냥 조용히 닥치고 있어.”
[하, 하지만 다시 마법소녀로 변신한 것부터 나를 받아들인 거나 마찬가지인……]
“한 번 더 나불거리면 내가 조사버린다 했지?”
진심이 담겨있는 이클레아의 한마디.
그녀라면 충분히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다.
아니 실제로도 몇 번 죽은 적 있었다.
다만 로미 그녀 자체가 일종의 신수(神獸)기 때문에 지금까지 안 죽고 살아남은 것.
하지만 신수라 할지라도 죽을 만큼 맞는 건 아프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로미가 조용히 입을 닫았다.
[……]
“그래, 그렇게 닥치고 들어가.”
그러자 로미가 멈칫거리며 그녀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 그래도 내가 없으면 싸우는 건 힘들……]
“들어가.”
[응…….]
허나 택도 없었다.
단호한 그녀의 말에 곧 로미가 사라지고.
이클레아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도플갱어 퀸을 찌릿 째려보았다.
‘내가 진짜 이번 던전만 아니었어도…….’
그렇다. 우선 그가 먼저 보스룸에 들어가 1페이즈를 넘기고.
2페이즈 때는 마법소녀로 변신한 이클레아가 나선다.
이게 전부 다 현성의 계획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반대하려 했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었다.
과거의 영웅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법소녀의 힘을 빌려야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클레아는 피눈물을 머금고, 다시 한 번 그 망할 토끼를 불러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전부 처음 계약을 맺은 내용 덕분이었다.
다른 마법소녀와는 달리 이클레아는 로미와 평생 계약을 맺었다.
과거 그녀가 마법소녀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
그러나 이클레아는 어떻게든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깽판을 쳤으며.
그 결과, ‘잠정적으로’ 마법소녀 직을 내려놓았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내가 먼저 이년을 부를 리 없다고 그리 맹세했는데……’
오늘, 그 맹세를 깨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클레아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돌이킬 수 없어. 지금은 눈앞의 적을 깨부수는 데 집중하자.’
애초에 여기서 도플갱어 퀸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이에 이클레아가 뒤에 있는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계획대로 저걸 정리하면 되는 거지?”
“맞습니다.”
“좋아, 그럼……”
이클레아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몽둥이를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간다.”
그와 함께 이클레아의 몸이 쏘아졌다.
동시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기대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군.”
* * * * *
과거 10년 전 대변동.
마족과 괴수가 판치던 시절.
매지컬 레드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아이돌이자, 영웅 중 하나로 입지를 다졌다.
그 이유에는 물론 마법소녀라는 특수성도 존재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무력이었다.
즉, 신수와 계약을 통한 신비한 힘을 사용하다는 시점부터 마법소녀들은 이미 인간을 넘어선 초인의 영역에 해당되는 존재들이었다.
‘그 힘만 두고 본다면 흡혈상태의 레이첼 그 이상.’
그리고 지금.
현성의 눈앞에 그 초인의 경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클레아가 한 번 방망이를 휘두르자, 그런 그녀를 타고 거대한 풍압이 일었다.
-퍼어어엉!
그 충격에 이클레아를 향해 달려들던 영웅의 분신들이 뒤로 밀려났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곧바로 그녀가 방망이를 앞으로 세우고 자세를 잡았다.
-고오오!
그러자 방망이 끝을 타고 모여드는 심상치 않은 빛의 입자들.
과거 매지컬 레드라고 불리던 그녀의 필살기.
매지컬 빔이었다.
“……!”
이에 다른 매지컬 레드.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는 10년 전 그녀의 모습을 한 분신들이 일제히 마법봉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이클레아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정면으로 막아보겠다 이거지?”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이클레아의 방망이를 타고 빔이 쏘아짐과 동시에 분신체들 역시 빔을 쏘아대며.
2개의 광선빔이 마주쳤다.
-콰가가각!
힘과 힘의 충돌.
그대로 중앙을 타고 커다란 충격파가 일었다.
처음에는 2개의 빔 모두 평평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균형도 잠시.
점차 이클레아의 빔이 서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분신체들이 당황하며 움찔거렸다.
“내, 내 매지컬 빔이…!”
그 말에 이클레아가 실소를 터트리며 외쳤다.
“처음부터 니들이 쓸 힘이 아니라…전부 내거였어!”
그런 이클레아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빔이 나머지 광선을 집어삼키며 강렬하게 쏘아졌다.
그리고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현성이 히죽 웃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스페리아>의 설정 상.
마법소녀의 힘은 그들과 계약한 신수에게서 끌어온다.
그렇기 때문에 도플갱어들은 아무리 그 힘을 복사한다 한들, 애초에 진짜 마법소녀와 그 매커니즘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건 바로 세월의 차이.
신수의 힘은 계약이 유지되는 동안, 계속해서 쌓이고.
그 힘을 쓰지 않으면 당연히 더더욱 축적된다.
이 결과. 이클레아는 10년 치의 힘을 모아둔 상태.
그런데 그 힘을 지금 한 순간에 뿜어낸다고 해봐라.
‘장담컨대 분신체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출력일걸.’
그에 따라 결국 이클레아의 빔이 분신체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집어삼켰다.
그대로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한 빛이 터져 나오며, 그 힘이 폭발했다.
과거에는 사랑과 희망, 그리고 정의를 담았던 그녀의 필살기.
허나 지금 이클레아의 필살기에 담긴 것은 분노와 질투, 그리고 증오가 전부였다.
10년 전 매지컬 레드와 지금의 매지컬 레드.
그 둘은 애초에 짊어준 무게자체가 달랐다.
“감히 꼬꼬마들이 내가 겪은 현실의 무게를 감당 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콰과과가강!
그 강력한 위력에 그곳에 있던 분신들이 단번에 쓸려나가며 폭발에 휩쓸렸다.
그러면서 과거의 영웅 대부분이 사라지고, 어느새 그녀의 앞에는 일부 분신들과 도플갱어 퀸이 전부였다.
“후우…….”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그극.
그렇게 매지컬 빔을 쏘아낸 이클레아가 못이 박힌 마법봉을 질질 끌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도플갱어 퀸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주춤거렸다.
도대체 저 위력은 뭐란 말이냐.
‘1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
이에 도플갱어 퀸이 재빨리 손을 뻗으며 나머지 분신들에게 명령했다.
[다, 당장 막거라!]
퀸의 명령에 나머지 분신들이 냅다 이클레아를 향해 달려갔다.
허나 이미 고삐가 풀린 그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웅들이 내지른 검은 이클레아의 피부를 뚫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녀의 주먹에 그들의 병장기가 박살날 뿐이었다.
-와장창!
그렇게 하나 둘씩 이클레아의 앞을 막아서던 분신들이 쓰러지고.
마침내 도플갱어 퀸과 이클레아 그녀 단 둘만 남았다.
그러자 이클레아가 이를 뿌드득 갈며 중얼거렸다.
“너만…너만 없었으면……!”
그대로 이클레아가 주먹을 꾹 쥐었다.
동시에 그녀의 주먹을 따라 검은 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그동안의 분노, 질투, 증오를 한데 압축한 것 같은 검은색.
‘이, 이건 못 피하면 위험하다…!’
이에 도플갱어 퀸이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하며 뒤로 물러섰다.
방금 전 광선빔보다 더욱 더 불길한 느낌이었다.
만약 이번에 저걸 맞는다면 그때는 재생할 수도 없을 피해를 입을지도 몰랐다.
-퓻!
그와 함께 이클레아의 몸이 쏜살같이 쏘아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도플갱어 퀸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그녀.
[……?!]
당황한 도플갱어 퀸,
허나 이클레아는 당황한 퀸을 뒤로하고 곧바로 주먹을 당겼다.
그리고 그녀가 주먹을 내지르기 직전, 작게 중얼거렸다.
“야. 마법이니까 피하면 반칙이다?”
그 대사는 과거 10년 전.
매지컬 레드가 마지막 공격을 날리기 전 날리는 시그니처 대사였다.
동시에 검은빛이 응축된 이클레아의 주먹이 도플갱어 퀸의 몸에 박혔다.
-쿠구궁…콰아아앙!!
* * * * *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폐허가 된 낡은 연회장.
그 중앙에는 움푹 파진 바닥과 무너진 샹들리에가 자리하고 있었다.
[커허억……]
무엇보다 그 아래.
쓰러진 도플갱어 퀸의 입을 타고 거친 신음이 삐져나왔다.
그리고 이클레아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이미 2페이즈에 들어가면서 만들었던 분신체는 폭발에 휩쓸려 전부 사라진 지 오래.
자연스레 2페이즈는 종료되었다.
그에 따라 아마 지금 도플갱어 퀸의 남은 체력은 20%이하일 터.
“……전에는 여기서 봉인했었지?”
이클레아가 주먹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과거 여왕의 궁전을 클리어 할 당시에는 여기서 도플갱어 퀸을 봉인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 목표는 단순히 봉인이 아닌 토벌.
이에 따라 이클레아는 마지막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그러자 도플갱어 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거 네놈들이 날 봉인한 이유를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눈, 코, 입이 존재하지 않는 도플갱어 퀸의 얼굴.
그녀의 얼굴을 타고 언제 생겼는지 모를 입 꼬리가 쭉 찢어졌다.
상당히 기괴하기 그지없는 모습.
-멈칫.
그 말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혔다.
사실 과거 그녀를 포함한 영웅들 역시도 도플갱어 퀸을 토벌하려 했다.
그러나 봉인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정신지배.”
[그래, 바로 그거다.]
정신지배.
3페이즈에 들어간 도플갱어 퀸의 마지막 광역궁극기로.
엘리트 도플갱어가 단순히 대상의 기억을 읽어 그 모습으로 변한다면, 도플갱어 퀸은 아예 대상의 기억을 토대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에 걸린다면, 그 대상은 그녀가 재현해낸 트라우마에 갇혀 영원히 나올 수 없었다.
무엇보다 도플갱어 퀸의 궁극기는 정신계 공격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떤 방패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건 제 아무리 의지스텟이 30이 넘어가는 현성이라고 한들 마찬가지.
이 때문에 과거의 영웅들은 토벌을 눈앞에 두고 봉인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똑같았다.
만약 도플갱어 퀸을 봉인하려 든다면 퀸은 궁극기를 펼칠게 분명했다.
[그러니 순순히 물러나라. 그때처럼 말이지.]
그대로 도플갱어 퀸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이클레아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니. 물러서지 않아.”
단호한 그녀의 대답.
그러면서 이클레아가 방망이를 들었다.
그 모습에 도플갱어 퀸이 비웃었다.
[결국은 숭고한 희생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패배를 받아들일 셈인가?]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클레아의 뜻은 완고했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도플갱어 퀸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인간 같으니…….]
그리고 잠시 뒤.
이클레아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방망이를 내려쳤다.
그와 동시에 도플갱어 퀸이 기괴하게 갈라진 입을 벌리며 그녀를 삼키려했다.
[소용없다!]
이게 바로 그녀의 궁극기, 정신지배였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현성, 지금이야!”
이클레아가 눈을 꾹 감고 있는 힘껏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에 어느새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현성이 재빨리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도플갱어 퀸의 궁극기는 이미 발동한 상태.
-쿠오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바닥을 타고 검은 장막이 그들을 감쌌다.
그리고 그때였다.
현성이 끼고 있던 반지가 반짝이며, 빛이 터져 나왔다.
-파앗!
그 반지의 정체는 바로 정령의 신전에서 골렘을 쓰러트리고 얻은 아이템.
수호의 반지였다.
무엇보다 그 효과는 1회에 한하여 어떤 공격이던 무효화시키는 특수스킬 : 불굴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여기서 불굴의 발동조건은 사용자의 체력이 5%이하일 때……!’
이게 바로 2페이즈 시작 후.
줄곧 현성이 가만히 있던 이유였다.
그만큼 그의 역할은 체력은 5%이하로 유지시키며, 도플갱어 퀸이 궁극기를 쓸 타이밍을 노리는 것이었다.
“……방금 소용없다고 했지?”
눈부시게 빛나는 빛 무리 속.
현성이 도플갱어의 퀸을 향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