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여왕의 궁전(5)
짙은 독무 속.
당당히 서있는 현성.
그런 그를 보고 도플갱어 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독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주변에 깔린 독무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무려 도플갱어 퀸인 자신조차 완벽히 막아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독이었다.
헌데 겨우 인간 따위가 독을 버틴다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맞아. 그건 불가능하지.”
동시에 현성이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현성이 손에 들고 있는 파프질리아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우적우적.
전에 말했듯이 독액의 재료는 두 가지.
신경마비를 일으키는 걸로 유명한 늪지거미의 독액과 강산성을 띠는 스캐빈져의 소화액이다.
그만큼 그녀의 독안개는 극독 중의 극독.
실제로 이클레아의 특수 독액에서 살아나간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현성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보란 듯이 버티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이 독버섯 파프질리아.’
전에 말했듯이 일부 던전에서 자생하는 버섯 중 하나로.
강력한 독을 지니고 있는 게 그 특징이었다.
그에 따라 플레이어가 이 독버섯을 먹을 경우. 체력이 1이 남을 때까지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게 있지.’
그건 바로 이미 독에 당한 상태에서 독버섯을 먹을 경우, 중독이 중첩되면서 체력이 1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이는 일종의 버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여기 두 개의 명제가 있다.
1. 이클레아의 독약에 중독되면 사망에 이른다.
2. 파프질리아를 먹으면 체력이 1이 남을 때까지 중독 상태에 빠진다.
그런데 만약 이 두 개가 동시에 충돌한다면?
원래대로라면 (1)의 상황에서 죽어야 마땅했지만, 뒤늦게 적용된 (2)의 효과로 인해.
플레이어는 중독 상태가 유지되는 한, 절대로 체력이 1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된다.
‘……이른바 무적 버그.’
이는 과거 현성이 한창 연금술 클래스를 키우던 시절.
<이스페리아>에 존재하는 모든 독을 맛보다가 발견한 사실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백 번 독에 당해 죽었지만, 지금 그때의 죽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캐릭터의 체력이 1남았습니다.]
[캐릭터가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캐릭터의 체력이 1남았습니다.]
[케릭터가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현성의 눈앞을 타고 쉴 새 없이 메시지 창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더 이상 체력이 떨어지고 캐릭터가 사망에 이르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체력이 10%까지 떨어지면 발생하는 빈사상태는 이미 넘어간 지 오래.
‘여기서 독버섯의 지속효과는 5분.’
그리고 이 말은 곧 5분에 한해서.
현성은 그 어떤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는 무적상태에 돌입했다는 것과 똑같았다.
그대로 그가 히죽 웃으며 주먹을 맞부딪혔다.
-카앙!
그와 함께 티리카의 건틀렛이 마주치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이어서 현성의 양 주먹을 타고 붉은 불꽃과, 푸른 얼음조각이 터져 나왔다.
“자, 그럼 이제……”
동시에 현성이 도플갱어 퀸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며 외쳤다.
“딜타임이다!”
그러기 무섭게 그의 주먹이 도플갱어의 퀸의 몸통에 박혔다.
그러자 현성의 팔을 타고 회오리치던 불꽃이 폭발했다.
콰앙! 방금 전의 도플갱어의 자폭과는 확연히 다른 이펙트.
[크아아아악!]
이에 도플갱어 퀸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현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얼음의 기운이 응축된 주먹을 박아 넣었다.
그대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연타.
-두두두두!
과거 불의 둥지에서 크루페돈을 상대했을 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욱 더 강해진 위력으로.
현성이 도플갱어 퀸을 압도하고 있었다.
-콰드드득.
그런 그가 한 번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바닥이 패이며 도플갱어 퀸이 뒤로 밀려났다.
거기다 불꽃과 얼음이 한 데 어우러져 흩날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부를만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쏟아지는 공격 속.
[지, 지금이라도 반격을……쿨럭!]
도플갱어 퀸이 반격을 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순간.
그녀의 입을 타고 검은 피를 연상케 하는 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뿔사! 이클레아의 독무를 잊고 있었다.
도플갱어 퀸이 아무리 독무를 효과를 덜 받는다고 한들.
현성처럼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한, 언젠가 독무가 그녀의 몸을 갉아먹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지금껏 들이마신 독이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주르륵…철퍽!
이를 증명하듯,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육체.
거기다 현성의 공격까지 더해지니 몸이 붕괴되는 속도는 점점 더 가속화되었다.
그때였다.
-고오오.
현성의 발을 타고 모여드는 얼음의 기운.
동시에 그가 있는 힘껏 발을 찍어 내리자, 그의 발끝에 응축되어 있던 얼음이 단번에 쏟아지며 바닥은 물론 도플갱어의 퀸까지 통째로 얼리기 시작했다.
[모, 몸이 움직이지 않……!]
이에 당황한 도플갱어가 재빨리 고개를 들어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어느새.
커다란 망치를 들고 있는 현성이 서있었다.
“막타는 화끈하게 가야지?”
그대로 현성이 망치를 움켜쥐자, 거센 불꽃이 망치머리를 휘감았다.
곧바로 그가 얼어붙은 도플갱어 퀸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콰아아앙!
낡은 연회장을 가득 채우는 붉은 불꽃과 폭음.
그 충격에 도플갱어 퀸이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그와 함께 귀를 찔러오는 비명소리가 삐져나왔지만, 폭음에 묻혀 제대로 들릴 턱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금이 간 것도 모자라, 반쯤 박살난 벽 한쪽에서 검은 물체가 털썩 쓰러졌다.
뒤이어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푸스스.
그런 먼지 사이로 도플갱어 퀸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꼴은 이미 말이 아니었다.
오른쪽 팔과 몸통의 대부분이 녹아내렸으며, 나머지마저도 형체를 유지하기 힘들어보였다.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이다니……대단하군.]
그 대사에 현성이 미간을 꿈틀거렸다.
‘……왔다.’
이쯤 되면 처음 도플갱어 퀸을 보는 사람도 눈치 챘을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2페이즈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였다.
동시에 그녀가 바닥에 손을 뻗었다.
-슈오오옥.
그러자 낡은 연회장 이곳저곳에 널브러져있는 도플갱어의 잔해들이 빠른 속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여든 잔해는 태초에 태어났던, 도플갱어 퀸의 몸으로 다시 흡수되었다.
“……결국은 이럴 거면서 내가 도플갱어 좀 밟았다고 그 지랄을 떨어?”
현성이 도플갱어 퀸을 향해 비아냥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하여간 이래서 몬스터 놈들은 안 된다.
그대로 현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 모습에 도플갱어 퀸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은 확실히 놀라운 모습이었지만, 아무래도 네놈이 보여준 무위(武威)도 여기까지인 모양이구나.]
실제로 도플갱어 퀸의 안목은 정확했다.
파프질리아의 지속시간은 5분.
그리고 방금 전 1페이즈가 종료됨과 동시에 그 지속시간이 끝났다.
[캐릭터의 체력이 1남았습니다.]
그에 따라 현성은 더 이상 무적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도플갱어 퀸이 한 대만 툭 쳐도 그는 사망.
거기다 중독이 풀리면서, 그동안의 피로감이 밀려왔다.
‘이래서 두 번은 못 써먹는다니까……’
현성이 망치를 지팡이삼아 몸을 지탱하며 도플갱어 퀸을 주시했다.
그러자 그녀가 천천히 걸어오며 중얼거렸다.
[……뭐 잘됐다. 애초에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러면서 도플갱어 퀸이 손가락을 퉁겼다.
-따악.
그와 함께 바닥을 타고 하나 둘씩 검은 형체가 솟아났다.
흡수했으니 다시 소환한다.
정말이지 먹고 나오는 게 확실한 몬스터가 아닐 수 없었다.
-스르륵.
그리고 소환된 검은 형체들은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현성도, 이클레아의 모습도 아니었다.
은색의 갑옷, 혹은 코트부터 도끼, 창, 방패에 이르는 수많은 병장기.
-처억.
그들을 다름 아닌 과거 이 던전을 찾아온 사람, 즉 과거의 영웅들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그 사이에는 마법봉을 들고 있는 붉은 트윈테일의 소녀도 보였다.
이에 현성이 작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이게 바로 2페이즈의 컨셉.
1페이즈가 플레이어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와 도플갱어 퀸을 상대하는 거라면.
2페이즈는 보다시피 과거 던전을 공략한 영웅들의 분신을 상대해야 했다.
그대로 현성의 눈앞에 나타난 영웅들.
그런 영웅들의 뒤로.
도플갱어 퀸이 양 팔을 펼치며 당당하게 말했다.
[과연 지금의 네놈이 이만한 수를 상대할 수 있을까?]
그 말에 현성이 혀를 차며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할 때도 들어봤던 대사지만, 이렇게 직접 면전에서 들으니 뭐랄까.
‘개꼴받네.’
괜히 더 짜증나기 그지없었다.
버젓이 힘들 거 알고 저렇게 말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맞아. 난 상대 못 해.”
현성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풀피라도 힘든 상황인데 피도 1밖에 시점에서 어떻게 저걸 상대한단 말인가.
그대로 그가 보란 듯이 인벤토리에서 회복약을 꺼내 들이켰다.
-꿀꺽, 꿀꺽.
그런 현성의 행동에 도플갱어 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곧 그녀가 조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네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그게 아니면 죽음을 앞에 두고 해탈하기라도 한 게냐.]
그러자 현성이 빈 회복약을 휙 던지며 말했다.
“아니. 말했잖아. 난 못한다고.”
이어서 그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매지컬 레드는 다르지.”
[크큭, 크하핫!]
그런 현성의 말에 도플갱어 퀸이 폭소를 터트렸다.
저 녀석이 미친 게 분명했다.
이에 그녀가 손을 까닥이며 말했다.
[오냐, 그렇게 죽고 싶다면 여기서 끝내주마!]
그와 동시에 맨 앞에 있던 기사가 현성을 향해 돌격했다.
그대로 기사의 창이 그를 꿰뚫기 직전.
돌연 현성이 차고 있던 검은 팔찌가 빛나기 시작했다.
[……?]
그리고 잠시 뒤.
검은 팔찌에서 터져 나온 빛이 연회장을 가득 감싸고.
현성의 목을 노리던 창이 튕겨져 나갔다.
-끼기긱…채앵!
그대로 빛이 걷힌 현성의 앞에는 못이 박힌 방망이를 든 채.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커트를 입고 있는 이클레아가 서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목에 걸린 검은 목줄.
그건 다름 아닌 아카데미에서 판매 중인 ‘실종 방지 목줄’이었다.
이에 이클레아는 현성에게 순간이동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헤어지기 전과 사뭇 다른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빨간 스커트와 리본.
거기다 귀여운 트윈테일까지.
마치 과거 매지컬 레드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이클레아에게는 10년 전, 과거와 같은.
마법소녀의 힘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기다렸다는 듯 해맑게 외쳤다.
“쥐엔장, 매지컬 레드! 믿고 있었다구!”
“너…너 이잇…!”
그러자 이클레아의 얼굴이 급속도로 빨개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아마 수치심 때문일 터.
동시에 그녀가 이빨을 으드득 갈며 버럭 소리쳤다.
“너 아카데미 돌아가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렇게 여왕의 궁전의 보스룸 안.
마법소녀 매지컬 레드, 아니 이제는 마법중년이 된 매지컬 레드.
이클레아의 화려한 데뷔를 알리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