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여왕의 궁전(4)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보스룸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대로 이클레아가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본래 계획은 그녀가 먼저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현성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인해 그 순서가 바뀌었다.
그에 따라 던전에 먼저 들어가는 것은 다름 아닌 현성.
“네, 제 예상이 맞다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녀의 물음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클레아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불안함으로 작게 떨리고 있었다.
교수라는 사람이 학생을 혼자 보스룸에 보내야한다니.
거기다 일반 던전이라면 모를까, 무려 여왕의 궁전이었다.
오히려 걱정이 안 되는 게 이상했다.
‘그치만……’
현성이 말한 계획은 충분히 실효성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녀의 계획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다만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지만,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계획에 반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클레아는 일단 현성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와서 내가 말린다고 해도 들어먹을 위인이 아니잖아.’
갈림길에서도 그렇게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했건만 기어코 먼저 움직이지 않나.
영상을 지우라고 했더니 버젓이 백업해두지 않나.
정말이지 한 번이라도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하여간 정말……”
이클레아가 현성을 찌릿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혹시라도 위험하면 당장 도망쳐 나와.”
걱정 어린 이클레아의 한 마디.
이에 현성이 걱정 말라는 듯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현성이 커다란 문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리고 그가 힘껏 힘을 주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그극…!
오래된 마찰음과 함께 먼저가 일었다.
그대로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
현성이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동시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쿠웅.
* * * * *
처음 보스룸에 들어오자 보인 것은 넓은 내부였다.
마치 낡은 연회장을 연상케 하는 공간.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는 반쯤 박살난 채,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런 불빛 아래로는 먼지와 거미줄에 쌓인 조각상이 줄지어 서있었으며.
그 끝에는 커다란 왕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근 10년 만에 손님이 왔구나.]
왕좌가 있는 곳을 따라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인인지, 어린아이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목소리.
흡사 수십 명의 사람이 한데 뒤섞여 말하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였다.
그리고 잠시 뒤.
왕좌를 타고 검은 액체들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주르륵.
그렇게 흘러내린 액체는 점차 한 곳에 모여들었으며.
어느새 현성의 앞에는 검은 그림자처럼 생긴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눈, 코,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이는 건 그저 검은 얼굴.
거기다 비정상적으로 긴 팔과 다리까지.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그 외형 때문일까.
오히려 더욱 기괴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후후, 이번 손님은 잘생긴 도련님이군.]
그 말에 현성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거 칭찬은 고맙수다.”
저게 바로 여왕의 궁전의 보스, 도플갱어 퀸.
정말이지 게임에서 봤던 모습과 그대로였다.
이에 현성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다시 봐도 진짜 슬X더 맨처럼 생겼네.”
[……뭐?]
“있어. 그런 거.”
현성이 미국의 도시전설에 등장하는 괴생물체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무튼 이제 보스도 봤겠다.
본격적으로 슬슬 움직일 타이밍이었다.
[자, 그럼 간만의 손님맞이를 준비해볼까?]
그러기 무섭게 작게 웃으며 손을 펼치는 도플갱어 퀸.
동시에 그런 그녀의 손을 타고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대로 흘러내린 검은 액체는 곧 슬라임처럼 꿈틀거리더니.
[……끄르륵.]
점차 인간의 형태, 그것도 현성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어두운 흑발과 검은 눈동자.
누가 봐도 완벽한 현성의 모습이었다.
“……”
하지만 그 모습에도 현성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갈림길에서 쓰던 미러스크롤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제자리에 서있을 뿐.
-꿈틀꿈틀!
그럴수록 도플갱어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늘어나던 도플갱어는 어느새 그를 에워싸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다.
[두려운가? 허나 두려워 말거라.]
도플갱어 퀸이 현성을 바라보며 조소했다.
그대로 머지않아.
그녀가 손을 까닥이며 외쳤다.
[너도 곧 이 중 하나가 될 터이니!]
그와 함께 현성의 모습을 한 수많은 도플갱어가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녀석들의 손에는 전부 붉은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현성이 갈림길에 썼던, 그만의 마법 파이어 펀치였다.
-화르륵!
당장에라도 현성을 덮칠 듯 달려오는 도플갱어들.
이에 현성이 그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폭발은……”
그리고 그가 히죽 웃으며 손을 펼친 순간이었다.
“예술이다!”
그의 외침과 함께 돌연 달려오는 도플갱어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쾅! 콰과광!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커다란 폭발음.
그 충격에 사방을 타고 도플갱어들의 파편이 휘날렸다.
그야말로 폭죽놀이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풍경.
[……무, 무슨?!]
그 모습에 도플갱어 퀸이 당황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저마다 폭발하며 쓰러지는 그녀의 아이들.
‘제대로 먹혔다.’
현성이 화려하게 터져나가는 도플갱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빛바랜 연회장을 가득 채우는 도플갱어 퀸이 비명소리.
[꺄아아악!]
실시간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터져가고 있었다.
그만큼 도플갱어 퀸의 억장은 무너지다 못해, 아예 박살나기 직전.
이에 도플갱어 퀸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내, 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무슨 짓이라니?”
그 외침에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던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대로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여유로운 현성의 대답.
그 뻔뻔스러운 대답에 도플갱어 퀸이 분노에 차 부들거렸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를 향해 달려들던 도플갱어들이 한순간에 폭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의의로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현성 그가 힘법사이기 때문.
힘법사, <이스페리아>에 존재하는 히든 클래스 중 하나로.
그 입수조건은 다름 아닌 마법변형을 이루어내는 것.
그리고 마법변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알다시피 평타캔슬이라고 불리는 버그성 테크닉을 익혀야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
‘만약 조금이라도 그 타이밍이 어긋난다면 마법은 그대로 폭발.’
이게 도플갱어들이 스스로 폭발한 원인이었다.
물론 보통의 경우라면, 도플갱어는 상대의 기술까지 구사할 수 있어야했다.
허나 그 상대는 힘법사.
‘히든 클래스, 즉 규격 외의 클래스라는 거지.’
현성이 그냥 마법사라면 모를까.
그가 힘법사인 이상.
도플갱어들이 그의 마법까지 따라하는 건 불가능했다.
[도대체…도대체 어떤 술수를 부린 것이냐!]
그러나 이 사실을 알 턱이 없는 도플갱어 퀸이 이를 갈며 그를 추궁했다.
이에 현성이 폭발한 도플갱어들의 잔해를 짓밟으며 말했다.
“그렇게 꼬우면 직접 알아내보던가.”
그와 함께 철퍽! 도플갱어의 잔해가 짓뭉개졌다.
친히 패드립까지 행사하는 현성의 인성.
결국 참다못한 도플갱어 퀸이 그를 향해 달려들며 외쳤다.
[당장 그 발 치우지 못할까!]
동시에 현성이 재빨리 인벤토리에 양손을 집어넣었다.
폭발한 도플갱어들.
달려오는 도플갱어 퀸.
모두 그의 계획대로였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으로 넘어갈 차례.
곧바로 현성이 삼각 플라스크를 집어던졌다.
‘지금…!’
그 정체는 이클레아의 특수독액.
그대로 쨍그랑!
삼각 플라스크가 깨지며 사방으로 독무(毒霧)가 펴져나갔다.
[캬아아악!]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극독에 도플갱어 퀸이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아직 독무가 퍼지지 않은 뒤쪽을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뒤로 빠지면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
동시에 그 순간이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독안개 너머.
현성이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야!”
그 소리에 도플갱어 퀸이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다시 한 번 도플갱어의 잔해 위에 발을 올리고 있는 현성이 있었다.
곧 그런 그를 발견한 그녀가 움찔거렸다.
[네, 네놈 설마……!]
동시에 도플갱어 퀸이 방금 전 악몽을 떠올렸다.
가차 없이 자신의 아이를 밟아버리던 그의 모습.
심지어 지금 현성의 발밑에 있는 아이는 아직 살아있었다.
-꾸물꾸물.
이를 증명하듯.
당장에라도 살려달라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도플갱어.
하지만 현성은 이번에도 가차 없이 도플갱어를 짓밟았다.
-콰직!
그와 함께 도플갱어의 파편이 튀어 오르며, 그 파편이 힘없이 주르륵 바닥에 퍼졌다.
그 모습에 도플갱어 퀸이 주먹을 꾹 쥐었다.
[가, 감히 인간 따위가 또 내 새끼를…!]
그와 함께 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야. 니 도플갱어 쩔더라?”
이대로 가만히 있었다면, 도플갱어 퀸이 얌전히 독무에 당할 리가 없었다.
허나 여기서 어그로를 끈다면?
도플갱어 퀸의 우선 순위는 독무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 대신 현성을 노리는 것으로 변경된다.
-으드득!
그런 현성의 말에 도플갱어 퀸이 이를 갈았다.
저 녀석만은 도망치게 둘 수 없었다.
물론 그러기에는 독안개가 신경 쓰이지만, 이깟 독 따위는 맞으면서 버티면 그만이었다.
[네놈만큼은 기필코 죽여주마!]
이에 도플갱어 퀸이 길쭉하고 가느다란 팔을 뻗었다.
제 스스로 독안개에 빠지는 걸 택하면서 날린 공격이었다.
허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 녀석까지 독안개 안으로 끌어들이면 먼저 죽는 건 이 몸이 아니라 녀석!’
인간의 육체라면 독안개에 노출되기만 해도 치명상이 될 게 분명했다.
곧바로 그녀의 팔이 기괴하게 늘어나더니, 한 마리 뱀처럼 현성을 쫒았다.
-쉬익…터업!
그대로 도플갱어 퀸이 도망가던 현성의 다리를 붙잡았다.
꼼짝없이 다리가 잡힌 현성.
그리고 도플갱어 퀸이 팔을 끌어당기며 그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퍼억!
그 충격에 현성이 바닥을 굴렀다.
덕분에 그는 꼼짝없이 자신이 던진 독안개 속으로 들어온 꼴이 되었다.
그에 따라 순식간에 현성의 몸에 독이 퍼지기 시작했다.
“쿨럭!”
그 순간, 거친 기침과 함께 입을 타고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입을 연 탓에 현성의 호흡기를 타고 독안개가 들어왔다.
그렇게 침투한 독이 이젠 그의 폐부 곳곳을 찌르기 시작했다.
-찌리릿!
그와 함께 몰려오는 강한 격통에 현성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꾸라졌다.
“컥! 크흑…!”
그 모습에 도플갱어 퀸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럴수록 독은 더더욱 그의 몸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이에 잠시 뒤. 현성이 손을 뻗으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수, 숨이……”
떨리는 그의 목소리.
그리고 현성이 고통스러워하면 고통스러워할수록.
도플갱어 퀸은 크나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빌어봐라! 살려달라고 더 빌어보란 말이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현성을 바라보며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몸이 들썩거리더니, 곧 그의 입을 타고 묘한 웃음이 삐져나왔다.
“……글쎄. 그건 좀 힘들고.”
동시에 독에 당한 줄 알았던 현성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에는 독버섯 파프질리아가 들려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들고 있던 파프질리아를 뜯어먹으며 말했다.
“대신 니 명복은 빌어줄 수 있는데. 어때?”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