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여왕의 궁전(3)
“너, 너 어떻게 여길……”
그 모습에 이클레아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그녀는 문을 열기 직전, 엘리트 도플갱어의 공격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한 상태.
그렇다고 현성이 벌써 반대편의 엘리트 개체를 정리하고 넘어왔을 리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갈림길에 들어가기 전.
그녀가 현성에게 그렇게나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현성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눈앞의 녀석은 그녀가 알고 있는 현성이 아닌, 그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이다.
그게 이클레아의 판단이었다.
이에 그녀가 곧바로 불빠따를 들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덤벼. 이쪽은 바쁘니까.”
설마하니 아직도 죽지 않은 몬스터가 있을 줄이야.
그런 이클레아의 말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대로 현성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교수님, 전 진짜인데요.”
“닥쳐, 안 속으니까.”
“……진짠데.”
하지만 아무리 말로 한들, 그녀가 쉽사리 믿을 거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에 결국 현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허튼 짓 하지 마.”
“글쎄. 잠깐 진정하고 이거나 봐보세요.”
그대로 현성이 품속에서 꺼낸 건 다름 아닌 그의 스마트폰.
이어서 그가 이클레아를 향해 불쑥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그와 함께 액정을 타고 익숙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전장의 아이돌, 매지컬 레드 등장!]
“이런 써글.”
그건 바로 던전에 오기 전, 지긋지긋하게 보았던 매지컬 레드의 영상이었다.
동시에 이클레아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거친 욕설을 튀어나왔다.
이에 현성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만약 제가 도플갱어라면 이 영상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겠죠?”
현성의 말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꿈틀거렸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랬다.
도플갱어는 어디까지 그 외형과 능력치만을 카피할 뿐, 그가 가지고 있던 영상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이클레아가 천천히 방망이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완전히 의심이 풀린 건 아닌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설마 건너편에 있던 도플갱어를 전부 잡고 왔다고? 그것도 나보다 빨리?”
그런 이클레아의 물음에 현성이 건너편을 흘깃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내가 분명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텐데?”
이에 현성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죄송함돠.”
“너 이씨……!”
동시에 이클레아가 울컥 화를 내며 팔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팔을 내려놓았다.
“아무튼 그래서 정말 도플갱어를 전부 다 잡고 넘어왔다고?”
“네,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보실래요?”
현성이 태연하게 뒤를 가리켰다.
그리고 잠시 뒤.
이클레아는 현성의 말대로 직접 반대편으로 가서 확인해본 결과.
“……열려있어?”
그녀의 앞에는 보란 듯이 활짝 열려있는 통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반대편에는 죽은 도플갱어의 흔적이 즐비했다.
그곳에 남아있는 도플갱어의 수는 제로.
이에 이클레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은 도플갱어의 흔적과 그 영상까지.
모든 게 그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제 말 맞죠?”
그 말에 이클레아가 현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정말 아카데미생이 클리어경험이 있는 자신보다 빨리 끝에 도달할 줄이야.
직접 확인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공개대련에서는 A등급을 압도하지 않나, 불의 둥지에서는 악마 크루페돈를 상대로 살아남지 않나, 그리고 이번 갈림길까지?’
현성의 활약은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지금껏 아카데미의 교사로 있으면서 이정도 수준의 학생은 그야말로 처음 봤다.
아니 애초에 이번 갈림길은 아카데미 학생 수준에서 절대 돌파하기 쉬운 난이도가 아니었다.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야.’
하지만 그런 감탄도 잠시.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린 이클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녀가 현성을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근데 너 분명 그 영상 지웠다고 하지 않았냐?”
이클레아가 기억하기로는 방금 전 보여줬던 영상은 던전에 들어오기 전.
그녀의 손으로 직접 삭제했다.
그런데 그 영상이 버젓이 남아있었다.
-움찔.
이클레아의 날카로운 질문에 현성이 주춤거렸다.
그대로 그가 멋쩍은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죄송함돠.”
“……”
그 말에 이클레아가 조용히 내려놓았던 불방망이를 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교수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자면 저 진짜입니다. 도플갱어 아닙니다.”
“알아.”
“……예?”
“알고 있다고!”
곧바로 이클레아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이에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과 함께 현성의 머리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방망이.
이어서 이클레아가 다시 방망이를 들며 외쳤다.
“지워! 지워! 당장 지우라고!”
가뜩이나 눈앞에서 매지컬 레드로 변신한 녀석을 만난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영상까지 남아있었다니.
그렇게 여왕의 궁전 안.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이클레아의 목소리는 수치심에 잔뜩 젖어 울먹거리고 있었다.
* * * * *
아무튼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과 이클레아는 갈림길을 지나, 계속해서 여왕의 궁전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그 중간 중간에 도플갱어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리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철퍽!
앞을 가로막던 도플갱어가 쓰러지며 현성이 손을 털어냈다.
“여기는 끝났어요.”
이에 이클레아 역시 남은 도플갱어를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갈림길 이후로 등장하는 도플갱어는 전부 일반개체.
전에 봤던 엘리트 도플갱어와 같은 특수개체는 등장하지 않았다.
“좋아. 계속 들어가자.”
그대로 이클레아가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그 둘은 보스룸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잠깐. 여기서 정지.”
앞서가던 이클레아가 손을 들며 말했다.
동시에 그런 그녀의 앞에는 커다란 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고대 왕성에서나 볼법한 크기의 문과 겉에 새겨져 있는 조각.
‘……근 10년만인가.’
이클레아가 문을 바라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처음 동료들과 던전에 도전한 이후로는 처음 보는 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후우.”
이에 이클레아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보스를 만나기 전.
현성에게 유의사항을 알려줄 차례였다.
“자, 잘 들어. 지금부터는……”
그러면서 그녀가 고개를 돌린 순간.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히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얘 어디 갔어?”
당장 뒤에 있어야할 현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클레아가 벽 한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는 현성을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너 거기서 뭐하니?”
그 와중에도 현성은 쭈그려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템포 늦게 이클레아의 부름에 반응한 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예?”
동시에 그런 현성의 손에는 보라색을 띠는 버섯이 들려있었다.
그 모습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혔다.
“저건……”
현성이 들고 있는 버섯은 다름 아닌 일명 파프질리아.
일부 던전에서 자생하는 버섯 중 하나로, 보다시피 여왕의 둥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버섯이었다.
무엇보다 던전에 있는 몬스터의 사체, 그러니까 도플갱어를 양분으로 삼는 만큼.
강력한 독을 지니고 있는 게 그 특징이었다.
덕분에 연금술 분야에서도 쓰이는 독버섯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버섯채취를?’
그런 이클레아의 눈빛에 현성이 파프질리아를 마저 챙기며 대답했다.
“나중에 쓸데가 있어서요.”
아카데미에 돌아가서 연금술공부에라도 쓰려는 생각일까.
“그래. 뭐…하여간 그건 그렇고.”
이클레아가 그를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아무튼 말해줄 게 있으니까 잘 들어.”
“뭔데요.”
“보스에 관한 내용이야.”
그 다음 이어진 이클레아의 말을 이러했다.
우선 이곳, 여왕의 궁전의 보스는 도플갱어 퀸.
그동안 마주쳤던 모든 도플갱어의 모체격인 보스몬스터였다.
그리고 도플갱어 퀸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도플갱어를 낳으며, 던전의 모든 도플갱어들이 카피했던 대상을 그대로 카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규칙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변하는 순서.”
도플갱어 퀸의 첫 변신대상은 보스룸에 가장 먼저 들어온 존재로 한정되어 있었다.
즉, 지금 같은 경우.
그녀는 무조건 현성과 이클레아 둘 중 하나로 변한다는 소리였다.
그와 함께 이클레아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내가 던전을 봉인했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쉬운 난이도일거야.”
그도 그럴게 10년 전에는 그녀를 포함한 여러 영웅이 모두 모여 던전에 돌입했다.
그만큼 도플갱어 퀸은 동시에 수많은 영웅들의 모습으로 변했으며, 계속해서 분열을 반복하며 그 수를 늘려나갔다.
‘……그야말로 극악의 난이도.’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과거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고, 기껏해봐야 너와 나. 둘이 전부야.”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단 둘이서 던전에 온 게 장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클레아는 이 장점을 적극 이용하기로 했다.
그대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에 따라 내가 먼저 보스룸에 들어간다.”
만약 이클레아가 먼저 보스룸에 들어갈 경우.
도플갱어 퀸은 무조건 그녀로 변하기 마련.
“이 과정에서 도플갱어 퀸은 지금의 나, 그게 아니면 과거의 나(매지컬 레드)로 변하겠다만, 둘 다 큰 상관없어.”
“……이유는요?”
그런 현성의 말에 이클레아가 품속에서 녹색 액체든 플라스크를 흔들거리며 말했다.
그 플라스크에는 갈림길을 통과할 때 썼던 그녀의 특수 독액이 들어있었다.
“어차피 들어가자마자 독을 풀어버릴 생각이거든.”
자신이 먼저 들어가서 여왕이 모습을 카피하면.
그때 독을 던져 여왕의 분열체를 전부 정리한다.
이게 바로 이클레아의 계획이었다.
‘아무리 분신들이 내 능력을 카피했다고 해도, 단시간 내에 독이 어떤 성분인지 파악하고, 곧바로 해독제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
물론 반대로 현성이 들어가는 방향도 고려해봤지만, 그 부분은 변수가 너무 컸다.
무엇보다 현성이 들어갈 경우.
그에게 수많은 분열체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 의문일뿐더러, 자칫 그가 역으로 당하기라도 하면 낭패중의 낭패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들어가는 게 가장 효율적인 판단인거 같은데 어때.”
곧 그녀의 설명을 들은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괜찮은 계획이군요.”
“좋아. 그럼 이대로 진행……”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돌연 현성이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런데 만약 이것보다 더 좋은 계획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수님?”
“……뭐?”
그 말에 이클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현성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말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