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여왕의 궁전(2)
붉은 트윈테일과 빨간 세라복.
게다가 한눈에 봐도 귀여운 외모.
그야말로 완벽했다.
[아아, 아름다워……]
매지컬 레드, 아니 도플갱어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눈앞의 녀석이 마치 지금만큼은 몬스터가 아닌, 매지컬 레드 그 자체가 된 것처럼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도플갱어가 이클레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안 그래도 귀여운 외모.
거기다 미소까지 지으니, 그 모습은 과연 웬만한 아이돌을 뺨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우욱.”
동시에 이클레아가 재빨리 입을 가로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확실히 그녀의 모습은 다른 의미로 치명적이었다.
이에 도플갱어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반응은 뭐야. 설마 이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 거야?]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탄하기는커녕, 오히려 헛구역질이라니.
도플갱어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반응이었다.
그러자 이클레아가 그런 녀석을 향해 이를 갈며 말했다.
“아름답기는 개뿔. 당장 그 역겨운 얼굴 안 치워?”
[……뭐?]
그 말에 도플갱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여전히 똑같았다.
그대로 이클레아가 도플갱어를 향해 달려들며 외쳤다.
“그러니까 그 역겨운 얼굴 치우라고 했잖아!”
이클레아에게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끔직한 악몽일 뿐.
곧바로 도플갱어의 앞으로 쇄도한 그녀가 주먹을 꾹 움켜쥐고는.
한시라도 빨리 이 빌어먹을 악몽에서 깨기 위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죽어라! 더러운 과거의 잔재!”
그러나 그때였다.
도플갱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둘렀다.
동시에 그런 그녀의 손을 타고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번쩍…콰앙!
그와 함께 정체불명의 빛 무리가 이클레아의 주먹을 튕겨내었다.
그리고 잠시 뒤.
도플갱어의 손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게 들려있었다.
‘……저건?!’
이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히며 뒤로 물러섰다.
얼핏 보면 하얀 단봉으로 착각할 수 있었지만, 그건 그냥 단봉이라 하기에는 그 디자인이 사뭇 남달랐다.
무엇보다도 그 끝에 달려있는 빨간 하트모양의 장식과 그 옆에 달려있는 하얀 날개.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마법소녀의 상징.
마법봉이었다.
“저, 저 흉물스러운…!”
그러기 무섭게 이클레아의 머릿속을 타고 주마등이 스쳐지나갔다.
한 번 마법봉을 휘두를 때마다 상큼 발랄한 이펙트가 터지며 사람들이 열광했다.
무엇보다도 그 옆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토끼 한 마리.
[바로 그거야! 매지컬 레드!]
아직까지도 망할 토끼 녀석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놈의 주둥이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과거의 PTSD가 도진 이클레아가 머리를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크윽, 머리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도플갱어가 눈매를 좁혔다.
[호오?]
자신의 마법봉을 보고 고통스러워하는 상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도플갱어에게 있어서는 이것만큼 좋은 찬스가 없었다.
이에 도플갱어가 히죽 웃으며 마법봉을 치켜들었다.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군.]
전에 말했듯이 도플갱어는 외형뿐만이 아닌, 그 능력까지 카피한다.
그리고 엘리트 도플갱어는 상대의 기억을 토대로 하는 만큼.
기억 속의 버릇, 대사, 모습까지 완벽하게 따라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매지컬 레드의 이름으로 널……]
그런 도플갱어의 말과 동시에 이클레아가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본능에 새겨진 불길함.
만약 저 대사가 그녀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그 다음은.
“아, 안 돼…머, 멈춰……!”
이클레아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그대로 도플갱어가 윙크를 갈기며 외쳤다.
[용서하지 않겠다!]
물론 깜찍한 포즈와 빙그르르 돌아가는 마법봉은 덤,
그와 동시에 이클레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그만!”
과거에 가장 떠올리기 싫던, 보기 싫었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물며 그냥 기억이라면 모를까.
그 기억이 실제가 되어 생생하게 4D로 재생되고 있었다.
이미 이클레아의 라이프는 제로.
흑역사에 엉망진창이 된 이클레아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도플갱어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승리의 조소를 지었다.
[후후……]
이거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릴지도 모르겠다.
만약 여기서 이클레아를 죽여 버린다면, 자신이 본체가 될 수 있다.
도플갱어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처억.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웃어?”
방금 전, 도플갱어의 웃음소리를 들은 이클레아가 고개를 들었다.
희번덕하게 치켜뜬 두 눈.
기괴하게 꺾인 고개.
“지금 이게 웃겨?”
그대로 이클레아가 삐꺽거리며 일어났다.
동시에 그런 그녀의 주변을 타고 범상치 않는 기운이 스멀스멀 삐져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분노.
-움찔.
그 기세에 도플갱어가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본능적으로 느낀 위협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흐, 흥! 매지컬 레드는 겨우 이정도로 물러서지 않는다!]
도플갱어가 이클레아를 향해 마법봉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악에 굴복하지 않는 정의의 마법소녀를 연상케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플갱어가 그렇게 나올수록 이클레아의 분노에 불을 지필뿐이었다.
-빠드득!
이를 증명하듯 이클레아의 입술을 비집고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이어서 그녀가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래. 부디 끝까지 물러서지 마라.”
그와 함께 이클레아의 손을 따라 끌려나온 것은 여기저기 흉하게 못이 박혀있는 야구방망이.
속된 말로 야구 빠따라 불리는 무기였다.
그대로 그녀가 방망이를 움켜쥐자, 겉에 박혀있던 못이 붉은 빛으로 번쩍이며 불씨가 타올랐다.
-화르륵!
그렇게 붙은 불씨는 점차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하고.
마침내 불꽃이 방망이 전체를 휘감았을 때.
이클레아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불빠따 그 자체였다.
“물러서면 넌 바로 뒤지는 거다.”
그대로 그녀가 불빠따를 질질 끌며 히죽 웃었다.
도플갱어가 들고 있는 게 과거 마법소녀 시절의 마법봉이었다면,
이클레아가 들고 있는 건 현재 그녀의 마법봉이었다.
-퓻!
그리고 이클레아의 신형이 도플갱어를 향해 쏘아졌다.
마치 순간 사라졌다고 착각이 들만큼 빠른 속도.
몸에 바람을 둘러, 속도를 높이는 마법. 헤이스트였다.
[……!?]
이에 도플갱어가 뒤늦게 반응하며 마법봉을 들었다.
그러자 그런 마법봉의 장식을 타고 방어 마법진이 펼쳐졌다.
누누이 말했듯이 눈앞의 녀석은 과거 매지컬 레드의 전투방식 그대로.
그만큼 그녀의 마법을 구사함은 물론.
그 패턴까지도 과거와 똑같았다.
그 모습에 이클레아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과거의 그녀라면 무조건 이럴 줄 알았다.
동시에 이클레아의 불빠따와 도플갱어의 마법진이 맞부딪쳤다.
-콰앙!
커다란 충격음.
허나 아무리 방망이를 쎄게 휘두른다 한들, 방어 마법진을 뚫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곧 그 상식을 박살내는 장면이 펼쳐졌다.
-끼기긱…챙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난 마법진.
유리 조각처럼 어지럽게 흩날리는 그 파편.
방어 마법진이 박살났다.
[어, 어떻게……!]
그 광경에 당황한 도플갱어가 중얼거렸다.
이에 이클레아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니 장난감보다는 내 마법봉이 훨씬 좋은 거 같은데?”
그녀가 들고 있는 빠따는 일명 ‘마녀의 마법봉’.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야구방망이에 못을 박아둔 것에 불과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기능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챈트.
방망이에 박혀있는 못은 전부 마력석으로.
그 하나하나마다 각각 다른 마법과 연금술이 인챈트 되어있었다.
처음 못이 붉게 빛나며 불씨를 일으킨 것도.
그녀가 달려들었을 때 헤이스트가 발동한 것도.
전부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 발동한 마법은 다름 아닌 디스펠.
마나의 흐름을 방해해 상대방의 마법진을 박살내는 마법이었다.
그야말로 수십 개의 마법이 인챈트 된 마도구.
그게 지금 이클레아가 들고 있는 야구방망이의 정체였다.
이에 그녀가 방어수단이 없어진 도플갱어를 향해 자세를 잡고.
인챈트된 또 다른 마법을 발동시켰다.
“가속.”
그대로 이클레아가 도플갱어의 몸통을 향해 불빠따를 휘둘렀다.
-뻐억!
이클레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연격을 꽃아 넣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불빠따 난무.
그 공격에 도플갱어가 그 잘난 마법한번 쓰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뚜드려 맞고 있었다.
-두두두두!
[크하아악! 자, 잠깐…스탑, 케헥!]
매지컬 레드는 과거 영웅 중 하나인 만큼.
절대 약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능력치만 가지고 보면 웬만한 마법사들을 압도할 정도.
그러나 그 상대가 극악으로 좋지 않았다.
상대는 공격패턴부터 어떤 마법을 쓰는 지까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마, 마법 한 번만 성공시키면……!]
도플갱어가 이를 악물며 마법진을 펼쳤다.
그러나 마법을 발동하기 무섭게 이클레아의 불빠따질에 박살나는 마법진.
-와장창! 쨍그랑!
매지컬 레드의 마법은 강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을 썼을 때의 이야기.
“마법 쓰기 전에 조지면 그만이야!”
이클레아가 그녀를 향해 외치며 머리통에 불빠따를 휘둘렀다.
이에 매지컬 레드, 아니 도플갱어의 고개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해괴망측한 비명소리가 삐져나왔다.
[머, 머리는 반칙…흐겕!]
“닥쳐.”
이클레아가 그런 도플갱어의 외침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와 동시에 방망이에 인챈트된 또 하나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그러자 타격부위를 타고, 도플갱어의 몸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드드득!
이클레아가 발동시킨 마법은 다름 아닌 석화(石化).
그 중에서도 연금술의 희귀 재료인 바실리스크의 눈을 사용한 마법이었다.
그만큼 그 효과는 상상이상.
[모, 몸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가는 육체.
이에 도플갱어가 겁에 질려 버둥거렸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입을 남겨둔 순간.
이클레아가 양 손으로 불빠따를 다잡으며.
도플갱어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휘두르며 외쳤다.
“죽어라, 마법소녀!”
마치 악당을 연상케 하는 대사.
그러나 이클레아는 지금만큼 진심인 적이 없었다.
그대로 혼신을 담은 그녀의 일격이 딱딱하게 굳은 매지컬 레드의 뚝배기에 박혔다.
-콰아아앙…쩌저적!
그와 함께 매지컬 레드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가 산산조각 났다.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박살난 조각이 서서히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변해갔다.
[끄르르륵……]
그 사이 들려오는 소리.
엘리트 도플갱어의 변신이 풀려감을 알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이클레아는 지금껏 겪어본 적 없던 해방감과 알 수 없는 후련함을 느꼈다.
“후우……”
그 모습에 이클레아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튼 이걸로 갈림길의 끝에 도달.
그러면서 이클레아가 시간을 확인했다.
‘좋아,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문을 열고, 현성 쪽으로 넘어갈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문 끝에 엘리트 도플갱어가 있다면 현성 혼자만으로는 절대 클리어 못할 게 분명해.’
역시 서두르는 게 좋았다.
이에 그녀가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니 손을 뻗으려는 때였다.
-파앗!
바닥에 녹아내린 끈적한 액체가 그녀를 덮쳤다.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던 엘리트 도플갱어였다.
그야말로 마지막 힘을 쥐어짠 최후의 공격.
“제길…!”
그만큼 그의 공격은 돌발적이었으며, 날카로웠다.
게다가 현재 이곳에는 과거와는 다르게 동료라고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당할 상황.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쉬이익…퍼어억!
어디선가 날아온 창이 엘리트 도플갱어의 몸을 꿰뚫었다.
그대로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도플갱어의 몸이 터지며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교수님.”
이에 이클레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다름 아닌.
현성이 서있었다.
“……괜찮으세요?”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