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교수님의 은밀한 비밀(5)
“……내가 여길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클레아가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가 던전에 발을 내딛자마자 스산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피부로 느껴지는 끈적끈적한 공기.
10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동시에 잊고 있었던, 아니 잊었다고 믿었던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던전의 봉인을 위해 함께 움직여준 동료이자, 영웅들.
그런 영웅들의 선봉에는 붉은 트윈테일에 빨간 세라복을 입은 소녀가 서있었다.
그 소녀의 이름은 다름 아닌 매지컬 레드.
10년이 지나도 여전한 여왕의 궁전와 같이, 그때의 기억 역시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제길…….”
생각만 해도 욕지거리로 절로 나오는 기억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전까지는 애써 무시하고 있었건만,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생생히 재생되는 흑역사에 현재 이클레아는 실시간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런 이클레아의 모습에 현성이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아냐. 그냥 좀 싫은 기억이 생각나서.”
“……그래도 금방 적응하지 않을까요.”
“몰라. 생각하기도 싫어.”
이에 현성이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안 그래도 곧 많이 생각나실 겁니다.”
의미심장한 그의 한마디.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중얼거림이 이클레아에게 들리는 일은 없었다.
그대로 입구에서부터 지하로 난 외길을 향해 얼마나 걸었을까.
-멈칫.
돌연 앞서 걸어가던 이클레아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는 2개의 갈림길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시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히며 혀를 찼다.
“쯧.”
그리고 현성 역시 갈림길을 발견하고는 올 게 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이 갈림길이 첫 번째 관문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2개의 갈림길.
여타 일반적인 던전들이 그렇듯.
갈림길의 테마는 주로 선택.
이에 맞춰 보통 한쪽은 다름 구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
그에 반면 다른 한쪽은 함정 혹은 막다른길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게 아니면 불의 둥지 때처럼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고는 하였다.
‘허나 여왕의 궁전은 예외.’
여왕의 궁전에 있는 갈림길은 그 테마부터가 달랐다.
‘이곳의 테마는 다름 아닌 협동.’
이에 따라 눈앞에 보이는 갈림길은 그 길이와 형태, 심지어는 나오는 몬스터의 종료까지.
전부 똑같이 설정되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왼쪽 오른쪽 둘 중 어느 길을 택하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과연 얼마나 빨리 다른 쪽과 합류하는가.’
눈앞의 갈림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가 늘어나며.
둘 중 누구든 길의 끝에 다다를 경우, 둘을 가로막던 중간이 열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갈림길의 공략법은 단순했다.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반대쪽으로 넘어갈 것.’
그런데 만약 20분이 지나도록 둘 중 그 누구도 끝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둘 모두 쏟아지는 몬스터 공세를 버텨내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이를 보고 한쪽에 모든 파티를 집중하여 한쪽을 먼저 깨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파티가 왼쪽과 오른쪽 동시에 들어가지 않으면 끝에 도착한다한들, 아예 문자체가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꽉 막힌 던전에 갇혀,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다 사망.
실제로 현성이 그랬다.
혹시나 싶어 한쪽으로만 가도 클리어가 되나했더니 클리어는 개뿔.
‘도망칠 곳은 없지, 몬스터는 끊임없이 나오지. 결국에는 버티고 버티다 사망.’
심지어는 이 경우.
끝에 도달해도 몬스터는 계속해서 나온다.
한마디로 답이 없다.
‘결국 파티를 2개로 나누어 동시에 갈림길에 들어가지 않는 한, 클리어는 불가능.’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주요 공략 포인트는 총 2가지였다.
우선 첫 번째. 동시에 두 갈림길에 들어가, 20분 안에 둘 중 누구든 그 끝에 도달할 것.
그리고 두 번째. 먼저 도달한 쪽이 다른 쪽과 합류해 남은 몬스터를 전부 잡을 것.
“……그러니까 여기서부터는 둘로 갈라져야해. 알겠어?”
던전의 기믹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마친 이클레아가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어느 쪽이든 먼저 끝에 도착하면 바로 합류하라는 이야기잖아요.”
“맞아. 이해가 빠르네.”
그야 현성은 진즉에 알고 있던 내용.
구태여 설명해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클레아가 기믹을 설명하는 동안 잠자코 있었다.
‘괜히 아는 티를 냈다가는 골치아파질수도 있거든. 뭐 그러면서 겸사겸사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그대로인지 확인까지 하고 말이야.’
그리고 다행히 던전의 기믹은 그가 알고 있는 내용과 똑같았다.
이에 현성이 이클레아와 눈앞에 있는 갈림길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럼 아무데나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하지만 내가 말한 거. 꼭 명심해.”
“괜히 몬스터 잡겠다고 나대지 말고 최대한 싸움은 피하고 가만히 있으라고요?”
그런 현성의 말에 이클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내가 합류해서 처리할 거니까.”
이클레아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현성에게 말했다.
‘물론 제일 좋은 방법은 양쪽이 같은 속도로, 최대한 빨리 끝에 도달하는 거지만, 지금 던전에 있는 사람은 나랑 현성뿐.’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때는 잔뼈가 굵은 동료들이 있어, 둘 중 누구든 먼저 끝에 도달하는 쪽이 합류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현성이 제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한들.
그는 어디까지나 실전경험이 모자란 아카데미의 학생.
상식적으로 현성이 먼저 끝에 다다를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반대로 넘어갈 때까지 무사하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
그에 반면 그녀는 과거에 던전을 클리어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클레아의 선택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최대한 빨리 끝에 도달해서 현성에게 합류한다.’
그게 아니고서는 승산이 없었다.
그만큼 이클레아는 연신 현성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그가 멋모르고 무리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알겠지? 금방 합류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이클레아가 다시 한 번 현성을 바라보며 신신당부했다.
벌써 이걸로 다섯 번째 말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다니까요. 제가 그렇게 못 미더우십니까?”
“……너라면 안 그러겠니?”
다짜고짜 영상을 빌미로 삼아 여왕의 궁전에 같이 가자고 하지 않나.
심지어 그전에는 봉인에서 풀려난 크루페돈과 싸우다 빈사상태까지 갔었다.
정말이지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허. 글쎄요.”
그런 이클레아의 말에 현성이 애써 모른 척했다.
아무튼 이제 경고도 충분히 했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갈림길로 들어갈 차례였다.
-처억.
그대로 이클레아는 오른쪽으로.
현성은 왼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럼 말씀하신대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현성이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에 이클레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먼저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 와중에서도 이클레아는 경고를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뒤.
그녀와 현성이 컴컴한 갈림길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이클레아가 들어간 오른쪽 갈림길.
그녀의 눈이 서서히 어둠에 적응할 때쯤이었다.
-주르륵, 철퍽…!
저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삐져나왔다.
마치 액체와 고체 그 어딘가에 있는 끈적거리는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
그 알 수 없는 소리가 계속해서, 불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
동시에 어둠 속을 주시하던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혔다.
누군가에게는 정체불명의 소리일수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이미 익숙한 소리였다.
그대로 그녀가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잠시 뒤.
철퍽거리는 소리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돌연 뛰어오는 발소리와 함께 검은 인형(人形)이 불쑥 튀어나왔다.
[끄르륵, 끄륵……!]
갑작스레 튀어나온 인간.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인간 행세를 한 몬스터.
녀석이 조잡한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달려들었다.
“나왔군.”
이에 이클레아가 작게 중얼거리며 재빨리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대로 그녀가 달려드는 녀석을 흘깃 바라보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반짝이는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휘익!
이클레아가 집어던진 것은 다름 아닌 삼각 플라스크.
그녀의 전공인 연금술, 그 중에서도 포션학을 배울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플라스크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거나 먹고 꺼져.”
이클레아의 단호한 한마디.
그리고 달려오던 녀석과 이클레아가 던진 삼각 플라스크가 부딪히며, 유리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쨍그랑!
그와 동시에 안에 담겨있는 투명한 액체가 녀석을 덮쳤다.
그 순간이었다.
하얀 증기가 솟아나며 액체가 닿은 부위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치이익…!
투명한 액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산성.
그와 함께 녀석이 무너져 내리는 얼굴을 더듬으며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꾸루룩, 끄르…르아아악!!]
처음에는 잘 쳐봤자 그저 짐승 따위의 울음소리 같던 비명소리는 점차 인간의 비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마치 손톱으로 칠판을 긁듯이 성대가 찢어지는 비명소리.
“시끄러워.”
하지만 그 소리에도 불구하고 이클레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고는, 또 다른 플라스크를 집어던졌다.
이번에 집어던진 플라스크는 녹색의 액체가 가득했다.
무엇보다 플라스크 겉에 붙어있는 라벨.
그곳에는 극독임을 뜻하는 해골모양이 붙어있었다.
그대로 녀석이 있는 곳 바로 아래를 향해 날아가는 플라스크.
-챙강!
곧바로 그녀가 집어던진 플라스크가 깨지며 녀석의 발밑을 타고 녹색 액체가 부글부글거렸다.
동시에 이클레아가 소매로 코와 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바닥을 타고 짙은 녹색의 연기가 폭발하듯 솟아올랐다.
-콰아아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신경마비를 일으키는 걸로 유명한 늪지거미의 독액.
그리고 강산성을 띠는 스캐빈져의 소화액을 섞어 만든 특수용액.
한마디로 이클레아 그녀가 만든 강력한 독안개였다.
[커헉…큽…끄르륵…!]
자욱한 독안개 속.
녀석의 입을 따라 간헐적인 비명이 삐져나왔다.
허나 그 소리가 이클레아가 있는 곳까지 전해지는 일은 없었다.
이미 호흡기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 독안개가 내부를 녹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짙게 피어난 독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털썩.
연신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던 녀석이 볼품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잠시 뒤.
이클레아가 천천히 쓰러진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흐음…….”
그대로 그녀가 발을 짓밟자.
그나마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녀석의 육체가 무너져 내리며, 검고 끈적거리는 액체처럼 변해 바닥을 더럽혔다.
-철퍽.
이 몬스터의 정체는 다름 아닌 도플갱어.
평소에는 검은 슬라임 같은 형체를 지니고 있지만, 대상을 발견하면 즉시 그 모습을 베끼는 특징을 가진 몬스터였다.
무엇보다 그 모습뿐만 아니라, 대상의 능력치까지 그대로 베끼기 때문에 상대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개체에 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략법은 모습을 완전히 베끼기 전에 죽여 버리는 것.
그만큼 이클레아의 방법은 신속하고,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산성 플라스크로 움직임을 저지하고 곧바로 독안개를 터트린다.
이것이 바로 (전)마법소녀였던 매지컬 레드, 아니 지금은 마녀라고 불리는 이클레아의 전투방식이었다.
“……다음번에는 독액의 비중을 좀 더 올려봐야겠군.”
여왕의 궁전 안.
이클레아가 독안개에 녹은 도플갱어의 시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런 그녀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