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교수님의 은밀한 비밀(3)
아무래도 이클레아의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한 듯.
그녀는 한참동안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래서.”
이클레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그녀가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현성을 째려보며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이에 현성이 처음 그녀의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처럼.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원하는 거라니요. 섭섭하게 무슨 소리를.”
“헛소리 하지 말고.”
이클레아가 단칼에 그의 말을 끊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저 녀석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이런 영상을 보여줬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하게 말하는 저 모습을 보라.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이클레아가 눈매를 좁히며 그를 주시했다.
분명 원하는 게 있었다.
그렇다면 녀석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
‘보통 이런 경우에는 성적조작이겠지만…….’
알다시피 현성은 그녀의 시험에서 유일한 만점자.
구태여 추가적인 점수조작을 요구할리는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던 이클레아가 멈칫거렸다.
성적조작도 아니라면 남은 건 단 하나.
동시에 과거 음지 어딘가에서 봤던 만화의 대사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한테 난폭한 짓을 할 생각이지? 에로 동인지처럼!’
그대로 한번 시작된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넌 학생이고, 난 교수야! 따위의 대사부터 모자이크가 난무하는 내용까지.
그와 동시에 이클레아가 현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설마 이 녀석이 그런 뒤틀린 성벽을 가지고 있었다면?’
청춘의 10대를 마법소녀로 보낸 뒤로, 지금껏 연애라고는 해본 적 없는 그녀의 망상은 생각보다 훨씬 범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빛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현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교수님이 무슨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건 아니라고 자부합니다.”
현성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부정하지 않으면 뭔가 굉장히 억울한 오해를 사게 될 거라고.
이에 이클레아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크, 크흠.”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다시 현성을 째려보며 물었다.
“그럼 그게(?)아니면 뭔데. 어차피 결국 원하는 게 있다는 말 아니야?”
“아뇨. 굳이 말하자면 부탁이죠.”
“쯧.”
이에 이클레아가 작게 혀를 찼다.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
이어서 그녀가 들고 있던 펜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 잘난 부탁.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그렇다면 교수님 혹시…….”
그대로 현성이 조소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랑 던전에 들어가실 생각 없습니까.”
“……뭐?”
그와 동시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히며 그를 쳐다봤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발언이었다.
느닷없이 던전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그런 이클레아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여왕의 궁전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 여왕의 궁전을 봉인한 사람은 영웅, 매지컬 레드.
그러니까 다름 아닌 이클레아 그녀였다.
그만큼 여왕의 궁전이라는 이름이 언급되기 무섭게 이클레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니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무려 10년 전 대변동 때 있던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현성이 그 이름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아…….”
이클레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는 몰라도 관심 끄는 게 좋아. 애초에 무슨 산책도 아니고 거기가 들어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열……”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열쇠가 필요하다고요?”
그렇게 말하는 현성의 손에는 어느새 검은 열쇠가 들려져있었다.
그 모습에 이클레아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갔다.
동시에 그녀의 주위를 타고 무거운 마나가 연구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고오오.
현성 그가 매지컬 레드의 정체를 알아낸 것도.
여왕의 궁전을 언급했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억지스럽긴 해도 운이라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허나 그가 던전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말이 달라졌다.
여왕의 궁전은 그녀가 직접 봉인한 던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열쇠 역시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보관해뒀을 터.
그리고 열쇠를 노리는 자는 보통 두 가지 부류.
봉인된 던전 어딘가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 머저리.
혹은.
‘……마족의 부활을 바라는 추종자.’
만약 눈앞의 현성이 마족추종자라면 지금 여기서 막아야했다.
과거 마법소녀였던 자의 정의감이니 뭐니 하는 그런 알량한 마음이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실리에 따른 행동.
던전의 봉인이 풀리고 다시 마족이 나타난다면 겨우 쟁취해낸 교수의 삶은 물론이며,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게 박살날 수도 있었다.
그대로 이클레아가 현성을 째려보았다.
“너. 뭐야.”
동시에 그녀의 손바닥 위로 심상치 않은 마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대로 이클레아가 손을 까닥이기만 해도 마나가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버릴 터.
이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유현성입니다.”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아카데미의 연구실.
이클레아가 안경을 고쳐 쓰며 현성을 향해 말했다.
“……지금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지금까지 현성이 한 말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러했다.
그의 누나가 제멋대로 가문의 부흥을 위해 마족의 손을 잡았으며.
현성은 이를 막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게 당장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정말로 누나를 막으려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에 이클레아가 연신 탐탁치 않는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
그러자 현성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그렇게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보시던가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동시에 이클레아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액정에는 이유정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과거 그녀와 같이 마법소녀로 활동했던 일명 매지컬 옐로우.
지금은 이클레아처럼 마법소녀 생활을 청산하고 결혼에 골인.
평범한 유부녀로 살고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잠시 뒤.
[여보세요?]
(전)매지컬 옐로우.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이에 이클레아가 앞뒤 잴 것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야. 너 예전에 나랑 같이 봉인했던 던전있지?”
[……뭐?]
“아니 여왕의 궁전있잖아.”
여기서 이유정, 그녀가 맡았던 역할은 바로 열쇠의 봉인.
그만큼 만약 열쇠의 봉인이 풀렸다면 그녀가 먼저 알아챘을 터.
우선은 그 여부부터 확인해야했다.
“그때 그 열쇠. 봉인 풀렸어?”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이클레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얘도 참.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니? 이제 와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게 무슨 소리야. 분명 니가 그때 열쇠봉인 했잖……”
[야. 내 나이가 벌써 30줄이야. 난 진즉에 능력 다 잃었지. 지금은 그냥 애엄마야.]
그 소리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능력을 잃었다고?”
[그래. 이년아. 난 15년 계약이었잖아. 그래서 진즉에 계약 끝나서 일반인 다 됐지.]
그대로 유정이 호호 웃으며 말했다.
[아 참. 너는 종신계약이었다고 했나? 그래서 예전에 니가 그 토끼를 구워먹겠다니 삶아먹겠다니, 요정세계를 종말로 이끌겠다니 별 지랄하면서 깽판치고 다녔잖아.]
“그, 그건……”
[그때 니 모습 참 가관이었지. 설마하니 마법소녀가 무슨 소말리아 해적도 아니고 양손에 ak47을 들고 연사로 땡길 줄이야…….]
-움찔.
그런 유정의 말과 동시에 이클레아가 주춤거렸다.
애써 잊고 있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허나 그도 잠시.
“아무튼 그래서 그 봉인은 어떻게 됐냐니까?”
[글쎄 모른다니까 그러네……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 아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전화 너머로 갓난아기가 우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동시에 유정이 급하게 말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나 가봐야겠다.]
“뭐? 어딜 가?!”
[어딜 가긴. 육아하러 가지. 응, 승준아, 엄마 갈게~]
이에 이클레아가 다급하게 스마트폰을 붙잡으며 말했다.
“자, 잠깐 그럼 열쇠는……!”
[아, 몰라! 끊는다.]
그렇게 단호한 한마디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띠로록.
그와 함께 액정 너머로 전해지는 정적.
이에 이클레아가 멍하니 화면이 꺼진 검은 액정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현성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런. 아무래도 육아가 바쁜 모양이네요.”
“닥쳐.”
“그러고 보니 교수님은 아직 결혼도 안 하셨죠?”
그런 현성의 물음과 동시에 이클레아의 이빨을 타고 살벌한 소리가 삐져나왔다.
-빠드득.
결혼. 이는 이클레아에게 있어 꿈도 못 꿀 단어였다.
청춘의 10대 때에는 그놈의 마법소녀 짓거리하면서 괴수 때려잡느라 연애 한 번 못해봤다.
그 후로는 바로 교수준비 하느라 남자 만날 시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주변 친구들은 전부 다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마당에 이클레아는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게 전부였다.
“……남자친구는 있으세요?”
“닥치라고 했다.”
“어이쿠. 제가 큰 실수를.”
현성이 입을 가리며 얄밉게 웃었다.
그런 그의 웃음에 이클레아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고 싶으면 더 말해보렴.”
“허허……”그러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이클레아가 펜을 집어던질까 잠시 고민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걸로 열쇠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내기는커녕.
결혼에 대한 히스테릭만 늘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였다.
“그냥 그러지 말고 다른 방법 쓰시죠.”
“다른 방법?”
“왜 그거 있잖아요. 마법소녀의 눈.”
그런 현성의 말과 동시에 이클레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윽.”
마법소녀의 눈.
그녀와 같은 마법소녀에게 기본적으로 부여되는 능력 중 하나로.
대충 마법소녀의 순수한 매지컬★파워를 이용해 상대방의 진심을 판별하는 능력이었다.
‘확실히 그걸 쓰면 지금까지 현성이 했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쉽게 알아낼 수 있지만…….’
이클레아의 입장에서는 다시 그 능력을 쓴다는 게 너무나도 치욕스러웠다.
‘……제길, 내가 어떻게 그 망할 마법소녀에서 벗어났는데.’
고민하는 이클레아의 모습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까짓 거 그냥 한 번 쓰는 거 가지고 뭘.”
이에 이클레아가 현성을 째려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애초에 넌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어?”
처음부터 매지컬 레드인 걸 눈치 채지 않나.
이제는 마법소녀의 눈까지 알고 있다니 기가 찰 정도였다.
그러자 현성이 히죽 웃으면서 뻔뻔하게 대답했다.
“제가 매지컬 레드 팬이라서요.”
그런 현성의 답변에 이클레아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울먹거렸다.
“제발 그딴 거 하지 말란 말이야……”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