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교수님의 은밀한 비밀(2)
이클레아의 연구실.
그곳에는 그녀와 현성이 마주앉아 있었다.
그대로 이클레아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20%정도 높은 효율을 발휘할 수 있겠지.”
이클레아가 강의가 끝나기 직전.
현성이 했던 질문을 설명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
그런 현성의 대답에 이클레아가 영 불편해 보이는 표정으로 연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이제는 확실해졌다.
이 녀석은 강의내용이 궁금해서 온 게 아니었다.
“그래서 본론이 뭔데.”
눈앞의 현성, 그에게는 연구실까지 온 다른 이유가 있었다.
수식을 확인하기는커녕 줄곧 다른 곳을 주시하고 있는 저 눈동자가 그 증거.
허나 현성은 천연덕스럽게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정말 궁금해서 온 겁니다.”
“……그런 거 치고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 같던데.”
“이게 전부 다 교수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그런 거죠.”
태연한 현성의 대답.
이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구기며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대로 그녀가 문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궁금증도 풀렸으니, 나가보지?”
“그럴까요?”
그러면서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듯 움직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재밌는 걸 하나 봤는데…….”
“……하아.”
그와 함께 이클레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분명 저렇게 나올 줄 알았다.
‘……왜 저러는 거야 정말.’
공개대련 때도 느꼈지만,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더더욱 속을 알 수 없었다.
그대로 이클레아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면 당장 나가라고 할 거야.”
“그럼 일단 들어보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하여간…….”
저놈의 성격상 분명 목표를 이룰 때까지 순순히 나가지 않을 터.
그렇다면 차라리 대충 맞장구나 쳐주고 쫒아내는 게 나았다.
그렇게 판단한 이클레아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뭔데.”
그런 이클레아의 물음에 현성이 기다렸다는 듯.
태연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뭔가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우선 이걸 같이 봐보실까요?”
동시에 현성이 정체불명의 영상을 재생했다.
그 시작은 쓰러진 건물들과 여기저기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도시였다.
마치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풍경.
“……뭐야. 이게?”
이클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상을 주시했다.
다짜고짜 영상을 틀고는 같이 보자니.
겨우 이런 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 라고는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꺄아아악! 도망쳐!”
그 뒤로는 대피하는 시민들과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그대로 쿵! 하고 땅을 울리는 거대한 발걸음.
그와 함께 괴수가 등장했다.
“끼에에엑!!”
온 몸에 검은 비늘을 두른 공룡과도 같은 모습.
그런 괴수의 등장에 사람들의 혼란은 점점 더 가중되어갔다.
하지만 그때였다.
[잠깐! 거기까지다!!]
귓가에 박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폐허와는 어울리지 않는, 당당한 어린 소녀의 음성이었다.
그리고 그 음성이 들리자마자 이클레아가 미간을 좁혔다.
-멈칫.
이에 이클레아가 액정과 현성을 바라보았다.
불길했다. 너무나도 불길했다.
애써 잊고 있던, 깨어나서 안 될 무언가가 요동치는 이 느낌.
곧 세트장처럼 보이던 풍경이 점점 눈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단순히 오래봐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히, 지금 저 안의 장소를 알고 있었다.
물론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10년 전 그쯤이었다.
무엇보다도 목소리.
저 특유의 카랑카랑하고 밝은 목소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전장의 아이돌……]
머지않아 ‘전장의 아이돌’이라는 대사를 듣자마자 이클레아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아니 굳다 못해 일그러졌다.
방금 전 느꼈던 불길함은 확신으로 변했다.
‘이, 이런 빌어먹을……!’
10년 전, 저 도시 가운데.
그녀 역시 그곳에 있었다.
동시에 뒤늦게나마 그 불길함의 정체를 파악한 이클레아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자, 잠깐……!”
허나 다급한 이클레아의 외침과는 다르게 영상은 이미 재생되고 있었다.
안 된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이에 이클레아가 이를 으드득! 악물며 외쳤다.
“얌마! 그거 당장 끄지 못……!”
그런 이클레아의 외침이 무색하게 영상 속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환한 빛 무리 속에서 불사조가 날개를 펼치듯.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소녀가 깜찍한 포즈를 취하며 힘차게 외쳤다.
[매지컬 레드 등장!]
그와 함께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지며 마침내 그녀가 등장했다.
긴 트윈테일에 빨간 브로치.
거기다 화려하고 귀여운 빨간 세라복까지.
영상 속의 소녀는 말 그대로 마법소녀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모두를 압도하는 당찬 미소.
그런 그녀의 미소는 절망뿐이던 도시에 희망을 가득 채워나갔다.
“와아아아아! 매지컬 레드가 왔어!”
“우린 이제 괜찮아!”
“매지컬 레드! 메지컬 레드!”
이를 증명하듯 시민들은 그녀를 보고 환호를 내질렀다.
그렇게 도시는 단숨에 열광의 도가니가 울려 퍼지고.
동시에 이클레아의 연구실에서도 부끄러움에 가득 찬 그녀의 목소리 울려 퍼졌다.
“당장 그 영상 끄란 말이야아아앗!!”
그렇다.
아카데미의 포션학 교수 이클레아.
그녀가 바로 과거 대변동의 영웅이자, 전장의 아이돌.
매지컬 레드였다.
* * * * *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이클레아의 연구실 안.
그곳에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그 소리의 근원지에는.
이클레아가 자신의 탁자에 연신 머리를 내리찧으며 쉴 새 없이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면 이랬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그녀는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 사이 드문드문 ‘그때 그 망할 토끼새끼를 무시했어야 했는데.’ 따위의 말이 섞여 나왔다.
이에 현성이 그런 이클레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와아아. 매지컬 레드라니. 이 얼마나 화려한 과거…….”
그 순간이었다.
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펜이 그의 뺨을 매섭게 스치고 지나갔다.
-퓻!
마치 마스터 암살자를 연상케 하는 공격.
그대로 펜이 벽에 단단히 박히고.
이클레아가 다른 손에 펜을 치켜들며 살기등등하게 중얼거렸다.
“……그 입 안 닫아?”
“하하하.”
이에 현성이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왜요. 귀엽잖아요. 매지컬 레…….”
“다시 한 번 말하면 이 세상에서 너라는 존재를 영원히 삭제시켜주마.”
살기가 담긴 이클레아의 협박.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묻어나왔다.
그러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금 전 영상을 재생시켰다.
“얍.”
그와 동시에 다시 울려 퍼지는 상큼한 목소리.
[전장의 아이돌, 매지컬 레드 등장!]
-움찔!
그 소리에 이클레아가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펜을 툭하고 떨어트렸다.
하지만 현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그는 포즈를 짓는 매지컬 레드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반복재생하기 시작했다.
[전장의 아이돌, 매지컬 레드 등장!]
[전장의 아이돌, 매지컬 레드 등장!]
[전장의 아이돌, 매지컬 레드 등장!]
쉬지 않고 반복 재생되는 영상.
이에 이클레아의 입을 타고 고통스런 비명이 삐져나왔다.
구마의식을 받은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리는 사지는 덤.
“끄으으읏……!”
그대로 이클레아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동안 그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고 감춰왔던 이 사실을 현성에게 들키다니.
있을 수 없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현성을 연구실에 들었을 때부터?
영상이 재생될 때부터?
아니 전부 다 틀렸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정해져있었다.
파멸의 시작은 다름 아닌 그녀가 17살 때.
“그래…그때였지…….”
이클레아가 허망하게 중얼거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 * * * *
[안녕, 내 이름은 로미!]
모든 일의 시작은 그 빌어먹을 토끼새끼를 만난 때부터였다.
그 빌어먹을 토끼를 만나지만 않았어도.
그 빌어먹을 토끼와 대화를 섞지만 않았어도.
‘……이런 좆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이클레아가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회상하며 이를 갈았다.
그때의 그녀는 도저히 알지 못했다.
그게 마법소녀라는 이름의 불공정계약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 자식의 귀를 뽑아 버려야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신기했다.
말하는 토끼부터 그 망할 금수새끼와 계약하면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17세의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나와 계약해서 마법소녀가 되는 거야!”
“……마법소녀?”
“그래! 나와 함께 세상을 구하는 거야!”
아직도 그때 대화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고생의 꿈과 희망을 빌미로 삼아 그딴 계약을 체결하다니.
그렇게 밤하늘에 유성우가 내리던 그 날.
세기의 천재.
연금술의 보석이라 불리던 17세의 이클레아는.
마법소녀 매지컬 레드가 되었다.
그 후는 정해진 대로였다.
사기계약에 넘어가 토끼의 말대로 세상을 구한다는 명목 아래.
괴수를 무찌르고, 무찌르고, 또 무찔렀다.
‘그 짓거리를 20대까지 했었지.’
물론 처음에는 괜찮았다.
나름대로의 정의감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들을 구하는 것도 좋았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불리었으며, 동시에 전장의 천사가 되었다.
그야말로 아이돌 그 자체.
그녀는 언제나 빛이 났으며, 언제나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20대가 넘어가면서 자각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정해진 시간도, 휴일도 없었다.
언제나 갑작스러운 호출.
그러면서 최저시급도 없었다.
물론 전투로 인해 발생한 병원비는 전부 본인 부담.
마법소녀 활동을 계속할수록 생기는 스토커와 악질들.
그녀에게 사생활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이 나이 처먹고 귀여운 포즈를 취하면서 여고생연기를 해야 된다는 것.’
이에 로미라는 망할 토끼 자식에게 하소연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넌 마법소녀잖아!]
그 많은 불합리함과 부조리는 그 단어 하나로 무마되었다.
그렇다. 저 망할 토끼에게 마법소녀는 그저 굴려먹기 좋은 노동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활기차던 17세의 그녀는 혹독한 현실을 자각하고.
대변동이 마무리 되던 해.
모든 흑역사를 불태우고 마녀가 되었다.
그 후 망할 토끼놈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피를 깎는 노력 끝에 교수라는 안정된 직장을 쟁취해냈다.
“그런데…….”
애써 잊고 있던 그 흑역사를.
오늘 현성에게 들키고 만 것이었다.
그가 어떻게 그 영상을 입수했는지.
영상 속 매지컬 레드가 자신인 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물어보고 싶은 건 산더미였지만, 과거의 흑역사가 들킨 충격은 생각보다 너무 컸다.
그에 따라 지금 이클레아의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오로지 단 하나 뿐.
“죽고 싶다…….”
이클레아가 그녀의 붉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