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엑스트라의 사정(6)
-투둑.
그런 현성의 팔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현성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수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와는 전에도 싸워본 적 있었던 만큼.
공간이동과 단검술을 같이 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방금 전의 공격은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이에 현성이 피를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그때는 전력을 낸 게 아니었군.”
그 말에 수연이 단검을 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이 바닥에서는 숨길 수 있으면 뭐든지 숨기는 게 훨씬 도움 되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도 숨겼던 건데…….”
그대로 수연이 다시 자세를 다잡았다.
“오늘은 일이 잘 안 풀렸네요.”
그와 함께 그녀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이어서 그녀가 서있던 바닥을 타고 작은 바람이 일었다.
-퓻!
그리고 바람이 멎었을 때는 이미 수연은 현성의 바로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동시에 현성이 재빨리 스태프를 휘둘렀다.
-카앙…끼기긱!
고요한 새벽.
스태프와 단검이 맞부딪치며 그 사이로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이에 수연의 미간이 작게 움찔 거렸다.
‘……이걸 막았어?’
아무리 정면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방금 전보다 속도를 올린 공격이었다.
아마 보통이라면 보이지도 않았을 터.
그런데 현성은 그걸 또 막아냈다.
‘그새 도련님도 많이 강해지신건가.’
수연이 스태프 너머,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현성 그가 처음 <이스페리아>에 표류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
확실히 그런 그녀의 생각은 어느 정도 정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성장했다고 한들, 스텟 상으로 현성이 그녀의 검을 보고 막아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단순 스텟으로만 따진다면 현성은 벌써 수연의 검에 당해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이 버티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는 바로 <이스페리아>의 고인물로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
지금껏 모든 전투가 그랬다.
선천강에서 데일런트를 상대할 때도.
불의 둥지에서 크루페돈을 상대할 때도.
피의 왕국에서 알케르도를 상대할 때도.
<이스페리아>에서 축적해온 그의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빛을 발했다.
당장 지금도 그랬다.
다년간의 PvP로 다져진 본능에 가까운 직감.
현성은 그 직감을 이용해 수연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Player vs Player.
약칭 PvP로, 흔히 온라인 게임 내의 서로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스페리아>에서도 PvP는 존재하였으며, 현성은 여기서 전체랭킹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게임 내 존재하는 모든 클래스와 싸웠던 적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는 당연히 암살자 클래스도 존재했다.
이에 따라 현성은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수연의 심리를 읽으며, 다음 공격을 예측하고 있었다.
상대의 심리를 읽고, 다음 공격을 예상한다.
격투게임과 비슷한 원리였다.
‘……거리를 좁힐 때는 보통 전방으로 공격을 지르는 경우가 대부분.’
현성이 단검 너머, 수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수연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곧바로 그녀가 그림자 안으로 녹아들었다.
-스르륵!
그와 동시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그림자에 녹아들 듯 사라지는 모습과 특유의 이펙트.
마스터 암살자 클래스의 스킬. 그림자 도약이었다.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마스터 클래스일 줄이야.’
종합적으로 수연은 중급 마법사이자, 마스터 암살자.
이 정도면 거의 스토리 전개 상, 중반부에 등장하는 보스급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아니 아무리 낮게 쳐도 준 보스 급.이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집 메이드가 알고 보니 못해도 준 보스 급 암살자라니.’
만약 그녀가 아군이었다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그는 그런 수연을 이겨야 하는 상황.
현성이 날카롭게 주변을 살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림자 도약을 쓸 경우 선택지는 보통 두 가지……!’
오른쪽 혹은 왼쪽.
둘 중 한 방향으로 돌아온다.
이에 현성이 얼음폭풍을 캐스팅했다.
-고오오.
그대로 그의 스태프를 따라 한기가 급속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른손잡이의 경우 대부분은 오른쪽으로 파고들기 마련!’
그와 함께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쪽을 향해 스태프를 내리찍었다.
동시에 수연이 모습을 드러낸 곳 역시 오른쪽.
“큿!”
이에 당황한 수연이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공격을 피하려했지만, 그녀는 이미 한발 늦은 상태.
곧바로 현성의 스태프를 타고 얼음조각이 솟아올랐다.
-콰드드득!!
그대로 솟아오른 얼음조각은 수연의 발을 집어삼켰다.
덕분에 그녀는 꼼짝없이 제자리에 묶인 꼴이 되었다.
수연이 미간을 구기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 모습에 현성이 손을 펼치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보통 다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현성이 주먹을 쥐었다.
-콰악!
그러자 그의 주먹을 따라 붉은 불꽃이 치솟았다.
이어서 현성이 발이 묶인 수연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화염이 폭발하며 자욱한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콰아아앙!!
그리고 잠시 뒤.
서서히 연기가 걷히며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의 발밑에는 불씨와 얼음파편이 가득했다.
“…….”
보란 듯이 수연의 움직임을 예측한 뒤.
얼음폭풍으로 발을 묶고, 파이어 펀치로 공격.
그야말로 완벽한 연계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주먹에 감각이 없었다.’
현성이 주먹을 쥐었다 펼치며 주변을 살폈다.
그때였다.
저 멀리에서 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은 위험했어요.”
그대로 수연이 나무 옆에 박혀있는 단검을 뽑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미리 단검을 던져두지 않았다면 말이죠.”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단검.
아무래도 수연은 그 찰나의 틈에 단검을 던져둔 모양이었다.
‘아마 폭발이 일어난 틈을 노렸던 거겠지.’
그 모습에 현성이 작게 혀를 찼다.
“쯧.”
역시 다른 건 몰라도 순간이동은 상당히 거슬렸다.
‘……그래도 단검은 총 2개.’
현성이 스태프를 집으며 그녀와 단검을 주시했다.
‘전에 싸웠을 때처럼 단검의 위치만 외워둔다면 어떻게든 이동할 위치를 예측할 수 있…….’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수연이 양팔을 펼치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이제부터 제대로 해볼까 싶습니다만.”
그와 동시에 수연의 뒤로 수십 개의 단검이 촤르륵 펼쳐졌다.
마치 날개를 연상케 하는 단검.
이에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젠장.”
정정한다.
2개의 단검이 아니었다.
이걸로 단검의 위치를 외워두는 건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저번에는 단검이 수십 개더라도 그 위치를 외우는 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레이첼의 괴물 같은 기억력 때문.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녀가 없는 지금, 현성에게 그런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립다. 레이첼…….’
현성이 레이첼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허나 그런 그의 앞에는 수연만이 서있을 뿐이었다.
그대로 그녀가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말했다.
“그럼 도련님, 준비되셨나요?”
“……아니, 준비 안됐어.”
이러면 혹시나 공격을 미루어주지는 않을까.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나 돌아온 수연의 대답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유감이네요.”
수연이 단호하게 대답하며 손을 휘저었다.
동시에 수십 개의 단검이 반짝이며 그를 향해 날아갔다.
그럼 그렇지.
‘에이씨, 안 먹히네.’
그 모습에 현성이 손아귀에 힘을 주며 스태프를 휘둘렀다.
‘어떻게 된 게 쉽게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어……!’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어느새 전투의 흔적과 붉은 피로 즐비했다.
-주르륵.
그리고 그 피의 대부분은 현성의 것.
그 증거로 그의 몸 이곳저곳에는 단검에 베인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이미 데미지가 서서히 누적되고 있었다.
[캐릭터의 체력이 60%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현성이 눈앞에 뜬 메시지를 확인하고 숨을 골랐다.
점점 상황이 불리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라도 항복하시는 게 어떤가요.”
그 말에 현성이 자세를 다잡으며 대답했다.
“미안. 그건 어려울 거 같은데.”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다 한들.
여기서 물러나면 그 끝은 정해져있었다.
현성은 마족에게 몸이 뺏기고, 누나는 물론 눈앞의 수연까지 나락으로 갈 운명.
뭐가 어찌되었든 여기서 그녀의 의지를 꺾어야했다.
그대로 현성이 스태프를 꾹 쥐었다.
그와 함께 스태프 끝으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륵.
계속해서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
이에 수연이 고개를 숙이며 작게 속삭였다.
“도련님. 제발…….”
수연이 들고 있던 단검의 끝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머지않아 다시 현실을 자각한 수연이 어쩔 수 없이 단검을 들었다.
“…….”
수연이 눈앞의 현성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반대할지 몰라도 막상 가문이 다시 일어난다면 도련님도 이해할 터.
수연이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된 이상. 한시라도 빨리 도련님을 쓰러트린다.’
그대로 마음을 다잡은 순간.
더 이상 그녀의 단검은 흔들리지 않았다.
동시에 수연이 앞으로 걸어갔다.
-처억.
그와 함께 양 손의 단검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미 현성은 꽤나 피를 흘린 상태.
이제 마무리할 때가 왔다.
“도련님, 이제 그만…….”
수연이 들고 있던 단검을 날리며 말했다.
“끝내겠습니다!”
곧바로 수연의 단검이 현성을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단검을 타고 터져 나오는 푸른 빛.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순간이동의 전조.
이어서 수연이 순간이동하기 직전.
줄곧 가만히 서있던 현성이 이를 기다렸다는 듯, 양 손으로 스태프를 쥐었다.
동시에 스태프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다름 아닌 망치.
그대로 현성이 망치를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그의 망치는 수연에게 타격을 입히기에는 너무 느렸다.
수연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속도를 줄일 생각도, 도중에 멈출 생각도 없었다.
결국 그렇게 쏘아진 단검이 현성의 앞까지 다다랐을 때.
돌연 그가 히죽 웃었다.
그와 함께 현성이 날아오는 단검을 향해 망치를 후려갈겼다.
-콰앙!
그 충격에 날아오던 단검의 궤도가 틀어지며 위로 치솟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수연을 맞출 생각은 없었다.
그가 노린 것은 바로 그녀의 단검.
“……단검이 위로?!”
그 모습에 수연이 급하게 마법을 중지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순간이동은 발동한 상태.
그와 함께 그녀의 몸이 사라졌다.
-슈슉!
동시에 현성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스터 암살자인 수연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불가능.
이런 상황에서 순간 이동까지 하는 그녀를 잡는 것은 더더욱 무리였다.
그러나 만약 순간 이동하는 위치를 원하는 대로 유도할 수 있다면?
이에 현성은 단검이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순간, 그러니까 그녀가 순간 이동하는 타이밍을 노려 날아오는 단검을 받아쳤다.
여기서 알다시피 수연의 능력은 단검이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하는 것.
그에 따라 단검이 위에 있는 지금.
그녀가 이동할 곳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파앗.
곧 다시 수연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당연히 방금 전, 튕겨나간 단검이 있던 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어느새.
현성이 망치를 쥐고 기다리고 있었다.
“……큿!”
이에 수연이 낭패라는 듯 미간을 구겼다.
그런 그녀를 향해 현성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끝내자고 했었지?”
그대로 현성이 망치를 휘두르며 외쳤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해!”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