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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15화 (115/240)

115화 엑스트라의 사정(5)

-멈칫.

그런 그의 말과 동시에 수연이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대로 수연이 눈앞의 현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뭐라고…….”

지금 도련님은 자신의 정체를 몰라야함이 맞았다.

그런데 도련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이름이었다.

이에 수연이 뒤로 주춤거렸다.

그러자 현성이 그런 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알고 왔어.”

“…….”

“그리고 누나를 만나러 온 것도 알고 있어.”

그 말에 수연이 작게 움찔거렸다.

현성의 입에서 누나라는 말이 나왔다는 건 간단했다.

수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편지…보신 건가요…….”

그녀의 말에 현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전부 알고 있었다.

동시에 수연의 손아귀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

이런 상황을 아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다가오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못해도 자신의 입으로 밝히고 싶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밝히기도 전에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수연 그녀는 언제나 도련님 앞에서는 상냥한 메이드로 남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로가 지금 이런 꼴이라니.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미 정체가 밝혀진 이상.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대로 수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밝혀야할 타이밍이 조금 빨라진 것뿐이다.

그녀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편지까지 보셨다면 말이 빠르겠군요.”

이어서 수연이 그를 향해 한 발자국 걸어갔다.

“우선 변명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숨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럼 언제 알릴 생각이었지?”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죠.”

수연이 쓴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현성이 물었다.

“왜 이런 선택을 한 거지?”

이것만큼은 꼭 물어보고 싶던 질문이었다.

누나 같은 경우는 굳이 만나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 그랬다고 적혀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대충 그런 캐릭터였다는 걸로 넘어갈 수 있었다.

허나 눈앞의 수연은 말이 달랐다.

지금껏 현성 그가 봐온 수연은 단순히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 움직일 인물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랬다면 지금처럼 반응하지도 않았겠지.’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수연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만약 그런 인물이었다면 망해버린 가문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망한 가문에 남아있는 것보다는 그녀의 실력을 살려 독립하는 게 훨씬 빠를 테니까.’

그렇다면 왜.

왜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숨겨왔는가.

그 질문에 수연이 대답했다.

“……그게 도련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어서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유 가문은 분명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련님도 지금 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겠죠. 당장 지금처럼 생활비를 걱정할 필요도, 아카데미 등록금을 보고 망설일 일도, 다른 학생들에게 무시당할 일도 없겠죠.”

수연 그녀가 망해버린 가문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현성 그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건 다 버린다한들, 현성 그만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혹시 도련님은 어릴 때를 기억하시나요? 도련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때 그 미소가 얼마나 귀여웠던지…….”

수연이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녀가 10년 전 대변동.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으며, 매일 매일이 전쟁터였던 그때를 떠올렸다.

* * * * *

주변에는 온통 박살난 도시의 잔해와 몬스터인지 사람인지 모를 시체로 가득했다.

그동안 수연이 걸어온 길 역시 그래왔다.

유 가문의 명령을 따라 마법사의 수장을 죽이고, 패권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제공하기 위해 그녀는 계속해서 손에 피를 묻혀왔다.

그런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피와 시체뿐이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들려오는 것은 죽은 자들의 원망과 저주, 폭언이 전부였다.

주변에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수연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거 밖에 없었으니까.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녀 역시 진즉에 시체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다 이따금씩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에는 약에 의존했다.

약을 먹는 그때만큼은 아무런 원망도 저주도 폭언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어느새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정신은 무뎌진지 오래였다.

‘……그러던 중 도련님을 만났다.’

그게 유일하게 그녀가 만난 ‘살아있는 존재’였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고 미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

동시에 처음으로 손에 묻은 피를 보고도 먼저 다가와준 존재였다.

단지 어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수연에게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때 그녀는 처음 알았다.

‘아, 사람의 손이 따뜻할 수도 있구나.’

현성이 임무를 마치고 온 그녀를 안아준 그 날.

그 날부터 수연에게 있어 현성은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그건 가문이 망하던 그 날도, 모두가 떠나가던 그 날도 여전했다.

그때부터 수연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기 위해 칼을 잡았다.

자신이 죽인 시체를 치우는 대신,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불을 지르는 대신, 불꽃놀이를 보기위해 불을 피웠다.

그 결과.

현성은 벌써 이렇게 자랐지만, 그녀에게는 항상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만약 현성의 곁에 자신이 아니라 더 나은 누군가가, 더 나은 환경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도련님은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행복하게 살았겠지.’

과거의 그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게 말이다.

그리고 아가씨에게 처음 편지가 왔던 날.

가문의 부흥을 위해 마족과 손을 잡았다는 소식에 수연은 곧바로 편지를 찢어버리려 했다.

‘도련님에게 알릴 가치도 없었다.’

그러나 편지는 계속해서 왔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만약 정말 가문이 부흥한다면.

‘도련님은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하실 수 있다.’

명실상부한 사실이었다.

몰락가문이 아닌,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면.

이건 도련님의 성장에 있어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면, 자신하나로 충분했다.

이미 10년 전, 지긋지긋하게 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지옥을 버틸 힘을 준 게 현성이라면, 현성을 위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건 별거 아니었다.

‘……그랬는데.’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처음 편지가 왔을 때 도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면 달라졌을까.

도련님의 곁에 자신이 아닌 좀 더 나은 사람이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수연.”

현성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대로 그가 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묻지 않을게.”

“…….”

“그냥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안 될까.”

이런 상황에서도 현성은 그녀를 포기하려들지 않았다.

이게 수연이 현성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런 현성의 말에 수연이 대답했다.

“도련님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래야겠죠.”

수연의 대답에 현성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될 거 같네요.”

“……그 이유는?”

이에 수연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손은 이미 씻을 수 없는 피로 물들어있었다.

그대로 수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으니까요.”

“…….”

그 말에 현성이 아무 말 없이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동시에 그런 그의 손을 타고 은색의 스태프가 딸려 나왔다.

그 모습에 수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예상한 대로였다.

결국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수연이 단검을 꾹 쥐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어쩔 수 없네요.”

그와 함께 수연이 쓰고 있던 복면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밝은 달빛아래.

수연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제 와서 가릴 필요도 없겠죠?”

수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허나 그도 잠시.

서서히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사라졌다.

-사아아.

그리고 잠시 뒤.

현성의 눈앞에는 그동안 그가 알던 메이드 수연이 아닌.

10년 전 대변동, 그때와 같던 수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도련님께 보여드리기 싫었는데.”

수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스태프를 움켜쥐었다.

“뭐 어때. 이미 한 번 봤는데.”

그런 현성의 말에 수연이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러네요.”

그대로 수연이 자세를 낮추었다.

동시에 그녀의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었다.

분명 멈춰있지만 당장에라도 사라질 거 같은 묘한 느낌.

“그럼……갑니다.”

수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앞에 있던 그녀의 인형(人形)이 사라졌다.

마치 물감이 퍼지듯 흩어진 수연의 모습.

-스팟!

수연은 단순히 빠르게 움직인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그 증거로 주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기척.

그 순간이었다.

현성의 옆을 타고 뭔가 반짝거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단검의 날.

‘……오른쪽?!’

그와 함께 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허나 그곳에는 이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건 오직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수연의 목소리.

“틀렸어요.”

동시에 뒤를 잡은 수연이 단검을 역수로 돌려 잡았다.

그대로 그녀의 단검이 현성의 등을 향해 내리꽂혔다.

-쉬이익!

이에 현성이 재빨리 스태프를 들었다.

그러나 등을 돌려 막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

수연 역시 그 사실을 간파한 듯 단검을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피할 생각은 없었어.”

곧바로 현성의 스태프 끝을 타고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륵.

그대로 그가 있는 힘껏 스태프로 땅을 찍어 내렸다.

그러자 끝에 타오르던 불꽃이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더니, 누가 말릴 틈도 없이 현성의 몸을 따라 회오리쳤다.

-콰아아!!

회오리치는 불꽃이 마치 방패와 같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 불꽃에 현성의 등을 찌르려던 수연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이에 수연이 미간을 좁히며 뒤로 물러섰다.

“…….”

설마하니 불꽃을 저런 용도로 쓸 줄이야.

그 모습에 수연이 단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못 본 사이 응용력이 많이 느셨군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건 어때?”

“……공교롭게도 그건 힘들 거 같네요.”

그러면서 수연이 반대쪽 허벅지에 있는 단검을 꺼내들었다.

이어서 그녀의 손이 쏜살같이 움직이더니, 곧바로 단검 한 자루가 현성을 향해 쏘아졌다.

이에 현성이 재빨리 고개를 틀었다.

-피잇!

동시에 수연의 단검이 아슬아슬하게 현성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그의 옆을 타고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동시에 수연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맞출 생각은 없었습니다.”

“……뭐?”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빠를 겁니다.”

그 말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면 설마.

그와 함께 다시 한 번 그녀의 몸이 사라지더니.

-파앗!

방금 전까지 단검이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수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공간이동 마법.

그대로 수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곧바로 수연의 단검이 번쩍거리며 그의 팔을 베고 지나갔다.

이어서 그녀가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빠르다고 말입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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