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화이트레이 토벌전(4)
그 말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내가 유현성이지. 다른 유현성도 있냐.”
“아니 그게 아니라…분명 불의 둥지에서 언니랑 같이….”
연서가 그때의 기억을 곱씹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현성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천강 때도 그랬는데 뭘.”
“…뭐?”
“선천강에서도 같이 있었다고.”
그런 현성의 대답에 연서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과거 선천강에서 시연이 데일런트를 처지하고 인터뷰를 가졌을 때.
‘…언니가 그랬잖아.’
시연은 분명 당시의 인터뷰에서 정체불명의 남성의 도움이 컸었다고 언급했었다.
연서는 자신의 언니에 관한 정보는 전부 찾아보는 만큼.
그 인터뷰 역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인터뷰에서는 이름이나 특징 같은 건 아무것도 언급 안 되서 몰랐는데….’
설마 그 정체불명의 자가 현성이라니.
이에 현성이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아. 하긴 모를 수도 있겠구나.”
현성이 뭔가 알아차린 투로 중얼거렸다.
하긴 모를 수밖에 없었다.
선천강 때는 시연과 하린을 제외하고 현성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게 진짜야?”
연서가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러자 현성이 그녀를 다시 부축하면서 대답했다.
“나중에 기회 되면 언니한테 물어보든가.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그대로 현성이 연서를 자신의 뒤로 보내며 저 멀리 서있는 화이트레이를 바라보았다.
“나한테 맡기고 잠시 물러나있어.”
그런 현성의 말에 연서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연서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안 돼. 너 혼자로는 불가능하단 말이야.”
그가 온 건 다행이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는 게 없었다.
상대는 화이트레이.
아무리 현성 그라고 해도 다른 베테랑 헌터들이 없는 이상 위험했다.
“그러니까 다른 베테랑 헌터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해.”
“…그래?”
“당연하잖아. 그래서 지금 다른 베테랑 헌터들은 어디 있어?”
연서가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 현성이 왔다는 소리는 건너편에 있는 베테랑 헌터들도 금방 도착한다는 말.
‘그렇다면….’
여기서 내려야 할 판단은 화이트레이와 맞서 싸우는 게 아닌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것.
이에 연서가 연신 현성의 소매를 당겼다.
“우선은 여기서 벗어나야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만이라도….”
그러나 그때였다.
현성이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글쎄. 아마 다른 사람들은 좀 걸릴 텐데.”
“…잠깐. 뭐?”
그대로 현성이 태연하게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건너편에서 넘어온 건 나밖에 없어.”
“그, 그럼…다른 사람들은?”
“빙산이 생각보다 단단해서 새로운 길을 찾고 경유해오느라 꽤 걸릴 거야.”
그 말에 연서가 미간을 좁혔다.
“아니 그럼 너는 어떻게 온 건데?!”
“그런 방법이 있어.”
그러면서 현성이 자신의 목에 차고 있는 검은 목줄을 가리켰다.
“목줄? 너 설마 그런 취향….”
“응. 아니야.”
곧바로 현성이 위를 가리켰다.
그러자 저 위에는 화연의 로봇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무엇보다 로봇의 한쪽에 차있는 검은 팔찌.
이는 현성의 목줄과 같은 디자인이었다.
그렇다. 그 팔찌는 다름 아닌 정령의 신전에서 골렘을 잡을 때 사용했던 아이템이자, 현재 아카데미에서 절찬리에 판매중인 ‘실종 방지 목줄’.
그리고 알다시피 그 효과는 목줄을 찬 대상을 팔찌의 착용자가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 시키는 것.
현성은 이를 이용해 단숨에 건너편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현성 그가 등장하기 직전, 번쩍이는 빛이 바로 그 증거.
‘…저번에 썼던 게 남아있었기에 망정이지.’
현성이 검은 목줄을 매만지며 저 위에 로봇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게 아니었으면 건너편에 넘어오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 그럼 다른 베테랑 헌터들은 언제 오는데?”
“말했잖아. 꽤 걸릴 거라고.”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와 함께 연서의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틀림없이 그를 포함한 다른 베테랑 헌터들도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곳에 온 것은 오로지 현성 그 하나 뿐.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연서가 재빨리 그를 손을 잡고 주변을 살폈다.
“그럼 더더욱 도망쳐야지. 바보야!”
“아니 그니까….”
“너 혼자 와서 뭐하자는 거야?! 아니 애초에 왜 온 거야!”
연서가 다급하게 외쳤다.
주변에는 이미 화이트레이의 공격에 당해 쓰러진 길드원들로 즐비했다.
이래서는 결국 희생자가 하나 더 늘뿐이었다.
‘당장 도망칠 곳을….’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반대로 손을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현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왜 오긴. 구하려고 왔지.”
그 말에 연서가 움찔거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대답.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아무리 너라고 해도 혼자 화이트레이를 상대하는 건….”
“맞아. 그건 역시 좀 힘들겠지.”
“이 뭔….”
동시에 연서가 어이없다는 듯 현성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걸 뻔히 알면서도 혼자 왔다는 건가.
처음 그를 봤을 때의 놀라움도 잠시.
지금은 그저 화이트레이를 앞에 두고 연신 여유롭게 서있는 그가 미웠다.
당장에라도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이게 뭐하는 건지.
그대로 연서가 그를 향해 따지려던 찰나였다.
[크르르르….]
화이트레이가 낮게 울부짖으며 몸을 움직였다.
마치 감히 자신을 앞에 두고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고 말하는 것 같은 울음소리.
그와 함께 화이트레이가 팔을 들었다.
-스으으.
그 모습에 연서가 미간을 좁혔다.
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검기같이 쏘아지는 공격.
자신조차 막아내는 게 고작이었던 그 공격이었다.
“젠장, 어서 빨리…!”
이에 연서가 현성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현성은 아무 말 없이 화이트레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이트레이가 팔을 휘두른 순간.
“말했잖아. 도망치러 온 게 아니라….”
돌연 현성이 인벤토리에 손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기 무섭게 날카로운 공격이 현성을 향해 날아왔다.
그대로 화이트레이의 공격이 그를 갈가리 찢어버리기 직전.
“구하러왔다고.”
그와 함께 현성이 양 손을 휘둘렀다.
그런 그의 양 손에는 하얀빛으로 빛나는 기다란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이어서 검기를 연상케 하는 바람이 그와 충돌했을 때였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현성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퍼졌다.
동시에 주변에 가득한 눈이 폭발하듯 흩날렸다.
그리고 잠시 뒤.
“…그 공격을 막아냈다고?”
눈이 걷히고 연서의 앞에 보인 모습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서있는 현성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그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
그것은 다름 아닌.
“…망치?”
망치였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있던 망치와는 뭔가 조금 달랐다.
길쭉한 곤봉을 연상케 하는 몸통.
몸통에는 화이트레이의 비늘이 수려하게 겉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
그러니까 머리 부분에는 십자로 펼쳐진 틀을 따라, 푸르스름한 기운이 모여 있었다.
“마나잖아?”
그 푸르스름한 기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나.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성이 손아귀에 힘을 주고 망치를 꽉 부여잡은 순간.
-콰아아…화르륵!!
푸르스름한 마나가 맹렬하게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망치전체를 타고 붉은 화염이 솟아올랐다.
그대로 망치전체를 휘감아 회오리치는 불꽃.
그 모습에 연서가 멍하니 현성을 바라보았다.
“뭐야. 저게….”
“뭐긴 뭐야.”
동시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스태프지.”
그대로 현성이 스태프(?)를 내려놓았다.
마치 rpg게임에서의 전사클래스를 연상케 하는 모습.
그와 동시에 육중한 소리와 함께 눈발이 일었다.
-쿠웅.
이게 바로 현성이 단신으로 건너편으로 넘어온 이유였다.
알다시피 빙산을 부수고 건너편으로 진입하기에는 무리.
이에 현성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그것은 방금 보았듯이 ‘실종 방지 목줄’을 이용한 순간이동.
그러나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보낼 것인가.
약해진 화이트레이가 상대라면 베테랑 헌터 하나로도 승산이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단순한 계산.
실전은 변수가 너무 많고, 무엇보다 다른 일반 길드원까지 지키면서 싸워야 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건너편으로 넘어갈 사람은 누구보다도 화이트레이를 상대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했다.
현성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성은 본인이 갈 것을 요구했다.
풍부한 경험.
과거 공대장을 이끌었던 그라면 경험으로 밀릴 일은 없었다.
거기다 하나의 변수만 주어진다면 그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그게 바로 현성이 의뢰한 무기.
만약 그 무기만 완성이 된다면 현성은 화이트레이를 상대로 버틸 자신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현성 그라면 가능했다.
‘그야 패턴은 전부 외우고 있으니 피하는 건 가능하고, 남은 건 데미지를 누적시킬 수단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여기서 그 수단이 무기였다.
또한 무기를 만드는 거야 화연 그녀의 스킬 ‘마이스터의 공방’만 있으면 가능했다.
한마디로 필요한 재료는 바로 눈앞에 있는 상황.
이에 다른 베테랑 헌터들은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현성이 화이트레이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하면 말할수록 그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생태정보부터 화이트레이의 패턴, 심지어는 그 파훼법까지.
현성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상대가 약해진 화이트레이라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거기다 위급 시에는 완벽하게 도망칠 방법까지.
현성을 보낸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화이트레이를 상대로 다른 베테랑 헌터들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확률은 80퍼센트.
화연이 그녀의 로봇을 이용하여 산출해낸 확률이었다.
그만큼 현성의 계획은 상당히 가능성이 높았다.
동시에 이 확률은 다른 헌터들을 보냈을 때와 비교하면 가장 높은 수치.
이에 다른 헌터들은 현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보는 대로.’
현성이 자신만의 특제 스태프를 어루만지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 그러니까 공격력만 받쳐준다면 못 잡을 것도 없어.’
사용자의 마나를 토대로 원하는 형태를 이룰 수 있는 특수한 기능.
무엇보다 이 묵직한 중량감.
정말이지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스…태프?”
현성의 당당한 대답에 연서가 그가 들고 있는 스태프라고 주장하는 물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망치였다.
완벽한 망치였다.
그것도 불타오르는 망치.
도대체 누가 저걸 스태프라고 부른다는 말인가.
그러나 뭐라 하기도 전에 현성이 망치를 부여잡은 채, 앞으로 달려 나갔다.
-파앗!
이에 화이트레이가 달려오는 현성을 향해 팔을 들었다.
화이트레이의 입장에서는 그 상대가 인간이라면 거창한 공격을 날릴 필요도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체격차를 이용해 찍어 내리면 그만.
그 사실을 증명하듯.
화이트레이가 벌레새끼를 짓밟아 죽여 버리는 것처럼 팔을 들어 곧장 현성을 찍어 내렸다.
하지만 그때였다.
“오라아아아!!”
현성이 그대로 발을 구르며, 허리의 회전을 이용해 힘을 실어 있는 힘껏 망치를 휘둘렀다.
그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드드득…콰아아앙!!
불꽃을 두른 망치와 화이트레이의 팔이 격돌하며 커다란 충격이 일었다.
그리고 잠시 뒤.
현성이 보란 듯이 화이트레이의 팔을 말 그대로 받아치며 순간 화이트레이의 거구가 휘청거렸다.
[크르륵……?!]
이에 화이트레이가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이것이 바로 현성의 클래스 힘의 마법사의 진정한 면모.
거기다 무기까지 든 이상.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동시에 현성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했다.
이 쾌감! 이 타격감! 이걸 얼마나 기대했는가!
‘그래, 힘법사는 이래야지!’
그동안은 터트리지 못한 포텐셜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기분이었다.
지금 손끝에 전해지는 이 찌릿찌릿함이 그 증거.
곧바로 현성이 광기어린 웃음을 터트리며 화이트레이를 향해 돌격했다.
“히히힉…! 히힉…! 딱 대!!”
이미 현성은 새로운 무기가 주는 뽕맛에 취해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연서의 눈동자가 혼란스러운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대로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스태프라며. 미친놈아….”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