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무기 제작(5)
처음 화이트 스콜피온과의 전투를 치르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 후에도 몇 번씩 화이트 스콜피온을 비롯한 여러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었지만, 레이드에 참가한 길드들은 지금까지 부상자 제로를 기록하고 있었다.
-털썩.
그대로 마지막 몬스터가 쓰러지고.
확실히 죽은 것을 확인한 화연이 레이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레이더에는 더 이상 몬스터가 감지되지 않았다.
이에 화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남은 몬스터는 없습니다. 각자 길드상황을 브리핑 해주세요.”
그러자 각 길드에서 인솔자 역할을 맡은 베테랑 헌터들이 하나 둘씩 자신의 길드원들을 체크하고 보고했다.
“여기는 레일론 길드. 부상자는 없습니다.”
“백화경 길드 역시 부상자는 없어.”
“…엘더란 역시 없다.”
결과는 놀랍게도 여전히 부상자 제로.
그 말에 화연이 다른 길드원들과 몬스터들의 사체를 번갈아보았다.
지금껏 그녀는 청화길드에 속해있으면서 여러 레이드를 포함한 던전에 들어갔지만, 이토록 완벽한 경우는 처음이다.
‘거의 보스 직전까지 다다랐는데도 불구하고 부상자가 아무도 없다니.’
부상자가 거의 없는 거라면 모를까.
아예 존재하는 않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신기록.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소년이 서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현성.
그대로 화연이 저 멀리 몬스터의 사체 위에 서있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정말 아카데미생이 맞는 거야?’
이제는 놀라움을 넘어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다.
그도 그럴게 처음 화이트 스콜피온이 등장할 때도 그렇고, 이후 계속된 전투에서도 현성은 계속해서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줬다.
레이더보다 빨리 몬스터의 습격을 알아채지 않나.
출현 몬스터의 약점을 파악하고 공략을 제시하지 않나.
심지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베테랑 헌터들도 자연스럽게 현성의 오더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숙련된 헌터를 보는 것 같은 모습.’
그런 현성의 모습은 한 눈에 봐도 한두 번 레이드에 참가해본 게 아닌 거 같았다.
그러나 사전에 현성에게 물어봤을 때.
그가 직접 말하기로는 레이드 경험은 이번이 처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이에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화연이 현성에게 어떻게 한 거냐고 물어보자,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침착하게 자신의 행동의 근거를 설명했다.
주변의 식생에 따라.
몬스터의 특징과 그 숫자에 따라.
전투를 하는 지형에 따라.
현성은 전혀 막히는 기색 없이 그 방법을 말했다.
거기다 전투센스는 또 어떠한가.
그는 마법사 클래스지만, 마법사 클래스답지 않은 특유의 스타일로 손쉽게 몬스터를 쓰러트렸다.
‘사실 중간 중간 위험하면 도와줄 생각이었지만….’
그런 화연의 걱정은 실언에 불과했다.
이에 그녀는 점점 현성이라는 사람에게 묘하게 빠져들고 있었다.
화연에게 있어 현성은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파면 팔수록 흥미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화연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주변의 다른 길드원들 역시 알게 모르게 현성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처음 전투를 망설이던 일단 길드원들은 어느새 어느 정도 실전에 익숙해진 건지, 이제는 꽤나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하연서.’
첫 전투에서 현성과 대화한 이후.
가장 달라진 사람을 뽑자면 그것은 바로 하연서였다.
그녀는 아직 다른 길드원들과 합을 맞추는 건 서투르지만, 적어도 첫 전투처럼 독단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혼자 너무 나왔다 싶으면 멈칫거리고는 다시 물러선 뒤.
다른 길드원들과 붙어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익숙하지 않는 전투방식 덕분에 그녀의 표정은 뚱해보였지만, 확실히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방금 전 공격은 꽤 괜찮았어. 힘이 빠지니까 연결도 자연스러웠고.”
전투가 끝난 현성이 연서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연서가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흥,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역시 감각이 좋아서 그런지 금방금방 배우네.”
“뭐, 이 정도는 식은 죽 먹….”
하지만 의기양양하던 것도 잠시.
뭔가 이상한 걸 느낀 연서가 현성을 가리키며 외쳤다.
“아니 잠깐! 근데 니가 뭔데 자꾸 나한테 검술을 가르치려 들어!”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칭찬에 취해 잊고 있었다.
그녀는 무려 검술명가 하 가문 출신.
그런데 웬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이 검술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다니.
“야! 니가 나보다 검 잘 써?! 잘 쓰냐고!”
그 말에 현성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혹시 모르지?”
“이게 진짜….”
“아무튼 이렇게만 하자고.”
현성은 그런 연서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화이트레이의 서식지에 90%정도 다다랐다.
‘아마 이 정도 속도면 금방 도달하겠군.’
그리고 레이드의 호흡을 보면 화이트레이를 잡는 것도 그리 어려울 거 같지는 않았다.
확실히 혼자보다는 레이드가 편하긴 편했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의 애로사항이 존재했지만, 분명 현성 그 혼자 오는 것보다는 빠른 속도였다.
“자, 그럼 다시 출발하죠.”
동시에 화연의 외침이 울려 퍼지며, 전투를 끝낸 길드원들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앞서가던 화연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처억.
그런 그녀의 앞에는 깎아지를 것 같은 협곡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에 옆에 있던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설원지대에서 협곡으로 바뀐 풍경,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곳이 바로 화이트레이의 서식지.’
곧 화연 역시 이를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고개를 돌려 다른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여기부터 화이트레이의 서식지입니다. 그러니 조금 더 조심하죠.”
그 말에 다른 베테랑 길드의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이트레이의 서식지에 발을 내딛었다면 그때부터는 언제, 어디서든 화이트레이가 등장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와 함께 화연을 필두로 천천히 협곡에 발을 내딛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협곡에 들어온 지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레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는 줄곧 마주치던 몬스터무리도 협곡에 들어오고 나서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현성이 양 옆에 솟아있는 절벽을 바라보며 턱을 매만졌다.
‘…확실히 <이스페리아>의 설정 상 협곡, 그러니까 화이트레이의 서식지에 들어와서부터는 몬스터가 줄어드는 건 맞는데 원래 이렇게 조용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협곡에 진입했다고 바로 화이트레이가 출몰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협곡에서 화이트레이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출몰 타이밍은 어디까지나 랜덤확률이었다.
만약 이 길을 지날 때까지 안 나온다면 화이트레이가 등장하는 구간은 자연스레 협곡의 끝이 되었다.
‘왜냐하면 협곡의 끝이 바로 화이트레이의 둥지니까.’
그동안 화이트레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 둥지에서 등장할 확률은 100퍼센트였다.
실제로 <이스페리아>의 수치상 그랬다.
그리고 전에도 자주 말했듯이 현성은 다른 건 다 할 수 있었지만, 어찌된 게 확률에 관한 것만 나오면 항상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거의 다 둥지에서 화이트레이를 조우하곤 하였다.
‘…이쯤 되면 사실 개발사에서 날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긴 과거 현성 그가 한창 <이스페리아>에서 온갖 기행을 저지르고 다녔을 시절.
그로 인해 발견된 버그가 몇 개이며, 그로 인해 긴급 핫픽스에 들어간 게 몇 번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싫어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아무튼 그런 면에서 본다면 둥지에서 100퍼센트 확률로 화이트레이가 나온다는 건 다행이지.’
적어도 이번 레이드에서 화이트레이가 안 나와서 공칠 일은 없다는 말.
이에 현성이 한결 편한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걷다보니 현성은 어느새 협곡의 끝에 다다랐다.
“…협곡이 끝났다.”
뒤에 따라오던 길드원 중 하나가 말했다.
동시에 그런 그들의 앞에는 하얀 눈이 깔린 타원형의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현성의 눈앞을 타고 메시지 창 하나가 떠올랐다.
[화이트레이의 둥지에 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화이트레이의 둥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넓게 깔린 하얀 눈 뿐.
이에 연서를 포함한 일반 길드원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나 현성과 화연을 비롯한 베테랑 헌터들은 달랐다.
그들은 저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무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연서가 재빨리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올렸다.
수년간 다져진 그녀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뭔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그때였다.
-펄럭!
커다란 날갯짓 소리와 함께 둥지를 타고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와 동시에 둥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하얀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자리하고 있었다.
“…왔다!”
그와 함께 현성이 히죽 웃었다.
저게 바로 이번 레이드의 목표 몬스터이자, 설산의 지배자 화이트레이였다.
그런 화이트레이의 입을 비집고 낮은 울음이 삐져나왔다.
[크르르….]
마치 경고하는 듯 둥지전체에 내리깔리는 음성.
그 울음소리는 위압감으로 가득했다.
간만에 느끼는 짜릿함.
이에 현성이 두근거림을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
그 사이.
공중에 떠있던 화이트레이가 천천히 둥지에 내려앉았다.
-사르르륵.
동시에 화이트레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 몸을 뒤덮은 하얀 비늘이 마찰하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때마침 몰아치는 눈보라.
그 마찰음은 눈보라와 뒤섞이며 긴장감을 자아냈다.
-휘이잉.
몰아치는 거센 칼바람 속 용족 특유의 붉은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움직였다.
그런 화이트레이의 눈은 마치 하얀 눈 속에서 벌건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옵니다. 준비.”
선두에 서있는 현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화이트레이가 하얀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며 커다란 입을 쩌억 벌렸다.
그대로 설산을 울릴 정도의 흉성이 그들을 덮쳤다.
[크롸라라라!!]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
곧 화이트레이의 흉성이 산맥에 갇혀 메아리치는 순간.
엄청난 양의 눈사태가 쏟아졌다.
“시작합니다!”
그와 함께 베테랑 헌터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어서 뒤에 있던 길드원들이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레이드를 앞두고 사전에 말한 포메이션이었다.
“제 1진은 계속 전진! 2진과 3진은 화이트레이를 포위하라!”
제 1진의 가장 선두에 서있던 엘더란의 이한성이 외쳤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진과 3진이 움직였다.
그런 2진과 3진의 선두에는 각각 현성과 화연을 포함한 베테랑 헌터들이 있었다.
‘좋아, 여기까지는 문제없어.’
현성이 돌격하는 1진과 화이트레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드의 계획은 이러했다.
화이트레이 공략에서 가장 우선해야 될 부분은 바로 화이트레이가 공중으로 나는 것을 차단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맨 처음 화이트레이가 착지할 때. 그때 승부를 봐야한다.’
이에 우선 탱커위주로 편성된 1진이 화이트레이를 상대한다.
그리고 그 사이.
딜러와 서포터로 구성된 2진과 3진이 화이트레이의 양 옆을 잡는다.
여기까지는 성공.
[……크르륵?!]
그럼 보통 화이트레이는 포위진을 벗어나기 위해 공중으로 떠오를 준비를 하기 마련.
실제로 화이트레이는 2진과 3진이 자신을 감싸기 무섭게 날개를 펼쳤다.
현성의 예상대로였다.
그와 함께 화이트레이가 날갯짓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화이트레이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이어서 그가 3진의 선두에 있던 화연을 향해 외쳤다.
“지금입니다!”
그러자 화연이 기다렸다는 듯 공중을 향해 있는 힘껏 뭔가를 던졌다.
그녀가 던진 것은 다름 아닌 줄곧 옆에 있던 배구공크기의 로봇.
그대로 날아간 로봇이 공중에 떠오른 화이트레이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이에 화연이 소리쳤다.
“모두 눈과 귀를 막아!!”
그때였다.
로봇을 타고 눈이 멀 정도로 밝은 섬광탄이 터지며, 동시에 귀를 찢는 날카로운 괴성이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이!!
섬광과 뒤섞인 소음.
그 효과는 뛰어났다!
이 둘을 직격으로 맞은 화이트레이가 공중에서 균형을 잃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쿠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땅으로 내려온 화이트레이.
그 모습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화이트레이가 날아오르는 건 막아냈다.
공중전이 막힌 것만으로도 계획의 반은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쪽이 나설 차례.
화이트레이가 떨어지기 무섭게 현성이 외쳤다.
“버스트하세요!”
그런 현성의 외침과 함께 제 1, 2, 3진이 일제히 화이트레이를 공격했다.
새하얀 눈이 펼쳐진 둥지.
바람, 뇌격, 화염이 한 데 뒤섞인 풍경은 마치 유성우를 연상케 하였다.
-콰쾅! 콰콰광!! 콰아앙!!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