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무기 제작(4)
그런 현성의 말과 함께 주변의 길드원들이 하나 둘씩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래보여도 이번 레이드에 참여한 길드들은 청화를 포함하여 전부 네임드 길드.
그만큼 특별한 지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 길드의 베테랑들은 알아서 전투에 돌입한 준비를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아주 중요한 레이드가 아닌 경우, 파티의 구성은 주로 한 명의 베테랑과 다수의 일반 길드원으로 구성된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모든 파티원을 베테랑으로 구성하기에는 인원도 모자랄뿐더러, 효율이 극도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반 길드원 중에는 상대적으로 실전 경험이 떨어지는 자들도 있기 마련.
“화, 화이트 스콜피온…!”
이에 부상자는 없었지만, 몇몇 길드원들은 실제로 마주한 몬스터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연서가 작게 혀를 차며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처억.
하연서.
그녀가 엘더란 길드에 들어온 것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서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한심하기는.”
연서는 오히려 잔뜩 겁먹은 다른 길드원들을 보고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대로 연서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들고는.
-쉬익!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에 화이트 스콜피온 한 마리가 재빨리 꼬리를 뻗었다.
그런 스콜피온의 꼬리 끝에는 맹독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웬만한 헌터들도 화이트 스콜피온의 맹독에 제대로 걸리면 단숨에 그로기 상태에 빠지기 마련.
그만큼 화이트 스콜피온의 공략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몬스터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꼬리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흥.”
그러나 연서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더더욱 가속도를 올릴 뿐이었다.
그리고 화이트 스콜피온의 꼬리가 그녀를 찌르기 직전.
연서가 쏜살같이 들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섬광과도 같은 가로베기.
제 1식 폭참(瀑斬).
검술명가 하 가문이 자랑하는 초식이자, 과거 크루페돈을 상대할 당시 시연이 썼던 검술이었다.
-서걱!
그와 함께 화이트 스콜피온의 꼬리가 잘려나갔다.
아니 이걸 잘려나갔다라고 표현해야할까.
그녀의 검이 닿기 무섭게 스콜피온의 꼬리가 박살나며 체액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별 것도 아닌 게…!”
연서가 히죽 웃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
이어서 그녀가 화이트 스콜피온의 머리 부분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제 2식 낙천(落天).
-콰가가각!
동시에 화이트 스콜피온의 갑각이 으스러지더니 곧바로 머리가 뭉개졌다.
그와 함께 화이트 스콜피온이 새하얀 설원 위에 체액을 흩뿌리며 그대로 절명했다.
[키익! 키…르륵….]
단번에 꼬리를 박살낼 정도로 묵직한 검압.
그리고 한 번에 머리가 으스러져 죽은 화이트 스콜피온.
이 모든 게 불과 1분도 안 되서 벌어진 일이었다.
‘…역시 하 가문은 하 가문이다 이건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현성이 피식 웃었다.
바로 이게 하연서의 검.
시연의 검이 부드럽고 날카로웠다면, 그녀의 검은 묵직하고 패도적이었다.
“그, 그럼 이제 우리도…!”
곧 그런 연서의 모습을 보고 다른 길드원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연서가 검을 휙 털어내며 흘깃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래. 방해되니까 빠져.”
그 말에 다른 길드원들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가 다른 길드원 뿐만이 아니라, 각 길드의 베테랑들이 서있는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저 혼자면 충분합니다. 딱히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이에 다른 길드의 베테랑들이 미간을 좁혔다.
레이드의 기본은 협력.
그만큼 독단적인 연서의 행동은 보기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길드의 베테랑들이 나서기도 전.
연서 그녀가 속한 엘더란의 베테랑 헌터, 이한성이 먼저 나섰다.
그대로 그가 화연을 포함한 다른 길드의 베테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만큼은 그냥 지켜봐주시죠.”
“하지만 이런 독단행동은 레이드에 있어….”
“그건 우리 엘더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 다릅니다.”
“…그 말은?”
그 물음에 엘더란의 한성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믿고 맡겨도 된다는 거죠.”
이어서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중얼거렸다.
“…말은 저래도 실력하나만큼은 진짜니까요.”
그러면서 한성이 그녀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허락.
그러기 무섭게 연서가 다시 화이트 스콜피온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펼쳐진 장면은 그야말로 패도 그 자체였다.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며 갑각을 부수고, 꼬리를 베어낸다.
그녀의 검에는 거침이 없었으며, 동시에 과격했다.
-콰가가각! 끼긱…! 콰직!
그런 연서를 중심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오로지 화이트 스콜피온의 갑각이 박살나는 살벌한 소리뿐이었다.
세간에는 이런 그녀의 검을 보고, 수라와도 같다고 불렀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끼이이이익!!]
화이트 스콜피온의 비명소리를 마지막으로 마침내 그녀의 검이 멈췄다.
어느새 연서의 주변에는 화이트 스콜피온의 사체와 박살난 파편으로 가득했다.
이에 연서가 검을 집어넣으며 등을 돌렸다.
“…봤죠?”
그녀가 거만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실전은커녕, 앞으로 나서지도 못한 일반 길드원들이 주춤거렸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녀의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하여간 레이드랍시고 별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아둔 꼴이란…보다시피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야.’
연서가 일반 길드원들을 훑어보며 조소했다.
곧 그녀가 화연 옆에 서있는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결국은 저 녀석도 똑같았다.
‘잔뜩 겁먹어 가만히 있는 꼴이란.’
정말이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동시에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현성을 바라보고 말했다.
아니 말하려했다.
“청화도 별거 없….”
그 순간이었다.
그녀 바로 뒤에 있는 바닥이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잔뜩 쌓인 사체사이에서 화이트 스콜피온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차마 정리하지 못한 몬스터였다.
“…?!”
갑작스러운 기습공격.
이에 연서가 재빨리 검을 뽑으려 했지만 순간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방금 전 전투에서 너무 과격하게 싸운 탓이었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제, 젠장…!’
그대로 연서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그녀의 귓가를 타고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그 소리에 연서가 눈을 뜬 순간.
그녀의 앞에는 현성이 서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팔을 따라 타오르고 있는 붉은 화염.
[키이이익….!]
현성은 한 손으로 화이트 스콜피온을 붙잡고 있었다.
그대로 그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스콜피온의 갑각이 으그러지더니, 곧 작열이 솟아오르며 다시 한 번 폭발했다.
-콰아아앙!
그렇게 사방을 타고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잠시 뒤.
연기가 걷혔을 때, 화이트 스콜피온은 이미 새까맣게 불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쯧.”
그와 함께 현성이 휙 화이트 스콜피온을 던지고는 옷에 묻은 재를 털어냈다.
그 모습에 연서가 멍하니 현성을 바라보았다.
곧 현성이 고개를 돌리고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검에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갔어.”
그런 현성의 말에 연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지치지.”
동시에 정곡을 찔린 연서가 주춤거렸다.
현성의 말 그대로였다.
항상 시연이 그녀에게 지적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전투에 들어가면 특유의 자존심덕분에 자기도 모르게 너무 과하게 힘이 들어간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호흡이 쉽게 무너지고, 이는 곧 체력소모로 이어진다.
그 증거가 방금 전 힘이 풀린 손아귀였다.
무엇보다 지금 그녀의 호흡은 상당히 가파르기 그지없었다.
그야말로 턱 끝까지 차오른 호흡.
하지만 연서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외쳤다.
“누, 누가 지쳤다고 그래!”
“그리고 다음부터는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마.”
단호한 현성의 말.
이에 연서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대로 그녀가 마지막 화이트 스콜피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지막만 아니었으면 이건 전부 내가 잡았어.”
“그 마지막 한 마리한테 당할 뻔 했던 건 그새 까먹었었나보지?”
“그래봤자 겨우 한 마리…!”
그와 동시에 현성이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애초에 베테랑 헌터들의 오더를 필두로 다른 길드원들과 같이 싸웠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그, 그래도 나머지는 다 내가 잡았어!”
“그래서?”
현성이 화연과 다른 길드원들이 서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누가 많이 잡았는지 따지는 사냥터가 아니라 레이드야.”
현성이 연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만약 방금 전 내가 한 발 늦었다면? 그럼 넌 맹독에 당해 쓰러졌겠지.”
“그, 그건….”
“그럼 그 뒤처리는 누가하지?”
“….”
그런 현성의 말에 연서는 꾸욱 주먹을 움켜쥘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만약 그녀가 쓰러졌다면 당연히 그 뒤처리는 남은 사람들이 해야 했다.
그리고 현성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스페리아>에서도 레이드는 존재했다.
이에 따라 과거 현성 역시 당연히 레이드를 해보았다.
심지어는 그는 리더,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공대장 역할까지 했었다.
그 과정에서 눈앞의 연서와 같이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플레이어는 무조건 존재했으며, 그럴 때마다 그 뒤처리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공대장인 현성이었다.
‘…사람 다섯이 모이면 그 중 하나는 쓰레기라는 말이 딱 그 꼴이었지.’
당연히 모든 플레이어들이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 플레이어들의 트롤짓으로 인해 레이드를 망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현성이 그때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패턴을 숙지하고 오라했건만 날먹마인드로 와서 파티를 궤멸로 만들지 않나, 딜러주제에 혼자 깝치다가 원턴킬 나지 않나.’
정말이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성이 화를 가다듬으며 연서를 바라보고 말했다.
“아무튼 다음부터 독단행동은 자제해.”
“큿….”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 뿐이었다.
차마 반박할래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현성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다른 베테랑 헌터들이 중얼거렸다.
“…제법이군. 누구라고 했지?”
“아마 청화길드의 유현성일거야.”
“역시 청화는 청화라는 건가. 어디와는 다르게 꽤나 비교되는 군.”
그러면서 그들이 엘더란의 베테랑 헌터,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이에 한성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상이 누군지는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화이트 스콜피온의 습격에 대비하라고 한 것도 저 녀석이었지?”
“아. 그랬지. 덕분에 부상자는 없어서 다행이야.”
이어지는 현성에 대한 칭찬.
그만큼 처음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현성의 행동은 다른 베테랑 헌터들이 보기에도 완벽에 가까웠다.
그리고 현성의 칭찬이 계속될수록 화연은 애써 티 내지 않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그야말로 당장에라도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대로 다른 길드의 베테랑 헌터가 화연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화연, 도대체 어디서 저런 녀석을 데려온 거야?”
그 물음에 화연이 그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비밀이야.”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