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무기 제작(3)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전에 말한 대로 화연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타이밍.
이에 레이드 일정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마침내 레이드를 가기로 한 당일.
현성이 차에서 내렸다.
동시에 함께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화연.
“자, 도착했어.”
화연이 저 멀리 푸르스름한 색의 게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곧 현성이 게이트를 흘깃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바로 화이트레이의 서식지와 이어진 게이트.
“…그래서 다른 길드는 언제 도착하죠?”
현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에 화연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아마 다들 곧 도착할거야. 아, 그리고….”
그대로 화연이 현성의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성 군은 오늘 하루라 하더라도 일단은 청화길드 소속으로 온 거.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현성이 입고 있는 옷의 어깨에는 청화길드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방금 말했듯이 오늘 그는 아카데미나 개인 소속이 아닌 어엿한 청화길드의 소속.
그리고 이번 레이드에는 여러 길드에 참여하는 만큼, 소속을 보여주는 일종의 표시가 필요했다.
“좋아. 그럼 이것도 받아.”
그러면서 그녀가 붉은 팔찌를 건넸다.
이에 현성이 화연과 붉은 팔찌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이건?”
“차보면 알거야. 무려 어제 만든 ‘따끈따끈’한 신작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화연의 눈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현성이 화연이 건넨 붉은 팔찌를 받아든 순간.
현성의 눈앞을 타고 아이템 정보창이 펼쳐졌다.
[화연의 특제 팔찌]
[등급 : 레어]
설명 : 청화길드의 부길드장이자 장인인 진화연이 직접 만든 팔찌. 불의 기운이 담겨있어 팔지를 착용할 경우, 착용자에게 냉기저항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그대로 현성이 붉은 팔찌를 착용했다.
그러자 곧 그의 팔을 시작으로 온 몸에 따뜻한 온기가 퍼져나갔다.
이에 현성이 팔찌를 매만지며 피식 웃었다.
‘따끈따끈하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그런 현성을 보고 화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때? 꽤 쓸 만하지?”
“네, 확실히…좋은 성능이군요.”
현성이 주먹을 쥐었다 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어제 만들었다고 했었나.’
그 짧은 기간 내에 이만한 레어 아이템을 만들어 내다니.
역시 청화길드의 마이스터는 다르긴 달랐다.
그리고 그때였다.
-부르릉.
저 멀리서 고급스러운 검은색 밴이 다가왔다.
곧바로 다가온 밴은 현성의 바로 앞에 정지하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부 저마다 이런저런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어깨에 그려진 문양.
그 문양은 다름 아닌 엘더란의 길드 문양이었다.
“…여긴가.”
그 중에서도 허리까지 오는 긴 백발이 인상적인 한 소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동시에 그녀의 옆으로 떠오르는 상태 창.
[이름 : 하연서]
성별 : 여성
나이 : 15
종족 : 인간
클래스 : 검사
업적 : [하 가문의 검], [검의 길을 걷는], [10살에 검기를 구현한]
이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그녀가 바로 하시연의 동생, 하연서였다.
“…음?”
그대로 그녀가 바로 눈앞에 서있는 현성과 화연을 번갈아봤다.
그리고 그도 잠시.
연서가 현성이 차고 있는 청화길드의 문양을 발견하고는 혀를 찼다.
“쯧.”
이어서 그녀가 현성의 옆에 서있는 화연을 향해 말했다.
“…청화길드에서 저 대신 뽑은 사람이 이 자인가요?”
인사대신 건넨 첫마디.
그런 그녀는 존댓말을 쓰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서는 불쾌함이 고스란히 묻어져 나왔다.
알다시피 연서는 청화길드에 지원했지만, 떨어진 경험이 있었다.
그만큼 그녀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요컨대 마음에 안 든다 이거지.’
현성이 연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거기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이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했다.
이에 화연이 보란 듯이 현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맞아.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
그런 화연의 태연한 대답에 연서가 미간을 구겼다.
그대로 연서가 휙 고개를 돌리며 현성을 째려보았다.
-찌릿.
그러면서 연서가 현성을 향해 말했다.
“너. 이름이 뭐야.”
그런 그녀에게서는 시연과 비슷하게 차가운 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시연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적개심.
‘…마음에 안 들어.’
연서는 자신을 제치고 청화길드에 들어갔다는 눈앞의 소년을 주시했다.
감히 하 가문의 자신을 거절하다니.
그리고 그 분노의 화살은 곧바로 현성에게 향했다.
“이름. 뭐냐니까?”
도대체 어떤 유명가문의 녀석이길래 자신을 제치고 청화길드에 들어간 건지 궁금했다.
다만 문제라면 그 궁금증이 순수한 호기심이 아닌, 분노와 적개심이 담겼다는 것.
이에 가만히 지켜보던 화연이 영 마음에 안 드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초면부터 이게 무슨 태도지?”
말했듯이 현재 현성은 청화길드의 소속.
그런데 그런 현성에게 대놓고 이런 태도로 나온다니.
청화길드의 부길드장으로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괜찮습니다.”
현성이 화연을 저지하며 연서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와 동시에 연서가 잠시 주춤거렸다.
“….”
보통은 그녀가 이렇게 나오면 십중팔구 기세에 눌리기 마련.
그러나 눈앞의 소년은 기가 눌리기는커녕.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을 향해 걸어왔다.
‘역시 다른 유명가문의 자제인가….’
연서가 다가오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하 가문의 자제인 자신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행동한다면 그것밖에 없었다.
허나 그도 잠깐일 뿐.
그녀가 현성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물었다.
“내 말 못 들었어?”
어차피 연서 그녀 또한 하 가문.
단순히 가문의 위세만 두고 본다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가문의 입지는 더더욱 올라간 상태.
상대가 다른 유명가문이더라도 쉽게 건들 수는 없을 터였다.
“내 말 못 들었냐고 물었잖….”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유현성.”
“이게 감히 누구 말을 자르고….”
“이제 됐지?”
현성이 다시 한 번 그의 말을 자르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
그리고 그런 현성의 주위를 타고 알 수 없는 무게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움찔.
하지만 그도 잠시.
현성이 한숨을 내쉬고는 등을 돌렸다.
“…하아.”
이에 연서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현성의 소매를 잡았다.
“너 방금 날 보고 한숨 쉰 거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와 동시에 현성이 흘깃 그녀를 바라보고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굳이 알아야하나?”
그대로 현성이 방금 전 연서가 했던 것처럼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하 가문이라길래 꽤 기대했건만 하시연만도 못하네.”
“큿…!”
그와 함께 연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시연. 같은 하 가문의 자제임과 함께 자신의 언니.
그러나 연서는 시연이 싫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항상 언니의 비교대상이 자신이었으니까.
그때마다 연서는 넌 왜 그것밖에 안되냐는 말을 수십, 수백 번씩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랬다.
무엇보다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자신 대신 청화길드에 들어온 자.
이에 연서가 이를 갈며 주먹을 쥐었다.
-으득.
그런 연서의 모습에 현성이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스페리아>의 설정 그대로였다.
설정 상, 하연서 그녀는 언니 하시연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거기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이런 태도는 덤.
‘…그런데 이 정도 일 줄이야.’
설마 잠깐 건드렸다고 이렇게 격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정말이지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이어서 현성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중얼거렸다.
“이럴 시간에 예의나 좀 더 배웠으면 좋겠군.”
“….”
“너희 언니처럼 말이야.”
그대로 현성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자식이…!”
그런 현성의 말에 연서가 와락 미간을 구기며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대었다.
그렇게 그녀가 검을 뽑으려는 찰나.
현성이 입을 열었다.
“후회안할 자신 있어?”
이에 뒤늦게 뭔가 위화감을 느낀 연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녀의 주변에는 어느새 다른 길드의 사람들이 모두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연서가 멈칫거렸다.
‘벌써 다른 길드가….’
다른 상황이라면 모를까.
당장 레이드를 앞둔 상황에 이렇게 행동하는 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칫하면 하 가문의 귀에도 들어갈 수 있는 상황.
“칫….”
결국 연서가 손을 거두며 현성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현성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녀를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 가문이면 하 가문답게 행동해.”
“…뭐?”
그 말을 끝으로 현성이 등을 돌렸다.
그대로 연서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방금 전 현성 그가 했던 말.
하 가문이면 하 가문답게 행동해라.
그건 다름 아닌 시연이 항상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기분 나빠.”
곧 연서가 등을 돌리고 엘더란 길드 쪽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고 시간은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게이트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이에 게이트 앞에 선 화연이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인원은 다 모인 거 같은데…그럼 슬슬 들어갈까요?”
그 말에 다른 길드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바로 출발하시죠.”
그와 함께 길드가 모두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
화연이 옆에 있는 현성을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방금 전. 잘했어.”
“…뭘요.”
그런 화연의 말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동시에 게이트가 일렁거리며 주변의 환경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잠시 뒤.
-스으으.
어느새 현성을 포함한 화연의 앞에는 게이트 대신 새하얀 설원이 펼쳐져있었다.
이곳이 바로 화이트레이의 서식지.
아이스 호른이었다.
“자, 그럼 사전에 설명한대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 * * * *
그대로 게이트 너머의 아이스 호른에 진입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화연이 뒤에 있는 현성을 비롯한 다른 길드와 함께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바로 옆에는 배구공정도 크기의 작은 로봇이 떠있었다.
무엇보다 로봇의 머리위에 떠있는 안테나.
이는 바로 주변에 위험요소는 없는지 감지하는 일종의 레이더였다.
곧 레이더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걸 확인한 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직까지는 순조롭군.’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화이트레이 토벌이었지만, 으레 다른 던전들이 그렇듯 이곳에는 비단 화이트레이만 서식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곳에는 당연하게도 필드의 보스 몬스터 화이트레이를 포함한 여러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동하는 도중에 몬스터와 마주칠 가능성 역시 충분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별다른 일 없었지만 던전이란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에 화연은 수시로 레이더를 체크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지형을 보아하니 아직 초입.’
현성이 주변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아이스 호른같은 경우.
초입에는 거의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몬스터가 등장하는 건 초입을 지난 후부터.’
여기서 그걸 알 수 있는 사실은 다름 아닌 주변에 자라있는 나무들이었다.
과거 그가 얼음무덤에서 빙결초를 통해 길을 찾았듯이.
아이스 호른에서도 주변의 식생을 통해 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대로 잠시 뒤.
주변을 살피던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계속해서 보이던 나무가 사라졌다.
‘…주변의 나무가 사라지면 그때부터는 초입을 지났다는 뜻.’
그리고 그의 경험에 따르면 맨 처음 몬스터가 등장하는 타이밍은 바로 초입을 지난 직후.
이에 현성이 앞서가던 화연을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는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뭐?”
“몬스터가 등장할 겁니다.”
그 순간이었다.
화연의 옆에 있던 로봇의 안테나가 정지했다.
곧바로 레이더가 붉게 물들며 경고음이 삐져나왔다.
[경고. 반경 500m안에 몬스터 발견. 점점 가까워집니다.]
[400m…300m…200m……]
하지만 점점 가까워진다는 경고와는 달리 몬스터는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그저 하얀 설원 뿐.
이에 화연이 재빨리 뒤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뿐이었다.
그대로 몬스터가 반경 100m에 다다랐다는 소리와 함께 화연이 말했다.
아니 말하려는 찰나였다.
“모두 발밑을 조심하세요!”
현성이 그녀보다 한 박자 빨리 외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이 쌓여있는 바닥이 움찔거리더니, 그 사이로 무언가 튀어 올랐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화이트 스콜피온이었다.
화이트 스콜피온.
아이스 호른에서 흔히 출몰하는 몬스터로 그 가장 큰 특징은 눈 아래 숨어 기습공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는 구간이 바로 화이트 스콜피온이 등장하는 구간이었다.
‘젠장, 처음부터 화이트 스콜피온이 나올 줄이야!’
이에 화연이 황급히 뒤에 있던 다른 길드를 살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런 부상자도 없었다.
현성의 빠른 경고 때문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현성이 화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현성의 물음에 화연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 짧은 사이에….’
심지어 로봇의 레이더보다 빨리 반응했다.
거기다 단박에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하고 경고하는 것까지.
이 모든 판단이 전부 순간에 불과한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단해.’
하지만 놀람도 잠시.
화연이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이어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난 괜찮아.”
“그럼 다행이군요. 그리고 다행히 다른 길드원들도 무사한 것 같으니….”
그대로 현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벌써 주변은 화이트 스콜피온으로 가득했다.
이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시작할까요?”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