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무기 제작(2)
“아, 누군가 했더니 얘구나.”
곧 하연서의 사진을 확인한 화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시연의 여동생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애초에 그녀는 검술명가라고 불리는 하 가문의 사람.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화연이라고 해도, 하연서라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청화에 소속되어있으면서 워낙 유명가문과 자주 마주치다 보니 알기 싫어도 알 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청화길드에도 들렸었는데 말이지.”
“청화길드에 말입니까?”
현성이 연서의 사진과 화연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화연이 얼마 전, 김 비서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응. 분명 그랬었지.”
유명가문의 자제들은 가문에 속한 채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 말고도 유명길드에 속하여 활동하는 경우도 상당히 흔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화연은 본인이 직접 청화길드에 방문했었다.
“자기가 활동하기에 어울리는 곳은 우리 청화밖에 없다고 했던가.”
그러면서 화연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검술명가 하 가문의 자제인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청화까지 와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줄이야.
“그런데 여기 소속이 다른 길드로 되어있는 걸보면….”
“맞아. 청화길드에서 거절했어.”
“…그래요?”
그런 현성의 말에 화연이 턱을 괴며 물었다.
“왜? 그 이유가 궁금해? 안 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 하더라.”
무려 검술명가 하 가문의 자제다.
그런 연서가 직접 들어온다는데 거절할 줄이야.
보통 유명가문의 자제가 길드에 들어오면, 이것은 길드의 면에서나 가문의 면에서나 서로 이득이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 청화는 달랐다.
“우리 길드마스터님이 직접 거절했어. 청화와는 안 어울린다고.”
“….”
“어디까지나 청화에는 청화만의 룰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 말을 들은 현성이 작게 웃었다.
하긴 그가 알고 있는 하연서의 성격이라면 길드마스터가 그렇게 나올만했다.
아니 그렇게 나오는 게 당연했다.
시연의 여동생, 하연서는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긍심은 물론, 본인의 자신감이 상당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문제라면 그 성향이 너무 강하다는 것.
‘마치 게임에 빠져 사는 누구누구네 종족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보나마나 청화길드에서도 그렇게 행동했다가 보기 좋게 까이고 다른 길드로 간 모양이었다.
‘하긴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하 가문이라는 영향력이 있으니 다른 길드에 들어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실제로 하연서 그녀가 들어간 길드의 이름은 엘더란.
<이스페리아>의 세계관에서 청화길드 못지않은 영향력을 자랑하는 유명길드 중 하나였다.
곧 화연이 홀로그램 창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이번 레이드는 보다시피 여러 유명길드도 참가하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뭐 기껏해야 신경쓸만한 건 레이드가 끝나고 난 뒤 부산물을 분배하는 것 정도?”
이번 레이드는 단순히 청화길드만 참가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보상이라거나 이것저것 분배를 하는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화연이 현성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근데 이 부분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내가 직접 가니까. 아마 내가 먼저 핵심재료를 노린다고 말하면 알아서 양보해줄 거야.”
“…그거 권력남용 아닙니까.”
“그래서 싫어?”
그러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길드간의 권력남용이니 눈치싸움이니 그건 현성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 핵심재료인 만큼, 현성은 재료만 얻으면 별 상관없었다.
그대로 현성이 화연을 향해 말했다.
“아무튼 그럼 레이드는 언제 출발하실 예정인가요?”
“….”
그 말에 화연이 팔짱을 끼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레이드가 언제였던가.
대충 김 비서가 닦달한 것으로 보았을 때, 그리 먼 거 같지는 않았으나 자세한 건 역시 물어봐야 알 거 같았다.
“…솔직히 잘 모르시죠?”
그런 화연의 모습에 현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동시에 화연이 작게 움찔거리고는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크, 크흠! 요새 업무가 너무 많아서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러면서 화연이 애써 자연스럽게 홀로그램 창을 닫으며 말했다.
“아마 그리 늦지는 않을 거야. 우선 지금은 조금 그렇고, 이따가 연락 줄게. 괜찮지?”
“네, 그렇게 하시죠.”
“자, 그럼 이거.”
현성이 대답하기 무섭게 화연이 자신의 스마트 폰을 내밀었다.
“번호. 찍어줘.”
그러자 현성이 흔쾌히 그녀의 스마트 폰을 받았다.
곧 현성이 자신의 번호를 찍고, 다시 화연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됐습니다.”
현성의 말에 화연이 자신의 핸드폰에 찍힌 번호를 확인하고는 작게 웃었다.
이걸로 성공적으로 현성의 번호를 획득.
정말이지 스스로 생각해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였다.
그대로 화연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가 현성을 향해 전화를 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좋아. 그럼 말한 대로 나중에 연락할게.”
“알겠습니다.”
“그게 아니면 음…기왕 여기까지 온 거 같이 식사라도 할래?”
화연이 창밖을 흘깃 바라보며 물었다.
이에 현성이 잠시 시간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청화길드에 온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아쉽게도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오늘은 안 되겠네요.”
그 말에 화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 그러니까 공개대련 이후 현성에 대한 정보를 조사해본 결과.
그는 현재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위에 있는 누나라고는 실종.
‘혼자 살고 있는 게 아니었나? 그게 아니면…그 메이드인가.’
화연이 공개대련 날. 마주쳤던 메이드를 떠올렸다.
하얀 머리에 부드러운 미소.
예전 그녀가 알고 있던 사람과 너무나도 비슷했지만, 어딘가 달랐던 그 얼굴.
혹시 몰라 같이 갔던 길드원에게 그 메이드에 대한 조사를 맡겼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든 정보가 전무(全無).
아무리 정보가 없다고 해도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찌릿.
동시에 화연의 오른팔에 있던 흉터를 조용히 움켜쥐었다.
그 상처는 다름 아닌 10년 전 한창 게이트 너머에서 마족과 괴수들이 쏟아지던 시절에 난 상처였다.
이상하게 그 메이드만 생각하면 그때 난 상처가 욱신거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인줄 알았지만, 처음 그때도, 지금도 그런 걸 보니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화연이 오른팔을 움켜쥔 채 미간을 좁혔다.
“…괜찮습니까?”
그대로 현성이 화연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순간 움찔거리며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어? 으, 응? 왜?”
“아뇨. 뭔가 표정이 상당히 굳어 보여서요.”
그런 현성의 대답에 화연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이에 화연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지만 그도 잠시.
화연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별 거 아냐. 그나저나 기다리는 사람이라니. 설마 그때 그 메이드인가?”
화연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란 다름 아닌 수연.
유일하게 현성 그의 가문에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현성이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간만에 아카데미에서 돌아왔다며 오늘 저녁에는 힘 좀 쓰겠다고 했던가.’
수연이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밖에서 저녁을 먹고 가자니 그건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기껏 신경써줬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이에 화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흐음, 그래? 그러고 보니 그 메이드도 마법사 같던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 그게 공개대련 때 떨어지는 츄러스를 잡아줬거든.”
화연이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떨어지는 츄러스 겉에 일렁이던 푸른 기운.
그 기운은 분명 마나였다.
‘그것도 상당히 세밀한 컨트롤이었지.’
그 정도의 마법사가 몰락가문에 남아 있다니.
꽤나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물론 현성 그에 대한 정 때문에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건 왜요?”
그런 현성의 물음에 화연이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 예전에 아는 사람이랑 조금 비슷한 거 같아서.”
그와 동시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예전에 말했듯이 지금 현성 그가 유일하게 모르는 인물이 바로 수연이었다.
그런데 화연이 수연과 아는 사이일수도 있다니.
“그래서 그런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
“….”
“아니 그냥 아는 사람이 맞나 해서 그래.”
그 말에 현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연. 이수연입니다.”
“…그래?”
현성의 대답에 화연이 기억을 더듬는 듯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 잠시 뒤.
화연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었나 보네.”
이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고민하던 그녀를 보고 잠시 기대했지만 결국은 모르는 사이였던 모양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럴 수도 있죠.”
“괜히 시간만 뺏었네. 늦겠다. 이제 갈까?”
그러면서 화연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일어선 그녀가 문을 열어주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방금 말한 것처럼 레이드에 관한 건 결정 나는 대로 연락 줄게.”
“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현성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나섰다.
그렇게 현성이 나가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김 비서가 화연을 향해 달려왔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김 비서가 말하는 건 당연히 현성의 영입에 관한 내용.
그러자 화연이 당당하게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번호 땄어.”
“오….”
“그리고 이번 화이트레이 레이드에도 같이 가기로 했어.”
“…정말요?!”
동시에 김 비서의 표정이 밝아졌다.
번호를 딴 것도 모자라 레이드 참가까지 따내다니.
이에 김 비서가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정도면 상당히 긍정적이군요.”
“아. 근데 이거랑 별개로 하나 더 부탁할 게 있는데 괜찮을까?”
“네? 부탁할거요?”
평소라면 냅다 시켰을 텐데 이렇게 물어보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그대로 김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별건 아니고 이수연이라는 자에 대해서 조사해줄 수 있어?”
“그게 누군데요?”
“현성 군 가문의 메이드. 동시에 마법사.”
예전에도 정보조사를 맡겼었지만 그 결과는 앞서 말했듯이 허탕.
그러나 청화길드 내에서도 정보력에 관해서는 탑을 달리는 김 비서 그녀라면 조금 다를지도 몰랐다.
“흐음….”
마법사라는 단어에 김 비서가 턱을 매만졌다.
그러자 화연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려울까?”
“아뇨. 그 정도야 뭐….”
화연이 말한 일 자체는 딱히 어려운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 의외였다.
무려 저번에 하 가문의 자제가 왔을 때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 게 그녀였다.
그러니까 웬만한 사람한테는 흥미도 없을 텐데 아무리 현성의 가문이라고는 해도 그냥 마법사에 대해 알아봐달라니.
김 비서가 알고 있던 그녀답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무튼 그리 어려운 건 아니지만 왜요?”
“….”
김 비서의 물음에 화연이 현성이 앉아있던 자리를 흘깃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잠깐…확인할게 있어서.”
그런 화연은 확실히 평소의 장난스러운 모습과는 어딘가 달라보였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