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무기 제작(1)
<이스페리아>의 무기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우선 상점에서 파는 기본 무기.
기본 무기는 상점에서 파는 만큼 입수가 쉽다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반대로 희소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리 좋은 성능을 바라기는 어렵다.
‘…그래서 보통 초반에나 쓰고 그 이후로는 잘 안 쓰지.’
이에 따라 스토리가 진행이 될수록, 플레이타임이 길어질수록 플레이어는 상점제 무기가 아닌 다른 무기를 입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게 바로 두 번째.
던전 혹은 퀘스트를 클리어와 같은 특정조건을 충족하여 아이템을 얻는 경우였다.
현재 현성이 가지고 있는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이나 <얼음의 기사 헌리스의 창>이 이쪽에 속한다.
위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2번째 경로를 통해 입수한 아이템은 상점제 무기보다 월등한 성능을 자랑한다.
허나 단점이라고 한다면 그 획득방법이 상당히 까다롭고, 상황에 따라 손을 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티리카의 건틀렛 같은 경우는 성장형 무기라 지금 당장 최고의 포텐셜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고, 헌리스의 창은 그 속성이 한정적이지.’
이러한 이유로 등장한 게 마지막 3번째.
제작이었다.
이는 눈앞의 화연과 같이 특정 마이스터 혹은 공방을 찾아가 직접 의뢰를 넣은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커스텀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현성이 청화길드를 찾아온 가장 큰 이유였다.
다른 클래스라면 몰라도, 현성은 <이스페리아>에 존재하는 유일한 히든 클래스 힘의 마법사.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무기로는 최적의 시너지를 내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따지고 보면 건틀렛이나 창 같은 걸로도 못 싸우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항상 아쉬웠단 말이지.’
티리카의 건틀렛이야 성장형 무기이니 상관없다고 하나 다른 무기들은 달랐다.
결국은 웬만한 무기가 아닌 이상, 무기에 담긴 특수능력으로만 승부를 봐야했다.
크루페돈을 잡았을 때 얼음속성을 이용해 카운터 친 것이 가장 큰 예시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상성에 따른 특수능력 원툴.’
지금껏 현성이 싸워온 방식이 그랬다.
그리고 이런 방법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현성 그가 <이스페리아>의 썩은 물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이런 방법은 아무나 쓰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당장 다음에 어떤 속성의, 어떤 패턴의 몬스터가 등장할지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다 대비할 수 있겠는가.
물론 현성은 그게 가능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지만, 전에 누누이 말했듯이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마족의 등장으로 빨라진 전개.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상성을 타지 않는, 그러니까 현성 그의 시너지를 최고로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무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이 스태프.’
그대로 현성이 설계도 가리키며 화연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혹시 이대로 가능할까요?”
“가능이야 하겠지만….”
화연이 현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는 꽤나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야 수년간 마이스터로 활동해왔지만, 이런 형태의 의뢰는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스태프라고 해서 간단할 줄 알았건만, 이런 무기일 줄이야.’
화연이 피식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화연이 현성이 내민 설계도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폈다.
“어디보자….”
동시에 그녀가 턱을 매만지며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뒤.
화연의 입을 타고 작은 감탄사가 삐져나왔다.
“…호오, 이런 형태라.”
화연이 두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볼 때는 몰랐지만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구조였다.
보통 마법사가 스태프를 쓰는 이유는 마나의 흐름과 마법의 시전을 보다 더 용이하게 도와주기 위함.
그러니까 스태프는 일종의 윤활제 또는 매개체였다.
마도서를 쓰는 마법사 역시 비슷했다.
허나 현성의 스태프 설계도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마나의 전달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스태프 그 자체가 가지는 무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앞서 서술한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마나를 불어넣으면 스태프의 형태가 변하고 그와 함께 마법도 같이 발동한다.
그리고 방금 전 배틀 시뮬레이션 룸에서 보여준 현성의 전투스타일을 고려한다면.
‘…불방망이 그 자체.’
그야말로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이에 화연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이스터로서 이런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크으…!”
현성의 설계도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공학자 특유의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했다.
그대로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길고, 굵직하고, 거기다 뜨겁기까지 한 몽둥이라…후후, 이걸로 상대방을 박살낸다는 건가.”
“물론 맞긴 한데…아니 그…조금 다른 표현으로 써주시면 안될까요?”
현성이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화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왜 맞잖아. 길고, 굵직하고, 뜨거운 거. 마치…!”
“네. 거기까지.”
그와 동시에 현성이 재빨리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런 현성의 말에 화연의 눈이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휘어지더니.
그대로 턱을 괸 채 현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흐응…왜 그럴까아?”
“…됐습니다.”
그 모습에 현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알고 그러는 거다. 백퍼센트 알고 말하는 거다.
그러니 휘말리지 말도록 하자.
“아무튼 그래서 제작 가능하겠습니까?”
곧바로 현성이 자연스럽게 설계도를 가리키며 화제를 돌렸다.
“글쎄. 만드는 건 문제 없을 테지만….”
화연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럼 혹시 설계도상에서 더 추가할거나 수정해야할 점은 없나요?”
“응? 아냐, 설계도는 거의 완벽해. 누가 짜준 건지는 몰라도 상당히 잘 만들었네.”
그런 화연의 말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
그러자 화연이 설마 하는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화연이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잠깐. 그렇다면…이게 니가 직접 만든 거라고?”
“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화연이 설계도와 그를 번갈아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어….”
이만한 수준이면 거의 웬만한 공방의 마이스터 수준이었다.
실제로 현성은 과거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하며,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클래스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이번 설계도를 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험 덕분.
‘…워낙 급하게 만들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잘 됐나보군.’
현성이 놀란 화연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가 설계도를 만든 것은 불과 어젯밤.
만약 화연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안 그래도 놀라운데 더더욱 놀랐을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 없겠군.’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 않는 그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첫 만남부터 배틀 시뮬레이션은 물론 설계도까지 신선함의 연속이었다.
전투센스뿐만 아니라 마이스터 계열에서도 두각을 보이다니.
‘아카데미 학생이고 자시고를 떠나, 겨우 10대에 불과한 녀석이 이 정도라니.’
동시에 기대되었다.
미래의 현성이 어떤 모습일지.
그런 그를 청화길드에 영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이득일지.
‘…절대 놓칠 수 없어.’
김 비서의 말마따나 현성 그는 청화길드에게 있어 놓칠 수 없는 원석, 아니 이미 가공된 보석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런 보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기 의뢰를 성공적으로 끝내는 게 우선이었다.
“그럼 일단은 필요한 재료가 남아있을지는 확인해볼게.”
그대로 그녀가 손가락을 퉁겼다.
-따악.
그러자 화연이 차고 있던 스마트 워치를 타고 홀로그램 창 하나가 떠올랐다.
그대로 그녀는 스크롤을 밑으로 내리며 남은 자재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얼마 지나지 않아 화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히 필요한 기본재료들은 어느 정도 다 남아있네. 이 정도 재료면 틀 정도는 당장 지금도 만들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도 잠시.
뭔가 발견한 화연이 미간을 좁혔다.
곧바로 그녀가 스크롤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가장 필요한 핵심재료가 몇 개 빠져있네.”
이어서 화연이 다시 스크롤을 내렸다.
우선 이곳이 청화길드인 만큼 평소에도 많은 의뢰가 들어올 터.
그에 따라 스태프 제작에 필요한 웬만한 재료들은 전부 창고에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태프의 구동에 있어, 코어가 되는 재료는 말이 달랐다.
코어가 되는 재료는 주로 사용자의 마법속성과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거기다 맞춤무기라면 더더욱 그랬다.
“어디보자…필요한 재료가….”
그렇게 화연이 현성이 의뢰한 무기의 핵심소재를 확인하려는 찰나였다.
그녀가 소재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무기의 핵심소재.
보통 이 소재를 얻는 방법은 던전에서만 자라는 특수한 광물이라거나 몬스터의 부산물이 주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현성의 무기에 필요한 소재는 후자.
즉 몬스터의 부산물이었다.
그리고 현재 화연이 바라보고 있는 창에는 시리도록 하얀 비늘을 가진 용족.
그러니까 화이트레이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그렇다.
현성의 무기에 필요한 재료는 다름 아닌 화이트레이의 비늘과 심장.
동시에 이를 확인한 순간.
화연이 오늘 현성을 만나기 전, 김 비서가 그녀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이번에 청화길드를 비롯한 여러 길드에서 레이드를 계획 중이며, 그 몬스터의 이름은 바로.
‘화이트레이…!’
안 그래도 마침 화이트레이 레이드를 앞두고, 청화길드에서는 과연 누구를 보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랐을 때.
어느새 화연의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여차하면 나 혼자 갈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대로 화연이 눈앞에 있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이에 현성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왜 그러시죠?”
그런 현성의 물음에 화연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현성 군. 혹시 나랑 같이 레이드 갈 생각 있어?”
그렇게 말하는 화연의 눈은 지금껏 본적 없을 만큼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최적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무기재료를 얻을 수 있으니 명분은 충분했다.
아니 차라리 잘되었다.
요컨대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이렇게 고리타분하고 따분하게 회의실에 앉아 길드영입이야기를 꺼내는 것보다는, 아예 같이 레이드를 참가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게 훨씬 좋았다.
“…레이드 말입니까?”
그 말에 현성이 홀로그램 창을 흘깃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 레이드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머지않아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필요한 재료가 거기 있나보군요.”
“역시 눈치가 빠르네.”
그대로 화연이 홀로그램 창을 가리켰다.
“필요한 건 화이트레이의 부산물인데 운이 좋았어. 마침 이번에 우리 청화와 다른 길드가 참가하는 토벌 몬스터가 있는데 그게….”
“화이트레이라는 거군요.”
“바로 그거지.”
이에 화연이 반짝이는 눈으로 현성을 주시하며 말했다.
“자, 그럼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될 거 같은데 어때? 같이 갈래? 아니 같이 가자!”
그런 화연은 한 눈에 봐도 상당히 들떠있었다.
그도 그럴게 이번에는 배틀 시뮬레이션처럼 가상이 아닌, 현성의 실제 전투를 두 눈앞에서 지켜볼 찬스였다.
‘아무리 배틀 시뮬레이션 룸이 기술이 좋다고 해도 역시 직접 보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지!’
그 말에 현성이 턱을 매만졌다.
“레이드라….”
어차피 무기제작을 위해서라면 화이트레이를 잡아야한다.
그런 입장에서 당연하게도 현성 그 혼자 화이트레이를 잡는 것보다는 같이 잡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거기다 무려 청화길드와 같이 잡는다?
‘…개꿀.’
꿀도 이만큼 달달한 꿀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꿀을 빨아보겠는가.
곧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대답했다.
“좋습니다.”
동시에 화연의 입가를 타고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정말!?”
그 모습을 보고 현성이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참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청화의 부길드장. 진화연.
그녀는 자신이 흥미를 가진 대상에 관해서는 그 감정을 감추는 일이 없었다.
“그럼 혹시 레이드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현성이 화연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곧바로 홀로그램 창을 펼치며 말했다.
“물론이지! 아, 그럼 이참에 레이드에 참가하기로 한 길드명단을 같이 보면 되겠다.”
“…아직 안보셨나요?”
-움찔.
그 말에 화연이 멈칫거렸다.
그대로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어, 어쩌다보니?”
하지만 그도 잠시.
화연이 그 정도는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에이, 문제없어. 아무튼 명단이…아, 여기 있다.”
그와 함께 화연이 명단이 적힌 홀로그램 창을 현성에게 보여줬다.
이에 현성이 명단을 훑어봤다.
명단에는 대충 청화를 포함한 여러 네임드 길드가 적혀있었다.
“음, 이 정도면….”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미간을 좁히며 명단을 주시했다.
그 모습에 화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왜 그래?”
그대로 현성의 눈이 흥미롭게 물들었다.
설마하니 여기서 이 녀석을 만나게 될 줄이야.
동시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잠깐 아는 사람을 발견해서요.”
“아는 사람? 누구?”
허리까지 오는 긴 백발.
무엇보다 마치 시연을 연상케 하는 무표정.
현성이 명단에 올라있는 한 소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네요.”
그녀의 이름은 다름 아닌 하연서.
하 가문의 또 다른 자식이자,
<이스페리아>의 히로인 하시연, 그녀의 여동생이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