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청화길드(5)
“….”
김 비서는 도대체 자신이 등을 돌린 그 짧은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2번의 폭발음이 들렸고,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는 것 뿐.
그 이후는 지금 보는 대로 쓰러진 블머드 비틀 뿐이었다.
과정이 사라진 결과.
이에 김 비서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그 말에 화연이 창 하나를 띄우며 말했다.
“…직접 확인해볼래?”
그 창은 다름 아닌 방금 전 현성의 전투가 녹화된 영상.
그대로 김 비서가 아무 말 없이 떠오른 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녹화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처음은 블머드 비틀과 대치하고 있는 현성이었다.
이에 김 비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분명 여기까지는 기억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제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장면이 나올 차례.
곧바로 현성이 블머드 비틀을 향해 돌진했다.
-쉬익!
동시에 달려오는 현성을 발견한 블머드 비틀이 몸을 움츠리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블머드 비틀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보통 공격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갑각을 뚫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현성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마치 블머드 비틀이 그렇게 나올 것임을 예상이라도 한 웃음.
그 이후로 펼쳐진 장면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화르륵!
피어오르는 불꽃.
분명 마법의 흔적이었다.
허나 그 근원지는 다름 아닌 현성의 발끝.
“…발끝?!”
그 모습에 김 비서가 미간을 좁혔다.
그동안 수십, 수백의 마법사를 봐왔지만 저런 식으로 마법이 발현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확실히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
‘이게 화연님이 말했던 체술을 쓰는 마법사?’
역시나 괜히 화연이 관심을 가진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걸로는 모자랐다.
분명 신기한 장면이었지만, 그 정도의 마법으로는 블머드 비틀의 갑각을 뚫을 수는 없었다.
“아니. 자세히 봐봐.”
그때였다.
화연이 김 비서의 속을 꿰뚫기라도 한 것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그대로 현성이 발을 내질렀다.
-파앗!
그런 그의 발끝이 향한 곳은 블머드 비틀이 아닌, 바로 블머드 비틀이 딛고 있는 바닥이었다.
곧이어 현성의 발을 휘감은 불꽃이 폭발했다.
-콰아아앙!
이게 바로 김 비서가 들었던 첫 번째 폭음의 정체.
그와 동시에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블머드 비틀의 몸이 단번에 뒤집혔다.
그러면서 보인 블머드 비틀의 배.
“자, 여기서 정지.”
그러기 무섭게 화연이 영상을 정지시켰다.
“…!”
그 모습에 김 비서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김 비서 그녀는 어디까지나 사무직.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길드원들처럼 현장에서 몬스터를 사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서포트하면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사무직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몬스터의 약점과 공략 법은 전부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블머드 비틀 역시 마찬가지.
블머드 비틀의 공략 법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우선 첫 번째는 한 점을 향해 최대한 강한 공격을 집중시켜, 갑각을 박살내는 법.
또한 두 번째는 다름 아닌.
‘…배를 노리는 것.’
블머드 비틀의 배는 겉을 감싸고 있는 검은 갑각과는 반대로 전혀 단단하지 않았다.
여러 번 공격을 해야 하는 갑각과는 다르게 배는 손으로 누르면 들어갈 정도로 부드러웠다.
즉 이러한 사실을 종합했을 때.
블머드 비틀의 약점은 다름 아닌 배였다.
‘그래서 배만 공격할 수 있다면 블머드 비틀의 공략난이도는 급격하게 쉬워진다.’
하지만 이 공략법은 경험이 쌓인 베테랑 헌터들이 아니면 쉽게 해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블머드 비틀 자체가 그리 흔한 몬스터도 아니고, 약점을 알고 있다고 한들 한 번에 블머드 비틀을 뒤집기 위해서는 순간의 빠른 찰나를 노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의 현성이라는 학생이 그걸 해냈다.
그것도 선공 단 한 번에 말이다.
그 모습에 영상을 지켜보던 다른 길드원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캬, 진짜 다시 봐도 깔끔하다니까.”
“저 정도면 거의 현직 헌터급 아니냐?”
“에이, 현직 헌터들 중에서도 한 번에 할 수 있는 얘들은 흔치 않아.”
실제로 현장을 뛰고 있는 현진 헌터들도 현성만큼 깔끔하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물론 청화길드라면 가능한 자들이 있었다.
당장 옆에 있는 화연도 그랬다.
“그동안 불러온 얘들은 하나같이 저걸 못해서 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아?”
화연이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듯 후련하게 말했다.
허나 누누이 말하지만 이건 그녀가 규격 외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어려운 게 당연했다.
“….”
그 말에 김 비서가 아무 말 없이 현성을 주시했다.
그녀는 그동안 옆에서 쭉 화연을 지켜봐왔기 때문에 지금 와서 이런 화연의 발언이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성은 달랐다.
‘겨우 아카데미 학생에 불과한 소년이 이걸 해내다니….’
김 비서가 정지된 화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현성 그는 지금껏 테스트를 봤던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에 화연이 김 비서를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어때? 흥미가 좀 가지?”
“…예, 확실히 그러네요.”
“근데 놀라기는 아직 일러.”
그러면서 화연이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다.
방금 전 폭발의 충격으로 배를 보인 블머드 비틀.
그대로 현성이 히죽 웃으며 주먹을 당겼다.
-화르륵!
동시에 그런 그의 주먹을 타고 넘실거리는 붉은 화염.
그렇다면 그 다음은 정해져있었다.
현성이 배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기 무섭게 불꽃이 사방으로 터져 나오며 폭발했다.
-콰아아앙!
영상을 타고 흘러나오는 폭발음과 연기만으로도 그 충격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이게 김 비서가 들은 2번째 충격음.
그리고 그 뒤는 김 비서가 본 그대로였다.
-쿠웅!
힘없이 무너지는 블머드 비틀의 몸과 남은 불씨를 털어내는 현성.
그렇게 영상이 끝났다.
무엇보다 영상의 길이는 채 1분이 되지 않았다.
“정확히 47초.”
공식 라이센스의 기준대로라면 47초면 가장 높은 등급인 S랭크.
이 말은 곧 현성 그가 지금당장 라이센스에 도전해도 S랭크로 통과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라이센스에 관한 것.
마나량 측정이라거나 다른 시험들까지 포함한 테스트는 아니었기 때문에 총 랭크가 S라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이것만 하더라도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아카데미 학생이 라이센스 테스트에서 S랭크라고?’
그건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기록은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자, 데일런트 사건을 포함해 저번 불의 둥지 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주목받는 하시연이라고 할지라도 불가능한 기록이었다.
물론 사실은 그 데일런트 사건과 불의 둥지 사건을 해결한 사람이 눈앞의 현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충격적인 테스트가 지나간 뒤.
“…어때?”
그대로 화연이 김 비서와 다른 길드원들을 번갈아보며 작게 웃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아?”
그러자 김 비서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이건…괜찮은 정도가 아니죠. 무조건 저희 길드에 영입시켜야 할 대상입니다!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자칫하다 다른 길드에게 빼앗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말하는 김 비서는 지금껏 보여준 차분한 모습과는 다르게 꽤나 격양되어 있었다.
그만큼 현성이 보여준 전투는 대단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다른 길드원들 역시 한마디씩 거들었다.
“김 비서님의 말이 맞습니다. 저 정도면 키울 맛나겠는데요?”
“아니 애초에 이미 완성형 아닙니까?”
“화연님은 어디서 저런 괴물을 데려온 겁니까?”
그 말에 화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우쭐거렸다.
“아, 글쎄 공개대련 때 내 눈에 보이는 게 쟤 밖에 없더라니까. 이럴 때 길드장님이 있어야 되는데 아쉽구만.”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곧바로 김 비서가 화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뭐를?”
“어떻게 영입할거냐고요!”
“그, 그거라면….”
화연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더듬었다.
물론 현성이 가진 고민을 해결하고 대충 멋있는 대사를 때릴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녀가 그렇듯 자세한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일단 그래도 우리 길드에 온 것부터가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는 소리는 아닐까?”
그런 화연의 답변에 김 비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그렇지.
당연히 아무런 계획이 없을 줄 알았다.
물론 화연이 천재는 맞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결국 먼저 나서는 건 항상 김 비서였다.
“좋아요. 그럼 우선 현성 군은 무기의뢰를 하러왔다고 했죠? 그걸 먼저 들어주면서 그림을 그려봅시다. 자세한 계획은 그 다음부터 하는 걸로 하죠.”
“….”
“알겠죠?”
이에 화연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 오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아직 배틀 시뮬레이션 룸에 있던 현성이 기다리다 못해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나가도 됩니까?”
그런 현성의 말에 김 비서가 마이크를 낚아채고 말했다.
“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혹시 불편한건 없으신가요?”
“예, 뭐 딱히….”
“그럼 무기의뢰이야기를 진행해볼까요? 바로 회의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곧바로 김 비서가 화연을 향해 눈빛을 보내며 현성을 가리켰다.
‘잘해라.’라는 무언의 말이 담긴 눈빛.
그와 동시에 화연이 후다닥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그럼 일단 날 따라올래?”
그대로 화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뒤.
안쪽에 위치한 청화길드의 회의실.
“이쪽으로.”
화연이 회의실의 문을 열며 현성을 안내했다.
그러자 곧 회의실의 내부가 한 눈에 들어왔다.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딱 적절한 밝기의 조명.
검은색과 하얀색이 적절하게 섞인 회의실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거기다 한쪽 벽면에 깔린 통유리까지.
“…좋은 곳이네요.”
현성이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에 화연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우리 청화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마음에 드네요.”
그 말에 화연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 비서가 그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 봤다.
그만큼 현성이란 존재는 청화길드에서 놓칠 수 없는 인재.
‘…일단 지금까지 분위기는 괜찮아.’
그대로 화연과 현성이 자리에 앉고.
곧바로 현성이 화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무기의뢰 말인데요.”
“아, 그래. 무기의뢰. 어떤 무기를 의뢰하고 싶어서 왔지?”
그런 화연의 반응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분명 방금 전에는 아무한테나 무기를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했지 않나요?”
그와 동시에 화연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화연이 싱긋 웃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야 그렇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이야기정도는 들어줘도 될 거 같아서 말이야.”
이에 현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보나마나 배틀 시뮬레이션의 결과 때문에 이러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현성 그가 원했던 결과.
<이스페리아>의 주인공 유진이 처음 청화길드를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배틀 시뮬레이션에서 보란 듯이 활약하고, 그 모습을 본 김 비서는 화연에게 꼭 영입해야한다며 신신당부한다.
‘여기서 지금 화연의 반응을 보아하니….’
계획이 제대로 먹혀든 모양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렇다면 이제 무기의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차례.
“그래서 어떤 무기를 의뢰하고 싶어서 찾아왔지?”
마침 타이밍 좋게 화연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에 현성이 기다렸다는 듯 싱긋 웃으며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네, 안 그래도 대략적인 설계도를 미리 준비해왔는데 한 번 봐주실래요? 무기의 종류는 스태프입니다.”
“오, 그래. 스태프라.”
확실히 마법사다운 무기였다.
그리고 화연은 스태프라면 이미 수백 번이나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다.
‘스태프 정도라면 문제없겠군.’
화연이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에게 곧 닥쳐올 미래를.
“여기. 설계도입니다.”
그러면서 현성이 준비한 설계도를 화연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설계도를 확인한 화연이 흠칫거렸다.
“분명 방금 스태프라고….”
그대로 화연이 현성과 설계도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이건 도대체….”
현성이 보여준 설계도.
그것은 스태프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고, 또 너무 굵직했다.
마치 하나의 메이스 혹은 망치 따위의 둔기를 연상케 하는 모습.
“…그래서 이게 스태프라고?”
화연이 현성에게 되물었다.
만약 이게 스태프라면 머리에 맞으면 최소 기절이었다.
그러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스태프입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