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화 청화길드(4)
테스트를 위해 현성이 이동한 곳은 청화 길드의 건물 안에 위치한 트레이닝 룸.
그곳에는 이미 여러 청화 길드원들이 저마다 훈련을 하고 있었다.
곧 화연이 자연스럽게 현성의 뒤에서 등장하며 트레이닝 룸을 가리켰다.
“여기가 바로 우리 청화의 트레이닝 룸. 아카데미에서도 이런 시설이 있다고 들었으니 아마 꽤 익숙할 거야. 그렇지?”
화연이 현성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트레이닝 룸을 둘러보았다.
“네. 확실히 꽤 비슷하네요.”
전체적인 구조 자체는 아카데미에 있는 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눈에 봐도 꽤나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최신시설들과 보다 효율적인 훈련을 위한 장비들.
거기다 트레이닝 룸 한쪽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공간.
“…특히 이게 제일 익숙하네요.”
그것은 분명 배틀 시뮬레이션 룸.
아카데미에서도 본 적 있는 기구였다.
그런 현성의 말에 화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역시 아카데미가 많이 투자하긴 한 모양이네. 배틀 시뮬레이션 룸도 따로 있고 말이야. 아무튼 그럼 익숙하다니 다행이네.”
“그렇다면 그 말은….”
화연의 말에 뭔가 눈치 챈 현성이 배틀 시뮬레이션 룸과 화연을 번갈아보며 대답했다.
“방금 말한 테스트는 이걸로 진행할 생각이신가보군요.”
한 박자 빠른 현성의 대답.
이에 화연이 싱긋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정답이야. 그럼 별다른 설명 없이 진행해도 되겠지?”
화연이 사전에 계획한 테스트란 배틀 시뮬레이션 룸.
실제로 이는 현직으로 뛰는 헌터들 사이에서도 많이 쓰이는 방법이었다.
공식 라이센스의 기준에 따른 몬스터를 설정한 뒤.
클리어 시간을 토대로 합격과 불합격을 정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등급을 매기는 방식.
그리고 그런 화연의 말에 주변에 있던 길드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길드원들이 화연과 현성을 번갈아보고는 저마다 한 마디씩 말했다.
“부길드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테스트하시려는 모양인데?”
“오, 그럼 신입인가보네.”
안 그래도 공개대련 때 스카우트를 나간 이후로 별다른 일이 없던 찰나에 갑작스레 발생한 이벤트.
이에 길드원들이 꽤나 흥미로운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들 역시 처음 청화길드에 들어올 당시, 전부 한 번씩은 배틀 시뮬레이션을 거쳤던 사람들.
그렇기에 더더욱 흥미가 갈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한 눈에 보아하니 눈앞의 소년은 아카데미 생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아마 사전영입을 계획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실제 정식영입보다는 그 허들이 높지는 않을 터.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청화길드의 기준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명색의 한국 최고의 길드인데 아무나 들어올 수는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런 만큼 그 기준 역시 상향평준화 되어있었다.
덕분에 이번 관건은 눈앞의 소년이 과연 그 기준을 넘을 수 있을까 없을까에 대한 것.
“…어디에 걸래?”
이에 길드원들이 하나 둘씩 눈을 반짝이며 자연스럽게 내기를 시작했다.
동시에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정해지는 금액.
“큰 거 5장부터 시작.”
“그럼 난 통과한다에 7장 건다. 보아하니 부길드장님이 직접 데려온 모양인데 그 정도는 하겠지.”
“아니 난 반대다. 우리 청화가 괜히 청화인줄 알아? 저런 녀석들은 매해 질리도록 봐왔잖아. 그러니까 난 떨어진다에 9장 건다.”
그리고 그런 길드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 비서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미간을 매만졌다.
‘…길드장님, 저희 청화의 미래는 이대로 괜찮을 걸까요.’
하필 길드장님이 외근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통탄스럽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화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
그와 동시에 화연이 길드원들 향해 외쳤다.
“그럼 난 화끈하게 20장 건다!”
“에이, 화연님이 거는 건 무효죠.”
“관계자(?)는 빠지세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게 한국 최고의 길드라고 불리는 청화길드의 일상.
김 비서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옆에 있던 현성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말이지 오늘따라 사과할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현성 군.”
그런 김 비서의 말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분위기 좋네요.”
그대로 현성이 화연을 비롯한 다른 길드원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럼 만약에 제가 테스트에 통과하면 얼마까지 받을 수 있습니까?”
차라리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게다가 이런 판이 깔렸다면 어울려주는 게 인지상정.
‘뭐 이렇게 된 김에 용돈이나 챙겨가지.’
현성이 히죽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
현성의 말과 동시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연과 길드원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 화연님, 이 녀석 꽤 재미있는데요?”
“그렇지? 글쎄 괜히 내가 데려온 게 아니라니까.”
이어서 화연이 현성을 바라보며 배틀 시뮬레이션 룸을 가리켰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테스트를 시작해볼까?”
“좋습니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와 함께 곧바로 현성이 배틀 시뮬레이션 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잠시 뒤.
배틀 시뮬레이션 안쪽.
현성이 가볍게 몸을 풀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내부는 역시 아카데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준비됐어?”
위쪽을 타고 화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에서는 화연과 길드원들이 모두 배틀 시뮬레이선 룸에 있는 현성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에 몸을 풀던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준비됐습니다.”
“좋아.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동시에 현성의 주변에 있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아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컴컴한 어둠은 어느새 마치 대련장을 연상케 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그 공간 중앙에 있는 커다란 딱정벌레.
딱정벌레가 입을 딱딱 거리며 현성 앞에 마주고하고 있었다.
“실전용은 아카데미랑 조금 다를 거야.”
그대로 화연이 기대되는 눈빛으로 현성을 주시했다.
[키르르륵….]
눈앞에 등장한 커다란 딱정벌레.
저 몬스터는 일명 블머드 비틀.
그리고 블머드 비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 갑각.
이 갑각은 웬만한 충격으로는 절대 박살나지 않는다.
덕분에 방어구를 만드는 재료로도 많이 쓰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물리공격은 물론 마법공격까지 버티는 내구성.
그 방어를 뚫기 위해서는 보통 공격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와 함께 현성을 지켜보던 길드원들이 화연과 블머드 비틀을 번갈아보았다.
“잠깐, 블머드 비틀? 그렇다면 설마….”
“공식 라이센스 기준으로 할 셈입니까?”
그 말에 화연이 작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어때. 청화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지만 공식 라이센스는….”
공식 라이센스.
헌터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자격증으로, 그 기준은 당연히 기존의 헌터에게 맞춰져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현성은 아카데미 학생.
그렇기 때문에 공식 라이센스 기준이 아닌, 한 단계 기준을 낮출 줄 알았다,
그런데 공식 라이센스라니.
거기다 그 상대 몬스트는 블머드 비틀.
공식 라이센스는 보통 A급 몬스터 중 랜덤하게 나온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게 목적이었으며, 그 시간에 따라 등급이 갈린다.
그리고 블머드 비틀은 수치상 헌터랭크 A에 속하는 몬스터였지만, A급 몬스터 중에서도 헌터들이 가장 기피하는 몬스터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단단한 갑각 때문.
갑각을 깨부수고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는 정확한 타점과 강한 공격이 동반되었다.
덕분에 헌터들 사이에서도 라이센스 몬스터로 블머드 비틀이 나오면 그 시험은 공쳤다고 보기도 하였다.
이에 길드원들 사이에서는 곳곳에서 혀를 차는 등 안타까운 반응이 삐져나왔다.
“쯧, 하필 걸려도….”
“거 참. 괜히 통과한다에 걸었네.”
“상대는 부길드장님인걸 잠시 까먹고 있었어….”
보는 바와 같이 대부분은 현성 그가 테스트에 탈락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현직 헌터들도 까다로워하는 몬스터였다.
그런데 하물며 아카데미 학생이 블머드 비틀을 상대해야한다니.
이미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성 군에게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요.”
화연의 옆에 있던 김 비서가 말했다.
“응?”
“근데 하필 블머드 비틀이라니. 너무 어려운 거 아닙니까?”
하지만 화연은 그런 김 비서의 말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관심 있으니까 이렇게 한 거지.”
그렇게 말하는 화연의 눈빛은 기대감에 가득 차있었다.
이에 김 비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화연의 문제였다.
화연은 평소 행실은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엄연히 청화길드의 부길드장이자, 탑급에 드는 마이스터.
그만큼 그녀는 천재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며,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관점 자체가 달랐다.
일반인의 경우, 너무도 풀기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화연 그녀가 보기에는 도저히 왜 못 푸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지금 블머드 비틀이 바로 이 상황.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화연에게 있어서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그야말로 뒤틀린 애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니까 사전 영입한 학생이 없지.’
다른 길드의 경우.
아카데미의 공개대련이 있던 이후, 이미 여기저기서 눈 여겨 봤던 학생들을 영입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실제로 이번에 레이드에 같이 참가하는 길드들도 그랬다.
‘그런데 우리는…이번에도 글렀구만.’
김 비서가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괜찮은 학생을 데려와 봤자 항상 같은 결과였다.
테스트라는 명목으로 화연의 뒤틀린 애정을 버티지 못해 전부 탈락.
그래도 이번에는 혹시 몰라 기대했지만, 아무래도 결과는 같은 모양이었다.
그대로 김 비서가 작게 혀를 차며 등을 돌렸다.
더 이상 볼 이유는 없을 거 같았다.
“쯧….”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돌연 배틀 시뮬레이션 룸을 타고 커다란 폭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이에 김 비서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붉은 불꽃이 블머드 비틀을 집어삼킨 모습이었다.
총 2번의 폭발음.
그와 함께 치솟은 불꽃.
‘…마법인가?!’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김 비서가 곧바로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알다시피 블머드 비틀의 갑각은 웬만한 공격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것은 마법도 마찬가지.
확실히 꽤나 강해보이는 위력의 화염마법이었지만, 블머드 비틀의 갑각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벌레라면 화염속성에 약한 게 보통. 허나 블머드 비틀은 예외지.’
이에 다른 길드원 역시 아쉽다는 눈빛으로 배틀 시뮬레이션 룸을 주시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천천히 연기가 걷히고.
김 비서가 화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화연님, 제가 뭐랬습니까. 이건 안 된다니까….”
그때, 김 비서는 똑똑히 보았다.
지금껏 다른 테스트와는 다르게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화연의 미소.
그 미소에 김 비서가 미간을 좁혔다.
“…화연님?”
“내가 뭐랬어.”
“예?”
그대로 화연이 희열에 찬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동시에 치솟은 흙먼지 사이에서 육중한 소리가 삐져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다름 아닌.
-쿠웅!
싸늘하게 바닥에 쓰러진 블머드 비틀이었다.
연기가 걷힌 배틀 시뮬레이션 룸.
그 중앙에 있는 것은 오직 유현성.
그대로 그가 손에 남은 불씨를 털어내며 흘깃 화연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끝인가요?”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