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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97화 (97/240)

097화 청화길드(2)

아카데미에 찾아온 주말.

이때 다른 학생들은 보통 기숙사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기 마련.

그리고 그건 현성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말이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현재 현성이 있는 곳은 그의 본가.

그러니까 수연과 단 둘이 살던 집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긴 웬일이에요? 갑자기 집으로 다 돌아온다고 하시고.”

현성의 방 안.

수연이 과일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에 현성이 사과를 하나 집으며 대답했다.

“아. 별건 아니고 잠시 할 일이 있어서.”

“흐음, 그래요?”

그의 대답에 수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수연이 현성의 팔을 붙잡고 모니터를 가리켰다.

“아무튼 그건 알겠으니까 빨리 확인이나 해봐요!”

그러자 현성이 그런 수연을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다니까….”

현성이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직후.

수연의 관심사는 온통 아카데미의 성적에 쏠려있었다.

과연 퇴학위기는 면했을지, 나머지 성적은 어떻게 나왔는지.

덕분에 현성은 원래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모니터를 킬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잠시 뒤.

현성의 옆에 서있던 수연이 눈을 크게 뜨며 모니터를 가리켰다.

“도련님! 이거 봐요!”

그런 모니터에는 현성의 대련과 시험결과를 비롯한 성적이 띄워져있었다.

그리고 그의 성적은 놀랍게도 A의 연속.

불과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수많은 F가 그를 반긴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믿고 있었다니까요!”

이에 수연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뒤에서 현성을 껴안은 채,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하지만 현성의 표정은 수연과는 달리 기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

“…도련님?”

그 모습에 수연이 현성과 모니터를 번갈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생각보다 별로 안 기뻐 보이시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응? 아냐. 당연히 기쁘지.”

그 말에 현성이 고개를 저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물론 성적이 오른 것은 확실히 기쁠 일이었다.

가장 우려하던 퇴학위기에서 벗어났으니 말이다.

허나 지금의 현성에게는 그것보다 더욱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레이첼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의 의미하는 바는 곧 <이스페리아>의 전개의 변경.

무엇보다 현성 그가 아카데미에서 집으로 돌아온 이유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기뻐하는 수연을 흘깃 바라보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그때의 결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현성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본디 불의 둥지에서 크루페돈의 봉인을 푼 것은 레이첼.

‘그런데 레이첼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결국은 그녀가 아닌 제 3자가 크루페돈의 봉인을 풀었다는 건데….’

그렇다면 중요한 건 도대체 그 제 3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짐작 가는 게 있었다.

누누이 말했지만 <이스페리아>의 큰 스토리의 뼈대는 마족을 막아내는 것.

그에 따라 이런 짓을 할 만 한 세력은 마족들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토리의 전개상.

본격적으로 마족이 활동하는 것은 지금보다 미래의 일.

‘…벌써부터 마족이 등장할 순서는 아니라는 거지.’

허나 그 순서가 앞당겨졌다.

덕분에 현성은 자신이 세웠던 계획의 일부를 수정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턱을 매만졌다.

‘그나마 다행인건 아직 스토리의 큰 줄기는 그대로라는 사실.’

처음 변경 점을 알아차리고 현성이 도출한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만약 스토리의 큰 줄기자체가 바뀌었다면, 그 이후에 레이첼 에피소드 역시 바뀌어야함이 당연했다.

그러나 레이첼 에피소드는 크게 바뀐 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현성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스페리아>의 전개가 바뀐 것은 맞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바뀌었다기보다는 ‘일부 전개’가 앞당겨졌다는 말이 더욱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빠르든 늦든 결국 마족이 움직일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성의 목표는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마족을 막아내고 해피엔딩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현성의 변하지 않는 목표였다.

동시에 이 상황에서 현성이 내릴 결론은 간단했다.

‘마족이 예정보다 빨리 움직였다면, 나 역시 그만큼 빨리 움직이면 그만.’

현성 그가 누군가.

<이스페리아>의 설정과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는 고인물.

그런 그에게 있어, 그 정도 속도를 조절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만큼 조금 더 빡세게 달려야하긴 하겠다만…,’

꼼짝없이 배드엔딩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았다.

이에 현성은 아카데미에서 이곳에 오기 전.

밤새 계획을 수정하기 시작했으며, 그 첫 목표는 바로 전력의 상승이었다.

‘만약 전개속도가 그대로였다면 지금의 전력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이지.’

물론 지금은 괜찮지만 후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는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막말로 마족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상황에 내일이라도 현성이 마족과 맞닥트린다면 현성이 이길 가능성은 상당히 적었다.

‘아니 차라리 지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자칫해서 몸을 뺏기기라도 해봐.’

그건 그대로 게임오버나 다름이 없었다.

예전에 말했지만 유현성이라는 캐릭터에게 부여된 운명은 마족에게 몸을 빼앗기는 것.

그리고 <이스페리아>의 전개속도가 달라진 지금, 그 운명이 달라졌다고 확신하는 것은 너무 일렀다.

그렇다면 전력의 상승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단순히 강해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닥치고 몬스터를 잡는다거나, 던전을 주구장창 클리어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마디로 시간대비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짧은 시간에,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즉, 단시간 내에 고효율을 뽑는 극한의 이득.

그에 따라 현성이 준비한 방법은 바로.

“그나저나 수연. 오늘 청화길드에서 따로 연락 온 건 없었지?”

청화길드였다.

동시에 그가 집으로 돌아온 이유 역시 이것이었다.

그런 현성의 말에 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별다른 말은 없었어요. 아마 무기의뢰를 한다고 했었나요?”

“응. 맞아.”

그대로 현성이 품속에서 명함하나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 명함은 다름 아닌 예전 공개대련이 끝나고 청화길드의 부길드장 진화연에게서 직접 받은 명함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청화길드와 접촉하는 건 좀 더 나중으로 미루려고 했건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현성은 오늘 당장 청화길드와 접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방금 수연이 말했듯 무기의뢰.

‘역시 단시간 내에 강해지기 위해서는 이것만한 게 없지.’

현성이 명함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본디 모든 게임이 그렇듯,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컨트롤, 그러니까 손이었다.

FPS게임에서 단번에 헤드를 겨냥하는 에임이 있듯이, RPG게임에서는 몬스터의 패턴을 파악하고, 반격하는 공격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런 축복받은 컨트롤은 그리 흔한 게 아니었다.

물론 이 컨트롤은 노력으로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과 센스가 있어야하기 때문에 쉬운 방법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그중에서도 특히 RPG게임에서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준비한 게 있었다.

‘…그게 바로 템빨.’

템빨.

손이 안 되면 그만큼 강한 무기로 때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이 ‘템빨’은 <이스페리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강화라던가 아이템의 등급에 따른 보정치.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데미지의 기댓값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과거 현성 역시 그랬다.

‘내가 그 망할 데미지 앞자리 한번 바꿔보겠다고 얼마나 뺑이쳤는데.’

강화재료와 특정소재를 얻기 위해 던전을 돌고, 보스를 잡는 노가다의 연속.

이것이 바로 RPG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유구한 전통이자 플레이어를 미치게 하는 광기의 현장이었다.

다행히도 현재 현성은 아이템 중에서도 가장 등급이 높은 무려 신화급 아이템.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걸로는 모자랐다.

티리카의 건틀렛은 성장형 무기.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는 건 어느 정도 스펙이 맞춰진 이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얼음의 기사 헌리스의 창’ 역시도 비슷했다.

유니크 등급을 자랑하는 무기인 만큼 좋은 무기임은 확실했지만, 상황에 따라 제한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가령 얼음속성의 몬스터에게는 좋은 무기가 아니라던가.’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현성의 클래스는 힘의 마법사.

그런데 마법사가 창을 쓴다니.

그가 힘법사+썩은 물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다른 플레이어가 이를 습득했다면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요지는 좀 더 내가 맞는, 적절한 맞춤 무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런 현성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청화길드였다.

청화길드.

한국 최고의 길드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길드.

그만큼 청화길드는 무력도 무력이지만, 이곳이 진정한 면모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기제작.

청화길드는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최고의 장인들이 모여 있는 길드로 장비와 무기제작에 있어서는 탑을 달리는 곳이었다.

특히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무기를 제작해, 사용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부분은 청화길드의 장점으로도 유명했다.

실제로 <이스페리아>의 주인공 유진 역시 청화길드에서 맞춤무기를 제작 받아, 모두의 앞에서 검성의 면모를 드러내곤 했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제격이라는 거지.’

만약 지금 현성의 컨트롤과 썩은 물의 지식에 맞춤무기라는 템빨까지 더해진다면?

현성 그의 전력은 충분히 상승할 수 있었다.

이에 현성이 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그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아마….”

“음. 분명 12시였죠?”

수연의 말에 현성이 시계를 흘깃 바라보았다.

현재 시간은 11시.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이제 슬슬 출발해야할 시간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체크하고…출발하면 되겠네.”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수연이 그런 현성을 바라보며 대견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대로 수연이 감격스러운 듯 입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퇴학위기였던 우리 도련님이 A를 맞은 것도 모자라, 청화길드와 미팅까지 잡다니…정말이지 감개무량하네요.”

“운이 좋았지. 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현성이 수연의 손에 감긴 붕대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연. 그런데 그 붕대는?”

이에 수연이 자신의 손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아. 이거 말인가요? 글쎄 저번에 일하던 도중 조금 다쳐서요.”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과는 달리 감은 붕대를 보아하니, 상처는 꽤나 깊어보였다.

“…괜찮아?”

현성이 수연의 손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동시에 수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머,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이어서 수연이 붕대를 만지작거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걱정 마요. 이 정도는 금방 낫는답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수연이 흐트러진 현성의 머리칼을 정리해주면서 입을 열었다.

“도련님은 아무 걱정도 하지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알았죠?”

그렇게 말하는 수연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런 수연의 모습에 현성 역시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다녀올게.”

이에 수연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네, 다녀오세요. 도련님.”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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