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화 휴먼 라이트닝(9)
그런 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벼락이 내리쳤다.
벼락이 향하는 곳은 정확히 현성과 알케르도가 서있는 곳.
그대로 빛이 번쩍이며, 귀를 찢어버릴 듯 커다란 번개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르르릉!!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다른 뱀파어들이 일제히 귀를 막을 정도의 굉음.
그 아래, 현성과 알케르도의 모습은 그대로 번개에 뒤덮여 사라져갔다.
쉴 새 없이 주변으로 튀어 오르는 불씨와 스파크.
“끄아아아악!!”
그리고 그 사이 들려오는 비명소리만이 아래의 상황을 짐작케 하였다.
동시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알케르도를 바라보았다.
“100만 볼트는 마음에 드냐!”
아예 알케르도와 같이 번개를 맞는다.
알케르도 그를 끝내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야말로 단순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
무엇보다 바닥에 흥건한 피.
현성은 이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다시피 혈액은 고농도의 전해질 용액.
그렇기 때문에 바닥에 흥건한 알케르도의 피는 전기가 아주 잘 흐르는 도체에 가까웠다.
덕분에 그 결과.
현성의 낙뢰는 그의 혈액과 반응해 이제껏 보지 못한 강력한 위력을 내고 있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컥…끄으윽…!”
하지만 알케르도는 이미 그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대답할 수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무려 한층 더 강해진 번개가 그를 직격했다.
-파지직!!
이에 알케르도가 온 몸을 비틀며 발버둥 쳤다.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위력.
그러나 현성은 그런 알케르도를 보고, 더더욱 손아귀에 힘을 줄뿐이었다.
-꾸구국!
그대로 현성이 이죽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딜 그렇게 도망가려고 하시나?”
벗어나야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했다.
곧바로 알케르도가 필사적으로 핏발이 선 눈알을 굴렸다.
‘광역기든 뭐든 당장…!’
그와 함께 알케르도가 자신의 피를 끌어내기 위해 손을 까닥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의 손끝을 따라 올라오던 피는 머지않아 힘없이 추욱 처지며 다시 바닥에 처박혔다.
‘젠장, 히, 힘이….’
다시 한 번 광역기를 쓰기에는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알케르도가 휘청거리며 발을 절었다.
점점 눈앞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 이대로라면….’
그리고 그가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크아아악!!”
돌연 알케르도가 괴성을 내지르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그의 눈동자는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흡사 한 마리 광견과도 같은 눈.
평소 고고한 프라이드를 유지하며 귀족적 태도를 유지하던 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피식 웃었다.
이성을 잃은 게 분명했다.
지금 알케르도에게 남은 건 오직 본능 뿐.
이른바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대로 붉은 피가 그의 팔을 휘감았다.
-촤아악!
알케르도의 팔을 휘감은 피는 마치 날카로운 맹수의 발톱을 연상케 했다.
이어서 그가 냅다 현성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본능에 충실한 투박하기 그지없는 공격.
그런 그의 공격이 닿기 직전이었다.
“쯧.”
현성이 작게 혀를 차며 스텝을 밟았다.
다른 공격이라면 몰라도, 그런 투박할 공격을 곧이곧대로 맞아줄 리가 없었다.
동시에 그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스팟!
알케르도의 바로 눈앞에 있던 현성의 모습이 사라졌다.
휴먼 라이트닝의 효과로 인한 신속.
이에 표적을 놓친 알케르도의 눈이 초점을 잃은 채 흔들렸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다시 모습을 드러낸 현성의 오른손에는 푸른 스파크가 튀며 맹렬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푸른 번개를 두른 것처럼 보일 정도의 눈부신 빛.
“마지막은 깔끔하게 보내줄게.”
그대로 현성이 알케르도를 향해 최후의 일격을 박아 넣었다.
스텝-대쉬-펀치로 이루어진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연계.
그러기 무섭게 사방으로 스파크가 터지며,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가가가각!!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오직 푸른 섬광밖에 보이지 않는 레드 룸.
서서히 빛이 걷히며,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으으.
레드 룸에 서있는 것은 현성과 알케르도 뿐.
그리고 번개가 휩쓸고 간 그 주변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검게 그을린 바닥은 흉하게 갈라져있었다.
주변에는 아직도 드문드문 푸른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그런 폐허 속, 현성과 알케르도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후우….”
현성이 천천히 주먹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가 주먹을 거두기 무섭게 알케르도가 무릎을 꿇었다.
이어서 알케르도가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털썩.
결국 마지막에 서있는 것은 오직 현성 뿐.
그와 함께 이를 지켜보던 뱀파이어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일개 인간에 불과한 현성이 귀족파의 대표 알케르도를 쓰러트렸다.
“….”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레드 룸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기 힘든 분위기 속.
그런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이 정도면….”
피의 왕국의 수장 임플이었다.
그대로 임플이 귀족들이 앉아있는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승부는 진즉에 결정 난 것 같은데.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 말에 자리에 앉아있던 귀족들이 움찔거렸다.
그 중 몇몇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레드 룸을 바라보았으나, 그렇다고 결과가 바뀔 일은 없었다.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알케르도.
그와는 다르게 보란 듯이 두 다리로 서있는 현성.
물론 그의 몸 상태도 그리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승패는 명확했다.
“그, 그건….”
귀족들이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거렸다.
이에 임플의 옆에 앉아있던 란트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승자를 발표할 시간이군요.”
그녀의 말에 멍하니 레드 룸을 바라보던 심판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잠시 뒤.
심판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레드룸의 승자는….”
그대로 심판이 레드 룸 중앙에 서있는 현성을 바라보며 외쳤다.
“유현성님 입니다!”
레드 룸 가득 울려 퍼지는 결과.
그와 동시에 현성의 눈앞에 정겨운 알림음과 함께 여러 개의 메세지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 신념의 싸움]
퀘스트 내용
-귀족파의 대표 알케르도와의 레드 룸에서 승리하시오.(완료)
[업적 획득 : 레드 룸의 승자]
[란트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임플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뱀파이어족과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합니다.]
그 메시지 창에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시스템이 확정지은 관계.
즉 방금 전 메시지로 인해 뱀파이어들이 마족에 붙을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걸로 피의 왕국 에피소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현성이 임플과 란트가 앉아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자연스레 옆에 있던 레이첼과 눈이 마주쳤다.
“…!”
그러자 레이첼이 잠시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크흠.”
레이첼이 헛기침을 하며 현성을 향해 작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레이첼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이긴다고 했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잘했어.”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현성 역시 무슨 뜻인지 알 테니까.
그대로 레이첼이 작게 웃었다.
-띠링!
동시에 현성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이첼의 당신에게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곧 메시지를 확인한 현성이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손을 흔드는 그를 마지막으로, 모든 뱀파이어들의 관심에 쏠렸던 레드 룸.
그 승자는 현성으로 결정 나며 막을 내렸다.
* * * * *
그 후로 이틀정도 지났을까.
레드 룸의 결과가 알려지고 그 뒤처리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이루어졌다.
우선 귀족파를 대표하던 알케르도가 보기 좋게 현성에게 패배하며, 자연스레 귀족파의 의견은 힘을 잃게 되었다.
그에 따라 마족과 손을 잡겠다느니, 알케르도가 레이첼의 약혼자가 되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레드 룸이 끝나면서 레이첼이 왕국으로 돌아온 이유, 그러니까 정령왕의 술잔을 가져온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지면서 왕국은 당분간 축제분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껏 뱀파이어들을 구속하던 지긋지긋한 피의 갈증이 사라진 셈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현재 피의 왕국에서 레이첼의 주가는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현성 역시도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무려 레이첼과 교제하는 사이이자, 정령왕의 술잔을 입수하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모두가 보는 레드 룸에서 당당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세간에서는 벌써부터 현성을 레이첼의 약혼자로 확정시하는 시선도 있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임플이 분개하며 “내 두 눈에 햇빛이 들어오기 전까지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말라!”라고 했지만 우선은 넘어가도록 하자.
여하튼 이걸로 피의 왕국에 관한 것은 깔끔하게 마무리된 거나 마찬가지.
‘이제야 숨 좀 돌리겠군.’
레이첼의 방안.
현성이 침대에 걸터앉은 채 크게 기지개를 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레이첼이 말했다.
“…한결 편해 보인다? 아니 근데 왜 내 침대에 니가 앉아있냐.”
그런 레이첼의 말에 현성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편할 수밖에 없지. 우선 내가 원하는 목표는 다 이루었잖아.”
그러면서 현성이 자연스럽게 눈앞에 떠오른 상태 창으로 눈을 돌렸다.
[이름 : 유현성]
성별 : 남성
나이 : 17
종족 : 인간
클래스 : 힘의 마법사(physical wizard)
업적 :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폭풍의 창을 받아낸], [새로운 마도(魔道)의 길을 걷는], [신화를 거머쥔],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 [새로운 주인공], [얼음무덤의 비밀을 알아낸], [악마의 진명을 부른], [철의 권7의 패왕], [거 삽질하기 딱 좋은 날이구만], [수호자를 쓰러트린], [지나가다 벼락을 맞은], [번개를 자른], [레드 룸의 승자]
체력 26
지력 25
민첩 22
행운 11
의지 16(+15)
*스킬상세
[파이어 펀치. LV5]
[얼음폭풍. LV5]
[휴먼라이트닝. LV1]
특수스킬
[투신의 길. LV2]
[삽질의 황태자. LV2]
고유스킬
[게이머의 감각. MAX]
합동기
[빙혈. LV1]
휴먼 라이트닝의 입수.
레드 룸에서의 승리.
그로 인해 피의 왕국이 마족과 손을 잡는 것을 막아내고, 더 나아가 임플과 란트, 레이첼의 호감도까지 알뜰하게 챙겼다.
이어서 현성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그리고 꼬우면 너도 앉든가.”
“흥, 됐네요.”
허나 그것도 잠시.
레이첼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목표를 다 이루었으니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가겠네?”
“그렇겠지? 아참. 넌 여기 남는다고 했었나?”
현성의 물음에 레이첼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응. 정령왕의 술잔도 획득했겠다. 이제 아카데미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잖아.”
그동안 레이첼이 아카데미에 남아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정령왕의 술잔을 획득하기 위해서 일 뿐.
그것 말고는 딱히 아카데미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주가가 최고를 찍는 지금, 왕국에 남아있는 게 더 좋은 선택이었다.
“왜? 아쉽나봐?”
“뭐…약간 아쉽긴 해.”
“그으래?”
그대로 레이첼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긴 이제 아카데미에서 이 아름다운 외모를 못 보니 아쉬울만하지.”
그러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철의 권7 한번쯤은 이겨야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
“너 그동안 다 졌잖아. 어떻게 한 번을 못 이기냐?”
현성이 입 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며 깐죽거렸다.
실제로 지금껏 레이첼의 전적은 전패.
한 번도 현성을 상대로 이긴 적이 없었다.
“그건 니가 얍삽이만 쓰니까…!”
“응, 실력이죠?”
“씨이….”
레이첼이 미간을 좁히며 현성을 째려보았다.
그대로 그녀가 살짝 삐진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무튼! 그거 말고 너랑 나 사이에는 남은 게 있는 거 기억하지?”
그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남은 거?”
이에 레이첼이 단호하게 목덜미를 톡톡 건드렸다.
“1회 흡혈권.”
“….”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동시에 현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젠장, 그러고 보니 그게 남아있었다.
서로 사귀는 척을 협조해줄 것을 말하며 걸었던 대가.
그것은 바로 1회에 한하여 흡혈을 허락하는 것.
현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레이첼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그대로 레이첼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싱긋 웃었다.
“딱 대.”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