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화 휴먼 라이트닝(8)
그대로 레드 룸을 타고 한 줄기의 번개가 그어졌다.
그와 함께 섬광이 터진 듯 밝은 빛이 사방으로 폭발했다.
그리고 그어진 번개를 따라 알케르도가 벽 끝까지 날아갔다.
-콰아앙!!
얼마나 강하게 부딪힌 건지 알케드로가 처박힌 벽 중앙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있었다.
그런 그의 아래를 타고 박살난 벽의 잔해가 떨어졌다.
이어서 알케르도가 거침 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끄어억….”
동시에 그의 입을 따라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기침을 토해내며 몸을 들썩거릴 때마다 팔, 다리, 복부를 포함한 온 몸을 타고 끔찍한 격통이 느껴졌다.
-찌리릿!
그야말로 번개로 몸을 지지는 듯한 고통.
이에 알케르도가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며 눈깔을 굴렸다.
채 반응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분명 그 망할 개자식의 목소리가 들린 거 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이후의 일은 기억해낼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기억해낸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성 그의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다.
과연 그가 자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방금 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도저히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파이어 펀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때는 적어도 무슨 짓을 했는지는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슨 마법이지? 투명화? 그게 아니면 순간이동?’
알케르도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그 말에 알케르도가 움찔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는 방금 전과 똑같은 곳에 서있는 현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대로 알케르도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리고 그 반응은 알케르도 뿐만이 아닌 다른 뱀파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뱀파이어들의 웅성거림 속, 레이첼이 현성과 알케르도를 번갈아보았다.
“…설마 그 자리에서 움직인 적이 없던 건가?”
현성을 향해 내리쳤던 번개, 그 번개를 두른 그의 모습.
전부 저번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번개가 치더니 알케르도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전격계 마법에 당한 것까지는 유추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당했는지 그 중간 과정을 알 턱이 없었다.
이에 레이첼이 턱을 매만졌다.
“그게 아니면 원거리에서 공격했다거나….”
거리를 좁히지 못해 고전한 만큼.
차라리 원거리 공격으로 전환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임플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틀렸다.”
그 말에 레이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임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현성은 계속 저 자리에….”
“그게 틀렸다는 거다.”
그대로 임플이 현성을 흘깃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은 이미 움직였어.”
“네? 그렇다면….”
“그래, 단지 눈으로 쫒을 수도 없이 빠르게 움직인 것뿐이지.”
다른 뱀파이어라면 모르겠지만, 임플 그는 똑똑히 보았다.
온 몸에 번개를 두른 현성이 알케르도의 복부에 정권을 꽃아 넣었다.
그 결과 알케르도는 벽에 처박혔고, 그 사이 현성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 모든 게 벌어진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바꿔 말하자면 그런 현성의 속도는 신속(迅速)과도 같았다.
이에 레이첼이 현성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뱀파이어의 동체시력보다 빠르게….”
그 순간이었다.
제 자리에 서있던 현성이 앞으로 한 발자국 떼었다.
그와 함께 스파크가 이는 듯하더니,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 그의 신형(身形)이 사라졌다.
-파지직!
그리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알케르도의 바로 앞.
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야, 이 악물어라.”
이에 알케르도가 뒤늦게 손을 휘저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피가 니들의 형태를 이루기도 전에 현성이 알케르도의 복부를 향해 니킥을 박아 넣었다.
-뻐억!
그런 현성의 다리, 아니 온 몸은 여전히 번개를 두르고 있었다.
동시에 알케드로의 몸이 덜컥거리며 그가 몸을 숙였다.
복부를 타고 느껴지는 충격과 몸 안쪽까지 파고드는 전류.
“끄어어어…커헉!”
차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 고통에 알케르도가 입술을 으득 깨물었다.
그대로 그가 현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터업!
하지만 이미 현성은 사라진 뒤.
알케르도 손을 허망하게 허공을 잡고 있었다.
이어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다리를 타고 묵직한 고통이 뇌리를 때렸다.
-우두둑!
비명을 내지를 틈도 잡지 못했다.
그 다음은 일방적은 현성의 독주에 가까웠다.
현성은 사라지고 나타남을 반복하며, 쉬지 않고 알케르도를 공격했다.
-파지지직!
들리는 것은 오로지 스파크와 그 사이 들려오는 알케르도의 비명소리 뿐.
시간이 지날수록 현성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레드 룸을 타고 번쩍이는 푸른 섬광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바로 휴먼 라이트닝.
번개를 두른 현성의 속도는 신속 그 자체였으며,
뱀파이어의 동체시력으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 *
그 사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알케르도가 피를 토해내며 비틀거렸다.
실제로 시간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말하자면 채 2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알케르도만은 달랐다.
체감 상 몇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긴 시간.
그 시간동안 알케르도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반응하기도 전에 공격이 들어왔으며,
보이기도 전에 현성이 움직였다.
곧이어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뒤덮었다.
동시에 온 몸을 타고 흐르는 무력감.
이에 알케르도가 이빨이 부셔질 듯 강하게 이를 악물었다.
‘고작…고작 인간을 상대로 이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다.
단순히 거리를 벌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거리를 벌린다고 한들, 지금의 현성의 속도라면 그걸 따라잡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다면 결국….’
한 번에 현성을 떨쳐낼 공격이 필요했다.
이에 알케르도가 온 몸을 타고 느껴지는 고통을 씹어 삼키며 양 주먹을 쥐었다.
그런 그의 주먹에는 입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흥건했다.
‘광역기 말고는 답이 없다…!’
이미 알케르도의 발아래는 붉은 피가 웅덩이를 이룰 정도였다.
그게 현성에게 맞아서 그런 건지, 그가 조종하는 피의 일부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꾸드득!
그대로 알케르도가 사력을 다해 양 주먹을 들고는, 괴성을 내지르며 바닥을 향해 내리찍었다.
그때였다.
바닥에 있던 붉은 피가 일제히 솟아오르며 사방으로 펼쳐졌다.
-콰아아앙!!
그와 함께 알케르도를 중심으로 피가 폭발하며 충격파가 일었다.
순간 레드 룸 전체가 울릴 정도로 커다란 충격.
이에 주변에 일던 번개가 일순간 멎었다.
곧이어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냐!”
그리고 알케르도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현성의 주위에 있던 피가 뭉쳐 그대로 그를 뒤덮었다.
-콰앙!!
잠시 뒤.
레드 룸 한 가운데에는 마치 정사각형을 연상하는 붉은 감옥이 세워져있었다.
그 모습에 알케르도가 비틀거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됐다…!’
광역기로 잠시 동안 현성의 움직임을 멈추고, 그 틈을 노려 벽을 세운다.
차마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이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아예 그 주변을 통째로 가둬버리면 그만이었다.
‘…꽤나 용 썼지만 이걸로 녀석은 독안에 든 쥐.’
이제 남은 건 이대로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정체불명의 전격마법. 그게 정확히 어떤 마법인지는 모르지만, 그만한 위력의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무리가 뒤 따를 터.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알케르도가 눈앞에 세워진 붉은 감옥을 주시하며 피식 웃었다.
실제로 그의 예상은 맞았다.
현성이 쓴 휴먼 라이트닝.
휴먼 라이트닝은 번개를 몸에 두름으로써 신속과도 같은 속도를 펼치며,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 스킬에는 유일한 단점이 존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속시간.
계속해서 번개를 유지하는 것도 모자라, 신속을 펼치면 펼칠수록 마나의 소모속도는 이와 비례하여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현성이 좁은 공간에 발이 묶인 상황이라면.
전장은 알케르도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알케르도는 그저 현성의 마법 지속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무리 공격을 날리면 그만이었다.
물론 알케르도 또한 그때동안 감옥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써야했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마나는 현성보다 훨씬 많았다.
단순히 지속시간만 두고 본다면 필시 현성의 마나가 먼저 떨어질 터.
‘시간싸움이라면 내가 유리하다.’
그러기 무섭게 붉은 감옥 안을 타고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콰앙!
안에 갇힌 현성이 빠져나오기 위해 시도하는 모양이었다.
이에 알케르도가 주춤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때.
알케르도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 그가 아무리 보통의 범주를 벗어나는 녀석이라도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인간인 이상.
지치기 마련이고, 마나는 바닥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럼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었다.
알케르도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며 오른손을 펼쳤다.
그러자 발밑에 있던 피가 뭉치며 붉은 검의 형태로 변했다.
-터업.
그대로 알케르도가 붉은 검을 쥐고 감옥을 향해 걸어갔다.
곧 그가 감옥 앞에 도달하자, 붉은 벽이 무너져 내리며 그 안에 있던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르륵.
바닥에서 솟아난 붉은 사슬이 현성의 두 팔을 묶고 있었다.
이에 현성은 양 손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알케르도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게 바로 레드 룸에서 무기를 허락하지 않는 이유였다.
레드 룸은 통상적으로 뱀파이어와 뱀파이어들끼리의 싸움.
그리고 그들에게는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피가 곧 무기니까.
하지만 이는 인간인 현성에게는 예외였다.
즉 처음부터 레드 룸은 현성에게 불리한 싸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위험한 상황이 있었지만….’
처음 파이어 펀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확실히 휴먼 라이트닝은 위험했다.
만약 광역기와 감옥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뻔 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피를 써야 할 정도로 힘을 쏟아 부은 탓에 지금은 이렇게 검을 만들어 직접 마무리해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결국 승리는 이 몸의 것.’
중요한 건 마무리였다.
알케르도가 무릎을 꿇은 그를 바라보며 조소했다.
‘뭐 이렇게 된 이상. 마무리를 직접 내 손으로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대로 알케르도가 붉은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의 검이 현성을 찌르려는 순간이었다.
두 팔이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성이 히죽 웃었다.
“…드디어 왔냐?”
그 말과 동시에 현성의 양 팔을 타고 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화르륵!
그와 함께 현성의 팔을 타고 힘줄이 솟아오르더니.
-채앵!
현성이 단숨에 자신의 팔을 묶고 있던 사슬을 떨쳐냈다.
이에 알케르도가 미간을 좁히며 움찔거렸다.
“…뭣?!”
갑작스런 현성의 행동에 알케르도가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케르도가 재빨리 들고 있던 검을 내질렀다.
-푸욱!
그대로 살을 찢는 소리와 함께 알케르도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좋냐?”
현성이 맨 손으로 그의 검을 부여잡은 채 히죽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알케르도가 뒤늦게 검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덜컥!
이미 현성이 그의 검은 물론 손목까지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동시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알케르도가 황급히 현성의 팔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파지직.
익숙한 스파크가 일고 있었다.
방금 전과 같은 스파크.
그 모습에 알케르도가 멈칫거렸다.
“너…너…이 자식 설마 이대로 같이 번개를 맞을 생각…!”
그런 알케르도의 말에 현성은 그저 광기어린 웃음소리로 맞받아칠 뿐이었다.
“히힉…히히힉…피카피카!!”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