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화 휴먼 라이트닝(7)
그대로 란트가 옆에 앉아있던 레이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딸은 저런 남자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나, 남자친구라니!”
“왜? 아니야?”
“아니…그, 그건 맞는데….”
그 말에 레이첼이 얼굴을 붉히며 꼼지락거렸다.
동시에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임플이 정색하며 이빨을 갈았으나 일단은 그냥 넘어 가도록하자.
아무튼 그것도 잠시.
“….”
레이첼이 한창 알케르도와 싸우고 있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화르륵!
그녀의 시선이 향한 아래에는 현성이 한 손에는 불꽃을, 다른 한 손에는 얼음을 두른 채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정령의 신전에서도 몇 번 봤던 모습이었지만, 현성 그에게는 단순히 2가지 속성을 다룬다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이게 그동안 현성을 봐왔던 레이첼의 평가였다.
“…글쎄요. 섣불리 확정짓기에는 이를걸요.”
레이첼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 많거든요.”
현성의 진면목은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주먹을 쓴다거나, 2가지 속성을 쓴다거나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오직 현성 그만이 할 수 있는,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만의 방식.
그게 바로 현성의 가장 큰 무기였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그런 레이첼의 답변에 란트가 두 눈을 빛냈다.
그녀의 딸, 레이첼은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동안의 레이첼은 누군가를 향해 이 정도로 믿음을 보인적도, 이렇게 기대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그게 인간이라면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터.
허나 지금 눈앞의 레이첼은 달랐다.
현성을 믿고, 기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란트는 더욱 궁금해졌다.
과연 유현성이라는 저 아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더 나아가 피의 왕국에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물론 그 바람이 산들바람일지, 폭풍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란트가 레이첼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어느새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에 란트가 피식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뭐 그건 차차 알게 되겠지.’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란트가 현성을 향해 눈을 돌렸다.
곧 란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가렸다.
“어머.”
이어서 그녀가 손가락으로 현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는 영 상황이 안 좋은 거 같은데.”
* * * * *
한창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아래.
주먹을 휘두르던 현성이 돌연 주먹을 거두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얼음파편과 불씨는 물론, 깨진 바닥의 잔해가 가득했다.
그 잔해는 알케르도와 현성 그 둘이 꽤나 긴 전투를 지속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투의 양상.
“쯧.”
그대로 현성이 눈매를 좁히며 혀를 찼다.
‘…이렇다 할 만 한 유효타가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지만, 처음 공격과 자잘한 공방을 제외하고는 현성이 알케르도에게 입힌 데미지는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 현성이 공격이 들어간 이후,
알케르도는 계속해서 일부러 거리를 벌리며 원거리에서 싸우는 걸 고집하고 있었다.
덕분에 현성은 그저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낼 뿐.
그 외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거리를 좁히려들면 그만큼 멀어진다.
이에 알케르도가 이죽거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그러지? 전처럼 공격하지 않고?”
“….”
그 말에 현성이 그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거리에서 깔짝거리는 놈만큼 짜증나는 게 없는데 말이지.’
공개대련에서 성준과 대련할 때에는 그 역시 근접전을 할 수 밖에 없는 클래스다 보니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알케르도는 달랐다.
처음 근접전을 펼치려다가 현성에게 호되게 당한 그는 그 다음부터는 곧바로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근접전을 피하며, 원거리 견제 위주로 상대.
혹 이를 보고 근접전을 유도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알케르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혈마법을 주로 쓰는 뱀파이어.
마법사의 경우, 근접으로 붙으면 유리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마법을 캐스팅하고 맞추기 까지는 딜레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뱀파이어는 달랐다.
뱀파이어들이 쓰는 혈마법은 마법사에 비해 그 딜레이가 짧았다.
거기다 알케르도 정도 되는 실력이라면 딜레이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 관계로 현성이 근접으로 파고들 틈 자체가 잘 나지 않았다.
‘…하여간 까다롭단 말이지.’
그만큼 알케르도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지금까지 현성이 유효타를 먹히지 못한다는 게 바로 그 증거.
이에 알케르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
쭉 이렇게만 간다면 무조건 현성이 먼저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알케르도는 그때 가서 현성을 마무리하면 그만이었다.
그야말로 깔끔한 승리.
물론 계속해서 이어지는 지지부진한 전투에 일부 뱀파이어들은 졸렬한 전투방식이라고 하며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알케르도의 생각은 달랐다.
‘…전략이지. 전략.’
어차피 승리만 한다면 상관없었다.
게다가 딱히 룰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실리를 위한 전투.
아무리 뱀파이어가 귀족적 성향이 강하다고는 한들.
알케르도는 고작 정정당당함을 추구하다가 패배를 맞이할 정도로 멍청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차마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 현성 역시 가만히 당해줄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
그대로 현성이 옅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웃음에 알케르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웃어?’
그와 함께 알케르도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휘저었다.
‘아직까지도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리석긴!’
동시에 붉은 피로 이루어진 뾰족한 창이 현성을 향해 날아갔다.
여전한 원거리 견제.
그리고 창끝이 현성을 꿰뚫기 직전.
현성의 팔이 움직이며 창을 쳐냈다.
아니 정확히는 쳐냈다기보다는 창이 그의 팔과 닿은 순간.
공중에 흩어졌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촤아악!
그대로 형태를 이루고 있던 붉은 창이 다시 피로 변해 흩어졌다.
그 모습에 알케르도가 미간을 좁히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런 현성의 손끝에는 작은 스파크가 일고 있었다.
-파지직.
이에 그를 바라보고 있던 란트 또한 미간을 좁혔다.
현성의 손끝을 타고 튀는 스파크.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건…설마하니 트리플 속성일 줄이야.”
란트의 눈을 타고 이채가 감돌았다.
정말이지 알면 알수록 흥미를 자극하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옆에 있던 임플도 반응했다.
“…최소한 어중이떠중이는 아니었나.”
두 가지 속성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아예 없는 경우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말이 달라졌다.
마법이라고 전부 같은 마법이 아니었다.
마법은 그 기초가 되는 마법이 무엇이냐에 따라 종류가 갈리고는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속성마법은 주로 기초가 되는 속성을 발전시켜나가는 방향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성향이 강했다.
예를 들자면 화염마법의 기초가 되는 것은 파이어 볼이며, 이를 발전시키면 파이어 월이 되며, 플레임버스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속성을 배운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는 속성을 버린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리플 속성까지 배웠다면….”
그런 임플의 말에 란트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재능인걸까요?”
“흥. 아직 속단하기는 일러.”
임플이 고개를 휙 저으며 말했다.
겨우 스파크가 인 것 정도로는 아직은 모르는 일이었다.
중요한 건 그 다음.
“….”
이에 임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현성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건 알케르도 역시 같았다.
현성을 주시하고 있는 알케르도의 눈빛이 흔들렸다.
‘트, 트리플 속성이라고?’
알케르도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었다.
듀얼 속성까지는 어찌어찌 운이라는 영역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허나 트리플부터는 실력의 영역이었다.
-고오오.
동시에 현성의 주변의 공기가 변했다.
마법의 캐스팅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 모습에 알케르도가 주춤거리며 긴장했다.
‘…온다.’
방금 전의 스파크로 보았을 때.
분명 세 번째 속성은 번개.
확실히 까다로운 속성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패턴을 생각해보면 대처가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다.
‘결국에는 또 근접전으로 나올 터. 달라지는 건 없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만 하면 그만이었다.
원거리에서 계속 견제한다.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문제없었다.
‘혹 근접이 아니라 원거리 공격이라면 캐스팅 전에 끝내면 된다!’
그리고 그 타이밍이 바로 지금.
이에 알케르도가 양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을 따라 수십 개의 니들이 생성되었다.
이거라면 방금 전처럼 쉽게 받아내지는 못할 터.
이만한 숫자의 니들에서 무사하기 위해서는 막는 게 아니라 몸을 움직여 피해야만 했다.
동시에 이는 곧 마법의 캐스팅 실패로 이어진다.
“잔재주는 거기까지다!”
그대로 알케르도의 외침과 함께 붉은 니들이 매섭게 쏘아졌다.
그때였다.
현성이 히죽 웃었다.
-콰르릉!
그러기 무섭게 위에서 커다란 벼락이 떨어졌다.
이에 알케르도가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하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
알케르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커다란 벼락이 내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변은 멀쩡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알케르도는 도저히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푸흐흡…!”
그도 그럴게 벼락이 박힌 곳은 다름 아닌 현성 그가 서있던 자리.
“푸하하! 이게 무슨 일인가!”
결국 알케르도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비웃었다.
무리하게 마법을 캐스팅한 결과는 참혹했다.
다른 것도 아닌 본인의 마법에 본인이 당하다니.
“우습기 그지없지 없군. 크흐흑….”
알케르도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역시 이래서 인간은 안 된다.
이렇게 되면 굳이 그가 끝을 낼 필요도 없었다.
“이거 너무 시시한 결말이군.”
그러면서 알케르도가 저 멀리 앉아있는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봐라!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다. 역시 네 곁에는 저 놈이 아닌 내가 어울리지 않나?”
그러나 레이첼의 시선은 알케르도가 아닌 현성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번개가 떨어진 곳이었다.
이에 알케르도가 비웃음을 터트리며 현성이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 레드 룸의 승자는 바로 이 몸….”
그때였다.
알케르도 그의 귓가를 타고 심상치 않은 소리가 삐져나왔다.
-파지직!
그와 동시에 알케르도가 재빨리 몸을 돌린 순간.
바로 그 아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웃었냐?”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현성.
그런 그의 몸 주변으로는 쉴 새 없이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번개를 두른 것 같은 모습.
“…어, 어느 틈에?!”
그대로 현성이 입을 열었다.
“조금 찌릿할 거야.”
“…뭐?”
그와 함께 현성의 몸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현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섬광이 번쩍이며 푸른 번개가 단숨에 알케르도를 집어삼켰다.
-콰르르릉!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