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91화 (91/240)

091화 휴먼 라이트닝(6)

“으윽….”

한편 현성의 공격을 맞고 날아간 알케르도는 혼란 그 자체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가 현성에게 달려든 시점.

알케르도는 자신이 완벽하게 선공을 잡았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빠른 속도를 이용해 초 근접거리까지 붙은 이상.

마법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그야 근접전은 명실상부 마법사의 약점이니까.

마법을 캐스팅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고, 캐스팅을 끝냈다한들 마법을 맞추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적인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마법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나마 피해가 적기를 비는 것뿐.

이에 알케르도는 맨 먼저 저 나불거리는 입을 다시는 못 열게 만들 셈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현성의 팔을 휘감은 채,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

그 불꽃을 발견하는 순간.

알케르도는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뱀파이어 특유의 기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건 위험하다고.

하지만 공격을 피하기에는 현성 그의 주먹이 한 박자 더 빨랐다.

그 다음은 보는 대로.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알케르도의 시야가 흐려졌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그의 머릿속은 단 한 가지 의문뿐이었다.

다른 생각은 할 틈조차 없었다.

‘왜?’

왜 폭발이 일어났는지.

왜 자신이 지금 여기에 있는지.

왜 눈앞에 쓰러진 현성 대신 땅바닥이 보이는지.

-욱씬.

그리고 머지않아 얼굴을 타고 느껴지는 격통.

그와 동시에 알케르도는 깨달았다.

자신이 현성에게 보기 좋게 당했다는 것을.

그것도 단 한방에 말이다.

그대로 그가 저 멀리 앉아있는 뱀파이어를 째려보았다.

이에 알케르도의 시선을 알아차린 그가 움찔거렸다.

“저 망할….”

그는 다름 아닌 현성 그가 마법사라고 알려준 뱀파이어.

그래서 기껏 근접으로 상대했건만 결과는 보는 대로.

알케르도가 그대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게…저게 어딜 봐서 마법사란 말이야!’

* * * * *

그런 알케르도의 모습을 보고 현성이 히죽 웃었다.

저 당혹감에 가득 찬 눈빛.

그렇지. 바로 이거였다.

‘…내가 이 맛에 힘법사 하지!’

마치 공개대련 때 성준을 보는 느낌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상황 자체가 상당히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많은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펼치는 대련.

거기다 선공을 잡기 위해 근접전으로 승부를 보려다 오히려 파이어 펀치를 맞고 바닥을 뒹구는 모습까지.

현성이 피식 웃으며 알케르도를 바라보았다.

‘재밌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재밌는 건 그의 얼굴이었다.

성준도 그랬지만, 누구든 파이어 펀치를 맞아본 당사자들은 전부 저런 표정이었다.

혼란스러움에 가득 차서 니가 마법사냐는 듯 바라보는 눈빛.

그럴 때마다 현성은 그야말로 짜릿하기 그지없었다.

고인물의 끝은 컨셉질이었으며, 컨셉질의 묘미는 바로 이런 반응이었다.

무엇보다 전에 말했듯 힘법사는 그야말로 컨셉질의 극강을 달리는 정신 나간 클래스.

‘짜릿해! 언제나 새로워! 힘법사가 최고야!’

덕분에 현재 현성의 기분은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거기다 아직 새로운 힘법사의 스킬을 사용하지도 않은 상태.

그 기대감이 현성을 더욱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마침 판은 마련되었겠다.’

이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시간이었다.

이에 현성이 주먹을 풀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동시에 그의 입을 타고 자신도 모르게 광기어린 웃음이 삐져나왔다.

“흐흐….”

그리고 그런 현성의 웃음소리는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알케르도의 귓가에도 똑똑히 들렸다.

-으드득!

그와 함께 알케르도의 입을 타고 이빨 갈리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치욕스러웠다.

뱀파이어가 고작 인간에게 당하다니.

그것도 다른 뱀파이어들이 전부 보고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무엇보다 이 자리는 레드 룸.

단순히 무력을 보기위해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

‘여기서 지는 것은 곧 발언권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

이 말은 곧 레이첼의 약혼자는커녕, 귀족파를 대표하는 자신의 자리가 위험해지는 걸 의미했다.

이에 채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알케르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제기랄….”

그대로 알케르도가 입가에 피를 훔치며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

다른 뱀파이어들의 반응이 중요했다.

그런 주변은 이미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나도 모르겠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원.”

드문드문 들려오는 뱀파이어들의 목소리.

대부분은 알케르도 그와 같은 반응이었다.

혼란스러움.

현성이라면 모를까.

왕국의 뱀파이어들은 이미 알케르도의 무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중 유일하게 놀라지 않은 뱀파이어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레이첼.

그녀가 멍하니 서있는 알케르도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 당연히 처음 보면 저런 반응일 수밖에 없지.’

물론 알케르도는 어떻게 현성이 마법사라는 것까지는 알아낸 모양이었지만, 그 정보는 딱히 도움 되지 않는 정보였다.

왜냐하면 그의 전투스타일은 기존의 마법사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고 있으니까.

처음 그녀가 현성의 전투방식을 봤을 때도 그랬다.

주먹질하는 마법사라니.

도대체 저게 어딜 봐서 마법사인가.

‘…차라리 투사라고 하는 게 맞지.’

아무튼 현성이 선공을 가져가면서 덕분에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이 반응.

지금은 혼란이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는 다른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설마 지금 알케르도님이 고작 인간한테 당한거야?”

“에이, 당연히 방심했겠지….”

“그야 그렇겠지만 저 정도면 좀…심하지 않나?”

그것은 바로 의심.

뱀파이어 사이에서 하나 둘씩 알케르도를 의심하는 여론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대놓고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의심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를 알케르도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좋지 않아.’

알케르도가 주변을 살펴보며 미간을 좁혔다.

뱀파이어는 프라이드에 죽고 사는 종족.

그만큼 지금 알케르도는 현성에게 맞은 고통보다도 주변의 시선이 우선이었다.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야한다.’

곧바로 결단을 내린 알케르도가 현성을 바라보았다.

“역시 인간계에서 이름난 가문의 가주다운 공격이군. 게다가 마법사라고 했나?”

그대로 알케르도가 고개를 까닥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마법사라고는 믿기 힘든 공격이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뱀파이어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레이첼과 교제하는 인간이 알고 보니 인간계에서 이름난 가문의 가주라니.

거기다 방금 전 그 공격이 마법사의 공격이라고?

“역시…레이첼 님이 아무나 선택하실 리는 없지.”

“그쪽도 왕국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을까?”

“그러지 않을까? 그런데 방금 들었어? 마법사라잖아.”

“…인간계에서는 저런 마법을 쓰는 건가. 신기하군.”

뱀파이어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이에 알케르도가 작게 미소 지었다.

역시 프라이드가 강한 뱀파이어다웠다.

다른 건 몰라도 가문, 가주라는 이야기에 반응하는 것부터가 그랬다.

거기다 <이스페리아>의 설정 상, 보통 마법사의 인식은 특별한 기술직+고학력자.

뱀파이어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잠시 뒤. 알케르도가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끼고 있던 장갑을 현성을 향해 벗어던졌다.

-투욱.

그런 알케르도의 행동과 동시에 뱀파이어들이 웅성거렸다.

그대로 알케르도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굳이 대답해야 하나.”

현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장갑을 던지는 저 행동.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저건 과거 귀족들이 결투를 신청할 때 하는 행동.

즉 쉽게 말해서 결투장 같은 의미였다.

이에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여간 누가 뱀파이어 아니랄까봐….”

그러자 알케르도가 그의 대답은 애초에 별 상관없었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 뜻은 이제부터 내가 너를 진정한 레드 룸의 적수로 대하겠다는 소리다. 영광으로 생각하도록.”

그와 함께 주변에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터트렸다.

상대에게 장갑을 던지는 알케르도의 행동.

이는 뱀파이어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살면서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낭만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제대로 상대하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말.

그만큼 의심에 찼던 눈빛들이 점점 기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걸로 방금 전 치욕은 어느 정도 커버된 거나 마찬가지.

“….”

물론 현성이 보기에는 꼴값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그저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허나 그런 그의 모습마저 지금 뱀파이어들에게는 담담하게 결투를 받아들인 태도로 보일 뿐.

그들의 기대는 점점 커져갔다.

“그럼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 지금부터는….”

이어서 알케르도가 오른손을 펼쳤다.

그런 그의 손을 따라 붉은 피가 부드럽게 일렁거렸다.

동시에 알케르도가 전방으로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조금 다를 테니까!”

알케르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붉은 피가 현성을 향해 쇄도했다.

마치 흔들다리가 움직이는 듯 물결치는 그의 피.

하지만 그도 잠시.

-촤아악!

물결치던 혈액이 돌연 그 형태가 바뀌어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동시에 이를 본 현성이 미간을 좁히며 혀를 찼다.

“쯧.”

블러드 니들.

바닥에서 순차적으로 솟아오르는 패턴이 상당히 까다로운 공격이었다.

그리고 현성이 그 패턴을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스페리아>에서 2막 보스 레이첼을 상대할 때 나오는 패턴이었기 때문이다.

알케르도 역시 기본적으로 뱀파이어인 만큼.

그의 혈마법은 레이첼과 같은 종류였다.

이에 따라 겹치는 부분 역시 존재했으며, 이는 현성에게 있어 유리하게 작용했다.

왜냐하면 이미 그가 알고 있는 패턴이라면 반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현성이 뒤로 스텝을 밟음과 함께 주먹을 당겼다.

-스으으!

그런 현성의 주먹을 타고 시린 한기가 모여들었다.

그리고 바닥을 타고 튀어나온 가시가 그를 덮치는 순간.

현성이 반 박자 빨리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리찍었다.

-콰가가각!!

그러자 얼음폭풍이 시전 되며, 알케르도의 피와 맞부딪쳤다.

그대로 현성의 얼음은 바닥에 있던 그의 피는 물론 솟아오르는 가시까지 단번에 얼려버렸다.

마치 레드 룸 한 가운데 붉은 빙산이 솟아오른 것 같은 모습.

“…어떻게?!”

이에 알케르도가 미간을 구기며 멈칫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란트가 흥미로운 듯 작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호오.”

그대로 란트가 옆에 있는 임플을 향해 말했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주로 한 가지 속성을 위주로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설마하니 얼음속성 마법까지 다룰 줄이야. 이건 상당히 귀한 경우 아닌가요?”

그런 란트의 물음에 임플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2개의 속성이라…확실히 흔한 케이스는 아니군.”

마법사의 경우, 한 가지 속성의 마법만 파는 이유는 정해져있었다.

‘…그게 더 효율적이니까.’

괜히 다른 속성의 마법까지 건드리는 건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결과를 나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2가지 속성을 쓰는 것도 모자라 불과 얼음, 상반된 속성을 다룰 줄이야.

“보통 마도의 길을 걷겠답시고 나대는 어중이떠중이들이 2개의 속성을 쓰곤 하지. 그 끝이 결국 마도를 망치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임플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에 란트가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글쎄요. 다른 경우도 하나 있지 않나요?”

이처럼 2가지 속성을 쓰는 마법사는 보통 2가지 경우였다.

우선 첫 번째는 방금 임플이 말한 것처럼 뭣도 모르는 어중이떠중이.

혹은 그게 아니면.

“재능이거나.”

란트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