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화 휴먼 라이트닝(5)
맹렬한 뇌전이 현성을 집어삼킨 순간.
그 짧은 시간 속 레이첼의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이 몰아쳤다.
지금이라도 피를 내어 혈마법을 쓴다면 그를 구해낼 수 있을까.
‘첫 번째는 견뎌냈다고 한들 두 번째는….’
무엇보다 첫 번째 뇌전을 받아낸 직후.
현성의 몸 상태는 한 눈에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당장 검을 지팡이처럼 짚은 채 비틀거렸던 것만 해도 그랬다.
그게 아니면 이것조차도 현성 그가 예상한 범위 내일까.
마음 한 구석에 그런 믿음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뇌전의 공격은 도저히 그냥 무시할 정도의 위력이 아니었다.
-파지직!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귓가를 타고 스파크가 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레이첼이 고개를 들었을 때.
-콰가가각!!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머릿속의 수만 가지 생각을 단숨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현성을 향해 내리꽂힌 수십 개의 뇌전.
그와 동시에 뇌전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번개를 잘랐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위를 향해 내지른 현성의 주먹은 분명하게 뇌전을 가르고 있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마침내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뇌전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있던 현성이 주먹을 거두었다.
그런 현성의 몸 주변에는 쉴 새 없이 푸른 전류가 일고 있었다.
마치 몸에 번개를 두른 것과 같은 형상.
이에 현성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몸 주위를 감싼 푸른 전류.
손끝으로 느껴졌던 방금 전의 그 감각.
무엇보다도 눈앞에 떠오르는 수십 개의 메시지 창.
[업적달성 : 번개를 자른]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습니다.]
[기술명 : 휴먼 라이트닝]
-자세히 보기
이에 현성이 자세히 보기에 시선을 돌리자, 그 아래로 설명란이 펼쳐졌다.
[휴먼 라이트닝]
설명 :
<낙뢰에 맞선 자, 그 수련 끝에 마침내 번개 그 자체가 되리라.>
과거 자신의 마법에 한계를 느낀 마법사가 집념의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낸 기술이다.
그는 이 기술을 통해 번개를 온 몸에 두름으로써 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번개를 자르는 경지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술을 완성시키고 얼마 뒤, 그는 오랜 지병으로 인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로 인해 생전 그의 기술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으나, 사후에 그가 남긴 회고록이 발견되면서 재조명되었다.
특히 회고록 마지막 장에 있는 그의 유언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전해졌다.
“번개…잘랐다고….”
-카이카시의 마지막 유언.
동시에 이게 바로 현성 그가 원하던 기술이었다.
휴먼 라이트닝.
번개를 몸에 둘러 공격하는 기술로 힘의 마법사, 일명 힘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 하나였다.
그렇다. 카이카시의 정체는 다름 아닌 현성과 같은 힘의 마법사.
원래대로라면 현성이 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따로 퀘스트를 진행하며, 카이카시의 회고록을 습득해야 했다.
즉 휴먼 라이트닝을 배우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뒤의 일.
허나 현성 그가 누구인가.
<이스페리아>의 고인물 중의 고인물.
과거 그는 이미 회고록을 습득한 적이 있었다.
그에 따라 현성은 거기에 적혀있던 방법을 통해 예정보다 훨씬 빨리 기술을 습득한 것이었다.
그리고 휴먼 라이트닝의 획득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힘의 마법사로 전직할 것.
첫 번째 낙뢰를 맨 몸으로 받아낼 것.
두 번째 낙뢰가 내려치는 타이밍에 공격키를 입력할 것.
이상 위 세 가지 조건이 휴먼 라이트닝을 배우기 위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위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못해도 최소 2번 연속으로 낙뢰를 맞아야했다.
‘이게 바로 내가 제르오스의 검을 가져온 이유.’
알다시피 지나가다 번개를 맞는 것은 그리 쉬운 조건이 아니었다.
당장 현실에서만 해도 그 확률은 600만분의 1.
물론 여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쉽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일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성에게는 이 극악의 확률을 뚫을 아이템이 필요했으며, 그게 임플의 집무실에 있던 제르오스의 검이었다.
덕분에 그 결과는 보란 듯이 한 번에 성공.
‘…역시 몸에 새겨진 감각은 무시할 수 없다니까.’
현성이 주먹을 쥐었다 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게도 단순히 제르오스의 검만 가지고서는 기술을 습득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휴먼 라이트닝을 배우기 위해서는 3번 조건, 그러니까 낙뢰가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공격키를 입력해야했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hp가 1이 된 상태에서 낙뢰로 인한 데미지를 받아 그대로 사망.
이런 패널티 덕분에 보통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낙뢰 사이에 텀을 두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허나 이는 현성에게 있어서는 해당 되지 않는 말이었다.
‘내가 타이밍 맞추는 것만 얼마나 해왔는데.’
당장 튜토리얼 보스 데일런트를 잡을 당시, 폭풍의 창을 반격하는 것도 그랬다.
거기다 파이어볼 평타 캔슬을 통해 힘의 마법사로 전직할 때도 그랬다.
애초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으면 전직도 못했다.
‘아무튼 이걸로 휴먼 라이트닝은 습득 성공.’
이로써 알케르도를 상대할 준비는 끝마쳤다.
아니 알케르도 뿐 만이겠는가.
이 정도라면 레이첼 납치사건 때 마주친 암살자와도 싸워볼 만했다.
‘…사실 그동안은 워낙 파이어 펀치와 얼음폭풍 2가지만 이용해서 싸워야 하다 보니 전투에 제약이 많았단 말이지.’
그나마 <이스페리아>에 관한 지식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상당히 힘들 뻔 했다.
그리고 앞으로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난이도는 더더욱 올라갈 터.
그런 타이밍에 휴먼 라이트닝을 앞당겨 획득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레이첼 에피소드를 전개함과 동시에 새로운 기술 습득까지.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그렇다면 이제 목표는 다 이룬 거야?”
줄곧 그의 옆에 서있던 레이첼이 물었다.
이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셈이지.”
그대로 현성이 저 멀리 보이는 저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갈까?”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현성이 휴먼 라이트닝을 습득하고 4일이 지났다.
그리고 이 말은 곧 오늘이 레드 룸이 열리는 날이라는 소리.
그에 따라 왕국의 모든 뱀파이어들의 관심이 이쪽에 쏠렸다.
무려 귀족파의 대표와 공주의 연인 간의 대결.
덕분에 왕국은 평소보다 더욱 북적이고 있었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현성이 지내고 있는 방 안.
레이첼이 침대에 걸터앉은 채 현성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던 그가 대답했다.
“최고야. 문제없어.”
현재 현성의 컨디션은 최고.
거기다 그동안 틈틈이 몸을 움직이며 레드 룸에 대비했다.
덕분에 그는 불안해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레이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알다시피 이번 레드 룸의 승패에 가장 민감한 존재가 바로 레이첼이었다.
만약 현성이 패배하면 그녀는 꼼짝없이 알케드로와 약혼해야했다.
그런 만큼 레이첼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끄러미 현성을 바라보았다.
과연 현성이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그도 잠시.
레이첼이 붕붕 고개를 저으며 심호흡했다.
‘아냐. 현성이라면 당연히 이길 거야.’
그 모습에 현성이 피식 웃었다.
어째 당사자인 그는 아무렇지 않은데, 레이첼이 더욱 긴장한 모양이었다.
이에 현성이 레이첼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마. 이길 테니까.”
그 말에 레이첼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대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방심하지 말고. 알케르도 그 녀석 보기와는 다르게 꽤 강한 상대야.”
걱정 어린 레이첼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할게.”
물론 그녀의 말대로 현성은 방심하지 않았다.
굳이 휴먼 라이트닝을 익힌 것도 바로 그 이유.
무엇보다 애초에 질 싸움이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현성에게도 레드 룸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직 남은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알케르도를 꺾고, 뱀파이어가 마족 편에 붙는 걸 막아내는 것.
‘알케르도만 막는다면 뱀파이어와 마족이 손을 잡는 건 차단할 수 있을 테고….’
거기다 더 해 뱀파이어 내부에서 현성 그의 입지를 다짐은 물론, 레이첼의 입지 역시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그대로 옷 정리를 마친 현성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뱀파이어가 마족이랑 붙는 건 막아낸다.’
모든 것은 해피엔딩을 위해.
현성이 그렇게 다짐하며 방문을 열었다.
이어서 현성과 레이첼이 다른 뱀파이어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장소는 왕국 내부에 마련된 공간.
마치 콜로세움과 같은 원형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구조.
이곳이 바로 레드 룸이 열릴 장소였다.
“흐음….”
그 아래. 현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기를 보아하니 움직이는 데는 큰 제약이 없을 거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
-뚜벅뚜벅.
누군가 레드 룸 내부, 그러니까 현성의 맞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눈부신 은발과 붉은 눈.
한 눈에 봐도 깔끔한 미청년.
그는 바로 알케르도였다.
곧 그의 등장과 동시에 주변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역시 귀족파의 대표다운 등장이었다.
“용케 도망치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군.”
그대로 알케르도가 맞은편에 있는 현성을 바라보며 조소했다.
이에 현성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어디서 모기가 앵앵거리나.”
“….”
그런 현성의 말에 알케르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알케르도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흥, 하등한 인간 주제에.”
그러자 현성이 고개를 까닥이며 입을 열었다.
“네, 다음 자칭 약혼자.”
이어서 현성이 알케르도를 향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혼자 사귄다고 착각하는 건 아무래도 좀 추하지 않아?”
그 말에 알케르도가 움찔거렸다.
동시에 그가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도발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어차피 그 건방진 태도도 얼마 가지 못할 테니 지금이라도 맘껏….”
그때였다.
현성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심판을 향해 외쳤다.
“준비 다 됐습니다. 시작하시죠.”
“감히 내 말을 끊….”
“아, 준비 안 됐어? 난 또…그렇게 입 털어내는 거 보니 준비 다 된 줄 알았지.”
그대로 현성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이에 알케르도가 애써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러자 귀족파로 보이는 심판이 그의 눈치를 보며 입을 떼었다.
“그…알케르도 님 어떻게 할까요?”
그런 심판의 말에 알케르도가 미간을 찡그리며 외쳤다.
“어떻게 하긴! 당장 시작해!”
“아, 알겠습니다!”
그와 함께 심판이 레드 룸의 시작을 알리는 손을 들었다.
이제 본격적인 결투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알케르도가 곧바로 피를 내었다.
-주르륵.
그리고 흘러내린 피가 그의 몸을 감싸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알케르도가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빠른 속도로 쇄도하는 알케르도.
-슈슉!
달려오는 알케르도를 발견한 현성이 손바닥을 펼쳤다.
이어서 그의 손을 타고 불꽃의 구가 생성되었다.
-화르륵.
그 모습에 알케르도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듣기로는 저 녀석은 마법사!’
현성이 인간 중에서 아무리 잘났다고 한들, 그가 마법사인 이상.
근접전에서는 맥을 쓰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곧바로 기세를 잡는다.
“파이어볼을 날리기도 전에 끝내주지!”
그대로 알케르도가 지그재그로 스텝을 밟으며 쇄도했다.
‘맞출 테면 맞춰보라지!’
그리고 그가 현성을 향해 공격을 날리기 직전이었다.
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근접은 자신있나봐? 근데 이것 참 우연이네.”
동시에 현성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불꽃의 구가 일그러지며, 붉은 불길이 현성의 팔을 휘감았다.
이어서 현성이 자세를 낮추고는 곧바로 허리를 돌리며, 주먹을 내질렀다.
“나도 근접은 자신 있거든.”
“…뭐?”
그 순간이었다.
그대로 체중이 실린 주먹이 정확히 알케르도의 안면을 가격했다.
그야말로 깔끔한 펀치의 정석.
-콰아아앙!!
그와 함께 불꽃이 폭발하며 커다란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그런 폭발음 사이로 알케르도의 비명이 삐져나오며 그가 저 멀리 날아갔다.
“커어어억!!”
그런 알케르도의 모습에 현성이 남은 불꽃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새끼가 어디서 스텝을 밟고 지랄이야.”
동시에 그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
[퀘스트 : 신념의 싸움]
퀘스트 내용
-귀족파의 대표 알케르도와의 레드 룸에서 승리하시오.(진행 중)
보상 : 뱀파이어 족과의 우호적인 관계
그것은 다름 아닌 스토리의 진행을 알리는 퀘스트 창이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