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화 위험한 상견례(9)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상태창.
[이름 : 알케르도]
성별 : 남성
나이 : ??
종족 : 뱀파이어
클래스 : 혈마법사
업적 : [피의 왕국의 귀족파], [귀족파의 수장]
이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은발의 미청년, 이름은 알케르도.
그는 상태창에서 알 수 있듯이, 왕정파와 귀족파로 나뉜 피의 왕국에서 귀족파를 대표하는 뱀파이어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째서 냅다 저녁식사에 난입한 것도 모자라, 현성의 멱살을 잡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알케르도 그가 레이첼의 약혼자이기 때문이었다.
‘뭐 정확히는 자칭 약혼자지만.’
보통 귀족사회에서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 정략결혼의 형태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는 뱀파이어 역시 마찬가지.
그에 따라 알케르도 또한 권력을 위해 레이첼을 노리고 있었다.
“대답해라. 인간!”
알케르도가 현성의 멱살을 잡은 채.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현성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그런 현성의 말에 알케르도의 표정이 급속도로 일그러졌다.
처음에는 레이첼이 왔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런데 웬 걸.
그를 기다리는 것은 메이드들의 저지였다.
듣기로는 레이첼이 직접 남자친구를 데려왔다고 했다.
그것도 외부에서, 심지어 인간 남자친구를 말이다.
그 소리에 알케르도는 화를 참지 못하고 저녁식사에 난입했다.
보통이면 무례라고 생각할 수 있는 행위였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큰 제약이 되지 않았다.
그는 무려 귀족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진 가문.
그만큼 귀족파의 대부분을 그를 지지하고 있는 만큼.
피의 군주, 임플 역시 그를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적어도 피의 왕국 내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인간이 레이첼의 남자친구를 자처한다니.
그건 알케르도에게 있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뭐라고?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눈앞의 인간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이에 알케르도가 그의 멱살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며 말했다.
“이런 하등한 종족이 감히 제 분수도 모르고…!”
그대로 그가 현성을 내팽개치려는 순간이었다.
-터업.
현성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동시에 현성이 손아귀에 힘을 주며 알케르도의 손목을 꺾었다.
그런 현성의 손등에는 굵은 힘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뚜두둑!
그와 함께 알케르도의 입을 타고 작은 비명이 삐져나왔다.
“…크흑!”
그러자 그의 손이 부들거리더니 결국 잡고 있던 현성의 멱살을 놓고 말았다.
이에 현성이 그의 손목을 내던지며 입을 열었다.
“초면부터 멱살이라니. 뱀파이어치고 예의가 영 별로군요.”
현성이 두 손을 가볍게 털며 조소했다.
명백한 비웃음.
그 모습에 알케르도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어! 요즘 인간은 전부 정신이 나갔나?”
감히 인간 따위에게 조롱을 당했다.
몇 세기전만 해도 그저 가축에 불과한 인간한테 말이다.
이에 알케르도가 현성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역시 인간 놈들은 맞아야 정신 차리지?”
그때였다.
임플이 탁자를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콰앙!
동시에 임플이 알케르도를 향해 외쳤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쩌렁쩌렁한 임플의 외침.
그런 그의 몸 주위로는 어느새 핏빛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에 압도된 알케르도가 움찔거렸다.
-멈칫.
아무리 알케르도, 그가 귀족파를 대표한다고 해도 아직 피의 왕국의 최고 권력은 임플에게 있었다.
무엇보다 임플을 타고 느껴지는 저 기백.
이에 알케르도가 먼저 꼬리를 내렸다.
“…칫.”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임플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그대로 알케르도가 손을 내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와 함께 방 안에는 무거운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정도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러자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란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알케르도. 여긴 무슨 일이죠?”
그런 란트의 물음에 알케르도가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
“…이미 다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갑작스레 웬 인간이 레이첼과 사귄다고 하는데 약혼자인 제가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이에 란트가 미간을 살짝 구기며 그를 바라보았다.
“약혼은 아직 확정된 이야기가 아닐 텐데요.”
그녀의 말대로 약혼은 어디까지나 귀족파에서 이야기를 꺼낸 것 뿐.
아직 확정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거기다 레이첼이 근 몇 년간 자리를 비우면서 흐지부지된 사안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케르도를 포함한 귀족파는 끈질기게 약혼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겉으로는 왕정파와 귀족의 화합의 증거니, 뱀파이어의 결속력을 단단히 하니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하고 있었으나, 결국에는 왕권을 넘볼 속셈이었다.
그리고 이를 알고 있는 임플과 란트는 약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직 레이첼이 부재중이니 다음번에 이야기하자고 미뤄왔지만 지금은 보다시피 레이첼이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상태.
더 이상 그녀가 부재중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 아니면 마땅한 약혼자도 없지 않습니까.”
알케르도 역시 이를 아는 이상.
조금씩 자신의 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게다가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살 생각이시죠?”
그것은 바로 뱀파이어 족의 상태.
알다시피 현재 그들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살고 있는 신세.
그리고 이는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이었다.
과거에는 어땠는가.
인간들의 눈치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인간 위에 군림하였던 게 바로 뱀파이어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인간들의 눈을 피해 숨어사는 신세라니.
덕분에 대부분의 뱀파이어들은 찬란한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눈치보고 살지 않는 삶을 바라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뱀파이어는 내부적으로 두 파로 갈렸다.
우선 첫 번째는 종족에게 걸린 저주, 피의 갈증을 풀어내고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자는 온건파.
그리고 두 번째는 마족들에게 붙어 인간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자는 강경파.
“그러게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빠른 미래 안에 마족은 다시 인간계로 넘어와 세력을 넓힐 겁니다. 그리고 저희 뱀파이어가 마족 편에 붙는다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도 그러는 건가?”
과거 뱀파이어는 마족과 연합을 유지한 적이 있었다.
허나 중간에 마찰이 존재했으며, 마족이 기사단에게 당하면서 이는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지 않았습니까.”
단호한 알케르도의 대답.
방금 전 발언으로 알 수 있듯이 알케르도는 강경파에 해당하는 뱀파이어였다.
“…쯧.”
동시에 현성이 알케르도를 바라보며 작게 혀를 찼다.
전에 말했듯이 본 에피소드에서 분기는 2개.
뱀파이어가 마족에게 붙느냐, 아님 플레이어 쪽에 붙느냐.
그리고 여기서 뱀파이어가 마족에게 붙도록 유도하는 게 바로 눈앞의 알케르도였다.
‘…한 마디로 저놈이 원흉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플레이어가 할 일은 간단했다.
원흉을 제거하는 것.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알케르도를 꺾고, 뱀파이어 족을 플레이어(인간)쪽에 붙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현성이 테이블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알케르도의 말에 고민하고 있는 임플과 란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둘 중 어느 쪽도 섣불리 선택할 수 없는 만큼,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알케르도가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작게 웃었다.
‘그럼 이제 슬슬 나서볼까….’
그대로 임플이 입을 열려던 찰나.
돌연 현성이 알케르도를 향해 말했다.
“글쎄요. 그건 별로 좋은 의견이 아닐 텐데요.”
갑작스런 현성의 발언.
덕분에 방 안에 있는 모든 시선이 현성에게 쏠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인간은 빠져있어라. 뱀파이어들의 일이다.”
알케르도가 작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저 머리를 붙잡고 테이블에 박아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임플이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이번에는 단순히 경고로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젠장….’
그렇기 때문에 알케르도는 최대한 성질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놈이 관여한 일이 아니란 거지.”
그 말에 현성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워낙 이해가 안 되서 말입니다. 거기다 따지고 보면 저는 피의 왕국에 직접 초대받은 입장 아닙니까. 무엇보다 레이첼과 교제하고 있는 사이기도 하고요.”
이에 알케르도가 미간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현성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아예 못 들은 척 하기도 난감하더라고요.”
뻔뻔한 현성의 대답.
그런 그의 태도에 란트가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였다.
그대로 란트가 현성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동시에 현성이 히죽 웃었다.
그의 계획대로 되었다.
이게 다 전부 현성 그가 사전에 란트의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레이첼과 교제하는 인간.
거기다 가고일과 웨어울프의 습격을 해결하고, 레이첼이 납치당한 위기의 상황을 타개한 인간.
그 모든 게 합쳐져 지금 현성에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한마디로 올려도 되겠습니까.”
“…들어보도록 하지.”
이에 현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 마족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득보다는 오히려 실이 많은 판단이라 사료됩니다.”
“그 이유는?”
란트가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선 첫 번째, 기록상 마족은 과거 기사단과의 싸움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있다고는 한들, 지금 상황에 마족이 다시 등장하여 세력을 이룬다는 것은 억측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그 기미를 보인 것조차 10년 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마족을 기다린다는 건 도박 수에 가깝죠.”
물론 거짓말이다.
마족은 알케르도의 말대로 빠른 미래 안에 다시 등장할 것이다.
허나 지금 이 자리에 그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현성 그 뿐이었다.
그것이 현성에게 주어진 특권.
그리고 그는 이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대로 현성이 알케르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 마족과 손을 잡는다한들, 마족이 우호적으로 나올 거라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하군요. 단순히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받는다? 아뇨, 마족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녀석들입니다. 오히려 뱀파이어 족이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뱀파이어를 공격할지도 모르지요.”
이것 역시 거짓말.
미래에 플레이어가 나서지 않는다면 뱀파이어는 마족 편에 붙는다.
그러나 방에 있는 그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왜?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런 상황에서 현성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그저 그럴싸하게 꾸며내는 것이었다.
현성이 임플과 란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앞서 말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결국은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죠. 그렇다면 좀 더 확실한 걸 말해볼까요?”
그대로 현성이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마지막 세 번째,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마족을 기다릴 바에는 차라리 저와 레이첼이 가져온 정령왕의 술잔을 이용해 저주를 풀고, 서서히 영역을 넓히는 게 훨씬 낫습니다. 거기다 저는 인간. 저를 통한다면 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의 교류를 잇는 다리를 마련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이에 알케르도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하! 기껏 네놈하나가 나선다고 그게 가능할거라 생각하나?”
그러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불가능할건 뭡니까.”
“흥.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렇다면 알려드리죠.”
“…뭐?”
그와 함께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임플과 란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 유현성. 유 가문의 가주입니다.”
그와 동시에 임플과 란트, 레이첼은 물론 알케르도 역시 미간을 좁혔다.
한 가문의 가주라니.
그대로 현성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몰라도 인간사회에서 유 가문이 가지는 영향력은 꽤 대단하거든요.”
화려한 마지막 거짓말.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계획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현성이 싱긋 웃으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요?”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