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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83화 (83/240)

083화 위험한 상견례(8)

“주책이야. 당신.”

그런 임플의 외침에 란트가 작게 웃으며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그대로 임플을 자리에 앉히고는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마침 저녁시간인데 식사나 같이 할까요? 현성 군.”

이어서 란트 역시 자리에 앉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으니 말이죠.”

이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죠.”

오히려 현성이 바라던 대로였다.

이것으로 자연스럽게(?) 임플과 란트와 대화를 할 자리는 마련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그들의 태도를 우호적으로 바꿀 것인가.

“그럼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레이첼도 앉으려무나.”

란트의 말과 함께 현성과 레이첼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메이드들이 저마다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쉴 새 없이 방을 오갔다.

그럴수록 긴 테이블 위에는 차곡차곡 음식이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빵을 물론이며, 샐러드, 고기까지.

호화스럽기 그지없는 음식들.

그대로 테이블이 가득 차고 메이드들이 꾸벅 인사를 하고 방문을 닫았다.

-철컥.

그러자 란트가 맞은편에 앉은 현성을 향해 손을 펼치며 말했다.

“맛있게 드시지요. 레이첼도 간만에 같이 즐기는 식사인 만큼 마음껏 즐기려무나.”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와 함께 현성과 레이첼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며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식사를 하던 란트가 현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현재 우리 딸과 교제하는 사이라고?”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임플이 멈칫거리며 현성을 째려보았다.

이에 현성은 일플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럼 교제한지는 얼마나 됐죠?”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얼굴 하나 바뀌지 않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내뱉는 현성.

그런 그의 모습에 레이첼이 빵을 씹다말고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

레이첼의 눈빛에 현성이 태연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맞지? 레이첼?”

그러면서 현성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와 동시에 레이첼이 그의 목덜미와 현성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이번에 연인임을 연기하면서 내건 조건.

그것은 다름 아닌 현성 1회 흡혈권.

그래. 어차피 이번 한 번만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 사실을 기억해낸 레이첼이 포크로 빵을 지그시 누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응. 맞아. 그런 걸 다 기억하네.”

레이첼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말에 란트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현성과 레이첼을 번갈아보았다.

그대로 란트가 말했다.

“그렇다면 사귀던 도중, 같이 정령의 신전을 찾아낸 건가요?”

“좀 더 정확히는 그때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죠.”

현성의 대답.

이에 맞은 편 자리를 타고 마치 이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빠드득!

그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임플이 앉아있는 곳.

임플은 눈을 부릅뜬 채, 현성을 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는 고기를 씹는 건지 포크를 씹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아이참. 여보. 포크를 씹으면 어떻게 해요.”

그 모습에 란트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자 임플이 여전히 현성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내 정신 좀 봐. 내 정신 좀….”

그대로 임플에 들린 포크가 부르르 떨렸다.

아무튼 그런 임플을 뒤로 하고, 란트가 마저 질문했다.

“그런데 세라나 다른 뱀파이어에게 듣자하니 오는 길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데….”

가고일과 웨어울프, 그리고 레이첼의 납치에 관한 일이었다.

자칫하면 큰 일로 번질 수 있던 2건의 습격.

하지만 모두 현성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매듭지울 수 있었다고 했다.

‘…아마 세라 그 아이가 그렇게 인간을 변호하는 건 처음이었지.’

세라.

레이첼이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경호를 담당했던 뱀파이어로, 그녀는 그 역할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직접 나서 현성을 변호했다.

‘심지어는 본인의 입으로 믿을만한 인간이라고 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혹시나 싶어 세라를 제외한 루이나 다른 뱀파이어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비슷했다.

그리고 뱀파이어들이 입을 모아 믿을만하다고 말할수록, 란트는 눈앞의 현성이라는 인간에게 점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령왕의 술잔까지 획득하도록 도운 것도 모자라서 이런 활약을 보였다라.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인간이었다.

그대로 란트가 흥미롭게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걸 전부 해결했다고?”

란트의 물음에 현성의 답변은 이번에도 똑같았다.

그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호오.”

그 말에 란트의 입가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동시에 옆에 있던 임플이 피식 웃으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렇지. 운이고말고. 감히 인간주제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보나마나 정령왕의 술잔을 얻을 때도 우리 레이첼이 활약한 것에 숟가락을 얹은 것뿐 아닌가.”

“이 사람이 정말….”

그런 임플의 말에 란트가 미간을 구기며, 빵을 집어 들더니 곧바로 임플의 입에 쑤셔 넣었다.

-콰악!

그대로 란트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은 일단 좀 가만히 있어 봐요. 나 이야기 하는 중이잖아요.”

“읍읍.”

란트가 그런 임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래보여도 임플은 평소에는 피의 왕국의 군주라는 이름값을 하는 남자였다.

그런데 어찌된 게 항상 딸아이만 관련되면 그저 눈이 돌아가서는 이런 꼴이 되곤 했다.

‘…그만큼 딸을 아끼는 건 이해하지만.’

란트가 현성을 흘깃 바라보며 턱을 매만졌다.

‘이런 건 확실히 해야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

세라도 그랬지만, 란트 역시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멍청한 자가 아니었다.

그게 운이라는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구태여 세라가 보고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가고일과 웨어울프의 습격, 암살자에게 납치당한 레이첼.

그 이름만 들어도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이 이를 해결했다면, 이번 정령왕의 술잔을 획득하는데도 그의 비중이 컸을 게 분명했다.

‘레이첼이 무려 몇 년 동안 있었음에도 하나도 진전 없던 일이었어. 근데 그걸 이렇게 갑자기 해결했다고?’

이 모든 게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뿐이었다.

유현성, 그는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인간들과는 달랐다.

아니 심지어 뱀파이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인간에게 이런 평가를 내린 것 이번이 처음이군.’

하지만 그 판단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지금껏 특유의 안목으로 이 자리에 올라온 게 바로 란트이다.

그만큼 그녀의 눈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

레이첼은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은 것만 같았다.

간만의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 그래도 지금까지 분위기는 꽤 괜찮은 거 같은데….’

레이첼이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물론 아빠의 경우는 원래도 저랬으니 대충 넘어가고, 엄마는 의외로 침착하게 대화를 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현성은 언제나 그랬듯이 태연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좌불안석인건 현성일 터.

그러나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스테이크를 썰고는 그대로 입에 넣었다.

‘…이 상황에 그게 들어가는지 원.’

그때였다.

뭔가 생각하던 란트가 현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딸아이와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지?”

그 말에 레이첼은 물론 옆에 있던 임플이 크게 움찔거렸다.

제 자리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란트와 현성 뿐.

그대로 현성이 말했다.

“별 거 없습니다. 단둘이 도서관에 가거나, 숲으로 산책을 간다거나, 같이 미로를 푸는 정도?”

이에 레이첼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전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허나 도서관은 유령퇴치, 숲은 비밀의 숲, 미로는 정령의 신전에서 있던 일이었다.

그곳에서 레이첼이 느낀 건 설렘은 개뿔.

지옥 같은 고통의 연속뿐이었다.

특히 피가 떨어져 골렘의 공격을 피하지 못할 때는 진심으로 죽는 줄 알았다.

‘물론 그때 구해준 건 현성이었지만….’

그때 조금, 아주 조금.

설렐 뻔 했다.

어느새 얼굴이 빨개진 레이첼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흐응….”

그런 레이첼의 모습을 보고 란트가 흥미로운 듯 턱을 괴었다.

딸아이의 저런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레이첼의 처음 보여준 모습에 임플은 그야말로 위기의 상황이었다.

“스읍…후우…스읍….”

임플은 필사적으로 심호흡을 하며 화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나마 나열한 게 저 정도라 망정이지.

만약 저 도둑놈의 자식이 키스라도 했으면 당장에라도 들고 있던 나이프를 던질 뻔했다.

“2년 사귄 거치고는 상당히 플라토닉하네요. 다른 건 없나요?”

란트가 현성을 향해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딸아이의 연애사도 꽤 궁금했다.

그러자 현성이 싱긋 웃었다.

“그런가요. 그거 말고는 뭐….”

그대로 현성이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흡혈정도?”

그 순간이었다.

란트가 입을 가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흡혈이라니. 의외였다.

“어머.”

동시에 임플의 심호흡이 멎었다.

그 둘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뱀파이어의 흡혈이 가지는 의미 때문.

통상적으로 뱀파이어는 모두 흡혈을 한다.

이때는 딱히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

그러나 같은 뱀파이어끼리, 혹은 연인들끼리 흡혈을 하는 경우는 말이 다르다.

앞의 경우와 달리, 이때 흡혈이 가지는 의미는 다름 아닌.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하겠어요.

처음 레이첼이 현성의 피를 팔 때.

그렇게 부끄러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현성의 말에 임플이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이성이 끊어졌다.

“이, 이 도둑놈이 감히 내 딸에게….”

그와 함께 임플이 냅다 들고 있던 나이프를 현성을 향해 투척했다.

그대로 그가 외쳤다.

“죽어라! 도둑놈!”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

그렇게 날아간 나이프는 정확히 현성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현성은 당황하기는커녕. 히죽 웃으며 손을 뻗어 날아오는 나이프를 붙잡았다.

-덥썩!

그리고 현성은 임플이 날린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

“마침 나이프가 필요했는데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저, 저, 저놈이…!”

그 말에 임플은 부들부들 떨며 포크를 부여잡았다.

동시에 뒷목을 타고 느껴지는 격통.

정말이지 오늘따라 뒷목 잡을 일이 유독 많이 일어났다.

“당신도 참….”

란트가 그런 임플과 현성을 번갈아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그렇게 받아치다니. 역시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그대로 란트가 레이첼을 바라보며 말했다.

“레이첼, 재미있는 남자친구를 데려왔구나.”

그때였다.

바깥을 타고 메이드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이에 레이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건 임플과 란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웅성거림이 여기까지 들릴 정도라면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그러자 현성이 나이프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이제 슬슬 시작될 차례군.’

그대로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고.

그 소리가 바로 문 앞까지 들렸을 때.

돌연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당장 비키지 못해?”

만류하는 메이드의 팔을 뿌리치고 등장한 자는 다름 아닌 은발의 미청년.

동시에 그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현성을 발견한 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어가 냅다 현성의 멱살을 쥐었다.

-꽈악!

그대로 현성의 멱살을 움켜쥔 그가 이를 갈며 말했다.

“니가 그 잘난 레이첼의 남자친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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