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화 위험한 상견례(5)
레이첼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가고일? 그게 아니면 웨어울프에서 보낸 건가?”
하지만 그런 레이첼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현성이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주시했다.
이건 <이스페리아>의 메인 스토리 진향방향과는 달랐다.
‘가고일과 웨어울프를 따돌리면서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한 건가.’
현성 그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새로운 변수일까.
그게 아니면 단순히 가고일과 웨어울프 둘 중 한 곳에서 쫒아온 자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웨어울프의 특징은 귀와 꼬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뭐 웨어울프 중에서도 드물게 귀와 꼬리를 감추고 행동하는 녀석들도 있으니 섣불리 배제할 수는 없겠다만….’
우선 지금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일단 가고일.
‘…가고일 녀석들이 따로 별동대를 조직한 건가.’
물론 이 예측이 전부 아닐 수도 있었다.
가고일도, 웨어울프도 아닌 제 3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야말로 아직까지의 정보만으로는 정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상태.
허나 확신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첼을 노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이 말은 녀석의 목표는 정령왕의 술잔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하였다.
거기까지 결론이 다다랐을 때.
현성이 작게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잡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녀가 가고일인지, 웨어울프인지, 제3 세력인지가 아니었다.
그녀가 레이첼을 노린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
그대로 현성이 절벽 위를 흘깃 바라보았다.
절벽 위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이곳은 다른 뱀파이어들이 있는 곳과 꽤나 거리가 있는 장소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저 자를 상대하는 것은 나와 레이첼 뿐.’
단순히만 본다면 1 대 2의 상황이었다.
쉽사리 질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눈앞의 그녀가 생각보다 강할 수도 있는 노릇.
‘그런 면에서 제일 좋은 선택지는 그전에 뱀파이어들이 우릴 찾아내는 거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곳은 꽤나 멀리 떨어진 곳.
다른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이 히죽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가끔씩은 이런 돌발 이벤트도 나쁘지 않지.’
어차피 이거나 그거나 목표는 똑같았다.
무사히 레이첼을 지키고 피의 왕국에 도달하는 것.
오히려 현성은 흥분하고 있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루트.
그것 하나만으로도 현성 그의 마음에 불을 지르기에는 충분했다.
그렇다, 그는 이미 <이스페리아>에 뇌가 절여진 게임에 미친놈이었다.
‘어디 새로운 이벤트 맛 좀 보자.’
그대로 레이첼과 그녀 사이로 숨이 막힐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먼저 그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정체불명의 그녀였다.
-파앗!
곧바로 그녀가 레이첼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이에 앞에 있던 현성이 재빨리 외쳤다.
“피해!”
“그 정도는 알고 있어!”
동시에 레이첼이 고개를 숙이며 단검을 피했다.
그대로 그녀가 피한 단검이 바로 뒤에 있던 나무에 박혔다.
그와 함께 현성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화르륵!
그런 현성의 손을 타고 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곧바로 화염이 그의 팔을 뒤덮은 순간.
현성의 전매특허, 파이어 펀치가 작렬했다.
“…?!”
그 모습에 정체불명의 그녀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날아오는 현성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상체를 틀었다.
‘걸렸다!’
그와 함께 현성이 기다렸다는 듯 작게 웃었다.
그리고 돌연 그의 주먹을 휘감았던 불꽃이 사라졌다.
이에 그녀가 미간을 좁혔다.
그대로 잠시 뒤.
불꽃이 타오르는 곳은 다름 아닌 현성 그의 발끝.
애초에 주먹은 페이크, 진짜는 발이었다.
현성의 공격에 그녀가 더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곧바로 그가 킥을 날리며, 발끝에 타오르던 화염이 폭발했다.
허나 그때였다.
-슈슉!
그녀의 몸을 타고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순간 이동했다.
그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방금 전 나무에 박힌 단검.
“뭐, 뭐야?!”
이에 레이첼이 화들짝 놀라며 바로 눈앞으로 이동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대로 그녀가 나무에 박힌 단검을 회수하며 레이첼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현성이 아니었다.
-고오오.
현성의 두 팔을 타고 서늘한 한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가 양 주먹을 깍지 낀 채, 있는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감히 어딜!”
우리 소중한 히로인이시다.
공격받게 둘 순 없지.
그와 함께 커다란 충격음이 울려 퍼지며, 바닥을 타고 얼음이 솟아나왔다.
-콰가가각!!
일직선으로 솟아난 얼음은 그대로 레이첼과 암살자 사이를 가로막았다.
덕분에 그녀의 단검은 애꿎은 얼음을 베고 지나갈 뿐이었다.
-카앙!
이에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다시 대치상황.
레이첼이 그녀와 그녀가 들고 있는 단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방금 그건….”
조금 전 그녀는 분명히 단검이 있는 방향으로 순간 이동했다.
세단에서 공격당했을 때도 그랬다.
‘단검이 푸르게 빛나면서 마법이 발동했었어.’
그러자 현성이 팔에 남은 얼음조각을 털어내며 말했다.
“단검에 공간 이동 마법을 부여한 거야.”
“…뭐?”
마법 부여.
마법을 구동하는 데에는 대표적으로 2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먼저 첫 번째는 현성과 같이 마법을 시전 하는 형태.
그리고 두 번째는 고대의 마도서와 같이 마법을 기록시키는 형태.
또한 이런 형태는 비단 마도서에만 고정되는 게 아니었다.
실력만 따라준다면 어떤 물건이든 가리지 않고 마법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저 녀석은 단검에 마법을 부여한 거지.’
단검에 마법을 부여하는 것은 어중간한 마법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거기다 그 짧은 사이에 단검이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그건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이 말은 곧 눈앞의 그녀는 단순한 마법사가 아님을 뜻했다.
‘듀얼 클래스.’
현성의 히든 클래스와는 달리 기존에 있는 두 가지 클래스를 합친 것.
그게 바로 듀얼 클래스였다.
그 가장 흔한 예시는 마검사였으며, 보아하니 그녀는 마법사와 암살자를 합친 형태.
‘…<이스페리아>에서도 흔치않은 조합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이거 까다롭겠군.’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끝낸다.
그대로 현성이 뒤에 있는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레이첼, 서포트를 부탁할게.”
그런 현성의 말에 레이첼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새끼손가락을 물었다.
그와 동시에 흘러내린 그녀의 피가 부드럽게 주위를 감쌌다.
“그럼 먼저 간다!”
레이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피가 암살자를 향해 쏘아졌다.
-쉬익!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는 여전히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사이, 레이첼의 피가 집요하게 그녀를 뒤쫓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재빠른 몸놀림을 펼치며, 보란 듯이 레이첼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에 레이첼이 미간을 좁히며 혀를 찼다.
“칫, 또 빗나갔어…!”
“괜찮아. 천천히 해.”
“하지만….”
그러자 그녀의 옆에 있던 현성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럴수록 더 안 맞는 거 알잖아.”
“….”
그러면서 현성이 단검을 들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녀는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암살자 특유의 빠른 속도와 그 사이 공간이동을 섞어가며 펼치는 단검 술.
‘못해도 마스터 암살자 급에다 마법실력도 수준급이다.’
덕분에 빨리 끝내야겠다는 계획과는 달리 그녀는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거기다 이곳은 나무가 우거진 숲속.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유리한 지형이었다.
‘그만큼 레이첼이 공격을 맞추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법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질질 끌 수는 없었다.
이에 현성이 레이첼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대로 잠시 뒤.
“…할 수 있겠어?”
그런 현성의 말에 레이첼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당연하지.”
레이첼의 당당한 대답.
그러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와 동시에 현성이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곧바로 이어지는 공격.
허나 그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현성의 공격을 피해내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그녀.
이에 현성이 한 손에는 화염을, 다른 한 손에는 얼음을 두른 채.
쉬지 않고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그와 함께 현성이 한 번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얼음조각이 휘몰아치고, 발을 구를 때마다 화염이 폭발하며 그 주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게 바로 힘법사의 장점.
폭발적인 딜링이었다.
몰아치는 그의 공격덕분에 그녀는 점점 피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곳곳에 단검을 던지며 그곳으로 순간이동하며 거리를 벌렸다.
-슈슉!
하지만 현성은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고 그녀를 집요하게 쫓아갔다.
그리고 뒤에 있는 레이첼은 눈동자를 쉼 없이 움직이며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대로 얼마나 공방을 주고받았을까.
아니 솔직히는 공방도 아니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현성의 일방적인 공격.
이에 그녀는 순간이동을 섞어가며 그 공격을 피할 뿐이었다.
“…칫!”
그렇게 계속되는 공격에 그녀가 미간을 구겼다.
이어서 그녀의 몸이 푸른빛에 일렁이며 사라지려는 타이밍이었다.
돌연 레이첼이 현성을 향해 외쳤다.
“동서쪽에 있는 나무!”
그때였다.
현성이 그런 레이첼의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서쪽으로 돌진했다.
-파앗!
그러자 그곳에는 이제 막 순간 이동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그녀가 어디로 이동했을지 예측한 것처럼 움직인 현성.
이에 그녀가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그 모습에 현성이 히죽 웃었다.
바로 방금 전.
현성이 레이첼에게 말한 게 이 부분이었다.
‘단검을 던지는 위치를 실시간으로 기억해줘.’
물론 보통의 경우라면 이는 불가능했다.
과연 누가 그 복잡한 전투 중에 그걸 다 기억하느냐.
허나 레이첼은 달랐다.
‘이래보여도 <이스페리아>의 공식 설정 상, 레이첼은 한 번 기억한건 쉽게 까먹지 않는 기억력의 소유자!’
전에 말했듯이 레이첼은 암기력하나는 끝내줬다.
즉 흔히 말하는 천재가 바로 레이첼.
물론 지금껏 그 비상한 머리를 철권 커멘드를 외우는데 썼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레이첼은 이미 뛰어난 암기력을 이용해 그녀가 던진 모든 단검의 위치를 외웠고.
마침내 그녀가 다음으로 이동할 위치를 예측하는 데까지 성공한 것이다.
단검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고, 그녀가 순간이동을 할수록 단검은 줄어들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나이스! 레이첼!”
그와 함께 현성이 그녀를 향해 파이어 펀치를 날렸다.
그 결과.
미처 피할 틈도 없이 현성의 주먹이 직격함과 동시에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제대로 공격이 들어갔다.
“크읏!”
그 공격에 그녀가 복부를 움켜쥐고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현성이 그녀를 마무리하기 위해 달려간 순간.
-슈슉!
그녀가 황급히 순간이동을 펼쳤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남은 단검은 단 하나.
바로 현성 그의 뒤쪽 바닥에 박혀있는 단검이었다.
“이미 늦었어!”
곧바로 현성이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으며 몸을 돌렸다.
그대로 그의 손을 따라 나온 것은 헌리스의 창.
이어서 현성이 뒤쪽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쉬이익!
이에 뒤쪽으로 순간 이동한 그녀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현성을 그었다.
아니 그으려고 한 그 찰나의 순간.
그녀의 손이 주춤거렸다.
이미 예측 당해 한 발 늦었다고 판단했을까.
그러나 현성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오직 빈틈을 노려 마지막 일격을 꽂는 것.
-푸욱!
그대로 현성의 창끝을 타고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두 손을 뻗어 현성의 창을 막아내고 있었다.
-주르륵.
부들거리는 그녀의 손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절벽 위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
“레이첼님! 현성님!”
“두 분 다 무사하셨군요!”
마침내 뱀파이어들이 그 둘을 찾아냈다.
이에 잠시 모두의 신경이 위쪽으로 쏠린 그 짧은 사이.
그녀가 현성의 창을 흘러냈다.
-콰직!
물론 그 대가는 가혹했다.
현성의 창이 그녀의 옆구리를 찢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방법.
“….”
하지만 그녀는 신음소리하나 내지 않은 채, 이를 악물고 도약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는 현성과 레이첼이, 위에는 뱀파이어들이 잔뜩 깔려있었다.
이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악!
그와 동시에 맨 처음 레이첼을 납치했을 때와 같은 마법진이 펼쳐졌다.
그대로 푸른빛이 폭발하며 그녀가 사라졌다.
-파아앗!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
이에 레이첼이 재빨리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다.
“제길! 놓치다니!”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
레이첼이 분한 듯 주먹을 꾹 쥐었다.
허나 현성이 그녀를 향해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런 피해도 없잖아.”
오히려 좋았다.
아무런 피해도 없었고, 레이첼도 무사했다.
괜히 전투가 지속되었다가 그녀가 다치거나, 정령왕의 술잔을 빼앗기는 거에 비하면 백배천배 나았다.
“하지만….”
“레이첼. 난 니가 무사한 것만으로도 만족해.”
현성이 레이첼을 지그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 뭐, 뭐라고?”
그러자 급속도로 붉어지는 레이첼의 얼굴.
현성이 그런 그녀를 향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됐고. 빨리 가자고. 이러다 늦겠다.”
그러면서 현성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이에 레이첼이 푹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그러니까 아무데서나 훅 들어오지 말란 말이야….”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