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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79화 (79/240)

079화 위험한 상견례(4)

그렇게 한창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도로 위.

고렌이 표정을 와락 구기며 이를 악물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하필 뱀파이어들이 이 개새끼들이랑 연합을 맺을 줄이야….’

분명 뱀파이어들을 습격할 때만 해도 순조롭게 풀릴 줄 알았더니, 이런 경우는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하니 다른 웨어울프들을 준비시켜두다니.

‘젠장, 뱀파이어놈들…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했더니 이런 수를 숨겨두고 있었구나!’

그대로 고렌이 대검을 크게 휘두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주변은 앞뒤양옆 너나 할 거 없이 뒤섞여 싸우고 있었다.

그 꼴이 마치 시장판을 연상케 할 정도.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다른 놈들이라면 모를까.

웨어울프는 그 특유의 질긴 생명력과 거친 전투스타일 때문에 상당히 골치 아팠다.

그리고 그 생각은 웨어울프의 행동대장, 케이사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우라질!!”

전투를 이어가던 케이사른이 육성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팔을 휘둘렀다.

동시에 그를 상대하던 가고일 하나가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허나 가고일은 피부겉면이 돌과 같은 재질.

그만큼 방어력하나는 끝내주는 종족이었다.

덕분에 바닥을 구른 가고일은 재빨리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으며,

이에 케이사른은 흉성을 내지르며 주먹을 날렸다.

“저리 꺼져라, 조각상 주제에!!”

그렇게 외치는 케이사른은 짜증은 물론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분명 사전에 들은 정보대로라면 진즉에 뱀파이어 녀석들을 잡았어야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필 가고일 놈들과 한 통속일 줄이야….’

먼저 트럭이 와있을 때부터 의심해봐야 했다.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오토바이를 몰고 온 꼴이란.

가고일들과 뱀파이어들이 볼 때에는 우습기 그지없을 터.

-빠드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더욱 화가 났다.

이에 케이사른이 날카로운 이를 갈며 외쳤다.

“아주 모기새끼들이랑 돌대가리새끼들이랑 붙어서 난리구만!!”

그대로 케이사른의 성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순간이었다.

그런 케이사른의 외침에 다른 웨어울프를 상대하던 고렌이 휙 고개를 돌렸다.

“…뭐? 누가 누구랑 붙어?”

그와 함께 고렌이 대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모기 놈들이랑 붙어먹은 건 니들 개새끼겠지!”

가뜩이난 고렌은 그 사실 때문에 열 받아 쓰러지기 일보 직전.

그런데 이 상황에서 누구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니고 뭐?

가고일이랑 뱀파이어가 손을 잡아?

“니들은 자존심도 없냐? 붙을 게 없어서 그깟 모기들이랑 붙어? 하여간 이래서 개새끼는 안 된다니까…쯧.”

고렌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케이사른이 울컥 화를 내려던 찰나.

그가 뭔가 이상한 걸 눈치 챘다.

“이런 망할 조각상 돌대가리 새끼가…아니 잠깐.”

그대로 케이사른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렌과 주변의 가고일들을 번갈아보았다.

“…니들이야말로 모기 놈들이랑 손잡은 거 아니었냐?”

그 말에 고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랄. 이제는 개새끼라 개소리하냐? 우리가 왜 뱀파이어랑 손을 잡아?”

그런 고렌의 답변에 케이사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도 안 그랬어. 돌대가리 새끼야.”

“…잠깐, 뭐?”

동시에 고렌과 케이사른이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둘 사이에 오가는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그리고 이런 둘을 지켜보는 주변의 가고일과 웨어울프들.

“그렇다면….”

“…설마.”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고렌과 케이사른이 둘 중 너나 할 거 없이 동시에 검은 세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나 그곳에는 이미 텅 빈 세단만이 있을 뿐.

현성과 레이첼을 비롯한 뱀파이어는 머리카락 한 올 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자리를 뜬지 오래.

늦어도 한참 늦었다.

-꾸구국!

이에 케이사른이 주먹을 꾹 쥐고 부들거렸다.

그리고 그건 고렌 역시도 마찬가지.

곧바로 고렌과 케이사른이 서로의 멱살을 붙잡았다.

-콰악!

그대로 둘은 얼굴을 밀착한 채 당장에라도 서로를 씹어 먹을 듯 중얼거렸다.

“돌대가리 새끼가 그걸 지금 말해?”

“그럼 닌 알았냐? 멍청한 개새끼 같으니…!”

하지만 그도 잠시.

그 둘이 거칠게 멱살을 뿌리치며 분노에 찬 외침을 토해냈다.

“이런 썅!”

“망할 모기새끼들이!”

트럭과 오토바이가 널브러진 길거리 위.

마침내 둘 사이의 오해가 풀리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 * * * *

한편 고렌과 케이사른이 사이좋게(?) 오해를 풀고 있을 때.

현성과 레이첼을 비롯한 뱀파이어들은 무사히 전쟁터를 빠져나와 뒤에 대기하고 있던 세력과 합류하였다.

그대로 둘이 싸우고 있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빠져 거리를 달리는 검은 세단.

그곳에는 현성이 양옆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세단을 호위하듯 다른 차들이 일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드라이브하는 맛 나는구만.’

그리고 그런 현성의 모습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세라가 말했다.

“저…그런데 현성님은 가고일과 웨어울프가 습격할 일을 알고 계셨나요?”

그 질문에 운전을 하고 있던 루이 역시 관심을 보였다.

아니 그 누구라도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 상황에 그런 대처를 할 수 있었을까.

이에 현성이 창밖을 내다보며 작게 웃었다.

“글쎄요. 어떨 거 같아요?”

“…네?”

그대로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걸로 치죠.”

물론 현성 그가 이 모든 일을 예측한 것은 단순히 운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이스페리아>에서의 경험덕분.

오늘 벌어졌던 일들은 전부 메인 스토리상, 주인공이 레이첼과 함께 피의 왕국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에피소드들이었다.

그에 따라 플레이어의 목적은 두 세력에서 레이첼을 지켜내고 무사히 피의 왕국으로 도달하는 것.

여기서 원래 공략대로라면 그 과정에서 전투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원래 공략대로라면 말이지.’

하지만 현성은 전투를 피하면서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게 바로 이간질.

다른 말로는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물론 직접 써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옛 말씀에 틀린 말 하나 없다고, 옛 선조들의 지식은 지금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가고일과 웨어울프에게 작은 착각을 심어, 둘이 싸우게 만든다.

이런 현성의 아이디어는 실제로 완벽하게 먹혀들었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현성이라고 했나?’

세라가 현성을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레이첼님이 이 인간을 믿는 게 아니었군….’

역시 그는 레이첼 공주님이 직접 선택한 인간답게 보통이 아니었다.

자기 말로는 운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여기서 방금 그게 운이라고 생각할 뱀파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설사 그게 운이었다고 한들, 말 한 마디로 판을 짜는 그 능력.’

그건 절대 운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건 수많은 경험과 실력이 뒷받침되어야만 보여줄 수 있는 결과.

그만큼 그 짧은 시간 사이, 현성의 평가는 실시간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대단한 인간이다.’

이에 현성의 옆에 앉아있는 레이첼이 그를 흘깃 바라보고는 싱긋 웃었다.

‘역시.’

자신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현성은 보란 듯이 상황을 타개하였다.

그것도 무력은 전혀 쓰지 않고 말이다.

정말이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느끼는 거지만 현성에게는 남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직접 데려온 현성이 활약하니 알게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활약한 건 어디까지나 현성이었지만 덕분에 그녀 역시 치켜세워지는 느낌이랄까.

‘뭐…나쁘지 않네.’

아직까지는 연인인 ‘척’하는 거지만, 계속 이렇게 흘러간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꽤 괜찮을 거 같았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났는지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쯤이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현성이 세라와 루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왕국까지 도착하기에는 얼마나 남았죠?”

“흠, 이정도면….”

곧 세라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20분 안에 도착할 거 같군요. 그동안은 편히 쉬고 계시죠. 가고일과 웨어울프를 따돌렸으니 추가적인 습격은 없….”

그 순간이었다.

돌연 차 지붕위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이에 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그건 루이마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낙석인가 싶었지만, 이곳은 텅 빈 도로.

거기다 주변에는 자신들과 같이 뱀파이어들이 타고 있는 차들이 전부였다.

“제가 살펴보죠.”

그와 동시에 세라가 창문을 내리고 위를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때였다.

바로 옆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던 뱀파이어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입을 뻥긋 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창문이 닫힌 상태.

“…?”

동시에 세라의 귓가를 타고 매서운 파공성이 들려왔다.

-피잇!

채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대로 세라의 볼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다름 아닌 단검 한 자루.

그런 그녀의 볼을 타고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무리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한들, 뱀파이어인 그녀조차 알아차리는데 한 발 늦었다.

그만큼 단검은 빨랐으며, 날카로웠다.

그리고 이것의 의미하는 바는 그리 많지 않았다.

“또 다른 습격?!”

이에 세라가 재빨리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만약 이게 습격이라면 노리는 것은 당연히 레이첼.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세라의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레이첼님!!”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다른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단검을 던진 정체불명의 자가 생각보다 훨씬 노련한 자였다는 것.

곧바로 뒷좌석에 박힌 단검의 검신이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단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마법진.

무엇보다 마법진의 크기는 딱 뒷좌석에 앉아있는 레이첼을 덮을 정도.

그 모습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멈칫!

빛을 뿜는 마법진.

그 모양은 얼마 전 그가 썼던 마법과 똑같았다.

여기서 그 마법은 바로 정령의 신전에서 쓴 공간이동 마법진.

“젠장!”

이에 현성이 재빨리 레이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가 레이첼의 손목을 잡은 순간이었다.

마법진이 발동하며 푸른빛이 그대로 현성과 레이첼을 뒤덮었다.

-파아앗!

그렇게 푸른빛이 사그라졌을 때.

그곳에는 현성과 레이첼은 온데간데없고 텅 빈 뒷좌석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동시에 세라가 이를 으드득 갈며 주변의 뱀파이어들에게 소리쳤다.

“위급 상황 발생! 레이첼님이 납치당했다!!”

* * * * *

잠시 뒤.

아무도 없는 숲 속.

허공에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공중에 그려진 마법진을 타고 레이첼이 떨어졌다.

-슈슉!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

이에 레이첼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각하기도 전이었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지금 자신이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뿐.

이를 증명하듯 귓가를 타고 매서운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였다.

“레이첼!”

바로 위를 타고 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레이첼이 고개를 올려 위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에는 현성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현성?!”

동시에 레이첼이 손을 뻗자, 현성이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그대로 현성이 레이첼 끌어안으며 외쳤다.

“꽉 잡아!”

그와 함께 현성과 레이첼이 떨어지기 직전.

현성이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몸을 틀어 나무 위로 떨어졌다.

이어서 나무가 크게 흔들리며 사방으로 나뭇잎이 흩날렸다.

-우수수!

하지만 그도 잠시.

나무 아래로 현성과 레이첼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현성이 품에 안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그런 현성의 말에 레이첼이 자신도 모르게 꾹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현성의 얼굴.

이에 레이첼이 움찔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다친 데는 없어?”

그러자 레이첼이 고개를 돌리며 말을 더듬었다.

“괘, 괜찮아.”

“그럼 다행이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대로 레이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오직 우거진 나무와 절벽 뿐.

“그나저나 여긴….”

그렇게 레이첼이 주변을 둘러보던 찰나.

현성이 누군가의 기척을 감지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레이첼 역시 마찬가지.

-찌릿!

그와 동시에 현성과 레이첼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우거진 나무 사이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

마치 암살자를 연상케 하는 검은 전신 타이즈.

거기다 얼굴에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려는 듯 가면을 쓰고 있었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 자가 여성이라는 점.

무엇보다도 양 손에 들고 있는 단검.

그 단검은 순간이동하기 직전, 현성이 봤던 단검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레이첼을 습격한 자는 바로 눈앞의 그녀.

“쯧.”

그대로 현성이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에 레이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누구야.”

“딱 봐도 안 말할 거 같은데 그냥 포기하지?”

현성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돌아오는 레이첼의 짧은 한마디.

“닥쳐.”

“아, 예.”

그런 그녀의 말에 현성이 건성으로 대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성질 더럽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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