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화 위험한 상견례(3)
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이가 핸들을 틀었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그대로 세단과 트럭이 충돌하며 커다란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앙…끼기긱!!
그 충격에 세단이 도로 위에서 공회전하며 엎어졌다.
그렇게 잠시 뒤.
도로 위에는 거친 스키드 마크가 새겨진 채, 세단에서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스윽.
그 모습에 트럭에서 복면을 쓴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세단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복면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까닥이자, 나머지 인원들이 천천히 세단을 향해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콰지직!!
검은 연기 속.
문짝이 뜯어지는 굉음과 동시에 문짝이 공중을 날았다.
그와 함께 번쩍이는 붉은 안광.
“…괜찮으십니까?”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루이와 세라.
루이와 세라는 각자 팔 한쪽에 붉은 피를 두른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곧이어 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현성과 레이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레이첼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현성이 먼지를 털어내며 대답했다.
“…습격이지. 뭐.”
그런 현성의 말에 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님의 말이 맞습니다. 습격입니다.”
갑작스러운 습격.
하지만 모두 피해는 없었다.
현성의 빠른 경고 때문이었다.
덕분에 루이와 세라는 트럭이 충돌하기 직전.
피를 펼쳐내어 현성과 레이첼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어디서 보낸 놈들이냐.”
루이가 붉은 안광을 번쩍이며 으르렁거렸다.
이에 세단을 향해 다가가던 인원들이 움찔거리며 재빨리 경계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곧.
맨 뒤에 있던 녀석이 루이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곧 뒤질 놈이 알아서 뭐하게?”
그대로 그가 피식 웃으며 등에 매고 있던 대검을 꺼내들었다.
-쿵!
대검을 꺼냄과 동시에 바닥을 타고 육중한 무게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런 그를 시작으로 세단을 둘러싼 인원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었다.
몽둥이부터 단검까지 다양한 무기들.
“….”
그 모습에 루이가 미간을 좁혔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몰랐지만 지금 저들이 호의적인 상대가 아닌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루이가 주먹을 꾹 쥐며 읊조렸다.
“세라, 레이첼님과 현성님을 우선적으로 지켜라.”
그들의 임무는 최우선적으로 레이첼을 지키는 것.
그의 말에 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현성과 레이첼의 앞에 섰다.
-처억.
그대로 그녀가 현성과 레이첼을 바라보며 말했다.
“레이첼님, 그리고 현성님. 우선 여기 계시지요. 곧바로 뒤에 있는 저희 편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지금은 연락하지마세요.”
“…예?”
그런 현성의 말에 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세라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리 저희 뱀파이어가 강하다고는 한들. 레이첼님을 보호하면서 이 정도 인원을 정리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이럴 땐 차라리 저희 병력을 더 불러와 정리하는 게 맞습니다.”
“글쎄요. 제 생각에는 그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네요.”
이에 세라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당장 지원 병력을 불러와도 모자를 판에 이게 무슨 말인가.
게다가 애초에 그런 말을 하는 주체가 현성이라는 것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레이첼님의 손님이자 교제하는 사이라 해서 참고 있었더니.’
결국 세라가 현성의 말을 무시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려는 찰나였다.
-터억.
돌연 레이첼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 행동에 세라가 멍하니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레이첼님?”
그대로 레이첼이 세라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만 믿어봐.”
“네? 하지만….”
곧바로 레이첼이 현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생각이 있는 거지?”
그런 레이첼의 말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 말대로 해서 결과가 안 좋은 적 있었어?”
그 말에 레이첼 역시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단 한 번도 없었지.”
현성의 말 그대로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그의 선택을 따라서 결과가 안 좋은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첼은 이번에도 현성을 믿기로 했다.
현성 그라면 분명 보란 듯이 해결할 테니까.
레이첼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세라가 꽤나 놀란 표정으로 빤히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레이첼님이…이런 적이 있었던가?’
피의 왕국의 공주 레이첼.
그런 그녀가 인간을 신뢰하다니.
어릴 적부터 레이첼을 지켜봤던 세라로서는 지금 눈앞의 그녀가 낯설게 느껴졌다.
“….”
이에 잠시 망설이던 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떼었다.
“알겠어요. 그럼 이번만….”
그때였다.
로이가 있던 곳을 타고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채앵!
동시에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대검을 들고 있던 복면의 사내와 로이가 격돌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로이가 대검을 튕겨내며 피를 두른 주먹을 내질렀다.
-부웅!
그대로 로이의 주먹이 녀석의 안면에 꽂혔다.
그 모습에 세라가 작게 웃었다.
‘제대로 들어갔다…!’
피를 두른 뱀파이어의 위력은 이미 입증되었다.
물론 로이 그가 레이첼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뱀파이어인 이상 어느 정도 피해를 입혔을 터.
하지만 그 뒤에 펼쳐진 상황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흘러갔다.
-그그극…!
그가 보란 듯이 로이의 주먹을 받아낸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고 말이다.
그저 보이는 건 찢어진 복면 뿐.
“크흐흐, 이 정도로는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
그런 그의 피부를 타고 마치 단단한 돌이 갈리는 것 같은 소리가 삐져나오고 있었다.
이에 로이는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세라가 움찔거렸다.
“저게 무슨….”
그러자 옆에 있던 현성이 입을 열었다.
“가고일.”
“…뭐?”
“가고일이야.”
그 말에 레이첼이 미간을 구기며 멈칫거렸다.
“가고일이라면….”
가고일.
<이스페리아>에 존재하는 종족 중 하나로, 뱀파이어가 피의 갈증이라는 저주를 받았다면, 가고일은 하루의 일정시간을 조각상으로 살아야하는 석화의 저주에 걸린 종족.
동시에 뱀파이어와 같이 모든 저주를 푸는 정령의 술잔을 노리는 종족이었다.
“…그 놈들이 이곳에 왔다면 그건 설마 정령의 술잔을 노리고?”
세라가 그들과 레이첼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이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거 말고는 저 녀석들이 여기 등장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어떻게?”
레이첼이 정령왕의 술잔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아직 아무한테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정황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죠. 가뜩이나 대외적인 활동을 삼가는 뱀파이어가 갑자기 움직인다? 그것도 공주를 데리고?”
그런 현성의 말에 세라가 낭패라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제기랄….”
아무리 레이첼이 정령왕의 술잔을 얻었단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한들.
앞서 말한 정보들이 있다면 뱀파이어 족에게 어떠한 이벤트가 생겼다는 것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고일들이 습격을 준비한 것이었다.
‘만약 습격을 통해 정령왕의 술잔을 발견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호재 중의 호재이며, 아무런 일이 없다고 해도 그리 큰 손해는 없다. 그저 가고일 중 말을 안 듣는 일부가 일으킨 약간의 트러블이었다고 잡아떼면 그만.’
즉 가고일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습격은 잃은 건 별로 없고, 성공한다면 얻을 건 많은, 그야말로 로우 리스크 하이리턴이었다.
이에 세라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나서야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 세라의 말에 레이첼이 현성을 바라보았다.
이는 곧 지금의 선택을 현성에게 맡긴다는 것과 같은 행동.
그러자 현성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아뇨. 여전히 가만히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현성이 손목시계를 흘깃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또 다른 이벤트가 발생하거든요.”
“이벤트?”
그 순간이었다.
주변에서 귀를 찌르는 엔진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수십 대의 오토바이.
-끼이이익!
이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가고일족은 물론 루이를 상대하고 있던 녀석까지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갑자기 나타난 수십 대의 오토바이.
동시에 가고일들의 리더, 고렌이 외쳤다.
“웬 놈들이냐!”
그와 함께 은색으로 페인팅 된 오토바이에서 한 남성이 내려왔다.
검은 가죽 자켓에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커다란 덩치.
그대로 그가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아따. 거 조각상 새끼가 존나 시끄럽네.”
건달을 연상케 하는 거친 억양과 얼굴에 난 긴 흉터.
무엇보다도 그런 그의 머리 위로는 은색 귀가 뾰족 솟아있었다.
그리고 뒤로 쭉 빠져나온 꼬리.
-움찔!
그 모습에 고렌이 주춤거렸다.
그의 정체는 바로 웨어울프 족의 행동대장, 케이사른이었다.
“케, 케이사른? 그렇다면 이게 전부….”
그대로 고렌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녀석들이 하나 둘씩 내려 헬멧을 벗었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는 케이사른과 똑같은 귀가 솟아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전부 웨어울프 족.
이에 고렌이 얼굴을 와락 구기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리고 이런 상황 속.
세라는 그야말로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가고일에 이어 웨어울프까지 등장하다니.
‘이렇게 된다면….’
세라가 스마트폰을 꾹 움켜쥐며 고민에 빠졌다.
분명 웨어울프가 등장한 이유 역시 가고일 녀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그리고 저들이 노리는 건 전부 정령왕의 술잔.
그렇다면 만약 지금 싸우게 된다면 한 번에 두 세력을 상대해야했다.
한 마디로 2대1의 핀치상황.
이에 그녀가 미간을 구기며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역시 지금이라도 지원을….’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현성이 쓰러진 세단 위로 올라갔다.
곧바로 그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그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현성에게 쏠렸다.
가고일, 웨어울프, 심지어는 뱀파이어들까지.
전부 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그런 현성의 말에 가고일과 웨어울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성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까닥였다.
“뭘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어? 니들은 눈치도 없냐?”
그대로 현성이 히죽 웃으며 고렌과 케이사른을 가리키며 외쳤다.
“다 쓸어버려!!”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현성의 목소리.
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도 잠시.
-멈칫.
고렌과 케이사른이 동시에 눈을 번쩍 뜨며 서로를 번갈아보았다.
“이 개새끼들이 설마….”
“망할 조각상 새끼가….”
이어서 고렌과 케이사른이 일제히 소리쳤다.
“감히 연합을 준비해!!”
“치사하게 다구리를 까?!”
그와 함께 가고일과 웨어울프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조소했다.
<이스페리아> 설정 상, 가고일과 웨어울프는 신체능력은 뛰어났지만, 모자란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머리.’
괜히 가고일과 웨어울프의 별명이 돌대가리와 개가 아니었다.
그만큼 그들은 지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여포의 육체와 지능을 가진 녀석들.
그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 가고일과 웨어울프들이었다.
덕분에 약간의 혼선만 준 것만으로도 녀석들을 흔들 수 있었던 것.
이에 현성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 죽여!!”
“야, 이 새끼들아! 당하고만 있을 거야!”
그렇게 단숨에 펼쳐진 전쟁터.
가고일과 웨어울프들은 한 데 뒤섞여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게 전부 현성의 단 한마디로 인해 벌어진 일.
“세상에….”
세라가 멍하니 현성을 바라보았다.
가고일 측은 뱀파이어와 웨어울프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대로 웨어울프 측은 뱀파이어와 가고일이 손을 잡았다고 생각할 터.
‘말 한마디로 서로 연합을 맺었다고 착각시켜 싸움을 일으키다니….’
그야말로 혀 하나로 전장을 장악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로이까지 그를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지금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놀라지 않은 것은 그 장본인인 현성.
그리고 레이첼 뿐이었다.
그대로 그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현성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믿어보라고 했지?”
그 말에 현성이 싱긋 웃으며 가볍게 세단에서 내려왔다.
그 다음, 그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저희는 이 틈에 빠져나갈까요?”
이게 바로 현성이 준비한 계획.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