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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71화 (71/240)

071화 정령왕의 술잔(13)

목줄이 빛남과 동시에 골렘의 몸이 빛 무리에 휩싸였다.

그리고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슈슉!

돌연 골렘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골렘이 공중으로 순간 이동하였다.

그 모습에 레이첼이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며 미간을 좁혔다.

“…뭐, 뭐야?!”

그 순간이었다.

공중에 떠있던 골렘이 빠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히 낙하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저건….”

마치 바닥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은 기묘한 움직임.

현재 골렘의 몸은 중력 외의 또 다른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콰아아앙!!

그대로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육중한 골렘의 육체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와 동시에 크게 흔들리는 신전.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그극…콰르르릉!

골렘이 떨어진 바닥이 움푹 꺼지며 지반 자체가 내려앉고 있었다.

이에 골렘은 재빨리 벗어나기 위해 허우적거렸지만 그럴수록 무너져 내린 땅은 마치 개미지옥처럼 골렘을 집어삼켰다.

[이, 인간…!]

그리고 무너져 내린 바닥 아래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잘했어! 레이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현성.

동시에 레이첼이 황급히 무너져 내리는 바닥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현성이 삽 한 자루를 든 채 히죽 웃고 있었다.

“혀, 현성?!”

뒤늦게 현성을 발견한 레이첼의 동공이 잔뜩 확장되었다.

그대로 레이첼이 그와 골렘을 번갈아보며 소리쳤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불과 채 5분도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돌연 공중으로 순간 이동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에 처박힌 골렘.

그리고 그 아래 등장한 현성.

‘…이게 뭐냐고!’

* * * * *

한편 현성은 보란 듯이 땅에 처박힌 골렘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먹혔다!’

동시에 그런 그의 팔목에는 검은 팔찌가 감겨있었다.

거기다 묘하게 레이첼이 던진 목줄과 비슷한 디자인.

그대로 현성이 검은 팔찌를 매만지며 피식 웃었다.

‘…아직 잘 되는구만.’

그런 목줄과 팔찌의 이름은 바로 ‘실종 방지 목줄’.

아카데미에서 절찬리에 판매중인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다름 아닌.

‘목줄을 찬 대상을 팔찌의 착용자가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 시키는 것.’

이에 현성은 미리 보스룸 아래로 땅을 파 지반을 약화시킨 뒤.

레이첼이 골렘에게 목줄을 부착시킨 타이밍에 맞춰 아이템의 효과를 발동시켰다.

그 결과 골렘은 현성에게로 순간 이동하였으며, 동시에 약해진 지반이 무너져 내리며 골렘은 보란 듯이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본 레이첼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물론 현성 그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이런 방식일 줄을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누가 알았을까….’

실제로 현성이 처음 보스공략에 목줄과 팔찌를 썼을 때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이에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

미친 저게 말이나 되는 거냐.

대가리에 총 맞은 놈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걸 생각하냐.

애초에 그냥 버그 아니냐.

전부 당시 현성을 보고 했던 말들이었다.

그도 그럴게 원래 ‘실종 방지 목줄’의 용도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애완동물, 그러니까 펫을 잃어버리지 않게 만들었던 아이템.

그 누구도 해당 아이템을 이렇게 쓸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성은 보란 듯이 아이템을 이용해 보스의 발을 묶는 기행을 성공시켰다.

그야말로 <이스페리아> 최초의 순간.

그리고 그 최초의 순간이 바로 오늘, 레이첼의 눈앞에서 다시 펼쳐졌던 것이었다.

“….”

그대로 레이첼이 멍하니 현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어느새 골렘의 몸을 타고 바깥으로 나온 현성이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야! 아직 안 끝났어!”

그 말에 멍하니 있던 레이첼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순간 말도 안 되는 풍경에 잠시 잊고 있었다.

아직 골렘은 쓰러지지 않았다.

[크으으윽!]

그 사실을 증명하듯 골렘은 현성이 판 함정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저항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빠져 나올 게 분명했다.

결국은 빠져나오기 전에 승부를 봐야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가장 큰 방해물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골렘의 방어.

방금 전 공격으로 알 수 있듯이 보통의 공격으로는 골렘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이에 레이첼이 다시 한 번 피를 조종해 공격을 날리려했다.

허나 그때였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윽!”

그 모습에 어느새 그녀의 옆에 온 현성이 그녀를 부축했다.

“….”

그대로 현성이 레이첼의 밑에 흥건한 피를 바라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너무 과도하게 피를 사용했어.’

가뜩이나 피가 없는 상태에서 연거푸 피를 쓴 결과.

그 반동이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스페리아>의 설정 상, 얼마 지나지 않으면 레이첼은 과도하게 피를 쓴 대가로 일정시간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대충 10분정도 남았나.’

현성이 시간을 확인하며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레이첼은 움직이지 못할 터.

“제기랄….”

레이첼이 저 멀리 있는 골렘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골렘의 방어를 뚫어도 모자를 판에….’

하필 이런 중요한 순간에 피가 없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다니.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꾸욱.

이에 레이첼이 분한 듯 주먹을 꾹 쥐었다.

그때였다.

현성이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골렘의 방어는 걱정하지 말고 얌전히 쉬고 있어.”

그런 현성의 말에 레이첼이 흠칫거렸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것 같은 말.

이에 레이첼이 작게 놀라며 대답했다.

“그걸…어떻게 알았어?”

그러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뻔하지. 뭐. 그리고 남은 건 나한테 맡겨.”

“하지만 너 혼자 골렘의 방어를 뚫기에는 역부족….”

“괜찮아.”

그대로 현성이 품속에서 고대의 마도서를 꺼내들었다.

“그래도 제작자들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더라고.”

“…뭐?”

그러자 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있어. 그런 게.”

동시에 현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대의 마도서를 펼쳤다.

그에 따라 페이지가 넘어가며 푸른 마나가 넘실거렸다.

-촤르륵!

누누이 말했듯이 이번 공략의 열쇠는 고대의 마도서.

그리고 그런 마도서의 활약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바로 마도서에 내장된 수많은 마법.

이 마법들이 곧 골렘의 방어를 뚫을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그야말로 제작자에게 남은 마지막 양심 그 자체.

이에 현성은 적어도 지금만큼은 제작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레이첼. 눈감아.”

“…뭐? 자, 잠깐!”

“그럼 간다!”

그와 함께 현성이 마도서를 향해 마력을 불어넣었다.

이제 이번 공략 최고의 하이라이트 씬.

융단폭격이 시작될 순간이었다.

-우우웅!

이어서 마도서가 작게 울리더니 푸른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

페이지를 타고 수십 개의 마법이 일제히 골렘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

동시에 현성을 중심으로 커다란 충격파가 일었다.

그 충격에 옆에 있던 레이첼이 황급히 소매를 들어 눈을 가렸다.

“으읏!”

하지만 그도 잠시.

레이첼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하늘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마법.

바람, 뇌격, 화염이 한 데 뒤섞인 풍경은 마치 유성우를 연상케 하였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 서있는 현성.

마도서를 든 채 쉬지 않고 마법을 난사하는 현성의 모습은 누가 봐도 완벽한 마법사 그 자체였다.

그 동안 보여줬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레이첼이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마법사였어….”

그 말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눈앞에 펼쳐진 유성우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감회가 새로웠다.

게임 속에서만 봐왔던 하이라이트 씬을 이렇게 직접 보다니.

무엇보다도 그 위력!

쏘아진 마법은 곧바로 골렘에게 꽂히며, 마법이 한 번 적중할 때마다 심상치 않는 진동이 전해져 왔다.

이에 맞춰 서서히, 조금씩 견고하던 골렘의 방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그극…!

그동안의 공격에 꿈적도 하지 않던 골렘의 겉에 금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현성의 마력 역시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생명력까지 빨려 들어가는 느낌.

“크윽!”

처음 느껴보는 극심한 마나소모.

게임 상에서 메시지로만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이를 악물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조금만 더…!’

현성 그가 노리는 것은 골렘의 머리.

보통 골렘은 단순히 육체를 파괴한다고 죽지 않는다.

‘골렘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내부에 있는 핵.’

그리고 그 핵이 머리에 있을 확률이 80%.

나머지 부위에 있을 확률이 20%.

이게 바로 현성이 그동안 게임에서 구르고 구르면서 터득한 지식이었다.

그와 동시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과거의 기억.

그놈의 핵을 찾겠답시고 골렘의 사지를 박살내고 관절하나하나 파괴한 게 몇 번 인가.

정말이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시간이었다.

하여간 그 인고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가 바로 지금.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현성은 지금, 그 명언의 의미를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현재 골렘의 머리는 계속되는 마법폭격으로 인해 반쯤 파괴된 상태.

동시에 현성 역시 죽을 맛이었다.

“으아아! 언제까지 해야 돼!!”

현성이 악을 지르며 소리쳤다.

그 순간이었다.

“고, 골렘의 움직임이 멎었어…!”

레이첼이 골렘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그 외침에 현성이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하지만 그도 잠시.

레이첼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아, 미안! 잘못본거 같아!”

“너 이씨…!”

그 말에 현성이 이를 갈며 마지막 마나를 끌어 모았다.

“으아아아!!”

그리고 현성의 괴성이 울려 퍼졌을 때.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골렘의 머리가 완전히 박살났다.

이어서 박살난 골렘의 머리통이 떨어졌다.

그와 함께 현성의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며 그가 들고 있던 마도서를 떨어트렸다.

이 정도라면 핵도 파괴되었을 터.

동시에 옆에 있던 레이첼이 작게 웃었다.

“됐다…!”

이제 남은 건 던전을 클리어 했음을 알리는 경쾌한 메시지 뿐.

그때였다.

-띠링!

들려오는 경쾌한 메시지.

이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수호자 골렘의 핵을 파괴하지 못해 수호자의 몸이 재생됩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현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뭔….”

동시에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사실.

골렘의 핵은 80%확률로 머리.

그리고 나머지 20%는 다른 부위.

“이런 씨벌 역배였냐!”

현성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닥에 떨어진 골렘의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그런 골렘의 머리통 속은 텅 비어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하 놔. 이 X같은 게임.”

그와 함께 골렘의 심장부분이 열렸다.

이어서 중앙을 타고 모이기 시작하는 빛.

그 모습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저 패턴은….’

정령의 신전.

그리고 그 신전을 지키는 보스몬스터 수호자 골렘.

그런 골렘의 패턴 중 가장 거지같기로 유명한 패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핵을 파괴하는데 실패하면 날아오는 즉사기.’

레이첼이 그런 골렘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뱀파이어 특유의 날카로운 기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현성?”

이상함을 감지한 레이첼이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에 현성이 재빨리 움직이며 레이첼을 향해 외쳤다.

“피해!!”

그와 동시에 상황을 파악한 레이첼이 즉사기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덜컥!

레이첼이 발을 움직이기 무섭게 그녀가 휘청거렸다.

“…어?”

당황한 레이첼의 단발마.

동시에 현성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레이첼이 과도한 피의 사용으로 인해 빈혈상태에 빠집니다.]

[빈혈상태로 인해 일정시간 캐릭터의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과도하게 피를 사용할 경우 발동하는 레이첼만의 디버프.

지금 그게 발동하고 말았다.

그 메시지에 현성이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젠장! 벌써 10분이 지난건가!’

10분이 지나고 발동한 디버프.

만약 여기서 레이첼이 죽으면 현성 그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순간.

“레이첼!!”

이미 현성의 몸은 한 박자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레이첼 만큼은 구해야했다.

하지만 골렘이 이를 기다려줄 리가 없었다.

-지이잉…퍼어어엉!!

그대로 레이첼을 향해 붉은 광선이 쏘아졌다.

그리고 붉은 광선이 그녀를 집어삼키기 직전.

레이첼이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자신을 향해 몸을 던지는 현성의 모습이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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