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화 정령왕의 술잔(3)
그대로 눈앞의 망령이 현성과 레이첼을 향해 경고했다.
[이곳에서…물러나라.]
저게 바로 도서관의 망령의 정체.
그리고 녀석을 만나기 위한 조건은 오후 6시에서 10시 사이에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들어올 것.
그 결과, 도서관의 망령을 만나는 거 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뒤에 있던 레이첼이 망령과 현성을 번갈아보며 긴장한 듯 물었다,
이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 잡아야지.”
그와 동시에 현성이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 도서관의 망령 퇴치.]
퀘스트 내용
-도서관에 나타난 망령을 퇴치하시오.(진행 중)
보상 : 고대의 마도서
퀘스트 창에 적혀있는 내용과 보상을 확인한 현성이 주먹을 꾹 쥐었다.
내용과 보상 전부 이미 그가 알고 있던 그대로.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물러서지 않으면 공격하겠….]
그때였다.
망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성이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그리고 그가 주먹을 내지르려는 순간.
뒤에 있던 레이첼이 미간을 좁히며 소리쳤다.
“저 멍청이가…야! 저 녀석 상대로는 물리공격은 안 통해!”
도서관의 망령은 보다시피 유령 계열의 몬스터.
그에 따라 물리공격은 아예 통하지 않다시피 했다.
‘통하는 것은 오로지 마법공격 뿐.’
그게 바로 과거에 레이첼이 처음 망령을 마주했을 때 배운 뼈아픈 사실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레이첼은 망령에게 애꿎은 주먹만 휘둘렀다가 기절했었다.
떠오르기 싫은 과거에 그녀가 혀를 찼다.
“…쯧!”
아마 이대로 둔다면 그의 주먹은 허무하게 망령을 통과하고 역으로 망령의 공격에 당할 터.
이에 어쩔 수 없이 레이첼이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하여간 이 몸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니까…!”
그리고 그런 레이첼의 말에 앞으로 달려 나간 현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알고 있어.”
“그래? 그럼 얌전히 이 레이첼님에게 맡기고….”
“뭔 개소리야.”
그대로 현성이 히죽 웃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물리공격 안 통하는 거 알고 있다고.”
“…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의 주먹을 타고 붉은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분명 망령을 통과해야할 그의 손이 정확히 망령의 몸에 직격했다.
[네놈, 설마 마법사였…!]
현성의 주먹 끝에 모여든 화염.
이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린 망령이 몸을 틀었지만, 이미 한 발 늦은 뒤였다.
그대로 현성의 주먹이 망령에게 꽂힘과 동시에 그의 팔에 회오리치던 불꽃이 폭발했다.
-콰아앙!
그 충격에 망령이 뒤로 밀려나며 사방에 붉은 불씨가 휘날렸다.
그야말로 레이첼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
“…뭐야. 저게?!”
그런 현성의 모습에 레이첼이 새끼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댄 모습 그대로 중얼거렸다.
마치 격투게임의 기술을 연상케 하는 이펙트.
생전 처음 보는 공격이었다.
‘아니 애초에 저게 가능해?’
화염이 터지기 전만 해도 분명 단순한 주먹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의 화염과 폭발과 더불어 뒤로 밀려난 망령의 모습.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의 공격이 단순 타격이 아닌, 마법이라는 사실이었다.
“…너 뭐하는 놈이야?”
레이첼이 얼빠진 표정으로 현성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면 몰라?”
현성이 태연하게 남은 불씨를 털어내며 대답했다.
“딱 봐도 마법사잖아.”
그런 현성의 대답에 레이첼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떡 벌어진 어깨와 태가 잡힌 근육.
무엇보다 자신을 기절시킬 때 날린 완벽한 손날치기.
누가 그를 마법사라고 생각할까.
“…미친놈인가. 진짜.”
레이첼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의 이름은 유현성.
아카데미, 아니 <이스페리아>의 유일한 힘법사였다.
그대로 현성이 그녀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야. 그 다음은 알아서 피해라.”
“…뭐?”
“저거.”
그렇게 말하는 현성의 손은 망령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망령이 들고 있던 마도서가 펼친 채.
레이첼과 현성을 주시하고 있었다.
-고오오.
그리고 망령의 마도서를 타고 심상치 않은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망령이 손을 뻗은 순간.
그의 손을 타고 날카로운 바람이 쏘아졌다.
-콰아아아!
이에 현성은 재빨리 옆 책장으로 몸을 던지며 공격을 피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레이첼.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현성과 날아오는 바람을 번갈아보며 이를 갈았다.
“너, 너 이 치사한 새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날카로운 바람이 레이첼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그 주변으로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사방으로 책이 흩날렸다.
-콰앙!
폭발에 뒤이어 솟아난 자욱한 먼지.
현성이 그런 먼지 속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
저게 바로 도서관의 망령을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였다.
바로 녀석이 들고 있는 고대의 마도서.
저 책은 비밀의 숲을 돌파하기 위한 열쇠임과 동시에 수많은 마법이 기록된 무기였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마법 폭격기 그 자체.’
방금 전의 바람마법부터 전격, 화염, 물 등등.
망령은 마도서에 기록된 모든 종류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거기다 앞서 말했듯 망령은 물리공격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
그렇기 때문에 물리공격을 제외한 마법공격으로 승부를 봐야하는데, 이 시점 플레이어가 쓰는 마법의 가지 수는 마도서를 가지고 있는 망령에게 압도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즉 망령 퇴치는 플레이어에게 있어 시작부터 상당히 불리한 게임이었다.
그래서 게임사에는 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그게 바로 히로인.’
그러니까 힘들게 혼자 잡지 말고 히로인이랑 같이 잡으라는 거다.
그때였다.
[네놈도 내 마법에 죽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물러나라.]
도서관의 망령이 현성을 향해 경고했다.
그런 그의 손에는 고대의 마도서를 타고 푸른 마나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가 죽었다고?”
그러면서 현성이 자욱한 먼지 속을 바라봤다.
<이스페리아>에서 망령퇴치를 같이 진행하는 히로인은 레이첼.
그리고 바로 이 파트에서 그녀의 진가가 드러난다.
“글쎄다. 아직 살아있을 걸.”
[…뭐?]
그 순간이었다.
사방을 메웠던 자욱한 먼지가 단번에 걷히며 익숙한 목소리가 삐져나왔다.
“짜증나게. 진짜.”
그 목소리에 망령이 재빨리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레이첼이 서있었다.
그런 그녀 주변에는 정체불명의 붉은 막이 레이첼을 감싸고 있었다.
[설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만히 서있던 망령이 뒤로 물러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레이첼의 주변을 타고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때문이었다.
-스르륵.
동시에 그녀를 감싸고 있던 막이 액체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액체의 정체는 레이첼의 피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르륵.
허나 레이첼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아니 딱 한군데.
상처가 난 곳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레이첼의 새끼손가락.
그런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곧 레이첼이 망령을 바라보았다
“…감히 네가 피를 내게 해?”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어둠이 내려온 도서관.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번쩍였다.
“그럼 그 대가는 똑똑히 치러야지?”
레이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뱀파이어 특유의 피를 이용한 혈마법.
이게 바로 여기서 드러나는 그녀의 진가였다.
“죽어.”
그대로 그녀가 부드럽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레이첼의 피가 솟구치며 재빠르게 망령을 향해 쏘아졌다.
그런 그녀의 피는 마치 붉은 창을 연상케 하였다.
-촤아악!
이에 망령은 황급히 마도서를 펼쳐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그의 온 몸이 정지하며 움직이지 못했다.
-덜컥!
언제 있던 건지 모를 피 웅덩이.
그곳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붉은 팔이 그의 온 몸을 옥죄었다.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느 틈에?!]
그대로 피로 이루어진 붉은 창이 망령에게 꽂혔다.
그리고 레이첼이 가볍게 손가락을 퉁겼다.
그와 동시에 붉은 피가 소용돌이치더니 가차 없이 망령을 집어삼켰다.
-콰과가각!
용오름과 같이 소용돌이치는 붉은 피.
그 사이 망령의 비명소리가 도서관 가득 울려 퍼졌다.
이에 레이첼이 작게 조소하며 중얼거렸다.
“나름 듣기 좋은 비명소리군.”
그 모습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게 바로 피의 왕국의 공주이자, <이스페리아>의 2막 보스의 진정한 모습.
이는 그전까지 보여줬던 레이첼의 이미지를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어마어마하군.’
현성이 레이첼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
이와 같이 도서관의 망령 공략파트에서 레이첼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했다.
피를 이용한 속박은 물론 망령의 공격을 차단하기까지.
만약 레이첼이 없었다면 현성은 지금쯤 쏟아지는 마법폭격을 피하며 바닥을 구르고 있을 터.
괜히 <이스페리아>에서 히로인을 붙여준 게 아니었다.
“역시….”
그대로 현성이 레이첼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움찔.
그런 현성을 발견한 레이첼이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의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기 시작했다.
“후…후훗….”
자신의 멋진 활약을 바라보는 현성.
이에 그녀의 입을 타고 작은 웃음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레이첼은 나름대로 숨기려는 모양이었지만 그녀의 몸은 솔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첼이 두 손을 위로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이대로 사라져라!”
마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주인공과 같은 대사.
100% 현성을 의식하고 말한 게 분명했다.
그 모습에 현성이 혀를 차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저저 또 오바하는 거 봐라.’
정말이지 알기 쉬운 캐릭터였다.
그러면서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슬슬 때가 왔다.
‘여기까지만 보면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로 먹는 개꿀이벤트.’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 게임 진행방식을 생각했을 때.
<이스페리아>는 절대 플레이어가 날도 먹게 두지 않는다는 사실.
그때였다.
돌연 소용돌이치던 피 사이로 심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졌다.
곧 짙은 푸른빛이 피를 가르며 터져 나왔다.
-콰아앙!
이에 망령을 감싸고 있던 레이첼의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그녀가 미간을 좁히며 주춤거렸다.
뒤이어 흩어진 피 사이, 망령이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대로 마도서를 넘길 줄 알았느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와 함께 현성의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2페이즈가 시작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2페이즈의 시작을 알리는 창.
아주 사람 쉽게 가는 꼴을 못 본다.
그 메시지를 보고 현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개 같은 게임 같으니….”
그대로 현성이 망령을 바라보았다.
쉴 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며 푸른빛을 토해내는 마도서.
현성의 기억대로라면 이다음 이어질 것은 무차별적인 마법의 융단폭격이었다.
-고오오!
그렇게 마도서의 마력이 점점 진해지고.
마침내 망령이 현성과 레이첼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사라져라! 불경한 자들이여!]
그대로 마도서가 빛나며 첫 번째 마법이 쏘아졌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히죽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뭔가 꺼내 망령을 향해 집어던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검은 가방이었다.
“저건….”
그 모습에 레이첼이 멍하니 날아가는 가방을 바라보았다.
‘뭔가 묘하게 익숙한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첼은 그 가방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수?”
그와 함께 쏘아진 마법이 검은 가방을 격추하며 폭발했다.
동시에 안에 가득 들어있던 성수가 터지며 공중에 흩어졌다.
[이, 이건…?!]
성수.
축복이 담긴 물로 신성 그 자체를 담고 있는 물.
그러나 유령을 포함한 언데드 몬스터에게는 최악의 상성을 자랑하는 무기.
그런 성수의 범위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현성과 레이첼.
그리고 도서관의 망령.
이에 현성이 망령을 향해 성호를 그으며 히죽 웃었다.
“갓 블레스 유. 새끼야.”
그런 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위에서 성수가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아!!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