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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58화 (58/240)

058화 2막의 시작(5)

그대로 현성이 히죽 웃으며 레이첼을 내려다봤다.

그 말에 그녀가 욱하며 곧바로 현성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너 지금 뭐라고…!”

“왜. 진건 사실이잖아.”

“이게….”

현성의 말에 레이첼이 그를 째려보았다.

꽤나 준수하게 생긴 외모에 방심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곧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초면부터 면전에 대고 도발이라니.

게임에서 봐왔던 그 더러운 인성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란 점은 따로 있었다.

‘…위압감이 안 통해?’

분명 뱀파이어 특유의 위압감을 담았을 텐데 눈앞의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오히려 한술 더 떠 도발까지.

이에 레이첼이 미간을 좁혔다.

‘뱀파이어로서의 힘이 약해진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라니….’

허나 그도 잠시.

레이첼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무리 자신이 그동안 방에 처박혀있다고 한들, 보통의 인간에게 질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레이첼이 다시 멘탈을 다잡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너. HS라고 했지?”

본디 이런 현피는 초장부터 흐름을 잡아야했다.

마치 철의 권7과 같았다.

처음부터 흐름을 뺏긴다면 상황은 불리해지는 법.

그만큼 레이첼이 한 발 먼저 그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럼 제대로 들어. 애초에 아무리 철의 권7이 격투게임이라고 해도 상호 기본적인 예의라는 건 존재하는 법이야. 당장 상위랭크만 가 봐도 알 텐데? 그딴 식으로 게임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고 치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부끄러운 줄 알아.”

“….”

그런 레이첼의 말에 현성이 아무 말도 없었다.

이에 그녀가 작게 웃으며 내심 뿌듯해했다.

‘흥. 아무 말도 못하는 꼴 좀 보라지. 그럼 이제 여기서….’

쉬지 않고 몰아붙여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입을 뗀 순간.

“그러니까 앞으로는….”

“너 뱀파이어지?”

현성의 입에서 삐져나온 단 한마디.

그와 동시에 레이첼이 멍하니 현성을 바라보았다.

“…흐에?”

레이첼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그동안 야심차게 준비해온 멘트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맞지?”

뱀파이어라니.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고 있으면 안 되었다.

동시에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카데미의 교수들에게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위장마법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일개학생인 그가 정체를 간파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걸?”

이에 레이첼이 말을 더듬으며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그대로 그녀가 현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게임에서와 달리 실제로 보니까 겁나나보지?”

그러면서 레이첼이 피식 웃으며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내가 뱀파이어로 보일정도면 얼마나 겁을 먹은 거야? 하하.”

하지만 그런 대사와는 달리 세차게 흔들리는 눈동자와 손.

거기다 어색한 웃음소리까지.

현성이 레이첼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레이첼.

<이스페리아>의 보스이자, 히로인으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속성은 우선 겜덕.

그리고 부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바로 갭모에였다.

‘평소에는 히키코모리. 허나 피를 취한 그녀의 모습은 공주를 넘어선 여왕 그 자체.’

우선 레이첼은 설정 상.

2막 보스의 자리를 차지할 만큼.

꽤나 강력한 인물이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충분한 흡혈을 통해 뱀파이어의 힘을 끌어냈을 때 일뿐.

지금처럼 방에 처박혀서 게임만하고 숨어사는 그녀는 그저 히키코모리에 불과했다.

그래도 오늘은 특별히 신경 써서 꾸미고 나온 모양이지만, 그 한계가 명확했다.

‘…흡혈만 했으면 안 이랬을 텐데.’

현성이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재 레이첼이 흡혈을 하지 않았단 사실은 현성에게 있어 최적의 조건이었다.

‘흡혈을 하지 못한 레이첼은 상당히 쇠약해진 상태.’

거기다 게임에 빠져 살고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동시에 현성이 구태여 지금 레이첼을 만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흡혈을 통해 진정한 힘을 드러낸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면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지금은 이렇게 보여도 괜히 뱀파이어의 공주가 아니거든.’

뱀파이어 특유의 우월한 신체능력.

거기다 피를 이용한 수십 가지 혈마법까지.

그렇기 때문에 타이밍을 노릴 거면 지금처럼 약해진 상태를 노리는 게 베스트였다.

‘…한 방에 끝낸다.’

이에 현성이 두 번째 계획을 상기했다.

그 와중에도 레이첼은 잔뜩 당황한 듯 되는대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야. 너 유우토 알지.”

유우토.

철의 권7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그 말에 횡설수설하던 레이첼이 순간 정신을 차린 듯 멈칫거리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냐? 철의 권7 12번째 캐릭터. 국적은 일본. 나이는 28세. 특기는 극진가라데.”

누가 겜덕 아니랄까봐 레이첼은 그에 관한 정보를 술술 대답했다.

그 대답에 현성이 다시 물었다.

“그럼 유우토의 ↓↓↑ 약손 기술은 뭘까.”

“흥.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알고?”

그러자 레이첼이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손날치기잖아.”

그녀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답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곧 니가 맞을 기술이거든.”

현성의 단호한 한 마디.

그 말에 레이첼이 아직 상황을 파악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동시에 레이첼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일반인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미약한 살기.

하지만 뱀파이어의 본능은 그 살기를 캐치하며 그녀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너 설마….”

그때였다.

현성이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그의 손날이 곧바로 레이첼의 목을 향했다.

그런 현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벽한 유우토의 ↓↓↑ 약손.

즉 손날치기 그 자체였다.

-쉬익…뻐억!

그리고 현성의 손날을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그녀의 목에 꽂혔다.

이에 레이첼이 뒤늦게 저항하려 했지만, 그녀의 입을 타고 나오는 건 단발마의 비명뿐이었다.

“이, 이게 무슨…으겕!”

그대로 레이첼이 비명을 마지막으로 기절했다.

-털썩.

그리고 현성이 쓰러진 레이첼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바로 그의 두 번째 계획.

현피에 혹해 나온 그녀를 기절시키는 것이었다.

“계획대로….”

밝은 달빛 아래.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오는 구 건물 뒤.

현성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도 없는 고요한 아카데미 구 건물 안쪽.

레이첼이 신음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으윽…!”

그런 그녀의 목을 타고 뻐근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

현성이 냅다 목을 가격. 그 후 자신은 그대로 기절.

“핫…!”

퍼뜩 정신을 차린 레이첼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덜컥!

손과 발을 타고 구속감이 느껴졌다.

곧 그녀는 자신이 의자에 묶인 걸 알아차렸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

의자에 구속된 자신.

“이게 무슨….”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현성의 목소리가 삐져나왔다.

“일어났어?”

그 말에 레이첼이 미간을 좁혔다.

머지않아 전구하나가 켜지고.

현성이 태연하게 의자를 끌고 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역시 뱀파이어라 그런지 회복력이 좋네. 그동안 방구석에만 있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너. 정체가 뭐야.”

그런 레이첼의 말에 현성이 그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에 그녀가 입술을 작게 깨물며 그를 째려봤다.

자신이 뱀파이어인 걸 이미 꿰뚫고 있는 것도 모자라 구속까지.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뱀파이어 헌터냐.”

뱀파이어 헌터,

수 세기 전부터 뱀파이어들을 노려온 가증스러운 존재들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글쎄. 질문이 잘못된 거 같은데.”

그대로 현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 이랬는지를 먼저 물어봐야지.”

그러면서 현성이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무언가를 흔들었다.

동시에 레이첼의 동공이 커졌다.

“…내 패드!”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가 제일 아끼는 영혼의 동반자.

게임패드였다.

레이첼이 표정을 구기며 현성과 패드를 번갈아보았다.

“큿! 치사하게 인질을 잡다니.”

그 말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패드의 버튼을 연타하기 시작했다.

“후후, 키감이 굉장히 좋군.”

“…당장 그 더러운 손 치워!”

레이첼이 현성을 향해 외쳤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현성 그가 자신을 기절시키고 여기까지 끌고 온 이유.

거기다 인질까지 삼았다면 예상되는 건 하나였다.

레이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지?”

“좋아. 바로 그거야. 이해가 빠르군.”

이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패드를 흔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정보.”

“정보?”

“그래. 좀 더 정확히는 너희 뱀파이어들의 목표.”

현성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불의 둥지에서 악마의 봉인을 푼 것은 레이첼.

그렇다면 그녀가 직접 움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성은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지금의 계획을 준비했던 것이다.

처음은 철의 권7을 통한 도발.

도발 끝에 그녀가 현피에 응하면 곧바로 기절 후 구속.

그야말로 게임에 빠져 약해진 지금의 레이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알다시피 이곳은 지금은 쓰지 않는 아카데미 구 건물. 혹시나 다른 사람이 올 걸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현성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레이첼이 완강하게 대답했다.

“…내가 겨우 이깟 협박에 말할 거 같아?”

“알아. 그래서 준비했지.”

그녀의 말에 현성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걸 정도는 예상했다.

곧 현성이 검은 가방에서 500ml 생수통 하나를 꺼냈다.

-스윽.

그리고 현성이 한 손에는 생수통을, 한 손에는 패드를 들고 말했다.

“선택해라. 패드에 물을 뿌릴 건지, 아니면 니가 대신 물을 맞을 건지.”

그 말에 레이첼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지금 겨우 물 하나 가지고 자신을 협박하다니.

명색의 뱀파이어의 공주가 얕보여도 한참 얕보인 모양이었다.

“흥. 뿌려보던가!”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생수병을 열었다.

“원한다면.”

그대로 현성이 손끝에 살짝 물을 적셨다.

그 다음 그가 마치 소금을 뿌리듯, 그녀를 향해 물을 털었다.

동시에 현성의 유려한 스냅을 타고 차가운 물방울이 레이첼을 적셨다.

“겨우 이정도…흐잇!?”

그때였다.

레이첼이 피부를 타고 느껴지는 따가움에 움찔거렸다.

미약하지만 순간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에 레이첼이 현성을 바라보았다.

“너, 너 설마…!”

“그래.”

그 모습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생수통을 흔들었다.

“성수다.”

그것은 보통 물이 아니었다.

바로 하린에게 부탁해 받은 성수.

그리고 성수는 뱀파이어인 레이첼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성.

“본디 이런 말이 있지.”

“…?”

그대로 현성이 다시 한 번 손끝에 성수를 적시며 말했다.

“물은 항상 답을 알고 있다.”

만약 눈앞에 있는 게 레이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현성은 즉시 머리채를 잡고 잠수라는 이름의 대자연과 만남을 성사했을 터.

하지만 현성이 아무리 막나간다 한들, 히로인을 상대로 그럴 만큼 개차반은 아니었다.

그래서 합의를 본 게 지금 이 정도.

성수를 뿌리는 수준이라면 죽지도 않고 조금씩 깎여가는 틱뎀에 길게 고통 받게 만들 수 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어차피 밤은 기니까 느긋하게 가자고. 뭐 빨리 말하면 그만큼 난 좋지만.”

“…저, 저리가.”

이에 레이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움찔!

레이첼이 현성을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가 자라나고 있었다.

“하,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현성은 멈출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마치 퇴마를 하는 신부처럼 경건하게 성호를 긋고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손을 털었다.

-촤아악!

그와 동시에 성수가 그녀의 얼굴을 적시며 현성이 외쳤다.

“어서 사악한 정체를 드러내고 그 야욕을 밝혀라!”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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