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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55화 (55/240)

055화 2막의 시작(2)

그대로 시연의 병문안을 다녀온 현성이 간 곳은 아카데미.

그 중에서도 아카데미의 트레이닝 룸.

그 앞에 도착한 현성이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여기라고 했는데.”

그때였다.

트레이닝 룸 안쪽에서 하린이 입구를 향해 걸어 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성을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아니 선배!”

하린이 무의식적으로 그만 오빠라고 부를 뻔한 걸 멈추고 현성을 불렀다.

평소라면 물론 오빠라고 불렀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장소, 특히 아카데미 내에서는 웬만하면 자제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오셨어요?”

하린이 현성을 바라보며 땀을 훔쳤다.

그런 그녀의 온 몸에는 운동을 하고 난 직후인 듯.

후끈한 열기와 땀방울이 가득했다.

그대로 하린이 현성을 향해 말했다.

“선배. 의외로 빨리 왔네요.”

“아. 부탁한 게 다 준비됐다고 해서 왔지.”

그러면서 현성이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그렇다.

병실에서 전화를 한 것은 다름 아닌 하린이었다.

그리고 하린이 현성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얼마 전 그의 부탁 때문이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해요?”

그대로 현성이 하린을 향해 말했다.

“상당히 유용하게 쓰이거든.”

“하긴…여러 군데 쓰인다고는 하더라고요.”

그와 동시에 하린이 현성에게 들고 있던 검은 가방을 넘겼다.

이에 현성이 가방을 열자 그곳에는 500ml 생수병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투명한 액체.

“선배가 부탁한 성수. 확실하죠?”

하린이 당당하게 말했다.

곧 현성이 생수병을 하나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음….”

그러자 현성의 눈앞으로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랐다.

[유하린의 특제 성수]

설명 : 유하린이 타고난 신성력과 은밀한 비법(?)으로 만든 성수이다. 일정한 확률로 축복을 얻을 수도?

잠시 뒤.

설명을 읽은 현성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이 하린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성수의 제조.

보통의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미래의 성녀이자 신성력 금수저 하린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에 현성이 하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어. 봐. 할 수 있잖아.”

“헤헤. 그런데 설마 이게 진짜 될 줄은 몰랐어요.”

그 말에 하린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맨 처음에는 하린이 그게 말이 되냐며 의심했지만 계속되는 현성의 제안 끝에 결국 시도해봤고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대로.

물건은 확실했다.

“아무튼 그럼 이걸로 된 건가요?”

“응. 이걸로 충분해. 고마워.”

하린의 말에 현성이 성수가 들어있는 가방을 챙기며 작게 웃었다.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오히려 이런 걸로 자신이 현성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린은 그걸로 충분했다.

당장 현성에게서 받은 도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린이 도움이 된 것에 만족하고 있을 때.

“그런데 갑자기 트레이닝 룸에는 무슨 일이야?”

현성이 그런 하린과 트레이닝 룸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하린은 평소 현성을 마중하러 트레이닝 룸을 온 적은 있어도, 혼자 트레이닝 룸에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불의 둥지에서의 일이 있던 뒤.

하린은 유독 트레이닝 룸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에 그녀가 대답했다.

“아. 별건 아니고 저도 운동 좀 해보려고요. 기왕 아카데미까지 왔는데 한 번쯤은 경험해봐야죠.”

알다시피 트레이닝 룸은 아카데미 내에서 최고의 장비를 자랑하는 시설.

그만큼 한 번쯤은 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하지만 하린이 트레이닝 룸에 온 것은 단순히 그 이유 뿐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불의 둥지에서 좀 많은 걸 느꼈거든요.”

하린이 작게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일주일 전.

불의 둥지에서의 사건.

그곳에서 하린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성과 시연의 도움을 받기만 했을 뿐.

심지어 크루페돈을 상대했을 때도 현성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일을 겪은 후.

아카데미에 돌아온 하린은 깨달은 점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지금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시작한 게 바로 트레이닝 룸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마법사에다 버퍼계열이라지만, 이대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현성 역시도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몸을 단련하지 않는가.

“그래서 열심히 단련하고 있는 거죠. 뭐.”

하린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견한 듯 하린의 어깨를 토닥였다.

“좋은 생각이야.”

실제로 하린 같은 경우.

직접적으로 몸을 쓰는 전투계열이 아니라 굳이 트레이닝 룸을 병행할 필요는 없었지만.

뭐가 어찌되었든 그게 자극이 되고 좋은 방향으로 표출된다면 굳이 말릴 일은 아니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오히려 모를 일이다.

이로 인해 하린이 더욱 성장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하린의 훈련이 빛을 발하는 건 조금 더 미래의 일이었다.

“좋아요.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하린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근데 저 확실히 운동효과는 잘 받는 거 같더라고요.”

“응? 그래?”

“네. 이거 봐요.”

그대로 돌연 하린이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들어올렸다.

선명하게 보이는 11자 복근.

동시에 그녀의 탄탄한 복근에 맺혀있던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갑작스런 돌발 상황.

“하, 하린아!”

이에 당황한 현성이 재빨리 그녀의 티셔츠를 원상복귀 시켰다.

그리고 그가 하린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서 이러는 건 좀 아닌 거 같지 않니.”

그러자 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네? 뭐 어때요. 저 안에도 옷 입었어요.”

이어서 하린이 다시 한 번 티셔츠를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런 하린의 행동에 현성이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덥썩.

현성이 그대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얘가 이렇게 개방적인 캐릭터였나.

그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하린아. 거기까지.”

그런 현성의 모습에 하린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하린이 장난스럽게 히죽 웃더니 현성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오빠라면 보여줘도 되는데…아니면 만져볼래요?”

“얘가 더위를 먹었나.”

그 말에 현성이 단호하게 대답하며 가볍게 하린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따악!

이에 하린이 작은 비명과 함께 이마를 문지르며 헤실헤실 거렸다.

“헤헤, 장난이었어요. 장난.”

하린이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곧 현성 역시 작게 웃으며 트레이닝 룸을 가리켰다.

“그럼 이제 다시 들어갈 거야?”

“네. 그러려구요. 선배는요?”

하린의 물음에 현성은 기숙사가 있는 건물을 흘깃 바라보며 대답했다.

“난 이제 가보려고. 오늘은 좀 할 일이 있거든.”

“그래요? 그럼 언제 한 번 같이 운동해요.”

“그래. 그러자.”

그대로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네. 선배. 들어가세요.”

* * * * *

그렇게 현성이 하린과 헤어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아카데미 3학년 건물 안쪽에 위치한 휴게실로 들어왔다.

이곳에는 아카데미 생들을 위한 쉼터 같은 공간으로 자판기나 소파를 비롯한 편의시설들이 갖춰진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성이 휴게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잠시 뒤.

현성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게임기 앞.

‘……렇지. 이게 있어야지.’

그대로 현성은 게임기 앞에 앉고는 쭈욱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손을 풀며 히죽 웃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현성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스페리아>의 2막의 보스와 접점을 만나기 위해.

동시에 이번 불의 둥지에서의 일이 있고나서 그가 아카데미로 돌아가자마자 계획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2막 보스 레이첼과 접촉하는 것.’

레이첼.

<이스페리아>의 2막의 보스로 그 정체는 전에 말했듯이 아카데미 학생으로 위장한 마족.

마족 중에서도 좀 더 정확히는 뱀파이어.

그게 바로 레이첼이라는 등장인물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바로 레이첼은 그전에 등장했던 데일런트나 이진성, 크루페돈과는 달리 히로인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즉 보스와 히로인 포지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첼은 전처럼 생각 없이 죽이면 안 된다.’

만약 레이첼이 가지고 있는 히로인 포지션을 무시하고 죽이게 된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왜냐하면 레이첼은 방금 말했듯이 뱀파이어.

또한 그녀는 뱀파이어 종족을 이끄는 일종의 공주 포지션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그녀를 죽이게 된다면 뱀파이어는 플레이어와 완벽한 적대상태로 바뀌게 되며, 후에 마족진영에 붙게 된다.

‘하지만 레이첼을 살리고 히로인 공략 루트로 들어갈 경우에는 말이 달라진다.’

이 경우를 택하면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는 뱀파이어 종족과 우호도를 쌓을 수 있고, 이는 나중에 마족 대신 플레이어의 편에서 같이 싸우는 든든한 아군이 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뱀파이어라는 세력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레이첼을 죽일 게 아닌 히로인으로써 공략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레이첼과 가장 쉽게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이 게임이었다.

‘철의 권7.’

이는 아카데미의 휴게실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임으로, 그 장르는 이름에서부터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대전 격투 게임이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이스페리아>에 존재하는 미니게임이었다.

무엇보다 설정상.

레이첼의 취미가 바로 이 철의 권7을 플레이 하는 것이었다.

이를 제외하고는 아카데미에서 레이첼을 마주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수업시간을 포함한 낮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고 보인다한들 뱀파이어 특유의 기감으로 상대를 눈치 채고 바로 도망치기 마련.’

그에 반해 철의 권7에서는 달랐다.

어떻게 된 게 뱀파이어의 공주라는 게 게임에 미쳐가지고는 게임에 푹 빠져 산다.

‘오죽하면 게임은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정도.’

그만큼 레이첼은 철의 권7에서라면 상당히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게임은 바로 대전 격투 게임.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게임을 해야 하며.

그 정확한 조건은 다름 아닌 레이첼을 상대로 5승 이상을 따내는 것.

그리고 그녀는 게임에 빠진 만큼, 철권7의 상당한 고수였다.

그때였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매칭이 완료되었다는 창이 떠올랐다.

그런 현성의 상대의 닉네임은 VQ.

뱀파이어 퀸(Vamfire Queen)의 줄임말이었다.

‘…참 다시 봐도 알기 쉬운 녀석이라니까.’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카운트다운과 함께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현성을 향해 돌진하는 레이첼.

‘한 번에 끝낼 셈인가.’

이른바 원콤보.

공격을 한 번 허용하는 순간.

바로 패배가 확정되는 고인물의 상징이었다.

-슈슉!

그렇게 현성에게 파고든 레이첼의 캐릭터가 주먹을 내지른 순간이었다.

-터업.

레이첼이 주먹을 내지른 그 짧은 프레임 사이.

현성의 캐릭터가 정확히 공격타이밍을 읽고 주먹을 잡았다.

동시에 현성이 히죽 웃었다.

‘…느려.’

화면 너머로 느껴지는 레이첼의 당혹감.

이에 현성은 차마 말로 이룰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그렇다.

레이첼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현성은 <이스페리아>의 썩은 물.

그리고 그는 미니게임 철의 권7마저도 마스터한 고인물 아니, 썩은 물 그 자체였다.

“히힉…히히힉….!”

그런 현성의 입가를 타고 특유의 광기어린 웃음이 삐져나왔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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