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화 히든 공락법(7)
현성이 들고 있던 푸른 창을 꾹 쥐었다.
그러자 현성의 팔과 손등을 타고 힘줄이 솟아올랐다.
무엇보다도 창끝을 따라 응축되는 얼음의 기운.
-고오오.
덕분에 창끝은 시리도록 푸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현성이 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대로 현성이 천장을 향해 창을 던졌다.
동시에 창은 끝없이 날아갈 기세로 빠르고, 강하게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의 창이 박히기 무섭게 커다란 붉은 광석이 한방에 무너지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꾸준히 키워온 근육은 결코 현성을 배신하지 않았다.
-쉬이익…콰아아앙!
무시무시한 기세로 낙하하는 붉은 광석.
그런 광석이 떨어지는 바로 아래에는 크루페돈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에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챈 크루페돈이 위를 바라보았지만 이미 한 발 늦은 상태였다.
[제길! 이런 가증스러운 놈이!]
붉은 광석이 가차 없이 크루페돈의 등을 덮쳤다.
크기만큼 다량의 불의 기운을 가지고 있던 붉은 광석.
그리고 그 광석이 충격에 폭발하며 폭죽 수백 개가 터지듯 화려한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자, 잠깐! 등이…크아아악!!]
크루페돈이 고통스러운 듯 날개를 퍼덕이며 비명을 내질렀다.
불의 악마 크루페돈.
그가 아무리 화염속성이라고 한들.
약점부위에 커다란 광석이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 폭발까지 하는 데미지를 버틸 수 없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크루페돈을 잡는 것은 불가능.’
붉은 광석을 떨어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크루페돈을 공격할 수 있는 찬스를 만들어주는 기회일 뿐.
진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동시에 현성이 재빨리 앞으로 달리며 크루페돈을 향해 도약했다.
-파앗!
그대로 현성이 올라탄 곳은 다름 아닌 크루페돈의 등.
그런 그의 등에는 기사단에게 당한 상처가 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처 사이로 그토록 현성이 원하던 게 보였다.
-반짝.
마치 흑요석을 갈아 만든 것 같은 구형태의 결정.
그 크기는 축구공 정도.
그런 결정 주변에는 혈관과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이게 바로 악마의 심장기능을 하는 핵이었다.
‘이제 이걸 박살내면 되지만….’
검은 결정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게다가 상처 안에 깊숙이 박혀있었기 때문에 방금 전 충격에도 흠집하나 안 나있을 정도.
결국 검은 결정을 박살내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얼마나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데미지를 축적시키느냐!’
바로 이게 크루페돈 공략을 좌지우지하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붉은 결정을 ‘직접’ 타격하는 것.
이는 마법사 같이 원거리 공격으로 핵을 부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악독한 개발사 같으니.’
하여간 쉽게 가는 꼴을 못 본다.
그리고 현성 역시 마법사.
일반적인 경우라면 등에 올라타는 것은 현성이 아니라 시연이 그 역할을 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현성에게는 특별한 사실이 하나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성 그가 힘의 마법사, 줄여서 힘법사라는 것.
<이스페리아>에서 유일하게 마법과 물리 데미지를 동시에 줄 수 있는 히든 클래스.
그러면서 딜뽕 하나 만큼은 오지게 땡길 수 있는 직업이 바로 힘법사였다.
동시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양 손에 마법을 캐스팅했다.
‘한 손에는 파이어 펀치, 다른 한 손에는 얼음폭풍.’
이에 현성의 양 손을 타고 각각 붉은 불꽃과 푸른얼음이 모여들었다.
그대로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불꽃과 얼음결정이 팔을 휘감았다.
그리고 현성이 양 허벅지에 힘을 꽉 주며 몸을 지탱했다.
-꾸구국!
현성이 힘법사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허벅지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이제 이걸로 모든 준비는 끝.
곧바로 현성이 이를 악물며 검은 결정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콰앙!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성이 처음 투신의 길을 썼을 때의 감각을 떠올리고는.
그때와 같이 점점 주먹의 속도를 올렸다.
-두두두두두!
빠르게.
더욱 더 빠르게.
그런 현성이 속도를 올릴수록 양손의 불꽃과 얼음은 점점 커져갔다.
-쾅! 콰앙! 콰아앙! 쾅쾅!
그야말로 쉬지 않고 꽂히는 연격.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과 한기를 흩뿌리는 얼음.
그 둘은 조화를 이루며 파괴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빠지직…!
이에 검은 결정의 겉을 타고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간단한 과학 원리였다.
급격한 온도 차이를 이용해 단단한 물질을 박살낸다.
현성은 몸소 그 원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망할! 당장 떨어지지 못할…끄아아악!]
이미 결정 주변에 달라붙어 있던 혈관과 살점은 뭉개진지 오래.
단단한 겉이라면 모를까.
속까지 불꽃과 얼음을 견딜 리가 없었다.
거기다 힘법사 특유의 데미지는 물론.
현성은 현재 신화급 아이템 티리카의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는 상태.
크루페돈은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이 불쾌한 느낌…네놈이 어떻게 티리카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크루페돈이 악을 내지르며 외쳤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주먹으로 공격받자 알 수 있었다.
이건 분명 티리카의 힘이었다.
[티리카…또 그 망할 놈이냐! 티리카아아아!!]
이에 그는 현성을 떨쳐내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현성은 허벅지에 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
그런 현성의 모습은 마치 로데오를 하는 투우사를 연상케 하였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크루페돈의 상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다!’
현성이 양 손을 깍지 낀 채, 망치를 내려찍듯 있는 힘껏 검은 결정을 가격했다.
동시에 그의 팔을 타고 한데 합쳐진 불꽃과 얼음폭풍.
-끼기긱…챙강!
마침내 핵이 박살났다.
그러자 크루페돈이 귀가 찢어질 거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그의 비명은 지금껏 내뱉던 비명과는 달랐다.
[끼에에에엑!!]
마치 이성을 잃은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
그 소리에 현성은 물론 시연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
[불의 악마 크루페돈의 핵을 파괴했습니다.]
[불의 악마 크루페돈이 이성을 잃고 광폭화합니다.]
[필드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공포에 빠져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에 현성을 포함한 시연 역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덜컥!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했다.
2페이즈의 시작.
그러나 무엇보다 위험한 건 이 다음이었다.
-고오오!
크루페돈의 주변으로 심상치 않은 마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2페이즈 시작과 동시에 발동되는 즉사 패턴.
마기 폭발이었다.
그리고 현재 현성을 포함한 시연은 공포에 속박당한 상태.
그야말로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현성은 웃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공포는 어디까지 정신계 공격으로 인해 발동되는 상태이상.
그리고 의지스텟 총합 30에 다다르는 현성에게 공포를 푸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 날을 위해 그렇게 굴러왔다!’
동시에 현성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의 몸을 옥죄던 무거운 압력이 사라졌다.
그대로 마기가 폭발하기 직전.
-파앗!
현성이 공포에 발이 묶인 시연을 향해 몸을 던졌다.
당장 마기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나야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아!!
크루페돈이 마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짙은 마기가 홀을 메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쿨럭!”
곧 현성이 거친 기침을 토해내며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우선 그는 무사했다.
막판에 몸을 던진 게 아슬아슬하게 범위를 벗어나서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시연은?
현성이 그의 품에 안긴 시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숨은 제대로 쉬고 있었다.
-새액, 새액.
시연의 숨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공포와 방금 전 충격에 잠시 기절한 모양이었다.
이에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어….”
그가 크루페돈 주위에 남아있는 마기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앞서 말한 대로 폭발할 때 저 마기에 닿기라도 하면 플레이어는 물론 등장인물까지 그대로 사망한다.
‘…한마디로 2페이즈에 돌입함과 동시에 발동되는 즉사 패턴.’
그게 바로 방금 전 패턴이었다.
저 패턴이라면 아주 징글징글했다.
현성이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진짜 저 패턴 때문에 몇 번을 죽었는데….’
막 크루페돈의 핵을 파괴하고 플레이어에게 ‘깰 수 있다!’라는 희망을 심어줌과 함께.
단 3초 사이에 공포에 걸리면서 그 희망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즉사패턴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어렵다 못해 그냥 곱게 뒤지라는 악의가 느껴지는 패턴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당시 유저들은 이 패턴을 이렇게 불렀다.
‘…모친 출타하신 패턴.’
그나마 순화한 게 이 정도다.
아무튼 즉사패턴은 가까스로 피해냈다.
그럼 이제 2페이즈를 시작할 차례.
현성이 기절한 시연을 조심스레 옮겨두고 눈앞의 크루페돈을 주시했다.
[끼르르륵…!]
2페이즈의 내용은 간단했다.
핵이 박살난 채.
이성을 잃은 크루페돈은 급하게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먹이를 찾는다.
‘그리고 그 먹이는 바로 아직 불의 둥지 안에 남아있는 학생들.’
여기서 크루페돈의 우선순위가 현성에서 다른 학생들로 바뀌면서 도망치게 된다.
크루페돈의 입장에서는 지금 그와 더 싸워봤자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약한 학생들을 잡아먹어 체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
‘그에 따라 2페이즈에서 플레이어의 목표는 이를 저지하는 것.’
아니나 다를까.
크루페돈이 곧장 등을 돌리고 홀 밖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에 현성이 재빨리 그 앞을 가로막았다.
-처억.
광폭화에 걸린 크루페돈은 공격력이 올라가는 대신 핵을 잃은 피해로 급속도로 몸이 붕괴된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시간만 버티면 된다.
‘시간만 버티면 결계가 풀리고 아카데미 교수들이 등장. 교수들이 한 큐에 싹 다 정리해주니까!’
정말이지 유능한 교수들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마음 편히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크루페돈은 계속 필드 밖으로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즉 플레이어의 목표는 교수들이 오기 전까지 크루페돈을 필드에 묶어두는 것.’
그리고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단순무식하게 몸으로 크루페돈을 막는 것이었다.
동시에 크루페돈과 현성이 격돌하였다.
-콰앙!
그 충격에 현성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플레이어에게는 플레이어만의 개사기 아이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체력 포션.
현성이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체력 포션을 꺼내 단번에 들이마셨다.
그러자 초록 이펙트와 함께 현성의 체력이 채워졌다.
‘이게 바로 2페이즈의 공략법.’
광폭화한 크루페돈과 맞서 싸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야 공격력이 높은 건 둘째 치고 우선순위가 변경되면서 크루페돈이 더 이상 플레이어와 싸우려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크루페돈이 필드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면 그대로 다른 학생들이 잡아먹히면서 퀘스트 실패.’
결국 크루페돈을 필드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는 이렇게 직접 몸으로 막아서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자칫하면 크루페돈의 상승된 데미지에 사망하기 마련.
정말이지 까다롭기 그지없는 퀘스트였다.
하지만 당시 <이스페리아>의 썩은 물인 현성은 기어코 공략법을 찾아내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크루페돈을 몸으로 막으면서 쉬지 않고 체력 포션을 먹으면 아슬아슬하게 크루페돈의 데미지를 버틸 수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물약 메타!’
인벤토리에 최대로 소지 가능한 체력 포션의 개수는 20개.
그리고 놀랍게도 쉬지 않고 체력 포션을 마시면 딱 20개에서 딸피를 남기고 버틸 수 있었다.
그 다음은 간단했다.
‘그 사이 결계가 풀리고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크루페돈을 처리. 퀘스트 클리어.’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메타는 그동안 공격이란 공격은 다 맞으며 조금이라도 포션을 먹는 타이밍이 어긋나면 그대로 사망.
그 때문에 필수적으로 죽음 앞에서 쫄지 않는 야수의 심장과 정확한 타이밍이 요구되었다.
[끼에에에엑!!]
동시에 크루페돈이 사방으로 촉수를 휘두르며 현성을 떨쳐내려 했다.
이에 날카로운 촉수가 연신 현성을 공격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여기서 쓰러지면 전부 실패한다.’
현성이 손아귀에 힘을 주고 필사적으로 크루페돈의 잘려나간 뿔을 움켜쥐었다.
그러면서도 체력 포션을 마시는 걸 잊지 않았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쨍그랑!
현성이 19번째 체력 포션을 들이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루페돈의 저항이 심해졌다.
[끼익! 끼에에에엑!]
이성을 잃고 날뛰는 크루페돈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 그 자체였다.
하지만 현성은 끝까지 버티며 마침내 마지막 20번째 체력 포션을 들이켰다.
동시에 그의 체력이 차오르며 현성이 히죽 웃었다.
‘…됐다!’
타이밍은 완벽했다.
이제 결계가 깨졌다는 메시지가 등장할 차례였다.
그 순간이었다.
-띠링!
현성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그 조차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존재했다.
[기사왕 티리카에 대한 강한 분노로 인해 크루페돈이 특수 상태에 들어갑니다.]
[불의 악마 크루페돈이 특수 광폭화 상태로 들어갑니다.]
[특수 광폭화 상태에서는 몸의 붕괴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불의 악마 크루페돈의 우선순위가 유현성으로 변경됩니다.]
이에 현성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특수 조건으로 인해 발생한 특수 이벤트.
이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얼음 무덤 때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그 상황이 달랐다.
하필 이런 상황에 터진 최악의 이벤트.
그와 함께 떠오르는 금색의 퀘스트창.
히든 퀘스트였다.
그 이유는 당연히 티리카와 크루페돈과의 관계성.
[히든 퀘스트 : 기사왕의 길을 걷는 자]
<기사왕 티리카의 전설을 마주한 자여, 그대는 티리카의 의지를 이을 자격을 충족하였다.>
퀘스트 내용
-스킬 : 투신의 길 사용하기. (완료)
-티리카의 업적을 따라 그의 흔적을 찾으시오.(진행 중)
-첫 번째 업적 : 폭주한 불의 악마 크루페돈을 격퇴하시오.(진행 중)
보상 : 티리카의 비전스킬.
*본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과거 티리카의 건틀렛을 입수하고 난 뒤, 발생한 연계 퀘스트.
그러나 달라진 내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폭주한 크루페돈 격퇴.
하지만 그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푸욱!
동시에 크루페돈의 촉수가 현성의 다리를 꿰뚫었다.
다리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오른팔.
-후두둑.
현성의 발밑을 타고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흘러내린 붉은 피가 텅 빈 포션병을 적셨다.
이제 남은 체력 포션은 제로.
[티리카아…죽인다…티리카…!]
크루페돈이 어눌한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쿨럭!”
현성의 입을 타고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온 몸을 타고 느껴지는 고통과 기분 나쁜 이 느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앞의 떠오른 메시지가 그의 미래를 알려주고 있었다.
[캐릭터의 체력이 10%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캐릭터가 빈사상태에 빠집니다.]
그 와중에도 현성의 체력은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동시에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씨발…이런 좆…망겜…!”
현성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움찔!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하나의 정보가 있었다.
도박수에 가까웠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대로 뭔가 결심한 듯 현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티리카아아…죽…어라…!!]
그리고 크루페돈이 현성의 얼굴을 집어삼키려는 순간이었다.
-터업…꾸드득!
현성이 핏줄 가득 선 왼팔로 크루페돈의 해골대가리를 부여잡았다.
그대로 현성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야. 딱 대라.”
그때였다.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크루페돈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콰드득!
그런 그의 눈빛은 그야말로 광기.
현성이 크루페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왜? 너만 먹을 줄 알았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동시에 현성의 입안을 타고 역겨운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기어코 악마의 피와 살점을 집어삼켰다.
-꿀꺽!
그 와중에도 현성의 체력은 실시간으로 깎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현성의 체력이 1%를 남겼을 때.
-띠링!
흐릿해지는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캐릭터가 악마의 피와 살을 취했습니다.]
[필요한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그 순간.
현성의 체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검은 어둠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런 어둠 사이.
현성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악마의 거래가 시작됩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