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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49화 (49/240)

049화 히든 공락법(6)

그대로 뒤에 있던 현성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노리는 방향은 크루페돈 바로 옆 작은 공간.

그동안은 크루페돈의 커다란 덩치가 좁은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방금 전 시연의 공격, 백익(白翼)덕분이었다.

‘…길이 열렸다.’

길을 열겠다는 시연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이에 크루페돈은 촉수가 산산조각 난 것도 모자라, 바닥에 박힌 수십 개 검에 꼼짝없이 갇힌 꼴이 되었다.

그로 인해 생긴 작은 틈.

현성이 그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파앗!

곧바로 현성이 재빠르게 길목의 틈을 비집고 크루페돈을 지나치는데 성공했다.

이걸로 우선 길목을 지나가는 데는 성공.

그와 동시에 크루페돈이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고개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현성.

[내 도망치는 꼴을 그대로 봐줄 거 같으냐!]

이미 현성에게 잔뜩 어그로가 끌린 크루페돈이 육중한 몸을 틀었다.

그 역시 몬스터인 이상.

<이스페리아>의 어그로 시스템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크루페돈이 괴성을 내지르며 불꽃을 일으키며 온 몸에 힘을 줬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그 충격으로 바닥을 타고 금이 갈 정도였다.

그러자 그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검이 하나 둘씩 밀리기 시작했다,

-끼긱! 끼기긱…!

그리고 마침내.

채앵!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크루페돈이 속박을 풀어냈다.

이에 크루페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현성을 향해 목을 뻗었다.

-쉬익!

그의 기다란 검은 목이 단번에 쭉 늘어나며 현성을 빠르게 추격했다.

현성이 이제 막 크루페돈보다 약간 앞질러있는 상황.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잡힐 거리였다.

‘거 봉인에서 갓 풀린 주제에 드럽게 빠르네!’

현성이 뒤를 흘깃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때였다.

시연이 다시 한 번 검을 내리그으며 크루페돈을 저지하려 들었다.

-콰앙!

바닥을 가격한 제2식 낙천(落天).

동시에 사방으로 바닥의 파편이 튀며 크루페돈을 갈랐다.

이에 현성을 향하려던 크루페돈이 표정을 와락 구기며 이를 갈았다.

[크윽…방해하지마라!]

크루페돈은 그런 시연이 거슬리는 듯.

불꽃을 두른 날개를 펼쳤다.

-파바박.

그러자 불씨가 전투기의 플레어처럼 흩날리며 시연의 시야를 가렸다.

“큿!”

그런 불씨에 시연이 급히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틀었다.

번쩍거리는 불씨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사이로 검은 촉수하나가 시연을 향해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

평소의 시연이라면 무리 없이 막았을 공격.

그러나 그녀는 현재 불씨로 인해 시야가 흐려진 상태.

시연이 뒤늦게 검을 휘둘렀지만, 간발의 찰나로 크루페돈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휘리릭.

곧바로 크루페돈의 검은 촉수가 시연의 몸을 휘감았다.

그대로 크루페돈이 촉수에 묶인 시연을 통째로 집어던졌다.

[방해 하지 말고 저리 꺼져라!]

그리고 그 뒤는 바로 넓은 홀.

즉 낭떠러지였다.

-쉬이익!

이대로 간다면 시연은 꼼짝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질 터.

그러나 현성이 그 모습을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곧바로 현성이 이를 악물고 날아가는 시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지금 저 새끼가 미쳤나!’

여기까지 와서 시연을 죽게 둘 수는 없었다.

감히 <이스페리아>의 히로인을 죽여?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덥썩!

다행히 현성이 무사히 시연을 끌어안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 걸린 관성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시연은 물론.

그녀를 받은 현성까지 그 힘을 못 이겨 뒤로 날아갔다.

[둘 다 이대로 떨어져 죽어라!]

크루페돈이 히죽 웃으며 외쳤다.

동시에 그의 입을 타고 화염 브레스가 쏘아졌다.

크루페돈은 이대로 한 번에 둘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화르륵!

곧 길목 가득 불꽃이 타오르며 그 뒤로 현성과 시연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대로 잠시 뒤.

낭떠러지 아래로 커다란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퍼어엉!

그 소리에 크루페돈이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 낭떠러지 아래로는 자욱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 높이라면 못해도 한 녀석은 분명히 처리했을 터.

[크흐흐, 기왕이면 여자 쪽이 죽었으면 좋겠군.]

현성 그만은 자신의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었다.

이에 크루페돈이 여유롭게 날개를 퍼덕이며 홀 안으로 내려왔다.

과연 낭떠러지 아래 처박힌 둘의 모습은 어떠할까.

다리가 부러져 벌레같이 바닥을 기고 있을까.

그게 아니면 죽은 시체를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을까.

[어떤 모습이든 제법 볼만하겠군.]

크루페돈이 잔뜩 기대하며 걸어가 자욱한 연기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곧 연기 사이로 푸르게 반짝이는 결정들이 보였다.

이에 크루페돈이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이게 도대체 뭐지.

건방진 남자 쪽이 들고 있던 창인가.

그대로 크루페돈이 좀 더 자세히 보기위해 가까이 간 순간이었다.

“야. 어금니 악물어라.”

단호한 현성의 한 마디.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의 주먹이 정확히 크루페돈의 안면에 처박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가가각!

그의 주먹 끝에 모여 있던 얼음의 기운이 단번에 폭발하며 크루페돈의 얼굴을 집어삼켰다.

마치 피부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격통.

그 고통에 크루페돈이 비명을 내지르며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며 발광했다.

[크아아아악!!]

크루페돈이 재빨리 불꽃을 두른 날개로 얼굴을 감싸며 비틀거렸다.

그러면서 그가 고통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날개도 없는 하등한 인간주제에…그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그런 크루페돈의 말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발밑에 떨어진 베개조각을 주워 흔들거렸다.

“꼬우면 너도 아카데미에서 사오던가.”

현성과 시연이 그 높이에서 떨어졌음에도 무사한 이유.

그것은 바로 슬라임 베개 덕분이었다.

현성은 떨어지는 순간.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베개를 꺼내 충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대로.

슬라임 베개를 이용한 현성과 시연은 1의 낙뎀도 받지 않고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지?”

현성이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시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에 시연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현성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괜찮아.”

처음에는 꼼짝없이 떨어질 위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연 그녀는 어느새 현성의 품에 무사히 안겨있었다.

선천강에서 폭풍에 날아간 현성을 구했을 때와는 그야말로 정반대의 상황.

당시 시연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지만 다행히 자욱한 연기 때문에 티가 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뒤로 현성은 보는 대로 크루페돈에게 한방 먹이고.

다시 지금 이 상황.

‘…둘 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무엇보다도 피할 수 있었음에 불구하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린 그 모습.

선천강에서도 그랬지만 타인보다 남을 구하기 위해 먼저 움직이는 그 용기와 헌신.

그런 그의 마음가짐은 올곧은 정의 그 자체였다.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시연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현성의 손을 붙잡았다.

그대로 시연이 일어나고.

그녀가 비틀거리는 크루페돈을 바라보았다.

“….”

방금 전 현성이 한 대 먹이는데 성공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이에 시연이 곧바로 검집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현성이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시연아. 저기 위에 커다란 붉은 광석보이지?”

현성의 말에 시연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정말 그의 말대로 커다란 붉은 광석이 매달려있었다.

그 모습에 시연이 중얼거렸다.

“저 광석은 분명….”

시연이 동굴에 들어왔을 때.

현성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 광석은 다름 아닌 불을 품고 있는 물질.

무엇보다도 그 특징은 충격을 가하면 그 안에 있는 불꽃이 터져 나오며 폭발한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시연이 뭔가 알아차린 듯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저 아래까지 크루페돈을 유인하면 되는 거지?”

“맞아.”

그 말에 현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의 계획은 이러했다.

시연이 크루페돈을 광석아래까지 유인하면, 그가 창을 던져 광석을 떨어트린다.

동시에 이 방법이 바로 크루페돈 공략의 열쇠였다.

“할 수 있겠어?”

“해내야지. 모든 걸 쏟아 부어서라도.”

그 말에 현성이 움찔거렸다.

모든 걸 쏟아 붓는다는 그 대사.

시연이 이 대사를 말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이제 큰 거 온다.’

현성이 기대에 찬 듯 작게 웃었다.

<이스페리아>에서는 필살기와 같이 특정기술을 쓸 때면 그에 따라 입력되는 대사가 있었다.

시연의 경우. 그 대사가 바로 ‘모든 걸 쏟아 붓는다.’

또한 시연의 필살기라면.

‘오의 : 검무(劍舞)’

본디 게임에서 검을 쓰는 캐릭터라 한다면 제일 우선시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간지’.

시연의 기술들이 전부 특유의 중2병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간지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이스페리아>에서 가장 중2병 돋지만 그만큼 간지는 제대로 챙긴 기술이 시연의 필살기.

그리고 지금.

그 필살기가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후우.”

이에 그녀가 발도자세를 취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던 크루페돈이 이제 막 정신을 차리려는 때.

시연이 움직였다.

그런 그녀의 주위로는 어느새 위에서 날렸던 검들이 전부 회수되어있었다.

[이, 이런…!]

그 모습에 크루페돈이 재빨리 몸을 추스르려 했지만 가만히 기다려줄 시연이 아니었다.

방금 전에는 예상치 못한 불씨 때문에 당했다면 이제는 그대로 돌려줄 차례였다.

곧바로 시연이 허리춤에 찬 검을 휘둘렀다.

-쉬익!

섬광과도 같은 가로 베기.

이에 크루페돈이 위에서와 같이 불꽃을 흩날렸다.

하지만 불꽃이 그녀의 검에 닿는 순간.

-푸스스.

묵직한 검압에 소멸돼 허무하게 흩어졌다.

그 검에 크루페돈이 미간을 좁혔다.

[…불꽃이?!]

그 이름은 제 1식 폭참(瀑斬).

폭포마저도 베어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어서 제2식 낙천(落天).

시연이 세로로 검을 내리그었다.

-촤악!

그 공격에 크루페돈이 불을 두른 날개를 휘둘러 막았다.

허나 시연이 공격은 멈출 줄 몰랐다.

크루페돈의 얼굴을 노리고 쏘아지는 찌르기.

[그깟 잡기술은 피하면 그만이다!]

이에 크루페돈이 한 발 빨리 검의 궤적을 읽고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시연의 검 끝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궤적을 바꿔 파고들었다.

‘…제 3식 월영(月影).’

그 기묘한 궤적은 달의 그림자마저 꿰뚫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였다.

그 뒤로 계속해서 찔러오는 검격.

이에 크루페돈이 촉수를 한데 뭉쳐 그대로 시연을 향해 찍어 내렸다.

마치 커다란 철퇴와도 같은 모양새.

크루페돈이 외쳤다.

[이대로 박살내주마!!]

동시에 시연이 숨을 작게 들이쉬며 검을 비스듬하게 들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시연을 찍어 누를 기세로 내려치던 촉수가 허무하리만큼 빗겨 내려갔다.

-콰앙!

그 결과.

크루페돈의 철퇴는 애먼 바닥을 박살낼 뿐이었다.

마치 물이 흐르듯 부드러운 방어.

하 가문에서는 이를 제 4식 천류(川流)라고 불렀다.

“허어….”

전부 현성이 <이스페리아>에서 본 그대로였다.

이것이 바로 검술명가 하 가문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하시연의 검.

그런 그녀의 검 솜씨는 그야말로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제 1식 폭참(瀑斬).

제 2식 낙천(落天).

제 3식 월영(月影).

제 4식 천류(川流).

시연은 사방에 떠있는 수십 개의 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총 4개의 식을 쉴 새 없이 펼치고 있었다.

몰아치는 연격에 들려오는 것은 오직 끊임없는 검이 바람을 가르고, 부딪히는 소리 뿐.

-쉬이익! 채채쟁! 챙…끼기긱! 쉬익!

마치 춤을 추듯 발을 놀리며 검을 휘두르는 시연의 모습은 그야말로 검무(劍舞)그 자체였다.

-처억.

이에 조금씩 밀리던 크루페돈은 어느새 붉은 광석 바로 밑에까지 다다랐다.

동시에 시연이 아무 말 없이 뒤에 있는 현성을 바라봤다.

“….”

그대로 시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현성의 차례가 왔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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