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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47화 (47/240)

047화 히든 공락법(4)

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길목에서 거센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길목 전체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다란 불꽃.

이에 현성이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꾸구국.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화염마법을 썼다가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눈앞의 불꽃을 카운터 치려면 못해도 비슷한 위력의 화염마법을 써야하는데 그건 불가능했다.

그 상대가 현성 그가 알고 있는 ‘그 녀석’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남은 건…!’

현성의 오른팔을 타고 하얀 서리가 일기 시작했다.

그대로 그가 주먹을 움켜쥔 채.

바닥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콰아앙!

그 순간이었다.

현성의 주먹을 타고 심상치 않은 한기가 퍼져 나왔다.

그와 함께 푸른 얼음조각들이 날카롭게 솟아오르며 길목을 뒤덮었다.

마치 얼음무덤에서 벤시 퀸의 궁극기를 연상케 하는 공격.

그 공격은 다름 아닌 얼음폭풍이었다.

그리고 격돌한 거센 화염과 푸른얼음.

-퍼어어엉!

그 둘이 마주치기 무섭게 폭발이 일며, 하얀 수증기가 사방을 메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수증기 사이.

현성이 전방을 주시하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다들 물러서. 절대 섣불리 앞으로 나오지 마.”

“네? 오빠. 그게 무슨….”

그 말에 하린이 움찔거리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보여줬던 현성의 모습과는 뭔가 달랐다.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사실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불길함 뿐.

그때였다.

[…크흐흐, 신선한 제물들이 제 발로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뿌연 수증기 사이로 낮고, 섬뜩한 목소리가 삐져나왔다.

그 목소리와 동시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목소리까지 들은 이상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길 바랐건만….’

그대로 서서히 수증기가 걷히며, 그 너머에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골을 연상케 하는 얼굴과 흉하게 잘려나간 검은 뿔.

그 아래로 길쭉하게 뻗어있는 검은 목.

이를 지탱하고 있는 몸통은 마치 커다란 인면조를 연상케 하였다.

-푸드덕.

하지만 인면조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얀 깃털을 따라 온몸을 뒤덮은 붉은 불꽃.

그 모습은 기괴한 괴물 혹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에 가까웠다.

“도대체 저건….”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형태에 하린이 뒤로 주춤거렸다.

불의 둥지에 저런 몬스터가 있다니.

그 어디에서도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인간계에 나왔는데 만찬을 즐겨야함은 당연한 일. 거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선한 처녀까지….]

그러면서 해골에서 길쭉한 혀가 나와 입맛을 다셨다.

그런 그의 뒤로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시체더미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산제물이 분명했다.

이에 시연이 불쾌한 듯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저건 뭐죠.”

그 정체를 모르기는 시연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이곳에 있는 학생들 중 그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 한 명.

현성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대로 현성이 기괴한 형태의 괴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불의 악마. 크루페돈.”

현성이 주먹을 꾹 움켜쥐고 전방을 주시했다.

불의 악마. 크루페돈.

과거 기사단이 불의 둥지에 봉인해둔 악마이자, <이스페리아>의 1막 보스였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등장해서는 안 될 몬스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성준이 봉인을 풀면서 등장하는 몬스터니까.’

<이스페리아>의 원래 시나리오는 이렇다.

평소에 연모하던 하시연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면서 그대로 흑화.

흑화 한 그가 가질 수 없다면 모두 부셔버리겠다는 마인드로 불의 둥지에 봉인되어 있던 악마를 깨우게 된다.

이에 하시연이 위험에 처하지만.

‘주인공 유진이 그녀를 구해내고, 보스를 격퇴.’

이게 원작의 전개였다.

그런데 알다시피 현성이 공개대련에서 성준을 박살내버리면서, 성준은 현재 병원에 박혀있는 상태.

봉인된 악마가 깨어날 일은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그러나 눈앞의 상황은 달랐다.

샐러맨더 대신 등장한 불의 악마 크루페돈.

그렇다면 이 시점.

현성의 의문은 단 하나였다.

‘도대체 누가 크루페돈의 봉인을 푼 거지.’

그때였다.

크루페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오?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자가 있었나?]

그러면서 크루페돈이 불꽃을 두른 날개를 접으며 인사를 하듯 몸을 숙였다.

[이거 영광이군. 그런 의미에서….]

그리고 그가 다시 날개를 펼친 순간이었다.

[넌 특별히 첫 번째로 먹어주도록 하지!]

곧바로 크루페돈의 몸이 현성을 향해 쏘아졌다.

불의 악마 크루페돈.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신선한 인간을 산채로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쉬이익!

이에 현성이 재빨리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크루페돈의 이빨이 현성의 머리를 뜯어버리려던 찰나.

현성이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채앵!!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마찰음이 동굴 가득 울려 퍼졌다.

어느새 현성의 손에는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를 뿜어내는 푸른 창이 들려있었다.

그 창의 이름은 얼음의 기사 헌리스의 창.

-끼기긱…!

그대로 현성이 힘껏 창에 힘을 주며 크루페돈을 밀쳐냈다.

그런 푸른 창을 타고 한층 더 강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크루페돈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뒤로 물러났다.

[크윽!]

불의 악마인 크루페돈에게 헌리스의 창은 그야말로 상극.

곧 뒤로 물러난 크루페돈이 현성과 창을 번갈아보며 중얼거렸다.

[…기분 나쁜 창이군.]

이에 현성이 창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니 얼굴만큼 기분 나쁠까.”

그러면서 현성이 크루페돈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바닥에 쌓인 시체더미가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밑에 그려진 기괴한 문양.

동시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저건…마족의 문양?’

저 문양은 마족들이 쓰는 문양.

이에 현성이 작게 혀를 찼다.

“쯧.”

봉인이 풀린 크루페논.

성준이 없는 지금.

그를 제외하고 봉인을 풀만한 인물.

저게 마족의 문양이라면 그 답은 하나였다.

‘…2막의 보스.’

지금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답은 그것뿐이었다.

2막의 보스는 아카데미 학생으로 위장한 마족.

게다가 원작에 따르면 성준에게 크루페돈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것도 이 녀석이었다.

‘즉, 지금 크루페돈의 봉인이 풀렸다는 뜻은 2막의 보스가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뜻.’

곧 정리를 끝낸 현성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봉인을 푼 주체가 성준에서 2막 보스 본인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아마 성준이 지금 아카데미에 없기 때문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대신 움직일 학생을 찾지 못한 2막 보스가 직접 움직였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은 이 정도였다.

그리고 이는 공개대련에서 현성이 성준을 쓰러트린 결과의 연장선.

동시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흘러가게는 안 둔다 이거지?’

어떻게든 유저가 잘되는 꼴은 못 본다.

아주 <이스페리아>다운 결과였다.

현성이 히죽 웃으며 크루페돈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래야 <이스페리아>지.’

이 악물고 배드 엔딩으로 끌고 가려는 이 방식.

그동안 현성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지겹도록 느껴온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익숙한 느낌이 현성을 더더욱 차분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스페리아>가 확실하다.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크루페돈이라면 이미 잡아봤다.’

과거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하면서 현성은 당연히 크루페돈을 잡아본 경험이 있다.

거기다 크루페돈 역시 불의 던전에 봉인되어 있는 이상.

그의 속성은 당연하게도 화염.

‘물론 그 난이도는 샐러맨더와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크루페돈의 약점이 얼음이라는 것은 유효했다.

아마 버티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였다.

동시에 현성의 옆에 서있던 시연이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싸울 생각이죠?”

그대로 시연이 검집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럼 같이 돕겠습니다.”

그러면서 시연이 현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은 혼자 싸우는 게 편할지 몰라도 나중에 가면 힘들어질 수 있잖아요?”

-멈칫.

이에 현성이 시연을 바라보았다.

“그 말은….”

약간 다르지만 분명 선천강에서 데일러트와 싸울 당시.

현성이 시연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런 시연의 말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그럼 저 악마를 상대로 싸우면 되는 건가요.”

“응. 부탁할게.”

시연의 참전.

이로 인해 혼자 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

그것은 바로 하린의 존재.

현성이 자신을 걱정하는 하린을 흘깃 바라봤다.

‘…만약 크루페돈이 하린을 먼저 노린다면?’

그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무리 현성이 크루페돈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

그리고 과거의 스텟과 지금의 스텟을 비교해봤을 때 하린을 지키면서 싸우기란 상당히 힘들었다.

‘거기다 하린이 죽는 순간 바로 배드 엔딩 확정.’

이러면 기껏 튜토리얼에서 하린을 살린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내릴 선택은 단 하나.

곧 현성이 하린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하린아. 지금 당장 왔던 길로 되돌아가.”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움찔거렸다.

그대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오빠는요?”

하린이 입을 앙다물고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때처럼 또 혼자 도망치라는 소리일까.

동시에 현성이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도망치라는 게 아니야. 한시라도 빨리 외부에 이 상황을 알려야해.”

“그 말은….”

“교수님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처가 없다면 그건 분명 어딘가 문제가 생긴 거야.”

현성의 말에 하린이 뭔가 떠오른 듯 중얼거렸다.

“그럼 설마 대기실에서 카메라가 고장 났다고 했던 게….”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또한 이 전조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2막 보스가 직접 움직였다면 교수들의 개입을 염두에 두고 그에 대한 대처를 해둘 게 분명했다.

“아마 외부에서 개입을 막기 위해 결계 따위를 쳐뒀을 거야.”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다.

마침 저 뒤에서 인기척과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분명 아카데미의 다른 팀일 터.

이에 현성이 말했다.

“뒤에 말소리 들리지? 당장 다른 학생들과 합류해서 이 상황을 외부에게 알릴 방법을 찾아줘. 알겠지?”

“….”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입을 앙 다문 채 주먹을 꾹 쥐었다.

그녀의 주먹이 작게 떨렸다.

현성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도리어 내가 있으면 방해가 될 뿐이야.’

선천강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하린이 푹 고개를 숙였다.

‘전부 내가 약해서….’

만약 자신이 시연처럼 강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처럼 방해될 일도, 현성을 두고 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린이 뭔가 결심한 듯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외부에 알릴 방법을 찾아볼게요. 하지만 그 전에.”

동시에 하린이 현성과 시연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을 타고 밝은 빛 무리가 둘을 감쌌다.

-파아앗!

따스함이 담겨있는 빛.

분명 신성의 기운이었다.

이에 현성이 자신의 몸을 살피며 말했다.

“이건….”

“이번에 배운 축복이에요.”

하린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거밖에 없지만…받아주세요.”

그녀의 말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그대로 현성이 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방금 말한 거. 부탁할게.”

“…알겠어요.”

곧 하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주변을 타고 푸른 마나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선천강에서와 같은 모습.

텔레포트였다.

그대로 하린이 이동하기 직전.

그녀가 현성의 뒷모습을 보며 굳게 결심했다.

‘…강해져야 해. 더 이상 도망치지 않도록.’

그 결심을 마지막으로 하린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에 지금 동굴에 남은 것은 현성과 시연.

그리고 불의 악마, 크루페돈 뿐.

-띠링.

동시에 그의 앞으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 불의 악마. 크루페돈을 쓰러트려라.]

퀘스트 내용

-봉인에서 풀린 악마. 크루페돈을 쓰러트리시오.(진행 중)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진행되었음을 알리는 퀘스트 창.

이에 현성이 푸른 창을 움켜쥐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크루페돈 공략전. 시작이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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