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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45화 (45/240)

045화 히든 공락법(2)

현성의 말에 하린과 시연이 재빨리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어그로는 끌렸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말이다.

저 뒤로 맹렬하게 쫒아오는 화염늑대와 카사 무리를 보아라.

흩날리는 화염 갈기와 불꽃을 두른 채 펄럭이는 날개의 조화.

정말이지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관 속.

하린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주를 펼치고 있었다.

“흐아아아! 오빠 저주할거예요!”

하린이 원망 섞인 외침을 내뱉으며 속도를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뒤에 있던 카사가 돌연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불꽃으로 이루어진 깃털이 하린을 향해 매섭게 쏘아졌다.

마치 날카로운 암기와 같은 깃털.

그것은 바로 카사의 또 다른 공격, 화염 깃털이었다.

-쉬이익!

그대로 불꽃을 두른 깃털이 하린을 꿰뚫기 직전.

그녀의 옆에서 같이 달리고 있던 시연이 검집에 손을 올린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계속 달리세요.”

동시에 시연이 쏜살같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옆에서 본 하린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발도(拔刀).

동시에 그녀의 검이 정확히 날아오는 깃털을 쳐냈다.

-채앵!

그 모습에 둘을 지켜보던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바로 하린과 시연을 같이 보낸 이유였다.

혹여나 하린을 향해 공격이 날아온다고 한들, 옆에 있는 시연이라면 무조건 그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괜히 아카데미 1등이 아니거든.’

지금 상황에서 시연은 최고의 검이자, 방패였다.

이것으로 어그로는 제대로 끌렸고, 하린은 걱정할 필요 없었다.

시연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현성의 역할은?

-화르륵!

곧 현성의 손바닥을 타고 불꽃이 타올랐다.

현성 그의 역할은 간단했다.

오직 그뿐만이 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역할.

“내 뒤로 들어와!”

그것은 바로 타이밍에 맞춰 1라운드에서처럼 용암폭포를 터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달려온 하린과 시연이 곧바로 현성의 뒤로 들어왔을 때.

그가 주먹을 움켜쥐며 옆의 벽을 있는 힘껏 가격했다.

-콰앙!

현성의 주먹을 타고 휘몰아치던 불꽃이 폭발하며 그 충격에 벽이 무너져 내렸다.

1라운드에서 그가 보여줬던 것과 같은 풍경.

그와 동시에 쏟아져 내리는 용암폭포가 가차 없이 화염늑대와 카사를 덮쳤다.

-촤아악!

이에 화염늑대와 카사가 비명을 내뱉으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용암에 휩쓸려 절벽 아래로 떨어질 뿐이었다.

그 모습에 하린이 멍하니 눈앞을 바라봤다.

“세상에….”

정말 현성이 말한 그대로였다.

화염늑대와 카사는 이쪽으로 단 한발자국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에 있던 몬스터들은 이미 용암에 휩쓸린 지 오래였다.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기발한 방법.

도대체 그 누가 이런 식으로 몬스터를 잡을 생각을 했을까.

동시에 하린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했다.

“대단해요! 이대로라면 몬스터들을 전부 해치울 수 있…!”

“아뇨. 아마 그건 무리일 겁니다.”

하린의 말에 조용히 앞을 지켜보던 시연이 중얼거렸다.

그런 시연의 대답에 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분명 현성의 계획은 용암을 통해 몬스터를 해치우는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무리라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곧바로 시연이 이어서 말했다.

“용암을 통해 달려드는 몬스터를 처리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 앞에 있던 몬스터 일부일 뿐. 아직 남은 몬스터는 많습니다.”

실제로 용암너머에는 아직 많은 몬스터가 남아있었다.

화염늑대 무리도 모자라 카사들의 어그로까지 한 번에 끌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큰 수확이었다.

‘…만약 용암폭포가 아니었다면 더 시간이 걸렸을 터.’

이 정도로 만족해야했다.

그 말에 현성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연의 말이 맞아.”

거기다 이제 슬슬 용암폭포가 멎을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에 시연이 천천히 검집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그 순간.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데 우리가 싸울 일은 없을 거야.”

“네? 그게 무슨….”

“저거 봐.”

그러면서 현성이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곳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크르릉! 커엉!”

“끼이이익!”

방금 전까지 같이 달려오던 화염늑대와 카사가 서로 싸우고 있던 것이었다.

이미 현성을 포함한 하린과 시연에게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저 둘이 뒤섞여 물어뜯고, 쪼고 난리도 난리가 아니었다.

그 모습에 시연이 검집에 올린 손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미간을 좁혔다.

“이건 도대체….”

화염늑대와 카사가 어그로를 끈 장본인인 자신을 놔두고, 반대로 서로 싸우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곧 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봐. 내 말이 맞지?”

이게 바로 현성이 노린 것이었다.

분명 원래대로라면 몬스터들은 그의 팀을 공격했어야했다.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었다면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경우일까.

동시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페리아>의 시스템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어그로 시스템의 원리 자체는 간단하다.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거나, 혹은 몬스터를 먼저 공격하면 당연히 몬스터는 그 대상을 향해 공격한다.’

그러나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중간에 다른 피해를 입을 경우였다.

‘…여기서는 그게 바로 바로 용암폭포.’

맨 처음.

어그로의 대상은 바로 하린과 시연이었다.

그런데 방금 현성이 용암폭포를 통해 화염늑대와 카사를 공격하면서 몬스터가 사망.

‘이때 용암폭포는 환경요소를 이용한 피해로 들어간다.’

이 부분이 핵심이었다.

<이스페리아>의 시스템 상 환경요소를 이용해 피해를 입힐 경우.

따로 몬스터의 어그로가 끌리지 않는다.

설령 그게 플레이어가 유도한 공격이라도 말이다.

‘즉 용암폭포가 쏟아진 시점부터 어그로는 그대로 사라졌다는 말이지.’

한마디로 용암폭포가 몬스터를 덮치면서 설정된 어그로 우선순위가 하린과 시연에서 환경요소(용암폭포)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환경요소로 향한 어그로는 시스템 상 소멸.

이게 화염늑대와 카사가 그들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였다.

허나 여전히 남아있는 의문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화염늑대와 카사는 갑자기 둘이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인가.

그 원인은 <이스페리아>의 설정에 있었다.

‘…화염늑대와 카사는 원래 영역이 겹치면 서로 싸우거든.’

전에 말했듯이 화염늑대와 카사는 둘 다 무리생활을 하는 몬스터.

그만큼 자기 영역에 관해 민감하다.

그리고 서로 이를 알기 때문에 웬만하면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

지금처럼 한 곳에 두 몬스터 무리가 만났을 때.

그러니까 영역이 겹치는 상황에서는 둘은 보다시피 영역다툼을 시작한다.

이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페리아>가 난이도가 개같이 어렵긴 해도 이런 세세한 설정하나는 기깔나게 구현했지.’

아아, 보아라.

이 자연의 신비(?)를.

현성이 영역다툼을 벌이는 화염늑대와 카사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동시에 이것이 현성이 갈림길에서 왼쪽을 선택한 이유였다.

왼쪽 길의 특징은 보스에게 빨리 도달할 수 있지만, 그만큼 몬스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보스를 마주치기도 전에 체력과 시간이 소모되기 마련.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면 아무런 문제없었다.

손도 안대고 몬스터를 잡고 갈수 있으니까.

즉 단점은 없어지고 오직 장점만 남는다.

‘…이게 바로 불의 둥지의 숨겨진 공략법.’

한마디로 히든 공략법이었다.

본디 새로운 발견은 기존의 루트를 거스르는 것에서 시작하는 법.

이 발견으로 현성은 그동안 정석 공략법이라고 알려진 방법을 보란 듯이 갈아치웠다.

그리고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털썩.

마지막 화염늑대가 쓰러졌다.

이걸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절벽을 가득 메우고 있던 화염늑대를 비롯한 카사들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현성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자, 다시 가볼까?”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과 시연이 서로 번갈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랐다.

그러면서 하린이 생각했다.

‘이번에도….’

얼음무덤에 이어 불의 둥지에서 보여준 현성의 판단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전문 탐사자를 연상케 하는 지식과 경험.

거기다 이를 토대로 보여주는 결과까지.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로는 모자랄 정도였다.

동시에 이런 사람이 자신의 부모님이 보내준 인연이라는 게 너무도 감사했다.

그대로 하린이 싱긋 웃으며 현성을 바라봤다.

‘…고마워요, 오빠.’

어느새 하린은 어그로를 끌 때 작게나마 현성을 원망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린이 앞서 가는 현성을 향해 달라가며 말했다.

“같이 가요. 오빠!”

그런 하린의 말에 앞서 가던 현성 역시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앞으로도 계속 이래야하는데 같이 가야지.”

자연스럽게 던진 현성의 한 마디.

-움찔.

동시에 싱긋 웃으며 달려가던 하린이 멈춰 섰다.

그렇다면 그 말은 곧 어그로 끄는 걸 다시 해야 한다는 말.

“윽.”

그 사실에 하린이 주춤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언제까지 해야 되는데요?”

하린의 물음에 현성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거야…보스룸에 도착할 때까지?”

사실상 정해진 대답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역할을 바꿔달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

그도 그럴게 현성이 빠지면 자신이 방금 그가 했던 것처럼 용암폭포를 터트려야 했는데, 알다시피 그게 가능한건 이 파티에서, 아니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을 통틀어도 현성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린의 역할은 고정.

이에 하린이 옆에 있던 시연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시연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카사의 공격에서 도와준 것처럼 시연 그녀라면 도와줄 수 있을 터.

하린이 한줌의 희망을 품고 입을 떼었다.

“그…시연 회장님은 어떠세요?”

동시에 하린이 시연을 향해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시연이 그런 그녀의 눈빛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저라면 괜찮습니다.”

그렇다.

그런 건 없었다.

시연은 전투에서 기척을 알아차리는 센스는 탑급이었지만, 하린의 구원의 눈빛을 알아차리는 센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네….”

희망이 꺾인 하린이 허망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시연이 그런 하린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하린의 모습이 어딘가 슬퍼 보였다.

방금 자신의 대답이 어딘가 이상했던 걸까.

이에 잠시 고민하던 시연이 뭔가 떠오른 듯 작게 감탄사를 토해내며 하린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린 학생이라고 했죠?”

“아. 네!”

그 말에 하린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연을 바라봤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믿고 있었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시연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하린 학생은 배려심이 깊군요.”

끝까지 보내버리는 깔끔한 마무리.

역시 아카데미 1등을 자랑하는 만큼 완벽한 막타였다.

이걸로 하린의 라이프는 제로.

그 말에 하린이 눈물을 머금으며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런 하린의 모습에 시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칭찬이 맞았던 모양이다.

칭찬을 듣고 웃는 하린의 모습은 누가 봐도 귀여워보였다.

이에 시연은 내심 만족스러웠는지 하린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귀여운 후배구나. 현성이 아끼는 이유를 알 거 같아.’

하시연.

검술명가 하 가문이자 아카데미의 회장.

외모면 외모.

실력이면 실력.

무엇 하나 모자랄 것 없는 그녀는 삽질마저 뛰어났다.

그야말로 완벽한 삽질.

동시에 현성이 그런 하린과 시연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둘이 사이좋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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