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화 히든 공락법(1)
2라운드가 시작됨과 동시에 조를 이룬 학생들은 곧바로 보스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는 1라운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팀을 이룬 학생들끼리 역할을 분담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관측실에서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1라운드와는 다른 움직임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미하일님의 예상그대로군요.”
사실 교수들도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1라운드부터 너무 난이도가 높은 게 아니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미하일의 입장은 줄곧 같았다.
‘오히려 살아남은 학생들은 실시간으로 성장하며 두각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너무 과한 예상이 아닌가 싶었지만, 막상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결과를 보니 반박할 수 없었다.
1라운드를 통해 걸러진 학생들.
그리고 살아남은 학생들은 그간의 경험이 쌓였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당황하지도 않고, 서로간의 합을 맞춰가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샐러맨더의 위치를 파악.
두 번째. 그곳까지 도달하기 위한 경로 확보.
세 번째. 그 중에서 가장 최적의 경로를 결정.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이 과정을 유추해내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세 번째, 그러니까 경로를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시점.
학생들의 선택은 두 가지로 갈렸다.
“확실히 이 루트가 가장 빠를 거 같긴 하지만 몬스터의 서식지와 많이 겹쳐.”
“그럼 최대한 체력을 아끼는 루트가 좋을 거 같은데.”
“나도 동의해. 어디까지나 목표는 샐러맨더를 잡는 것. 그전까지 불필요한 소모전은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첫 번째는 이와 같이 조금 느린 길을 가더라도, 몬스터와의 마찰을 줄이는 경우.
그리고 두 번째는.
“몬스터만 처리한다면 이 루트가 가장 빨라.”
“그럼 혹여나 나중에 보스를 잡을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아니. 오버페이스로 가지 않는다면 충분해. 무엇보다 이건 샐러맨더를 가장 빨리 잡는 쪽이 승리하는 시험이잖아.”
몬스터를 잡더라도 최대한 빨리 샐러맨더를 토벌하려는 경우.
곧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미하일이 말했다.
“…역시 좀 더 안전한 길을 택하는 학생들이 더 많군요.”
앞서 말한 두 가지의 방법 중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자를 택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과였다.
괜히 보스가 아닌 다른 몬스터를 잡다가 체력을 소모할 경우, 정작 목표인 샐러맨더 토벌에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거기다 혹시라도 가늘 길에 몬스터를 잡다가 팀이 전멸하면?
그건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였다.
최대한 신중하게 성공률을 높이는 방향.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공략의 정석이었다.
“그럼 교장님도 안전한 길을 택한 학생들이 승리할 거라 보십니까?”
다른 교수의 물음.
이에 미하일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무조건 정석이라고 좋은 법은 아니지요. 실전에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니 마련이니까요.”
그런 그의 시선은 다른 학생들, 그러니까 최단루트를 선택한 소수의 학생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수에 해당하는 무리에는 현성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 * * * *
2라운드가 시작된 불의 둥지.
대부분의 팀이 갈림길에 도달한 상황.
본격적으로 학생들이 둘로 갈리기 시작했다.
오른쪽은 방금 말한 대로 비교적 몬스터의 출몰도가 적은 안전한 길.
그에 반해 왼쪽은 몬스터의 출몰도가 높은 위험한 길.
대신 보스룸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흐음….”
갈림길 앞에 선 하린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보았다.
저마다 장단점이 확실했다.
그만큼 쉽사리 결정을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이에 그녀가 옆에 있던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는 어느 쪽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때였다.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왼쪽으로 갈 거야.”
단호한 그의 대답.
동시에 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네? 왼쪽이요?”
왼쪽이라면 분명 몬스터가 많은 대신 가장 짧은 길.
대부분의 학생들이 택하지 않은 길이었다.
그런 현성의 답변에 하린이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역시 위험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게다가 몬스터를 잡으면서 소요될 시간이 계속 마음에 걸리네요.”
“맞아. 오히려 그 시간 때문에 더 늦어질 수도 있지.”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금 전 하린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 과거 그가 불의 둥지를 공략 할 당시에도 그랬다.
‘…불의 둥지 클리어 타임의 키 포인트가 되는 곳은 바로 이 갈림길.’
그리고 당시의 유저들이 입을 모아 제시한 선택지가 바로 오른쪽이었다.
분명 왼쪽은 몬스터가 많을지언정 최단루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점이 반대로 장점이 아닌 단점으로 적용되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길목이 단 하나 뿐이라서 몬스터가 몰려들면 그대로 게임오버. 덕분에 클리어 타임 좀 줄여보겠다고 왼쪽으로 갔다가 보스는커녕 용암만 보다가 죽었지.’
현성이 옛날을 회상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정석대로라면 좀 더 가더라도 오른쪽 길을 택하는 게 이번 공략의 핵심이었다.
바로 현성 그가 숨겨져 있던 새로운 공략법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도 이번 시험에서는 왼쪽이 더 효율적일거야.”
“…그런가요?”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왼쪽 길과 그를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그도 잠시.
하린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뭐 오빠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만한 방법이 있겠죠. 왼쪽으로 가요.”
만약 현성이 아니라 다른 학생이 말했다면 하린은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낸 사람이 현성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얼음무덤에 보여줬던 그 모습.
그것들을 떠올린다면 이번에도 현성이 왼쪽을 선택했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곧 하린이 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장님은…찮으신가요?”
이번 테스트는 어디까지나 팀전.
만약 자신과 현성이 왼쪽을 택했다고 한들, 남은 시연이 오른쪽을 택한다면 조금은 곤란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평소 하린이 듣기로는 시연은 차갑고 냉정하기로 유명한 엘리트.
때문에 현성의 말을 믿지 못할 수도 있었다.
긴장되는 그 순간.
“저는….”
시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왼쪽으로 가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역시나 긍정.
사실 시연 역시 평소대로라면 좀 더 시간을 두고 고민했겠지만 선천강에서, 그리고 공개대련에서 보여준 현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거기다 이번 1라운드조차 자신보다 먼저 클리어했다.
‘그런 현성이 왼쪽을 선택했다면…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지금껏 항상 기대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현성이라면 그랬다.
동시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믿어줘서 고마워.”
그러면서 현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시연이 반대하면 어쩌나 생각했다.
‘역시 처음부터 접점을 만들어가며 나름대로 호감작을 해두길 잘했어. 잘했다. 과거의 나.’
벌써 오늘만 해도 호감작을 해둔 사실에 두 번이나 감사를 표하는 현성이었다.
아무튼 이걸로 왼쪽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 났다.
이에 현성이 앞장서며 말했다.
“그럼 바로 들어가자. 자세한 설명은 가면서 해줄게.”
그대로 왼쪽 길로 들어오고 얼마나 지났을까.
처음에는 별 일 없었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길 너머에는 화염늑대 무리.
그 바로 옆에는 불의 정령 카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불의 정령 카사.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는 정령으로, 정령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화염늑대 못지않게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그 이유는 우선 화염늑대와 같이 무리생활을 하는 것도 모자라 공중을 날아다닌다는 특징이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는 공격 시 위에서 불똥을 드랍하는 게 굉장히 아니꼽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유저들 사이에서 별명이 똥둘기일까.’
거기다 하나하나의 데미지는 그리 강력한 편은 아니지만, 수십 마리가 한 번에 공격하게 될 경우 내리는 불꽃의 비는 절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가랑비에도 옷이 젖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가랑비가 불꽃이면 말 다했다.
이에 시연이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서부터는 몬스터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그냥 못 지나갈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녀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판단이야. 그래서 둘이 해줄 일이 있는데 괜찮을까?”
현성이 시연과 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시에 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저희가요?”
“응. 부탁할게.”
그러자 하린이 작게 웃으며 흔쾌히 대답했다.
“좋아요. 제가 뭘 하면 될까요?”
그녀의 활기찬 대답.
이에 현성이 입 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러니까 말이지….”
“네네.”
이때까지만 해도 하린은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다.
* * * * *
그리고 잠시 뒤.
불의 둥지 안쪽 절벽 위.
그곳에는 하린과 시연이 천천히 화염늑대 무리와 카사들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냐 하면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현성이 부탁한 게 바로 몬스터에게 접근해달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앞을 향해 조심조심 한 발자국을 내딛은 하린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오, 오빠? 이쯤이면 돼요?”
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저 뒤에 있는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질문에 현성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거기서 조금만 더 가야해.”
“…여, 여기서 더요?”
현성의 말에 하린의 동공이 작게 흔들렸다.
안 그대로 절벽에 서있는 하린과 시연은 몬스터의 어그로가 끌리기 직전.
그런데 여기서 더 가라니.
“씨이….”
하린이 작게 울먹이며 천천히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마치 전에 얼음무덤에서 현성이 자신에게 아이스 슬라이드를 선사했을 때와 같은 감정.
현재 하린은 현성에게 또 다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 하필 또 이런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임전무퇴.
하린이 옆에 있는 시연을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회장님은 괘, 괜찮아요?”
하린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말했다.
혹시라도 시연이 괜찮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물러나자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연이 표정하나 변하지 않으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시연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답에 하린이 마지막 지푸라기마저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네….”
동시에 뒤에 있던 현성이 손을 들었다.
신호가 왔다.
이에 하린이 심호흡을 하며 눈앞의 화염늑대와 카사를 바라보았다.
“후우….”
그리고 잠시 뒤.
하린이 용감하게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이었다.
“…크르륵?”
하린이 화염늑대의 어그로 범위에 들어가기 무섭게 화염늑대가 고개를 돌렸다.
어그로가 끌렸다는 표시.
거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휘익!
옆에 있던 시연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카사를 향해 돌을 집어던졌다.
이에 절벽에 붙어있던 카사들까지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잠깐의 정적.
“되, 된 건가…?”
그 모습에 하린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곧 그녀의 옆에 있던 시연이 말했다.
“됐습니다.”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화염늑대와 카사무리가 일제히 하린과 시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
현성이 둘을 바라보며 외쳤다.
“지금이야! 달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