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화 전조(7)
떨리는 건 시연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가 역시 작게 떨리고 있었다.
오빠라니.
‘그렇다면 설마 같은 유 씨인 것도….’
그대로 시연이 현성과 하린을 번갈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둘의 이름은 유현성, 유하린.
성이 같았다.
‘하지만 서로 남매라 보기에는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데.’
누가 봐도 현성은 전체적으로 하얀 피부와 흑발 때문인지 몰라도 차분한 이미지.
그에 반해 하린은 반짝이는 눈과 밝은 금발덕분에 따스하고 활발한 계열의 이미지.
이미지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물론 서로 친해보기는 하지만….’
그녀가 가문에서 보았던 남매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 그건 단순히 하 가문만 그런 것일까.
그때였다.
-멈칫.
시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하나의 생각.
설마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건 아닐까.
동시에 시연이 미간을 좁히며 주먹을 꾹 쥐었다.
그리고 만약 그런 게 맞다면 자신은 무작정 남의 가정사를 캐묻는 실례를 저지른 것.
하 가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닙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시연이 재빨리 말했다.
이에 설명하려던 현성이 말하던 말을 멈추고 시연을 바라봤다.
“아,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응?”
그러자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방금 한 말은 잊어주시죠. 제가 무례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사과할 일은 아닌데.”
이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시연이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굳이 말하실 필요 없어요.”
한 순간의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여 하마터면 무례를 저지를 뻔 했다.
시연이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닫았다.
“….”
그리고 지금 이 모든 것은 시연 그녀의 착각.
그러니까 속된 말로 전부 삽질이었다.
둘의 성씨가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일 뿐.
현성과 하린은 남매는커녕, 완벽한 남남이었다.
즉 안타깝게도 시연 그녀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좀 더 미래의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굳이 설명하지는 않을게.”
현성이 시연을 향해 대답하고는 하린을 흘깃 바라보았다.
이에 하린은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시연이 설마 이상한 상상이라도 하겠어.’
허나 그는 몰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연의 삽질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가고 있다는 것을.
아무튼 이렇게 작은 오해가 흐지부지 마무리되던 찰나.
“크흠.”
시험관이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방금 전 1라운드가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옆에는 익숙한 파란머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는 다름 아닌 하지성.
지성이 현성에게 당해 기절한 뒤.
필사적으로 30포인트를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1라운드가 종료되기 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자, 그럼 이대로 1라운드는 종료되었습니다.”
시험관이 단호하게 말했다.
곧 그가 1라운드를 통과한 다른 학생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에 따라 다음은 사전에 공지한대로 2라운드입니다. 그리고 2라운드의 진행방식은 간단합니다. 서로의 합의 하에 3인 1조를 이룬 후. 불의 둥지 깊은 곳에 있는 샐러맨더를 가장 빨리 처치하는 게 여러분들의 목표입니다.”
맨 처음 미하일이 설명한 내용 그대로였다.
가장 먼저 보스 샐러맨더를 잡는 것.
그러나 이어진 시험관의 말은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바로 조를 짠 뒤 진입할 예정이었지만…약간의 변수가 생겨 2라운드의 시작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이에 다른 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무슨 변수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의 질문에 시험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별건 아닙니다. 지금 아카데미의 관측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불의 둥지 내부에 설치해두었던 카메라 중 몇 개가 용암 때문에 망가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 수리할 인원을 파견했으니 그동안 잠시 기다려주기 바랍니다.”
실제로 불의 둥지에는 사방이 용암에다 지형도 험한 곳이 많기 때문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같은 일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수리인원은 보냈으니 아마 곧 복구되었다는 답신이 올 것이며 그때가 되면 다시 테스트는 원활하게 진행될 터.
“그러니 학생 여러분들은 수리가 완료되면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조를 구성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시험관의 말에 대기실에 있던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2라운드는 3인 1조로 진행되는 단체전.
그만큼 팀 구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인원도 인원이지만 팀워크.
이에 다른 학생들은 주로 친분이 있거나, 서로의 실력수준을 알고 있는 한에서 조를 편성할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곧 대기실은 서로 팀을 이루려는 학생들로 웅성거렸다.
“어때? 우리랑 같이 할래?”
“너만 들어오면 딱 조합이 될 거 같은데.”
“거기 너. 내 동료가 되어라.”
그 중에는 벌써부터 조를 이룬 학생들도 몇몇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조가 모이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현성 역시 조를 이뤄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전에 현성이 봐두었던 조원들은 이미 그의 양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당연히 같이 할 거죠?”
곧바로 하린이 팔짱을 끼고 있던 현성의 손을 꼬옥 당겨 안으며 싱긋 웃었다.
이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애초에 그녀를 얼음무덤에 데려간 것 역시 이를 엄두에 둔 것인데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명은 바로 하시연.
현성이 고개를 돌려 흘깃 시연을 바라보았다.
-찌릿.
동시에 현성을 자신에게 꽂히는 무수한 시선을 알아차렸다.
아니 이정도면 오히려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 시선들은 전부 시연을 팀원으로 들이고 싶지만, 쉽사리 말을 걸지 못하는 학생들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중요한 건 팀워크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의 팀원일 경우.
아카데미 1위의 실력을 자랑하는 하시연이라면 말이 달랐다.
그녀와 같은 팀이 된다면 나머지 팀원들은 달달한 캐리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시연은 말 그대로 최고의 버스기사.
그만큼 지금 현성에게 몰리는 시선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니가 뭔데 시연 옆에 있냐.
두 번째. 좋은 말로 할 때 빠져라.
뭐 결국은 첫 번째든 두 번째는 의미는 비슷했다.
하지만 겨우 그깟 시선에 물러날 현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당사자인 시연은 그녀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하자고 말하는 거야.’
그 결심은 바로 자신이 먼저 현성에게 조를 짜자고 제안하는 것.
안 그래도 방금 전 현성과 하린은 같은 조가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조원은 단 한명.
그 때문일까.
이쪽을 향해 시선이 몰리고 있었다.
이에 시연이 생각했다.
‘…역시 다른 학생들도 현성의 실력을 알아차리고 그를 노리는 모양이야.’
라고.
하지만 당연하게도 현성을 노리는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주변의 몰린 시선은 전부 시연 그녀를 노리는 것.
그러나 그녀는 전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
이번에도 시연은 거하게 삽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시연의 오해는 점점 더 커져가고, 그럴수록 그녀는 초조해졌다.
‘이러다 다른 사람에게 현성을 빼앗기면….’
결국 시연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그녀가 현성을 향해 말했다.
“현성!”
그러자 현성이 그녀를 바라봤다.
좋아. 현성을 부르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단 한마디.
‘같이 하자!’
허나 그 마지막 한 마디를 쉽사리 꺼내는 게 여간 힘들게 아니었다.
그대로 몇 초가 지났을까.
실제로는 3초도 채 지나지 않은 찰나의 순간.
‘빠, 빨리 말해야 하는데.’
시연의 긴장이 극에 다다랐다.
그때였다.
현성이 자연스럽게 시연을 향해 말했다.
“시연아. 같은 조 할래?”
그의 말과 함께 주변의 학생들이 움찔거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믿고 있었다.
현성이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자신들이 알고 있던 학생회장 하시연이라면 그의 제안을 거부할 거라고.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줄곧 차가운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시연이 입을 열었다.
“…그럴까요?”
예상외의 시연의 답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학생들의 입장일 뿐.
현성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 답변에 주변의 학생들을 타고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허어.”
“놓쳤네. 쯧.”
“아. 먼저 말할 걸 그랬나….”
주변에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현성이 작게 웃었다.
‘역시 그동안 구른 보람이 있네.’
선천강 때부터 이리저리 굴러오며 나름대로 시연의 호감작을 한 성과가 있었다.
이에 현성이 시연에게 악수를 건넸다.
“좋아. 그럼 잘 부탁해.”
그러자 시연 역시 작게, 아주 작게 웃으며 그의 악수를 받았다.
물론 결심한 대로 먼저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원하는 대로 현성과 같은 팀을 이루었다.
시연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였다.
“학생 여러분.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카메라 수리가 완료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럼 조를 편성한 학생들은 곧바로 움직이기 바랍니다.”
그대로 시험관이 뒤에 있는 입구를 가리켰다.
저 곳이 바로 2라운드가 열릴 곳이었다.
그의 말에 조를 편성한 다른 학생들이 일어났다.
이에 현성이 하린과 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가볼까?”
그런 현성의 말과 함께 하린과 시연이 대답했다.
“좋아요. 오빠.”
“…좋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현성을 포함한 셋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 *
한편 불의 둥지 안쪽.
카메라가 고장 났다던 절벽.
그곳에는 수리공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서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조금 이상했다.
“수리…완료되었습니다. 수리 완료…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우두커니 선 채.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그쯤이면 됐다. 멈춰.”
수리공의 옆에 서있던 정체불명의 그가 말했다.
아니 명령했다.
그러자 수리공이 뚝 말을 멈추며 그대로 멍하니 서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꼭두각시와도 같았다.
“…쯧. 막 만든 건 간혹 가다 한두 번 씩 이런단 말이야.”
정체불명의 그가 수리공을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는 기분 나쁜 목소리.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얼마 전 병원에서 성준을 죽인 그였다.
-스으으.
무엇보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길함.
이에 그의 주변으로는 그 흔한 화염늑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발밑에는 서있는 수리공과 똑같은 모습의 남성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었다.
그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지 오래.
“그나마 여긴 시체처리하기에 편리해서 좋군.”
그대로 정체불명의 그는 아무런 감흥 없이 시체를 발로 밀어 절벽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러자 절벽 아래에 있던 용암이 단숨에 시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잠시 뒤.
시체는 흔적도 없이 용암바다에 가라앉아 사라졌다.
“봉인을 풀 ‘제물’은 충분했으니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인가….”
그가 저 멀리 절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그가 히죽 웃었다.
“…이거 기대되는군.”
용암이 흐르는 불의 둥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체불명의 그는 병원에서와 같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